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 식품이 몸에 나쁘다고? pH에 대한 속설


인터넷은 ‘팩트’의 풍요로운 보고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중에 일부만이 사실이고 나머지는 소위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 즉 거짓말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나 잘못된 정보로 몸살을 앓는 주제 중 하나가 pH다. 의사擬似과학의 잘못된 주장으로 인해 사람들은 식단을 엄격히 제한하고, 알칼리수를 마시며, pH 시험지로 소변의 pH를 측정하고, 가짜 암 치료제를 산다. pH에 대한 정보에서 이런 거짓말들을 구분하기 위해 먼저 기초적인 화학적 사실부터 살펴보자.



pH 기본 설명서

pH는 수소 이온 농도를 로그 척도를 이용해 0부터 14까지 나타낸 것이다. 물은 중성으로 pH7이고, pH가 7보다 낮은 용액은 산성이며, 그보다 높은 용액은 염기성이다. 로그 척도는 단위가 10배의 차이를 나타냄을 의미한다. 즉 pH4는 pH5보다 수소 이온이 10배 많다는 뜻이다. 혈액의 pH는 산/염기 항상성acid-base homeostasis(외부환경과 생물체내의 변화에 대응하여 체내 pH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현상•편집자주)이라는 과정을 통해 7.34~7.45 사이의 아주 좁은 범위에서 유지된다. 이 범위에서 벗어나면 폐와 신장의 보상 메커니즘을 이용해서 재빨리 교정한다. 위산의 pH는 1.5~3.5이며 사람의 피부는 4.7, 뇌척수액은 7.5, 췌장 분비액은 8.1이다. 이 중 어느 것도 음식의 성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소변의 pH는 4.6~8.0 사이며, 신장이 산이나 염기를 처리하면서 항상성을 유지함에 따라 변화한다. 소변의 pH는 혈액이나 그 외 다른 신체 장기의 pH를 반영하지 않는다.


산/염기 질병 가설

산/염기 질병 가설은 체내 산성도가 높아지면 질병이 생기기 때문에, 알칼리성 식품을 먹고 알칼리수를 마시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가설의 신봉자들은 사람들에게 소변의 pH를 측정해서 몸의 산/염기 평형을 관찰하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쿽워치Quackwatch(미국의 사이비의학 비판 사이트)의 게이브 머킨Gabe Mirkin 박사는 식단을 바꿔도 소변을 제외한 신체 다른 부분의 산성도를 바꿀 수 없으므로 산/염기 질병 가설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약초학자들은 혈액의 pH가 정상 범주 안에서 약간만 변화해도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소변의 pH는 비록 혈액의 pH와 다르지만 우리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고 몸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처리하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지표라고 반론한다. 이들은 정상범위라고 하더라도 혈액이 낮은 pH를 유지하는 것은 건강에 나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알칼리 식단

알칼리 식단은 특정 식품들이 소변을 산성으로 만든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잘못된 결론으로 비약한 결과다. 알칼리식단 지지자는 체내 산성도가 높아지면 몸이 칼슘, 인, 마그네슘처럼 알칼리가 풍부한 무기질을 뼈와 이, 장기에서 보충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알칼리가 부족해질 경우 골다공증과 피로감이 야기될 수 있으며, 면역체계가 손상되어 바이러스나 질병에 취약해질 수 있다고 한다. 산성 식품의 섭취를 줄이면 소변이 알칼리성으로 변화하는데, 소변이 알칼리성인 사람은 골다공증이나 암, 심장병의 위험이 감소한다고 말한다. 또한 알칼리 식단을 섭취하면 체중이 감소하고 에너지가 증가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암을 치료하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알칼리 식단 지지자는 자신의 믿음을 뒷받침하는 체험담이나 자신에게 유리한 연구만 골라 증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발표된 과학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해보면 산/염기 질병 가설은 과학적 증거가 없으며, 따라서 이는 의사과학일 뿐이다.

알칼리성 식품에는 과일과 채소 대부분과 콩, 두부, 몇 종류의 견과류, 씨앗류, 콩과 식물이 있다. 산/염기 질병 가설에 따르면 유제품, 육류, 생선, 곡물 대부분, 패스트푸드, 가공식품은  피해야 할 산성 식품 다. 이들이 말하는 가장 악명 높은 산성 식품 10위에는 돼지기름, 땅콩버터, 크랜베리, 파스타 종류와 흰 빵, 소고기, 옥수수유, 돼지고기, 감자, 맥주와 증류주, 버터가 포함된다. 유제품과 육류, 생선, 곡물을 충분히 섭취하지 않으면 영양실조에 걸릴 수도 있으니 산/염기 질병 가설에 대해 우려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알칼리수

알칼리수는 시중에 나온 상품을 구매할 수 있으며 직접 만들 수도 있다. 알칼리수는 해독 작용(무의미한 대체의학 유행어다)을 하고, 수분을 공급하며(모든 물은 수분을 공급한다), 산소를 공급하고, 항산화제로 작용한다(산소 공급과 항산화는 정반대의 작용이다. 알칼리수는 어떻게 이 작용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걸까?). 또 몸의 pH를 바꾸어(몸의 pH는 바꿀 수 없다) 면역계를 강화한다(산성 식품이 몸의 세포를 질식시키고 분해해 죽게 하여 결국 면역계를 지지하는 체계를 약화시킨다는 우스꽝스러운 주장에 근거한다). 그 외에도 알칼리수는 체중을 감소시키며 당뇨를 예방하고, 건선을 치료한다고 말한다. 이중 과학적 근거가 있는 주장은 하나도 없다. 30㎖당 35원에서 1570원 정도를 내면 어디서나 알칼리수를 살 수 있지만 가장 싼 알칼리수를 고른다고 해도 돈 낭비일 뿐이다.


밥 라이트 치료법

밥 라이트 치료법The Bob Wright Protocol은 알칼리환원수 기계로 만든 pH11.5의 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치료법의 지지자는 암의 원인이 미생물이라고 믿는다. 이들에 따르면 산성도가 매우 높은 물질인 마이코톡신을 분비하는 어떤 미생물이 있는데 모든 암세포에는 이런 미생물이 수없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이 미생물을 죽이면 암세포는 정상 세포로 되돌아온다고 한다. 그런데 미생물을 너무 빨리, 혹은 너무 늦게 죽여도 모두 역효과가 나므로, 밥 라이트 치료법은 최적의 속도로 미생물을 죽이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지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으리라 믿는다.


로버트 O. 영

pH에 관한 이 모든 헛소리는 무해한 유행현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런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부르는지에 관한 사례를 소개하려 한다. 로버트 O. 영Robert O. Young은 자연요법학자로 《pH의 기적pH Miracle》이라는 책 시리즈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영 박사는 산이 모든 질병의 원인이며, 따라서 모든 질병은 알칼리화를 통해 치료할 수 있고, 암세포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암 전문의이자 연구자인 데이비드 고르스키David Gorski 박사는 의학 블로그 ‘과학에 근거한 의학’에서 이 주장을 손쉽게 논박했다.4 쿽워치의 스티븐 배럿Stephen Barrett도 로버트 영 ‘박사’의 가설과 그의 의사 자격을 비판했다.

영 박사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킴 팅컴Kim Tinkham이라는 여성의 유방암을 치료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팅컴은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와 자신이 완치됐다고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영 박사의 치료를 받은 다른 암 환자도 다수가 사망했다.

상황은 더 악화되어 갔다. 최근 BBC에서 ‘암에 걸린 군인, 베이킹소다로 치료받다’란 제목으로 한 뉴스가 방영되었다. 영국군 장교인 네이마 하우더-모하메드Naima Houder-Mohammed는 유방암에 걸린 후 주류의학의 치료를 받았지만 암이 재발했다. 재발한 병세가 너무 심각해서 호스피스 치료를 권유받았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을 뒤지던 네이마는 영 박사를 찾아냈고 두 사람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영 박사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신의 ‘pH의 기적 병원’에서 하루 3,000달러(346만 원)의 비용이 드는 8~12주 치료 프로그램을 권했다. 네이마의 가족은 저축한 돈을 털고, 모금하고, 자선단체에서 기부받아 비용을 댔다. 치료는 탄산수소나트륨(베이킹소다)을 정맥으로 주입하는 것이었다. 영 박사의 병원에서 석 달을 지낸 네이마는 병이 악화되어 다시 병원에 입원했고, 영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네이마는 어쨌든 죽을 운명이었지만 영 박사는 그녀에게 거짓된 희망을 주고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게 가망성 없는 의사과학에 근거한 치료비 명목으로 70,000달러(8,890만 원)를 청구했다. 영 박사는 네이마가 자신의 병원에 오기 전부터 그의 연구실에 기금을 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영 박사는 BBC 기자에게 “몸속 체액의 pH 균형을 미세하게 맞추면 모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혈액이 산성이 되면 괴상한 일이 일어나는데, 혈액 세포가 세균으로 변한다.(이 현상을 영 박사는 ‘다형태성’이라고 불렀다.) 그러면 질병에 걸리는 것이다.”라면서, “세균은 동물, 사람, 식물을 이루는 구성 물질이 생물적 변환을 일으킨 것이다. 세균은 이렇게 생긴다.”라고도 말했다. 이에 대해 BBC 기자는 ‘진실을 넘어서는’ 설명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위험한 난센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BBC 기자가 죄책감이 들지 않느냐고 묻자 영 박사는 “알칼리 식단 프로그램의 효과를 본 환자가 수백만 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천 명은 되므로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영 박사는 세 번이나 기소당했다. 처음에는 의사면허 없이 진료한 경범죄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이 기소는 사전형량조정제도(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협상으로 형량을 낮추거나 조정하는 제도•편집자주)를 통해 면소됐다. 2001년 영 박사는 암 환자에게 항암 화학요법을 중지하고 대신 자신의 ‘슈퍼 그린’ 제품을 이용하도록 현혹한 중죄 혐의로 다시 기소됐다. 이 기소는 무혐의 처리됐는데, 검사가 유죄선고를 내릴만큼 피해자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2014년, 영 박사는 의사면허 없이 진료한 혐의와 중절도 혐의 등 여러 죄목으로 체포되어 기소됐다. 원고 목록에 이름을 올렸던 암 환자 여섯 명은 사망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영 박사가 암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증언했다. 법원은 영 박사가 의학박사가 아니며, 박사 학위도 돈을 받고 학위를 판매하는 삼류 대학에서 샀음을 확인했다. 영 박사는 현재 의사면허 없이 진료한 두 건의 죄목으로 3년의 징역형 선고를 앞두고 있으며, 배심 불일치 선고 후에 치러질 여섯 건의 재심을 기다리고 있다. 더불어 한 여성 환자는 병원에 가는 대신 영 박사의 치료를 받는 바람에 치료할 수 있었던 1기 암이 4기로 악화됐다며 사기 혐의로 그를 고소했다.

기본생리학과 산/염기 평형에 관한 지식이 있고, 과학적 증거의 구성요소를 알고 있다면 pH에 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아주 기본적인 지식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이는 우리 교육제도의 슬픈 현실은 물론, 영 박사가 그토록 많은 환자에게 해악을 끼치고 부적절한 행동을 할 때까지 손 놓고 있었던 사법제도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준다.





 해리엇 홀 Harriet Hall

가정의학의이자 공군 대령으로, 현재는 은퇴하여 워싱턴 주 퓨알럽에 거주하며 대체의학, 의사과학, 사기 의료 행위, 비판적 사고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스켑틱>과 <스켑티컬 인콰이러(Skeptical Inquirer)>에 정기적으로 컬럼을 쓴다. 저서로는 《날 수 없을 것 같던 여자: 여성 외과의의 회고록(Women Aren’t Supposed to Fly: The Memoirs of a Female Surgeon)》이 있다. 그녀의 웹사이트(www.skepdoc.info)  방문하면 더 많은 글을 읽을 수 있다.


번역  김보은


※본 글은 스켑틱 12호 과학에 창조론의 자리는 있는가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스켑틱 12호 과학에 창조론의 자리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