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을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까? MBTI 검사의 몇 가지 문제


‘마이어스 브리그스 성격 유형 지표 MBTI: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충격적인 비밀을 폭로하는 용감무쌍하고 박식한 저널리스트는 몇 년마다 한 명씩 꼭 등장한다. 2004년에는 말콤 글래드웰 Malcolm Gladwell 이 〈뉴요커 New Yorker 〉에서 MBTI를 저격했다.1 11년 뒤에 인터넷 미디어 〈복스 Vox 〉는 조지프 스트롬버그 Joseph Stromberg 와 에스텔 캐스웰 Estelle Caswell 의 ‘MBTI 검사가 완전히 무의미한 이유’2 라는 노골적인 제목의 기사로 그간 끊임없이 제기됐던 의혹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 기사를 놓친 독자를 위해 그들이 강조한 요점을 소개한다.


• 분석에 따르면 이 검사는 다양한 직업에서 사람들의 성공 여부를 예측하는 데 아예 쓸모가 없었다.

• MBTI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이론에 기초한다.

• 이 검사에 끊임없이 헛돈을 쓰는 정부 기관이 200여 곳에 이른다.


그리고 이번에는 〈뉴요커〉의 비평가 루이스 메넌드 Louis Menand 의 차례다. ‘MBTI 같은 평가 도구가 과학보다 자조 self-help 에 도움이 되는가?3 이 기사에서 그가 어떤 답을 제시했는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학교, 교회, 부부 수련회, 동기부여 세미나, 맞선 프로그램 등에서 MBTI 검사를 받는 연간 200만 명이 넘는 사람 중 이런 기사를 읽고 “아하! 안 그래도 나는 이 검사가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어! 당장 내 돈 환불받아야겠다.”라고 말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로르샤흐 Rorschach 검사나 손금과 마찬가지로 MBTI는 비판과 패러디 그리고 증거 앞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나는 과학과 회의주의 관련 학회에서 사람들이 고루하거나 부정확한 믿음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젊은 남자가 내게 MBTI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질문자에게 그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묻자, 그는 자신이 그것을 동료와 학생 들에게 수년간 적용해봤는데 결과가 무척 정확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나는 그에게 솔직한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성격 유형의 기원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사람들은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유형 type ’으로 분류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성격을 체액의 구성에 따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화를 버럭 잘 내고 성질이 급한 사람에게 담즙 choler 이 지나치게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금도 ‘choleric’이라는 단어에는 성질이 급하다는 의미가 있다. 만약 당신이 느긋하고 차분하다면 가래가 지나치게 많은 ‘점액질 phlegmatic ’ 유형일 것이다. 오늘날 히포크라테스의 네 가지 체액설 Four Humors theory 은 형용사로만 남아 있지만, 성격 유형에 대한 비과학적인 검사들은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 검사의 목적은 직장에서 얼마나 성과를 낼지, 동료들과 잘 어울릴지, 고용주를 속일지, 리더로서 성공할지 여부를 예측하는 것이다. 고용주들에게는 참으로 매력적인 검사가 분명하다. “고용인들의 근무 조건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고 있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단지 사기꾼만 쓰지 않으면 그만이니까요.” 그리고 이는 검사를 받는 사람들에게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이 검사는 내가 돈과 교육, 사회적 지지, 동기를 갖춘다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지 알려줄 거예요.”

모든 유형 접근법 가운데 MBTI는 가장 오래 살아남았고, 수익성이 좋았으며, 성공적이었다. 이름을 잘 지은 덕도 많이 보았다. 당신의 자질이나 능력에 대한 ‘시험’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유형인지를 가리키는 ‘지표’이기 때문에 검사 결과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뭔가 모자란 덜 똑똑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판명 날 불안감을 덜어준다. 또 이 지표는 바람직한 유형이란 정해져 있지 않다고 당신을 설득한다. 이는 각자의 진정한 모습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영할 뿐이다.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를 알려면 우선 각 네 영역에서 어느쪽에 해당하는지 알아야 한다.


• E/I(외향형/내향형)

• S/N(감각형/직관형)

• T/F(사고형/감정형)

• J/P(판단형/인식형)


각 영역의 결과를 조합하면 열여섯 가지 유형이 나온다. 당신은 외향–직관–감정–판단 유형이거나 내향–감각–사고–판단 유형이 될 수도 있다. 참 쉽고 재미있는 방식이다! MBTI 검사를 받은 사람들은 특정 이니셜의 조합으로 자신들을 정의한다. “내가 ISFP이니 우리가 깨진 것도 당연해요. 그 사람은 ESTP거든요. 완전히 상극이잖아요.” 내 친구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서 모든 신자를 대상으로 MBTI 검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나는 ENTJ야. ‘타고난 지도자형’이지.” 진정한 회의주의자라는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MBTI의 몇 가지 문제 

각 네 영역은 서로 정반대되는 두 특성trait으로 구성된다. 이를테면 당신은 판단형이거나 인식형일 수는 있어도, 둘 다일 수는 없다. 하지만 수천 명의 답변을 살펴보면 이원 양상 bimodality 의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 오히려 모든 영역에서 응답자의 점수는 주로 중간에 몰려 있다. 이 지표의 기본 가정과 달리 우리를 묘사하는 특성들은 깔끔하게 둘로 나뉘지 않는다. 사람들은 결정을 내릴 때 생각이나 느낌 중 하나만을 따르지 않고 둘 모두를 고려한다. 우리는 본능적 충동보다 이성적 계산에 근거하여 행동할 때도 있지만, 다들 잘 알다시피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우리는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을 때가 많다. MBTI의 이분법은 사람들의 주관적 경험에 근거하지만, 주관적 경험이야말로 늘 오락가락한다. 차라리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인간, 시간을 잘 지키는 유형과 늑장을 부리는 유형, 깔끔한 유형과 지저분한 유형, 느린 사람과 빠른 사람,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유형과 싫어하는 유형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거나 그에 따라 짝을 지어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러나 둘 중 어떤 쪽을 선택하든 사람들의 행동은 대체로 특정 스펙트럼의 한 지점에 존재하고 그 지점은 성격 유형보다 상황이나 환경과 관계가 있다. 당신은 판단하는 유형인가? 그 답은 주로 누구와 관계를 하고 무엇을 판단하느냐에 달려 있다. 당신은 늘 내향적인가, 아니면 어떤 집단에 새로 가입해 그 구성원들과 서먹할 때만 그런가? 티켓을 사러 줄을 서거나 요가수업에 참여했을 때 사람들과 좀처럼 대화를 나누지 않는 이유가 당신이 내향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MBTI를 무시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체액을 측정하는 방법보다 믿을 만하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검사는 시간과 관련해 일관성이 없다. 한 연구에 따르면 첫 검사를 하고 5주 후에 실시한 검사에서 동일한 유형으로 판정받은 피험자는 절반 이하였다. 이 지표의 개발자에게 더 나쁜 소식은 우리가 어떤 사람의 유형을 알더라도 그 사람의 직업이나 인간관계를 제대로 예측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MBTI 를 개발한 캐서린 쿡 리그스 Katharine Cook Briggs 와 이저벨 브리그스 마이어스 Isabel Briggs Myers 

(출처 : 위키피디아 )


옥스퍼드대학교 영문학 교수 머브 엠리 Merve Emre 는 새로 출간된 저서 《성격 브로커 The Personality Brokers 》에서 MBTI의 역사와 그것을 개발하여 열성적으로 홍보한 두 여성의 일대기를 소개한다.4 MBTI는 1940년대에 캐서린 쿡 리그스 Katharine Cook Briggs 에 의해 고안됐다. 칼 융 Carl Jung 에 푹 빠져 있었던 그녀는 나중에 자신의 딸인 이저벨 브리그스 마이어스 Isabel Briggs Myers 와 공동 작업을 했다. 엠리는 MBTI가 처음에는 어머니의 이름을 땄다가 딸 이름인 브리그스 마이어스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1960년 미국 교육위원회 Educational Testing Service 가 모든 유형의 성격 검사를 연구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이 검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한 까다로운 직원이 ‘BM’ 유형 지표라는 명칭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는 바람에 머리글자의 순서가 바뀌었다고 전해진다(1960년대에 교육위원회는 일부 소속 과학자의 지적으로 그것이 별자리 운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MBTI 및 그 창작자와 관계를 끊었다). 세상 어디에나 있는 사이비 과학자의 정신을 제대로 발휘하여 캐서린과 이저벨은 그들의 지표가 성격에 대해 신뢰할만하거나 유효한 사실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는 여러 증거에도 꿋꿋하게 맞섰다. 통계학이나 과학적 방법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그들은 갈등이나 실패의 이유를 멋대로 주장할 수 있었다. ISFP라면 ENTJ와 잘 지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유형 자체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어떤 커플이든 최소 두 영역이 다를 확률은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검사를 받으면 유형이 바뀌는 사람이 속출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유형이란 본디 타고나는 것이니 바뀌지 않는 게 당연할 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사람들은 ‘대극의 반전 enantiodromia ’ 징후를 보일 뿐이라고 이저벨은 주장한다. 이는 융이 제시한 개념으로 ‘반대를 추구하는 성향’을 일컫는다. 유형이 바뀌지 않아도 자신이 옳고, 유형이 바뀌어도 자신이 옳다는 말인가?

“과학적이든 아니든 MBTI 검사는 피검사자의 나이, 성별, 교육, 직업, 정치적 성향, 그들이 이 검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회의감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그들에게 별안간 황홀한 자기 인식을 일으킨다.” 나는 이런 엠리의 지적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황홀한 자기 인식’이야말로 MBTI의 성공 비결이다. 내 친구가 그랬듯 사람들은 MBTI를 통해 스스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뭔가를 배운다. 



유형론을 넘어 스펙트럼으로 

성격의 유형 이론은 특성에 대한 경험적 연구와 어떻게 다를까? 분명 인간은 저마다 독특한 행동, 감정, 사고, 반응 방식인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과학자의 일은 개인차를 기술하고 그 복잡성과 일관성을 반영하여 차이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을 ‘그녀는 조금 외향적인 감이 있다’ 또는 ‘그는 휴가 때 빼고는 소심한 편이다’라고 판단하기보다는 특정 상황에서 대체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서로 다름을 깨닫는다. ‘나는 이렇다/이렇지 않다’ 같은 식으로 성격 유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마이어스 브리그스와 달리, ‘빅 파이브 성격 요인 Big Five personality factors ’은 경험에 대한 개방성 openness to experience , 성실성 conscientiousness, 외향성 extroversion (융이나 브리그스가 말한 의미와는 다르게 정의된다), 우호성 agreeableness , 신경증 ㅜneuroticism (부정적인 감정)의 다섯 가지 차원(머리글자를 따면 ‘OCEAN’으로 외우기 쉬워진다)으로 성격을 측정한다. 빅 파이브에 대한 연구는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반복적으로 실시되었을 뿐 아니라 하이에나와 문어 등 인간 외의 동물 종에게 적용되기도했다. 모험심이 강한 문어 잉키 Inky 가 뉴질랜드 국립 수족관에서 탈출해 바다로 가는 길을 찾았을 때 대중은 전율했고, 집에 안전하게 머무르는 쪽을 선택한 잉키의 소심한 친구에게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자들은 모든 생물 종이 환경이 주는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구성원과 위험을 회피하는 구성원 모두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분명 열여섯 가지 성격 유형은 단순하고 명쾌한 그림을 제공한다. 하지만 우리의 행동은 상황, 나이, 파트너나 동료, 성숙도, 직업의 요구나 사회적 요구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자아에 대한 내적 인식과 상황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행동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내적 자아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거칠고 비열하고 무례할 수 있지만, 때로는 친절하고 사려 깊고 온화해지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진정한 ‘우리’의 모습은 어느 쪽일까? 마이어스 브리그스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양쪽 다 우리의 모습이다.



※ 본 글은 <스켑틱 17호>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스켑틱 17호 과학은 선악을 다룰 수 있는가



캐럴 태브리스 Carol Tavris

사회심리학자. 미국심리학회의 특별회원(Fellow)이다. 미시건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캘리포니아 대학교 등에서 심리학을 강의해왔다. 〈뉴욕 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 심리학 주제에 관해 글을 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생물학적 환원주의에 반대하고 남녀평등주의에 입각해서 남녀의 차이를 설명한 《여성과 남성이 다르지도 똑같지도 않은 이유(The Mismeasure of Woman)》와 《잘못 이해된 감정 - 분노(Anger : The Misunderstood)》 등이 있다.


번역 김효정

연세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철학하는 십대가 세상을 바꾼다》, 《야생이 인생에 주는 서바이벌 지혜 75》, 《어떻게 변화를 이끌어낼 것인가》 등이 있다.

 

References

1 Gladwell, Malcolm. 2004. “Personality plus.” The New Yorke r, Sept 20, 42-48.

2 Stromberg, Joseph and Estelle Caswell. 2015. Vox. https://bit.ly/2qoa8W5

3 Menand, Louis. 2018. “What personality tests really deliver.” Sept 10. The New Yorker , September 10,

https://bit.ly/2osRA78

4 Emry, Merve. 2018. The Personality Brokers. New York: Doubled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