건강한 여성주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우먼카인드》
vol. 20 : 식물의 목소리를 듣다
일 년 중 초록이 가장 짙어지는 여름에 《우먼카인드》는 그 초록의 생명체를 키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태초의 지구를 생각해보아도, 인적 없는 원시림을 떠올려보아도 식물은 사람 없이 얼마든지 자랄 수 있지만, 사람은 식물 없이 이 지구에서 살 수 없다. 그토록 원초적인 동반자인 식물이지만 마치 공기처럼 우리는 식물의 이타적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아담한 테라스에서, 햇살 내리는 창가에서, 연립주택의 옥상에서, 척박한 땅을 일군 텃밭에서, 식물을 자신의 삶 속에 들이게 된 각기 다른 사연들을 들어본다. 무엇보다 단순한 취미나 소일거리로서의 가드닝이 아니라, 식물의 생장을 관장하는 주체로서의 삶을 더 확장시켜 개인의 건강한 미래뿐 아니라 생태와 환경에 대한 사회적 실천가로서의 삶까지 설계하고 있다. 그들의 작고도 성대한 식물의 세계관을 만나본다.
각자의 속도대로 자라는 식물들
: 뮤지션 임이랑이 말하는 ‘균형 잡힌 식물 사랑이란’
화초를 사랑하고 정성을 다해 이를 키우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치며 곡을 만드는 뮤지션이면서, 식물 전용 방과 식물을 위한 테라스를 만들고, 오로지 식물의 생장 조건을 위해 365일 내내 식물등과 선풍기를 켜두는 사람, 팟캐스트에서 식물 전문 방송을 진행하고, 두 권의 식물 에세이를 쓴 사람이 있으니, 밴드 <디어클라우드> 멤버 임이랑이 그 주인공이다. 처음엔 시각적이고 미학적인 이끌림에 식물을 좋아했었지만, 언젠가 막다른 벽에 부딪히던 슬럼프 한가운데에서 그 누구도 아닌 식물들이 보내는 무언의 위로에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식물 앓이가 시작되었다.
임이랑이 식물을 대하는 자세는 한 마디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의 사랑’이다. 한 식물을 집에 들일 때 그 식물의 특징을 알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수시로 지켜보는 등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어느새 시들어 생을 끝내가는 식물에게 과도한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 한다. 초보자들에게 하는 조언 중 ‘물 주기 3년’이라는 말이 있듯이 임이랑은 가드닝의 조언을 구하는 이들에게 ‘많이 죽여봐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화초를 떠나보낼 때마다 ‘내가 무얼 잘못한 것일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곤 했지만, 이제는 일년생 식물이 1년의 삶을 잘 살고 떠나듯, 이제는 그 화초의 생이 거기까지였다는 생각에 미련 없이 떠나 보내주게 되었다. 그만큼의 경험치와 각각의 생장 특성을 공부한 결과들은 식물 돌봄이의 머릿속에 착착 쌓여갈 것이다.
식물을 이렇게까지 정성껏 돌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물었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식물의 포텐이 보고 싶어서요.” 최적의 조건을 맞추었을 때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성장의 포텐도 기대하지만, 거의 죽어간다고 생각된 화초가 한겨울을 힘겹게 지나더니 봄이 되자 새순이 돋는 것을 목격하자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생명력의 포텐’에 감동하기 때문이다.
식물이 사람을 구원하는 세 가지 방법
: 김수경, 배보람, 이아롬의 가드닝 에세이
가장 소중한 것을 한꺼번에 잃은 절망보다 더 추스르기 힘든 시련이 있을까. 원예치료사이자 보태니컬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김수경은 소중했던 존재들을 차례로 떠나보낸 아픈 경험 뒤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모든 순간들이 멈춰버린 시간을 보냈다. 몸을 일으켜 단순한 행동조차 하기 힘들었던 멈춤의 시절이었지만, 어느 날 집안 곳곳에서 주인의 끊어진 손길에 메말라가는 식물들을 보며 회초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제야 깨달았다. 괴로움을 추슬러 다시 화분에 물을 주고 시든 이파리를 떼어내는 작은 행위에서부터 서서히 상처와 절망이 씻기고 있음을 말이다.
배보람의 위트 가득한 옥상 정원 이야기는 식물이 사람에게 주는 ‘즐거움’이라는 선물을 새삼 확인하게 만든다. 이웃끼리 오가는 식물 돌보기의 품앗이 현장이 펼쳐지지만, 그 품앗이가 본의 아니게 원치 않는 피해를 야기하는 난처한 사정이 펼쳐지는데, 마치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 독자로 하여금 웃음 짓게 만든다.
공동체 가드너인 이아롬은 상업적인 판매에 주력하는 농산물의 생태에서 벗어나, 환경 보존적 가치를 지켜내고자 불모지와 같았던 쓰레기 가득한 텃밭을 일구어 계단식 공동정원을 만들어냈다. 식물 가꾸기를 사랑하는 자신의 행동이 개인적 취미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의무와 개인의 사명감을 모두 이루고자 하는 공적인 영역으로까지 나아간다.
“Follow your bliss” 당신만의 희열을 추구하라
<우먼카인드>의 해외 필자들이 이번 호에 다함께 집중한 이야기는 ‘Follow your bliss’ 곧 자신만의 행복, 혹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희열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들의 얘기다. 누구나 인정하고, 누구나 안정된 길이라 여기는 출세와 안위의 삶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정말로 원하고 행복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길을 담담히 선택하여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자기만의 모험으로 이끄는 부름’에 귀를 기울이라고 권유한다. 자신이 어떤 곳에서 희열을 느끼는지, 어떻게 살아야 이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는지, 그것은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직업화가의 길을 마다하고 오래된 옛 성의 내부를 꽃과 식물 그림으로 채우는 사람, 뉴질랜드 웰링턴 시내에서 전통의상을 평상복처럼 입고 다니는가 하면, 안정된 한 직장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인생 주기에 맞춰 직업을 바꿔보는 새로운 도전을 일삼는 사람도 있다. 팬데믹의 고통을 잊기 위해 수시로 자녀들과 바다를 찾는 엄마, 눈물을 글썽이며 희열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황홀함을 설명하는 음악가도 이 주제의 주인공이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 하지만, 실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너는 ~를 해야 한다’라고 무언의 명령을 내리는 외부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는 용기, 직관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자세를 회복하고자 하는 용기 말이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일진대, ‘자유에는 결정이 뒤따르며, 모든 결정은 운명까지 결정한다’는 캠벨의 말처럼 자기만의 모험은 스스로 시작하고 끝내야 함을 알아야 한다.
본문 들여다보기
“나중에야 알았지요. 식물의 멈춤에는 이유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그 아이들도 잠깐 쉬어가고 싶고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요. 그때 우리는 조용히 그 휴식을 기다려주면서 물이나 햇빛도 그 속도에 맞게 조금 줄여주고 혼자 있게 내버려둘 줄도 알아야 하거든요.”
○ 〈각자의 속도대로 자라는 식물처럼〉 임이랑 인터뷰_ p.19
고맙게도 이 작은 생명들을 만지고 다듬을 땐 온전히 이 녀석들만 생각하게 된다. 병이 들었나? 필요 없는 잎은 없나? 물은 충분했나? 영양을 더 줘야 할까? 그렇게 손길이 필요한 식물들을 만지고 바라보다 보면 식물들이 나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괜찮다. 괜찮아질 거야. 우리처럼.’
○ 〈그때마다 내 곁에 있던 푸른 잎들〉 김수경 _ p.31
그때부터 나는 그들처럼 살고 싶었다. 집과 회사가 전부인 삶이 아니라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꼭 흙을 만지고, 원하는 대로 일하고, 딱 그 정도만 돈을 벌며 나를 지키고 싶었다. 상대의 얼굴에 양손을 얹고 애정을 표하는 그들처럼 주변 사람들과 온몸으로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맛과 단맛이 옅어지는 발효된 과실처럼 때로는 나라는 존재를 내려놓고 사람들 사이에서 푹 익어가고 싶었다.
○ 〈식물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이아롬_ p.46
캠벨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 간에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야!’라고 해보자. 상황이 엉망진창처럼 보일지라도 기회이자 도전인 듯이 부딪쳐보자. 낙담하지 않고 그 순간을 사랑한다면 오히려 힘을 얻을 것이다. 어떤 재앙이 닥쳐도 일단 이겨내면 당신의 인격, 지위, 인생은 한층 도약할 것이다.”
○ 〈당신만의 희열을 따르라〉 안토니아 케이스_ p.57
나는 왜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행동하고 있을까?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러면 당신은 20만 행에 달하는 산스크리트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선인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는 “수백 수천여 명의 인간이 매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인간은 자신에게 죽음이 닥칠 것이라 생각지 않고 죽음에 대비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 역시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라는 그의 저서에서, 시간이 영원하지 않은 걸 알면서도 마치 영원할 것처럼 행동하는 로마인들을 비난하며 이와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 〈째깍째깍 지금도 시간은 흐른다〉 올리버 버크먼_ p.72
모험은 바로 그렇게 준비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한계에 도달하는 지점이다. 우리는 불확실성 속으로 뛰어들거나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때 자신이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험은 불안하게 하고, 겁나게 하고, 나중에 과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처음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지만, 어떻게든 변화된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미지의 것과 씨름하는 것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 〈대문자 A로 시작하는 사람이 되라〉 플로라 마이클스 _ p.112
엮은이 우먼카인드 편집부
《우먼카인드》는 여성의 언어로 말하고 여성의 눈으로 새로운 가치를 읽어내는 문화잡지다. 여성의 자아, 정체성 그리고 동시대 세계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문학, 철학, 역사, 사회학, 심리학 등에서 논의되는 생각들을 다양한 조합으로 선보인다. 그런 토대 위에서 더 나은 삶, 충만한 삶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 방법을 모색한다. 광고가 없는 잡지로 광고 없는 자리는 삶의 지침이 되는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잠언과 일러스트 작품이 대신한다. 2014년 호주에서 창간된 계간지로, 현재 27개국 독자들이 만나고 있다.
옮긴이
권은정, 김지혜, 김효정, 이미영, 김은영 (바른번역)
건강한 여성주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우먼카인드》
vol. 20 : 식물의 목소리를 듣다
일 년 중 초록이 가장 짙어지는 여름에 《우먼카인드》는 그 초록의 생명체를 키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태초의 지구를 생각해보아도, 인적 없는 원시림을 떠올려보아도 식물은 사람 없이 얼마든지 자랄 수 있지만, 사람은 식물 없이 이 지구에서 살 수 없다. 그토록 원초적인 동반자인 식물이지만 마치 공기처럼 우리는 식물의 이타적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아담한 테라스에서, 햇살 내리는 창가에서, 연립주택의 옥상에서, 척박한 땅을 일군 텃밭에서, 식물을 자신의 삶 속에 들이게 된 각기 다른 사연들을 들어본다. 무엇보다 단순한 취미나 소일거리로서의 가드닝이 아니라, 식물의 생장을 관장하는 주체로서의 삶을 더 확장시켜 개인의 건강한 미래뿐 아니라 생태와 환경에 대한 사회적 실천가로서의 삶까지 설계하고 있다. 그들의 작고도 성대한 식물의 세계관을 만나본다.
각자의 속도대로 자라는 식물들
: 뮤지션 임이랑이 말하는 ‘균형 잡힌 식물 사랑이란’
화초를 사랑하고 정성을 다해 이를 키우는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밴드에서 베이스기타를 치며 곡을 만드는 뮤지션이면서, 식물 전용 방과 식물을 위한 테라스를 만들고, 오로지 식물의 생장 조건을 위해 365일 내내 식물등과 선풍기를 켜두는 사람, 팟캐스트에서 식물 전문 방송을 진행하고, 두 권의 식물 에세이를 쓴 사람이 있으니, 밴드 <디어클라우드> 멤버 임이랑이 그 주인공이다. 처음엔 시각적이고 미학적인 이끌림에 식물을 좋아했었지만, 언젠가 막다른 벽에 부딪히던 슬럼프 한가운데에서 그 누구도 아닌 식물들이 보내는 무언의 위로에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식물 앓이가 시작되었다.
임이랑이 식물을 대하는 자세는 한 마디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의 사랑’이다. 한 식물을 집에 들일 때 그 식물의 특징을 알기 위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수시로 지켜보는 등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어느새 시들어 생을 끝내가는 식물에게 과도한 죄책감을 갖지 않으려 한다. 초보자들에게 하는 조언 중 ‘물 주기 3년’이라는 말이 있듯이 임이랑은 가드닝의 조언을 구하는 이들에게 ‘많이 죽여봐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화초를 떠나보낼 때마다 ‘내가 무얼 잘못한 것일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곤 했지만, 이제는 일년생 식물이 1년의 삶을 잘 살고 떠나듯, 이제는 그 화초의 생이 거기까지였다는 생각에 미련 없이 떠나 보내주게 되었다. 그만큼의 경험치와 각각의 생장 특성을 공부한 결과들은 식물 돌봄이의 머릿속에 착착 쌓여갈 것이다.
식물을 이렇게까지 정성껏 돌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물었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식물의 포텐이 보고 싶어서요.” 최적의 조건을 맞추었을 때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 하는 성장의 포텐도 기대하지만, 거의 죽어간다고 생각된 화초가 한겨울을 힘겹게 지나더니 봄이 되자 새순이 돋는 것을 목격하자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생명력의 포텐’에 감동하기 때문이다.
식물이 사람을 구원하는 세 가지 방법
: 김수경, 배보람, 이아롬의 가드닝 에세이
가장 소중한 것을 한꺼번에 잃은 절망보다 더 추스르기 힘든 시련이 있을까. 원예치료사이자 보태니컬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김수경은 소중했던 존재들을 차례로 떠나보낸 아픈 경험 뒤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없을 만큼 모든 순간들이 멈춰버린 시간을 보냈다. 몸을 일으켜 단순한 행동조차 하기 힘들었던 멈춤의 시절이었지만, 어느 날 집안 곳곳에서 주인의 끊어진 손길에 메말라가는 식물들을 보며 회초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제야 깨달았다. 괴로움을 추슬러 다시 화분에 물을 주고 시든 이파리를 떼어내는 작은 행위에서부터 서서히 상처와 절망이 씻기고 있음을 말이다.
배보람의 위트 가득한 옥상 정원 이야기는 식물이 사람에게 주는 ‘즐거움’이라는 선물을 새삼 확인하게 만든다. 이웃끼리 오가는 식물 돌보기의 품앗이 현장이 펼쳐지지만, 그 품앗이가 본의 아니게 원치 않는 피해를 야기하는 난처한 사정이 펼쳐지는데, 마치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 독자로 하여금 웃음 짓게 만든다.
공동체 가드너인 이아롬은 상업적인 판매에 주력하는 농산물의 생태에서 벗어나, 환경 보존적 가치를 지켜내고자 불모지와 같았던 쓰레기 가득한 텃밭을 일구어 계단식 공동정원을 만들어냈다. 식물 가꾸기를 사랑하는 자신의 행동이 개인적 취미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의무와 개인의 사명감을 모두 이루고자 하는 공적인 영역으로까지 나아간다.
“Follow your bliss” 당신만의 희열을 추구하라
<우먼카인드>의 해외 필자들이 이번 호에 다함께 집중한 이야기는 ‘Follow your bliss’ 곧 자신만의 행복, 혹은 자신이 정말 원하는 희열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들의 얘기다. 누구나 인정하고, 누구나 안정된 길이라 여기는 출세와 안위의 삶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정말로 원하고 행복과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길을 담담히 선택하여 찾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이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자기만의 모험으로 이끄는 부름’에 귀를 기울이라고 권유한다. 자신이 어떤 곳에서 희열을 느끼는지, 어떻게 살아야 이 순간 살아 있음을 느끼는지, 그것은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직업화가의 길을 마다하고 오래된 옛 성의 내부를 꽃과 식물 그림으로 채우는 사람, 뉴질랜드 웰링턴 시내에서 전통의상을 평상복처럼 입고 다니는가 하면, 안정된 한 직장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인생 주기에 맞춰 직업을 바꿔보는 새로운 도전을 일삼는 사람도 있다. 팬데믹의 고통을 잊기 위해 수시로 자녀들과 바다를 찾는 엄마, 눈물을 글썽이며 희열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황홀함을 설명하는 음악가도 이 주제의 주인공이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대로 살고 싶어 하지만, 실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너는 ~를 해야 한다’라고 무언의 명령을 내리는 외부의 영향을 무시할 수 있는 용기, 직관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자세를 회복하고자 하는 용기 말이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일진대, ‘자유에는 결정이 뒤따르며, 모든 결정은 운명까지 결정한다’는 캠벨의 말처럼 자기만의 모험은 스스로 시작하고 끝내야 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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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야 알았지요. 식물의 멈춤에는 이유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그 아이들도 잠깐 쉬어가고 싶고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을요. 그때 우리는 조용히 그 휴식을 기다려주면서 물이나 햇빛도 그 속도에 맞게 조금 줄여주고 혼자 있게 내버려둘 줄도 알아야 하거든요.”
○ 〈각자의 속도대로 자라는 식물처럼〉 임이랑 인터뷰_ p.19
고맙게도 이 작은 생명들을 만지고 다듬을 땐 온전히 이 녀석들만 생각하게 된다. 병이 들었나? 필요 없는 잎은 없나? 물은 충분했나? 영양을 더 줘야 할까? 그렇게 손길이 필요한 식물들을 만지고 바라보다 보면 식물들이 나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괜찮다. 괜찮아질 거야. 우리처럼.’
○ 〈그때마다 내 곁에 있던 푸른 잎들〉 김수경 _ p.31
그때부터 나는 그들처럼 살고 싶었다. 집과 회사가 전부인 삶이 아니라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꼭 흙을 만지고, 원하는 대로 일하고, 딱 그 정도만 돈을 벌며 나를 지키고 싶었다. 상대의 얼굴에 양손을 얹고 애정을 표하는 그들처럼 주변 사람들과 온몸으로 감정을 나누고 싶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맛과 단맛이 옅어지는 발효된 과실처럼 때로는 나라는 존재를 내려놓고 사람들 사이에서 푹 익어가고 싶었다.
○ 〈식물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 이아롬_ p.46
캠벨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 간에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야!’라고 해보자. 상황이 엉망진창처럼 보일지라도 기회이자 도전인 듯이 부딪쳐보자. 낙담하지 않고 그 순간을 사랑한다면 오히려 힘을 얻을 것이다. 어떤 재앙이 닥쳐도 일단 이겨내면 당신의 인격, 지위, 인생은 한층 도약할 것이다.”
○ 〈당신만의 희열을 따르라〉 안토니아 케이스_ p.57
나는 왜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행동하고 있을까?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러면 당신은 20만 행에 달하는 산스크리트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선인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는 “수백 수천여 명의 인간이 매 순간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인간은 자신에게 죽음이 닥칠 것이라 생각지 않고 죽음에 대비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이는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 역시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라는 그의 저서에서, 시간이 영원하지 않은 걸 알면서도 마치 영원할 것처럼 행동하는 로마인들을 비난하며 이와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 〈째깍째깍 지금도 시간은 흐른다〉 올리버 버크먼_ p.72
모험은 바로 그렇게 준비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한계에 도달하는 지점이다. 우리는 불확실성 속으로 뛰어들거나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때 자신이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험은 불안하게 하고, 겁나게 하고, 나중에 과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처음 출발한 곳으로 돌아가지만, 어떻게든 변화된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미지의 것과 씨름하는 것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 〈대문자 A로 시작하는 사람이 되라〉 플로라 마이클스 _ p.112
엮은이 우먼카인드 편집부
《우먼카인드》는 여성의 언어로 말하고 여성의 눈으로 새로운 가치를 읽어내는 문화잡지다. 여성의 자아, 정체성 그리고 동시대 세계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문학, 철학, 역사, 사회학, 심리학 등에서 논의되는 생각들을 다양한 조합으로 선보인다. 그런 토대 위에서 더 나은 삶, 충만한 삶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그 방법을 모색한다. 광고가 없는 잡지로 광고 없는 자리는 삶의 지침이 되는 철학자와 예술가들의 잠언과 일러스트 작품이 대신한다. 2014년 호주에서 창간된 계간지로, 현재 27개국 독자들이 만나고 있다.
옮긴이
권은정, 김지혜, 김효정, 이미영, 김은영 (바른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