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같은 여자를 못 믿었을까?



'보이는 것을 믿자'  


여자와 드러내놓고 싸운 게 언제였더라? 그래서인지 이번 휴가 중에 친구와 눈물까지 흘리며 싸울 줄 몰랐다. “그걸 일일이 다 말해야 알아?” 같은 말을 ‘커뮤니케이션 디렉터’인 내가 할 줄은 더더욱 몰랐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들끼리의 대화가 그렇듯 물 흐르듯 의사소통이 되진 않는다. 얘기를 하다 보면 쓸 수 있는 모든 소스가 동원된다. 나를 뺀 세 명의 친구들에겐 ‘스페인어’라는 유용한 소스가 하나 더 있었다. 유일하게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친구들은 영어로 설명하려 했지만 설명되지 못하는 문장이 더 많았다.

처음엔 그냥 쿨하게 넘어가려 했다. 기본 2~3개 국어를 하는 유럽인과 달리 영어도 간신히 하는 아시안으로서 부러움과 부끄러움이 들었고 무엇보다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농담인데 속 좁게 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여성연대를 외치는 페미니스트니까.

하지만 대화에서 겉도는 느낌을 며칠째 받다 보니, 그걸 또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 보니 힘이 들었다. 여행의 피로함과 소외의 서운함, 둘의 시너지가 향한 대상은 가장 가까운 앙카였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이 없을 수가 있어?’ ‘어떻게 자기가 더 나서서 그래?’ ‘왜 나에 대한 배려가 없지?’ ‘내가 아시안이라서 그런가?’ 단순했던 감정은 점점 더 가지치기해나갔다.
 


“Are you OK?”


앙카가 내 기분을 점검하는 횟수도 늘어갔다. 물론 나는 괜찮다고 거짓말 했다. 처음엔 하나였던 괜찮지 않은 이유가 몇 가지로 늘어났고 이제 뭔가 돌이킬 수 없는 느낌이 되어버렸지만 이 불편함은 휴가 끝날 때까지만 잘 감추면 돼. 그리고 집으로 가져가자. 가서 놓아버리자.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이런 패턴이 얼마나 자주 반복됐던가? 어쩌면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여자 친구들과의 관계는. 여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부정적 감정의 씨앗을 묻어두고 나무로 자랄 때까지 키웠다가 관계 자체를 벌목해버리기. 일을 대하는 태도는 이렇지 않다. 의견을 낼 때 상대의 의도를 짐작하거나 에두르는 법이 없다. 그런데 왜 유독 여성에게는 내 감정을 ‘직멘’하지 못할까?
 


그러다 불현듯 오래전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레이철 시먼스의 《소녀들의 심리학》. 성장기 여성의 심리와 공격성에 대해 연구하는 저자는 여성의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는 ‘간접성의 문화’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우리 문화에서 소녀들은 그들 자신을 왜곡하여 점점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운 위치로 몰아간다. 우리는 소녀들에게 대담하면서도 소심하고, 육감적이면서도 야위고, 성적 매력을 풍기면서도 얌전하라고 말한다. 서두르라고 하면서 기다리라고 한다. 그런 식으로 몰리면 소녀들은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와해된다.  … 대중매체는 이 간접성의 문화를 강화하여 소녀들이 지닌 이중성과 회피성을 부추긴다.”
 


베이비 페이스에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가진 ‘베이글녀’가 트렌드가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대중문화 콘텐츠를 흡수하며 소녀들은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거나 한 가지 면만 갖는 건 매력적이지 않다고 학습한다. 경쟁, 질투, 분노, 화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을 부자연스럽게 숨기며 성장한다. 동시에 자신은 물론 다른 여성의 언행까지 은연중에 검열하게 된다. 내가 감정을 감추는 만큼 다른 여성도 감정을 감출  거라고 짐작한다. 끝내는 내가 거짓말을 하는 만큼 다른 여성도 거짓말을 할 거라고, 내가 믿지 못하는 만큼 다른 여성도 나를 믿지 못할 거라고 믿어버리게 된다.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같은 말에 고개 끄덕거리면서.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여성성’을 벗어 던진 외양 탈코르셋은

남성의 시선과 욕망을 전제하지 않는 여성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10대, 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탈코르셋’도 ‘페이스 밸류’로 해석될 수 있다. 연예인 못지않게 꾸미거나 꾸밈을 권하는 여성, 자신의 외모를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전시하는 여성이 주위에 있을 때 생성되는 묘한 긴장감, 불안감, 피로감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여성은 오랫동안 여성을 와해시켜온 간접성, 회피성의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함께 가고 싶은 사이라면 질투, 분노 같은 감정까지 솔직하게 인정하고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관계의 회복성,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이고 그 열린 문을 통해 신뢰가 오갈 수 있다. 이 과정 없이 여성연대를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한 일이다.
 



김진아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울프소셜클럽 대표. 책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를 썼다. 



우먼카인드 9호 탈코르셋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