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메릴 스트립 만나러 갈까?

‘나는 내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ㅡ박효선 영화감독





나는 나의 세계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정의할 수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내가 온전히 들어맞는, 나를 분출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지 않으면 나는 정말 갈 곳이 없을 거라는 것을.


그러다 영화를 만났다.

 

영화와 가까워지고 나서야 나는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남자인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고 즐겁게 영화 이야기를 했지만 어느 순간까지였다. 그 애들한테는 있는, 그들을 잡고 끌어주는 줄이 나에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는 혼자서도 잘하는 척 참 열심히 달려왔지만 어느 샌가 영화와 그것을 둘러싼 것들에 넌더리가 나기 시작했다. 영화는 더 이상 내가 힘들 때 쉬는 안식처도, 내가 원하는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미래도 아니었다.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는 그래서 만들어야만 했던 영화다.







<메릴 스트립 프로젝트>는 텀블벅에서 역대 후원자 수 최다, 최대 후원금을 기록한 영화가 되었다. 너무나 멀어 보였던 여성 선배들이 나서서 손을 내밀어주었다. “나의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 보란 듯이 성공해달라”는 메시지를 수도 없이 받았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는 나와, 내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메릴 스트립을 만나야만 했다.





나는 누가 뭐래도 해낼 작정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내 편에 서기로 한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까. 이제는 추호의 의심도 없다. 맞다. 나는 내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우먼카인드 10호 우리의 발자국이 만드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