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언젠가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소설가 강화길 인터뷰



언젠가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다

소설가 강화길 (최지은 인터뷰∙정리)

《우먼카인드》15호 딸에 대하여



자라면서 알게 되잖아요. 엄마들의 역사를.

그래서 가족 이야기를 깊게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그러나 그해. 단 한 명이 마을을 떠났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할 것이다.”
강화길 작가가 지난겨울 발표한 《다정한 유전》의 도입부는 짤막한 선언으로 독자를 긴장시킨다. 여성이 자신의 뿌리로부터 멀어져 원하는 곳에 자기만의 방을 가지려 하는 것은 언제나 불온한 모험이다. 장편소설 《다른 사람》과 소설집 《괜찮은 사람》 《화이트 호스》 등 그의 소설 속 여러 여자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거나, 여기서 벗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거나, 새로운 곳에서 자리 잡지 못해 떠돌거나, 좁은 곳에 갇힌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작년에 《문학 3》에 발표했던 〈대불호텔의 유령〉을 장편으로 고쳐 쓰고 있어요. 원래 계획은 3월 전에 마감하는 거였는데, 초고를 써놓고 보니 성에 안 차서 수정하다가 개강이 닥쳤어요. 대학 두 곳에서 소설 창작 강의를 하거든요. 


2020년 봄, 〈음복〉으로 제11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으셨을 때 소감문의 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이 일을 선택하고 욕망했다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일인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도대체, 자식새끼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뭘 모르게 했을까 싶다. 내가 부모였다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이 나의 재능이다.”
저는, 제가 글 쓰는 걸 못마땅해하는 친척들이 있다는 걸 몰랐어요. 집안 형편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는데 저랑 동생이 공부를 오래 했거든요.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지만 부모님께 학자금을 도움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대학원 나와 등단까지 한 뒤에도 몇 년간 무명으로 지내니까 “쟤가 석사고 작가라는데 뭐가 없지 않냐”고 가시 돋친 말씀을 하는 분도 계셨다는 거예요. 엄마 아빠는 제가 그걸 모르게 해주셨고요. 알면 압박을 느낄 거고, 그러면 하는 일에 지장이 생길까 봐. 신기한 분들이죠. 글 쓰는 딸을 그렇게까지 도와주셨다는 게. 그 마음에 대해서는 한참 뒤인 〈음복〉을 쓸 때야 알았어요. 우리 엄마는 내가 하고 싶다는 거 다 하도록…… 비록 잔소리는 하더라도 압박하지 않고 기다려준 사람이라는 걸요. 그런데 부모라도 오래 기다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 깨달음이 무척 강렬해서 소감문에 쓰고 싶었어요. 보여드리지는 않았지만요.(웃음)


가끔 ‘글 쓰는 딸’이란 부모에게 어떤 존재일까 궁금할 때가 있어요.
아빠는 문학에 관심이 없는 분이라 그냥 딸이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걸로 받아들이시고, 엄마는 제 작품을 안 읽으세요. 박완서 작가님 작품은 다 사서 읽으셨는데 제 책은 드려도 안 읽으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얘가 쓰는 소설이 그렇게 말랑말랑한 감정을 담은 것 같지는 않은데, 딸이 이런 생각으로 사는 걸 감당할 수 있을까? 싶으신 것 같아요. 게다가 그걸 쓰는 과정에서 제가 힘들어하는 걸 아시니까 지켜보기 어려우신 거겠죠. 그런데 두 분 다 제 에세이는 인터넷에서 찾아보세요. 요즘 뭘 먹고 뭘 봤는지, 제 일상을 그걸로 확인하시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막상 엄마가 제 소설을 읽으신다 생각하면 약간 부담스러워요. 에세이는 차라리 괜찮은데 소설은 왠지 낯이 확 뜨거워지는 기분이라 그냥 표지만 보시면 좋겠어요.(웃음)


 



세상에 내가 쓴 이야기를 내놓으면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인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면이 있다는 게 재미있어요.
또 재미있는 건, 엄마 친구분들이 제 책을 읽고 엄마를 통해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신다는 거예요. 〈화이트 호스〉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평도 엄마랑 같이 성당 가곡반 활동하시는 분께 들었어요. 그분이 엄마더러 “너한테 가야 할 화이트 호스가 네 딸한테 간 것 같아”라고 하셨다는 걸 엄마가 전해주시면서 “그게 무슨 말이냐?” 하시더라고요. “어떤 면에선 정말 정확하게 보신 것 같아”라고 했죠. 그분이 친구로서 엄마를 볼 때 느끼시는 재능이나 감각 같은 게 있을 텐데, 〈화이트 호스〉가 바로 그런 것들을 둘러싼 이야기잖아요. 그리고 그 말씀은, 제가 창작자로 살며 엄마가 하지 못했던 걸 하고 있다는 데 대한 묘한 죄책감과 연결되기도 했어요.

엄마에게로 갔어야 하는 ‘화이트 호스’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신 적도 있나요?
엄마는 저와 다른 재능을 가진 분이에요. 노래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시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자라던 시대엔 그런 걸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경험하거나 배울 기회가 너무 적었죠. 나이 드신 다음 성당 합창단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노래에 관한 일을 끊임없이 찾아다니시는 걸 보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엄마의 그런 모습을 통해 배운 것 중 하나가, 나이 들어도 삶은 똑같이 계속된다는 거예요. 젊었을 땐 사람이 일정 나이를 지나면 ‘늙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사회적 활동이 줄어드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하고요. 하지만 엄마의 가곡반 얘기를 들어보면 저와 친구들이 노는 것과 비슷해요.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 해서 욕망이 사라지거나 인간관계의 진폭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렇다면 지금 알츠하이머로 요양원에 계신 외할머니도, 거기서 다른 노인분들과의 사회생활을 이어나가고 계실 거란 생각이 들죠.


〈당신을 닮은 노래〉와 〈선베드〉에 등장하는 딸과 엄마, 손녀와 외할머니가 떠오르네요. 가족 안에서 여성들의 관계라면 모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텐데, 작가님의 작품에는 〈가원〉이나 〈꿈엔들 잊힐 리야〉에서처럼 할머니를 바라보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도 종종 등장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저의 최근 관심사가 1세대부터 3세대까지의 관계예요. 나에겐 처음부터 노인에 가까운 존재였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고, 어떤 이유로 결혼해서 나의 부모를 낳았을 텐데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저는 할머니들과의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어느 순간 제가 외할머니를 꼭 닮은 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란 적이 있거든요. 〈음복〉을 쓰면서도 많이 생각했어요. 엄마와 딸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사실 그 엄마의 엄마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걸요. 자라면서 알게 되잖아요. 엄마들의 역사를. 그래서 가족 이야기를 깊게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여성 3대에 걸친 ‘가족사 3부작’을 쓰시겠다는 계획은 그로부터 비롯된 건가요?
네. 3부작이라고 해도 인물들이 서로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들이 살아온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는지 써보고 싶어요. 일단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대불호텔의 유령〉을 1세대로 놓고, 그다음으로는 〈음복〉을 장편화해서 8, 90년대 얘기를 해보려고 해요. 《악스트》에서 연재했던 〈치유의 빛〉이 저와 가장 가까운 세대의 이야기일 거고요.
 




무엇을 위해 그렇게까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소설을 쓴다고 생각하시나요?
〈퀸스 갬빗〉의 주인공이 왜 체스가 좋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해요. “단 64칸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상이잖아요. 그 안에서는 안전한 느낌이에요. 제가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으니까 예측가능하고요.” 이 대사를 들으며 제가 소설을 쓰는 이유 중 하나가 들통난 기분이었어요. 작품을 끊임없이 퇴고하면서 안심하는 것도, 이전보다 나아진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거든요. 저는 어떤 사안을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못하지만 제가 만든 판, 제 소설 안에서 인물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몇 달이나 심사숙고하잖아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생각해요. 나라는 사람은 굉장히 엉망진창일지라도 내 소설은, 나의 화자들은 항상 나보다 낫다고.


* 인터뷰 전문은 《우먼카인드》 15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우먼카인드》 15호 딸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