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아는 언제 인격을 가지는가


2019년 4월 11일 낙태죄가 합헌불합치로 66년만에 폐지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낙태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새워야 할 때가 왔습니다. 끊임없는 논쟁 속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을 선택해야 할까요? 스켑틱의 제안은 '과학의 소리에 더 집중하자' 입니다. 아래에서 게리 위튼버거는 여러 과학적 근거로 태아의 의식이 형성되는 25주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는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본받는다면, 빠른 시간 내에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요? 여성과 아이, 모두의 인권이 존중받는 법 개정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 스켑틱 코리아


낙태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논쟁의 한쪽 단에는 급진적인 생명우선론자(프로라이프 pro-life )가, 다른 쪽 극단에는 급진적인 선택우선론자(프로초이스 pro-choice )가 있다. 급진적인 생명우선론자들은 인간 유기체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되는 순간부터 생명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인권을 갖는 인격을 가지게 되므로 국가는 태아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급진적인 선택우선론자들은 임신한 여성은 신체적 자주권을 포함한 모든 인권을 이미 갖고 있고 본인이 원한다면 이유를 막론하고 언제든지 임신을 종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명우선론자들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어 생긴 단세포 유기체인 접합체 zygote 를 신성시하며 접합체나 배아 또는 태아를 직간접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말한다. 반면 선택우선론자들은 유기체가 인격이 되는 시기는 자궁을 떠나 모체가 제공하는 생명 유지 장치와 연결이 끊어졌을 때라고 믿는다.

본 글에서는 두 극단적인 의견을 절충한 세 번째 입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세 번째 입장은 '인격 우선 pro-person ' 입장이다. 인격 우선 입장은 선택 우선론에 좀 더 가깝지만 훨씬 탄탄한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한다.



태아는 언제 인격을 갖는가?


과학의 관점에서 본 태아의 발달 단계


지난 400년 동안 운동법칙, 진화, DNA, 상대성이 론의 발견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 중 하나는 뇌 구조가 경험과 인지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일 것이다. DNA의 발견자 중 한 명인 프랜시스 크릭 Francis Crick 은 이를 "놀라운 가설 astonishing hypothesis "이라고 조심스럽게 부르며 "당신, 당신의 기쁨과 슬픔, 당신의 기억, 당신의 야망, 정체성과 자유의지에 대한 당신의 감각은 거대한 집합을 이루는 신경세포들과 관련 분자들의 거동에 불과하다."1 라고 말했다. 크릭의 가설은 수천 번의 연구로 입증되면서 이제 반증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의식의 시작은 뇌의 구조와 작용에 영향을 받거나 그와 관련된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 같은 발견은 자연주의적 또는 물리주의적 세계관과 일치한다. 이원론자와 유심론자들 역시 마음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통증은 분명 의식의 한 측면이며, 통증 지각은 전반적인 의식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로 간주되기도 한다. 1987년 K. J. S. 아난드 K. J. S. Anand 와 P. R. 히키 P. R. Hickey 는 <뉴잉글랜드의학저널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에서 태아와 신생아의 뇌 구조와 통증 지각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를 발표했다.2  두 저자에 따르면 "신피질로 이어지는 감각 통로 대부분은 시신경에 시냅스가 있기 때문에, 시상피질의 연결 시기는 피질의 지각 능력에 매우 중요하다. 영장류와 인간의 태아를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에서 시상의 구심성 뉴런 afferent neuron 들이 생성한 축삭돌기들은 임신 중반 이전에 대뇌와 이어졌다. 이러한 섬유질들은 피질 뉴런들의 이동과 수상돌기의 분지 dendritic arborization 가 끝날 때까지 신피질 바로 아래에서 '대기하며,' 임신 20~24주째에 마침내 시냅스 연결이 이루어진다.


아난드와 히키의 연구가 나온 이후 1998년에 뉴질랜드의 개러스 존스Gareth Jones 박사는 <의료윤리저널 Journal of Medical Ethics >에서 관련 발견들을 정리하여 발표했다.3  "거틀러 Gertler 는 신피질이 뇌파를 생성하기 시작하는 22~24주(수정 후 20~22주)를 '뇌의 탄생 시기'로 제안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버지스 Burgess 와 타이와 Taiwa 는 '기능하는 뇌'를 일반적인 성인의 뇌(대뇌피질)에서 나타나는 형태의 활동이 감지되는 뇌로 정의했다. 뇌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그 기능을 위한 성분이 충분히 성숙해지고 수도 늘어나서 최소한의 임계점을 넘는 구조적 조직화가 일어나야 한다. 뇌파 판독을 바탕으로 버지스와 타이와는 태아에게 의식이 생기는 시기는 임신 32주에서 36주 사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와 관련해서, 1997년 영국왕립산부인과협회 Royal College of Obstetricians and Gynaecologists 의 연구진은 태아가 임신 26주 이후에 의식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리 Lee , 랠스턴 Ralston , 드레이 Drey  역시 2005년 <미국의학협회 저널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에 발표한 논문에서 통 증 지각에 주목하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통증은 유해 자극에 대한 의식적인 지각이 이루어져야 하는 감정적, 심리적 경험이다. 임상 정보를 검토한 결과, 통증을 의식적으로 지각하는 능력은 시상피질 경로들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임신 후기인 29~30주가 되어서야 일어날 수 있다."4


프랜시스 크릭과 여러 해 동안 일한 세계적 신경과학자 중 하나인 크리스토프 코흐 Christof Koch 는 "그렇다면 이 놀라운 의식의 여행은 언제 시작되는가? 의식이 일어나려면 신경세포라는 요소들 이 매우 긴밀하고 섬세하게 연결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그러한 네트워크의 물리적 기질 基質 인 시상피질은 임신 24주와 28주 사이에 자리 잡으면서 의식을 정교하게 구체화한다. 약 2달 뒤 뇌파 리듬이 양쪽 대뇌반구에서 동기화되면 전반적으로 뉴런의 상호작용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의식에 필요한 회로 부품 중 상당수는 임신 후반기에 생겨난다."라고 말했다.5


관련 연구 자료들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글에 제시된 증거들을 토대로 일반적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태아에서 의식이 시작되는 확률이 가장 높은 시기(특히 통증 지각의 시작)는 임신 27주로, 수정이 이루어진 후 약 25주가 되었을 때다(임신 주수 週數 는 마지막 생리 주기가 시작한 날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그러므로 배아의 실제 나이는 임신 주수보다 적다). 신경과학 이론과 방법들이 더욱 발전하면 의식이 시작되는 시점이 더 정확히 밝혀질 것이다. 특히 향후 10년 동안에는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측정이 태아 발달 연구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운 기준이 필요한 때

이제까지 나온 과학적 증거로는 "태아가 언제 의식 능력을 얻는가?"라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타당한 답은 가능하다. 과학계가 최종적인 답을 내놓을 때까지 도덕적 규칙과 법칙의 정립을 마냥 미룰 수는 없다. 사실 최종적인 답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다. 1973년에 블랙먼 판사가 이끌었던 대법원은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3개월 기준을 제시했지만 이는 태아의 생존능력에 지나치게 치중한 허술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종교는 지속적으로 쇠퇴했고 철학과 과학은 계속해서 발전해왔으므로, 이제 우리는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 글에서 소개한 인격 우선 입장은 임신 후기의 태아와 임산부 모두 인권을 지닌 인간으로 인정한다. 출생까지 15주도 안 남은 태아와 임산부의 권리가 충돌한다면, 정부가 개입해 명확히 정립된 헌법 조항, 법률, 정책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처럼 인격 우선 입장은 구체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반면에 생명 우선 입장은 그 출발부터 잘못되었다. 마술과 같은 '영혼 주입'에 호소하여 접합체를 인격으로 분류하려는 시도는 이치에 전혀 맞지 않다. 선택 우선 입장은 그나마 합리적이지만 역시 오류가 있다. 선택 우선 입장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의 3개월 기준, 태아의 생존능력, 사생활 보호권과 같은 낡은 개념에 기대며 완전한 의식을 갖춘 태아조차도 인격이 아니라고 전제한다.


이러한 모든 오류를 수정 반영한 인격 우선 입장은 굳건한 철학적, 과학적 토대를 가진다. 물론 이러한 토대는 새로운 증거, 논거, 이론이 제시되면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다. 인격 우선 입장의 핵심을 요약하자면, 인간 유기체가 인격이 되는 시기는 태아가 의식 능력을 획득하는 수정 후 약 25주째다.



※ 본 글은 <스켑틱 17호> '태아는 언제 인격을 가지는가'에서 부분 발췌한 글입니다.   


스켑틱 17호 과학은 선악을 다룰 수 있는가



  개리 위튼버거 Gary Whittenberger

플로리다주립대학교 임상 심리학 박사로 23년동안 교도소에서 심리학자로 근무했다. 저서로 《신과 자연 재앙: 무신론자와 기독교인의 논쟁(God and Natural Disasters: A Debate Between an Atheist and a Christian)》과 《신은 당신이 무신론자이길 원한다(God Wants YOU to be an Atheist)》가 있다.


번역  하인해


References

1  Crick, Francis. 1995. The Astonishing Hypothesis: The Scientific Search for the Soul . New York: Scribner.

2  Anand, K. J. S., and Hickey, P. R. 1987. “Pain and its Effects in the Human Neonate and Fetus.”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 Vol. 317(21): 1321-1329.

3  James, D. Gareth. 1998. “The Problematic Symmetry between Brain Birth and

Brain Death.” Journal of Medical Ethics . Vol. 24: 237-242.

4  Lee, Susan J., Ralston, Henry J. Peter, and Drey, Eleanor, A. 2005. “Fetal Pain: A Systematic Multidisciplinary Review of the Evidenc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 vol. 294(8): 947-954.

5  Koch, Christof. 2009. “When Does Consciousness Arise in Human Babies? Does Sentience Appear in the Womb, at Birth or During Early Childhood?” Scientific American Mind . 31 Augu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