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도덕감정을 타고 나는가


오래전부터 과학은 도덕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최근 현대 과학의 발전은 이 두 진영의 경계를 흔들고 있다. 신경과학의 발전은 뇌의 특정 부위가 도덕 행위와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진화론은 인간의 도덕성 역시 진화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과연 과학은 도덕에 대하여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스켑틱 6호의 커버스토리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1667년, 토머스 코넬Thomas Cornell이라는 사람은 어머니를 살해한 죄가 발각되어 사형을 당했다. 그로부터 20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의 후손인 리지 보든Lizzy Borden은 아버지와 계모를 살해한 죄로 기소되었지만 무죄판결을 받아 논란이 일었다. 21세기 초, 그들의 혈통을 이어받은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의 교수 짐 팰론Jim Fallon이 연쇄살인범의 뇌를 연구했다. 팰론이 자기 집안의 흥미진진한 역사에 대해(즉 자신의 학문적 관심과 그 역사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알지 못하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구는 꽤나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그가 이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한 건 아마도 어머니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 이후로 보이는데, 어째 연구가 계속될수록 점점 불안해졌다.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팰론은 자신을 포함해 집안 식구들 몇 명에게 뇌 정밀검사를 실시했다. 밝혀진 바대로 팰론의 연구는 연쇄살인범들의 경우 안와피질orbital cortex 부분의 활동이 극히 미미한 경향이 있음을 보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과였다. 왜냐하면 안와피질은 편도체(간단히 설명하면 강렬한 감정, 특히 두려움이 자리하는 곳이며 공격적 행동의 원천이다)의 활동과 상호작용하며 그 활동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안와피질이 활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편도체의 정상적인 제동장치가 해제되어, 개인을 폭력적으로 만들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팰론의 가까운 친척들 가운데 뇌에 연쇄살인범의 특징이 나타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하필 팰론에게 이 특징이 보였다!

다소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지만 이 생물학자는 공격성과 관련이 있는 유전적 기반에 대해 두 번째 테스트를 진행했다. MAOA(모노아민 산화효소 A) 유전자는 대부분의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인간 개체군에서 다양한 변이가 발견된다. 이 변이들 중 한 변이는 특정한 폭력행위와 관련이 있고, 연쇄살인범들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팰론 친척들의 DNA에는 ‘전사 유전자the warrior gene’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유전자 변이가 없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에게 이 변이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짐 팰론은 연쇄살인범이 아니며, 그는 이 현상에 학문적 관심이 있을 뿐이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신경윤리학이란 새로운 과학

이제 여러분은 점차 흥미를 더해가는 신경윤리학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 분야의 철학자와 과학자 들은 상호협력을 통해 인간이 도덕적 관점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아마도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가 이 의문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 역시 뚜껑을 열고 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람들의 삶을 안내하는 다양한 생각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분석하기 위해 철학자의 논리적 메스를 이용하는 한편, 인간이 어떻게 그리고 왜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과학이라는 현미경을 이용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하면 윤리적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해 더 깊은 이해로 무장해 더욱 훌륭한 지침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짐 팰론은 자신이 연쇄살인범이 아닌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전사 유전자를 보유하고, 안와피질의 독특한 불활성 상태를 보이는 가족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에게 한 가지 요소가 빠져 있다고 믿는다. 바로 연쇄살인범이 되기에 적절한(정확히 말하면, 나쁜) 환경 말이다. 팰론은 가족들에게 애정을 듬뿍 받으며 아무런 트라우마 없이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만일 이런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면, 예를 들어 그가 학대를 당했더라면, 신경유전학이라는 폭풍이 불어닥칠 완벽한 환경이 조성되었을 테고, 어쩌면 연쇄살인범을 연구하는 어떤 과학자의 연구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추측만 할 뿐 사실은 알 길이 없다. 적어도 짐 팰론의 기이한 사례는 특정한 유전적 혹은 신경학적 특성이 정해진 일련의 행동을 유발하기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특성은 법정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국(NPR)의 2010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법원은 지금까지 약 1200건의 폭력행위에 대해 신경생물학적 증거나 유전적 증거를 인정했다고 한다. 이는 어떤 경향의 시작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2006년 테네시 주에 사는 브래들리 월드롭Bradley Waldroup이라는 사람은 말다툼 끝에 격앙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내와 아내의 친구를 살해한 죄로 기소되었다. 법의학 관점에서 월드롭의 과실이 명백했으므로 검사들은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피고측 변호사는 월드롭이 (짐 팰론이 자신 에게서 발견한 것과 똑같은) MOA-A 유전자 변이, 즉 ‘전사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증거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사는 피고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전자로 인해 감정을 폭발하고 폭력적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뜻밖에도 배심원들이 이 주장에 동조했다. 따라서 월드롭은 고의적 살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사형은 면하게 되었다.

철학적 관점에서는 이 사건을 보는 두 가지 합리적인 관점이 있다. 그런데 두 관점이 우리를 전혀 다른 결론으로 이끈다. 한 가지 관점은, 지능이 극히 낮은 사람들은 비록 사형이 고려되어야 마땅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사형을 언도받아서는 안 된다는 근대 미국법의 확고부동한 원칙이다. 이 원칙이 근거하고 있는 논리는, 이런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이해력과 의사결정 능력을 발휘할 수 없으므로, 이 경우 윤리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더 이상 해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제지하는 것이지, 깊은 숙고능력 없이 취한 행동 때문에 그들에게 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 우리의 법체계에 그 많은 생물학적 고려사항을 일일이 개입시킨다는 건 분명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정의의 개념도 일관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내 뇌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라거나 “내 유전자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라는 것이 피고측 주장이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유전자 구성에 영향을 받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반드시 뇌가 관여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우리의 도덕판단은 작동하지 않는 안와피질이나 전사 유전자 같은 요인보다 훨씬 극적이지 않은 요인에 의해 왜곡될 수 있다. 예를 들어 TV 코미디 쇼가 우리의 기분뿐만 아니라, (이런 종류의 코미디를 좋아할 경우) 당장의 도덕판단을 바꾸는 데 제법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는 우리가 더러운 책상에 앉거나 불쾌한 냄새를 맡고 있을 때 윤리적 사안에 관한 질문을 받을 경우, 깨끗한 책상 앞에 앉거나 불쾌한 냄새가 없는 경우보다 더 엄격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심사숙고해 도덕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고, 실제로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많은 요인이 (그것이 그 아래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충분히 경계태세를 유지하지 않았을 때도 작동되는) 우리 의식의 레이더 밑에 수북하게 쌓여 있다.


이중과정 이론The Dual- Process Moral Mind

하버드 대학교의 조슈아 그린Joshua Greene은 도덕적 의사결정의 신경과학에 대한 다수의 문헌을 검토한 후 이른바 도덕판단의 ‘이중과정dual-process’ 이론을 제시했다. 그린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문자 그대로 두 가지 종류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윤리적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도덕판단의 형태를 바꾼다. 이 이론의 기본 견해는 우리의 인지과정(대략적으로 말해 이성적 사고능력)은 공리주의적 판단과 관련되는 한편, 정서적 반응(즉, 직감 혹은 직관)은 의무론적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철학자들이 두 종류의 윤리이론을 논리적으로 별개의 것으로 여긴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개념은 흥미로운 상황을 야기한다. 다시 말해, 뇌에서 어떤 형태의 판단이 선취를 점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판단을 내리게 될지 모른다.




그린의 이중과정 이론의 증거는 무엇인가? 아마도 가장 초기의 단서는 19세기 철도회사 현장감독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의 유명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당시 그는 기다란 금속막대가 머리를 관통하는 희한한 사고를 당했지만 운 좋게 살아남았다. 게이지는 왼쪽 전두엽 대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인지추론 능력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었는데, 바로 그의 사회적 행동이었다. 별안간 그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극히 일부분일지라도 인지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뇌의 영역과 감정을 조절하는 영역이 다르고, 둘 사이의 균형이 (그의 경우 사고에 의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가장 초기의 사건이었다.

1990년대에 신경생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Antonio Damasio 팀이 실시한 연구는 복내측전전두엽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 VMPFC이라는 보다 특정한 뇌 부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구에서 이 부위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의 경우, 특정한 모의 시나리오와 관련된 위험 평가에서 위험을 크게 과소평가하는(잘못된 평가를 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도덕적 추론능력을 측정하는 테스트에서는 정상반응을 나타냈다. 이 문제는 유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을 정상적으로 이끄는, 감정을 유발하는 뇌기능이 작동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 같았다. 흥미롭게도 정신병의 신경생물학적 기초에 대한 연구들도 (뇌의 다른 부위들 가운데에서 특히) VMPFC와의 관련성을 증명한다. 아무래도 정신병적 행동은 편도체(짐 팰론의 뇌에서 인식의 ‘제동’ 능력을 잃은 부위와 같은 부위)의 기능이 축소됨으로써 야기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VMPFC의 기능 장애가 원인일 수 있다.

정상적인 뇌활동의 정신병적 장애가 보여주는 흥미로운 결과들 가운데 하나는, 사이코패스들은 대부분의 사람과 달리 도덕규칙과 임의규칙(이를테면 예절)의 차이를 쉽게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모든 규칙이 임의적 관습이며 따라서 마음대로 무시해도 괜찮다. 어떤 면에서 사이코패스는 궁극적 도덕 상대주의자로 볼 수도 있다. 물론 극히 예외적인 상황들, 특이한 사고나 사회 일탈자에 중점을 둔 신경생물학 연구들이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는 내용은 제한되어 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그린의 이중과정 이론의 증거를 찾을 수 있을까?



물론 찾을 수 있다. 그린 팀의 연구자들은 ‘강한 충돌을 일으키는 개인적 딜레마’라고 언급한 것, 예를 들어 트롤리 딜레마와 유사한 시나리오들을 피험자에게 제시했다. 트롤리 딜레마는 전차가 선로 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다섯 명의 일꾼이 일하고 있는 선로 위를 그대로 지나가게 해 일꾼 다섯 명을 모두 죽일 것인가, 아니면 한 명의 일꾼이 일하고 있는 길로 선로를 변경해 일꾼 한 명만을 죽일 것인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그린의 연구팀은 이 상황에서 일부 피험자에게 도덕적 판단을 내림과 동시에 도덕적으
로 중립인 인지작업 ─ 예컨대 일련의 숫자 가운데 숫자 5가 제시되는 시점을 알아맞히게 하는 식의 ─ 에 몰두하도록 요구하는 트릭을 사용했다. 이것은 인지자원cognitive resources의 일부를 다른 문제로 돌림으로써 인지적 도덕판단 과정을 방해하려는 의도였다.

이중과정 이론은 이런 방해요인에 의해 공리주의적 도덕판단이 부분적으로 약화되지만 의무론적 판단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예측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것은 마치 도덕과 관련된 뇌의 채널 가운데 하나가 계산 및 인지 과제를 수행하는 영역과 대역폭을 공유해서, 우리가 후자에 몰두하면 할수록 전자를 처리하는 능력이 점점 약화되는 것과 같다. 실험은 반대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연구자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피험자들에게 유독한 냄새를 맡게 해 피험자들의 감정 상태를 바꿈으로써 그들의 의무론적 판단을 방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이 모든 결과는 단지 과학적 중요성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어, 배심원의 도덕적 잣대의 균형을 극단적 공리주의 혹은 극단적 의무론으로 옮기려고 달려드는 양심불량 변호사들에 의해 배심원단의 판단이 끊임없이 조작될 가능성을 상상해볼 수 있겠다.

이중과정 이론은 매우 다양한 종류의 도덕판단, 정의의 개념과 관련된 판단들에 직면했을 때 우리의 행동방침과도 일치한다. 가상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다음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100킬로그램의 식량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식량을 나누려면 시간이 걸려, 약 20킬로그램은 썩어서 먹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구의 절반에게만 식량을 나누기로 한다면, 썩는 양은 5킬로그램으로 줄어든다. 자,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인구의 절반에게 더 많은 음식을 보내기로 결정할 경우, 당신은 식량원조 프로그램의 효율성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반대로 상당량을 버리게 되더라도 여전히 전체 인구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기로 결정한다면, 당신은 효율성보다는 공정성을 우선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신경과학자 밍 쓰Ming Hsu와 동료들이 연구한 일종의 수수께끼 같은 문제다. 그들은 피험자들에게 공정성과 효율성이 독립적으로 조작될 수 있는 일련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각각의 상황에서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그리고 그들 뇌의 어느 부분이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참가자들의 뇌를 스캔했다. 그리고 정의justice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뇌에서 세 가지 부분이 관련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피각putamen은 효율성 문제에 반응하는 영역이고, 뇌섬insula은 불공평에 대한 판단과 관련이 있으며, 미상/중격슬하caudate-septal subgenual 부위는 주어진 상황에서 공정성과 효율성의 상대적 중요성을 고려해야 할 때 종합적 판단을 위해 둘 사이를 중재한다. 이상의 결과를 놓고 볼 때, 인간은 태어나서 처음 몇 년 동안 어떤 언어든 언어의 복잡한 규칙을 습득할 수 있는 뇌의 장치를 선천적으로 부여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교한 ‘도덕적 계산기’ 또한 타고난다는 결론에 반대하기 어렵다.


 




그린의 이중과정 이론의 관점에서 이런 결과들이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불공평을 암호화하는 영역인) 뇌섬 역시 감정 체계의 일부라고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효율성을 암호화하는 영역인) 피각은 뇌의 보상체계(신경세포에 의해 분비되는 천연 보상약물인 도파민에 민감하다)와 관련되며, 자선 행위에서 느끼는 기쁨이나 무임승차자를 처벌할 때 느끼는 쾌감과 연결되어 있음이 입증되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흥미로운 영역인 슬하는 이 두 기능을 통합하는 영역으로 신뢰와 사회적 애착과 관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으로 적응을 잘하려면 공정성과 효율성 문제를 끊임없이 저울질해야 하는데, 이때 위에서 말한 세 가지의 뇌영역 ─ 분명히 구분되어 있지만 동시에 상호연결되어 있는 ─ 이 이 과정에서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쓰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더 광범위하게 말하면, 우리의 결과는 정의가 공정성의 감각에 뿌리를 둔다는 칸트와 존 롤스의 직관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칸트 및 롤스와는 대조적으로, 이 감각은 이성적인 의무론 원칙을 적용한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감정적 처리과정의 결과다. 즉, 우리의 연구는 도덕적 정서주의moral sentimentalism를 지지하는 증거가 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선천적으로 공정함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것인데, 이는 칸트와 롤스 같은 철학자들이 지지하는 내용과 유사하다. 하지만 여타의 생물학적 직관이 그렇듯, 우리의 타고난 직관이 이성적 논의와 학습을 능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 SKEPTIC vol.6 "뇌는 도덕감정을 타고 나는가" 기사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스켑틱 6호 과학, 도덕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