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의 패턴들: 진실은 저 너머에
조지 케이스 George Case
한때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엑스 파일X-Files>도 이제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유산은 음모론이라는 친숙한 형태로 여전히 남아 있다. 사실 ‘아무도 믿지 마라’는 말은 우리 문화 깊숙이 파고들어서 이제는 도리어 이 말조차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최근 출판된 대니얼 파이퍼스Daniel Pipes 의 《음모: 편집증은 어디서 생겨나서 어떻게 유행하는가Conspiracy:How the Paranoid Style Flourishes and Where It Comes From》, 로버트 앤턴 윌슨Robert Anton Wilson의 《모든 것은 통제되고 있다: 음모, 컬트, 은폐공작Everything is Under Control: Conspiracies, Cults, and Cover-Ups》, 데번 잭슨Devon Jackson의 《음모론! 모든 음모론의 뿌리Conspiranoia! The Mother of All Conspiracy Theories》 등은 역사적 사건, 자연, 그리고 공포증의 기능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낱낱이 해부한다. 이제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없고 보통 사람들은 어떤 음모론이 있었다는 것 자체도 모르지만, 음모론은 사회정치적 담론의 전형적인 요소가 되었다. 왜 그럴까?
논리학자는 음모론의 매력은 추론과 추리의 기본적인 규칙을 비껴가는 교묘한 기술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세계는 복잡하다. 한 가지 사건에도 많은 요인이 개입될 수 있다. 그러나 음모론은 사건들을 상당한 솜씨로 아주 단순하게 만든다. 한편 심리학자는 현대 사회의 임의성과 무질서함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음모론이 종교를 대신해서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거대서사를 제공한다고 설명할 것이다. 사람들은 배후조종자가 어떤 악당인지에는 관심이 없으며 어쩌면 배후조종자가 아예 없는 쪽을 더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사학자는 음모론을 어떤 논쟁이든 종식시키는 논쟁의 승자에 비유할 것이다. 음모론은 그 존재와 영향력을 입증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로 존재가 증명되는 음험한 비밀요원과도 같다. 이 모든 것—추측, 회피, 빈정거림—을 통해, 음모론은 미디어, 교육, 정치적 활동, 일상의 대화 속으로 확산된다. 하지만 음모론에 허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음모론에도 몇 가지 패턴이 존재한다. 이 패턴을 알면 음모론이 위험한 괴물로 변하기 전에 그것을 탐지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다 우연일 리 없다!「 숨겨진 연관성 음모론 」
조지 H. W. 부시George H. W. Bush 대통령과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은 둘 다 사우디 석유 회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는 훗날 자신을 암살하게 될 잭 루비Jack Ruby가 운영하는 댈러스 나이트클럽에 간 적이 있다. 빌 게이츠Bill Gates의 이름을 숫자로 변환하여 합치면 666이 된다. 혹은 아무 신문이나 들춰보자. 1면에는 ‘부정부패 조사의 갑작스런 중단’이란 기사가, 10면에는 ‘○○ 변호사의 사인이 살인인 것으로 드러나다’라는 기사가 실려 있을 수도 있다. ‘숨겨진 연관성’이란 정황적 증거에서 시간, 장소, 사건의 사소한 공통점을 찾아 연결시킨 후, 이를 증거로 원래부터 계획적인 공모나 결탁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몇 단계의 관계만 거치면 서로 연결된다. (소위 말하는 ‘6단계 분리이론’이다.) 뒤늦게 돌이켜보면, 모든 사건에는 매우 가까운 곳에 그것을 일으킨 원인이 있다. 숨겨진 연관성이 정말로 있다면 우리는 단지 사건이 일어난 후에 여러 이질적인 요인들을 엮는 수준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숨겨진 연관성 음모론의 신봉자는 우연, 운, 동시성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후, 그 모든 것에 ‘유죄’ 평결을 내린다.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은 조작되었다!「 미디어 조작 음모론 」
미디어 조작 음모론은 신문이나 방송, 연예 사업계의 최대 관심사가 순진하고 별로 까다롭지 않은 소비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있다는 나름 합리적인 관점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미디어 조작 음모론이 보내는 메시지는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모두 믿지는 마라.’라기보다는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을 믿지 마라.’에 더 가깝다.
물론 사소한 사건을 이용해서 중대한 사건으로부터 일반 대중의 관심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디어 조작 음모론은 이 단순한 사실을 확대해석하여 모든 미디어가 기업이나 정부의 악행을 덮기 위해 조작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암시하는 것은 ‘미디어’ 전체를 누군가가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이 할리우드를 조종하고 있다.’는 식의 소문이 되어 사라지지 않고 떠돈다. 결국 우리는 이런 소문에만 의지하여 판단을 내림으로써 수많은 뉴스와 정보를 모두 찾아봐야 한다는 귀찮은 책임감을 떨쳐버리게 된다.
자신이 믿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공중파 뉴스나 일간지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 사람일수록 특히 미디어 조작 음모론을 좋아한다. 역설적인 것은 그들이 미디어가 어떻게 정보를 조작하고 억압하며 검열하는지 알리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어떤 사람이든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정보 조작도 매우 용이한 인터넷 게시판 같은 미디어란 점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배후조종자 음모론 」
이 음모론에 따르면,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사건을 일으킨 배후 조종자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9·11 테러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천연가스 송유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CIA가 승인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의 영화 는 배후조종자 음모론의 가장 극단적인 예를 보여준다.
배후조종자 음모론의 문제는 이처럼 공들인 암살 책략들이 역사의 흐름을 조종하는 수단으로서는 비효과적이며 그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만약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미국이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할 명분을 얻기 위해 모른 척했다면, 왜 마지막 순간까지도 방어하지 않았을까? 중간 해역에서 ‘깜짝’ 방어를 했어도 충분히 성공적으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중동의 가스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수천 명의 뉴욕 시민의 목숨이 반드시 필요했을까? 미군은 왜 TWA 800을 목격자가 그토록 많은 롱아일랜드 위에서 격추시켰을까?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하면 뒤이어 취임할 대통령이 미국 군수업체의 이익을 위해 베트남 전쟁을 다시 일으킬 것이라고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누구건 간에, 만약 ‘그들’이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왜 그토록 위험한 도박을 했을까? 그리고 ‘그들’의 음모가 이토록 쉽게 탄로날 정도라면, 사실 ‘그들’은 음모를 꾸미는 데 별로 소질이 없는 게 아닐까?
실상 음모론은 사건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음모론은 이미 존재하는 선입견을 이용할 뿐이거나(사람들은 정부·미디어·대기업이 으레 부패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서로 모순이 되거나(만일 부시 정부가 핼리버튼Halliburton을 위해 이라크전쟁을 일으켰다면 부시 행정부 안의 유대-기독교 천년왕국 광신도는 이 전쟁과 관계가 없을 것이다. 또 마피아가 JFK를 암살했다면 프리메이슨은 이 사건과 관계없다.) 혹은 이성적인 논쟁을 거부한다. 결국 음모론은 더 많이 부정될수록 더 오래 살아남는다.
음모론자는 선량한 공무원과 민간기업 직원이 저지른 작은 실수가 의도치 않게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울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몇몇 이기적인 개인이 인간과 조직의 상호작용에 관련된 무한한 변수를 은밀하게 조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암시를 풍기며(대니얼 파이프스에 따르면 음모론자의 주장은 “우리가 틀린 게 아니라 저들이 속임수를 쓴 것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사회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적극 참여하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우리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든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검은 손이 있다면 우리는 왜 굳이 읽고 투표하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행동하고 전진해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진지하게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숨겨진 연관성과 미디어 조작, 그리고 배후조종자, 우리가 이것들을 ‘음모론’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이제는 이런 음모론이 있다고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글 조지 케이스 George Case
문화비평가. 《침묵의 엄습: 정보 시대의 종말(Silence Descends: The End of the Information Age)》, 《지미 페이지에 대한 비공인 평전: 마술사, 뮤지션, 그리고 인간(Jimmy Page: Magus, Musician, Man: An Unauthorized Biography)》 등의 책을 썼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발행되는 <선데일리(Sun Daily)>지에 논평을 쓰고 있다. 더 많은 글은 georgecaseblog.wordpress.com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번역 김보은
음모론의 패턴들: 진실은 저 너머에
조지 케이스 George Case
한때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엑스 파일X-Files>도 이제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유산은 음모론이라는 친숙한 형태로 여전히 남아 있다. 사실 ‘아무도 믿지 마라’는 말은 우리 문화 깊숙이 파고들어서 이제는 도리어 이 말조차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최근 출판된 대니얼 파이퍼스Daniel Pipes 의 《음모: 편집증은 어디서 생겨나서 어떻게 유행하는가Conspiracy:How the Paranoid Style Flourishes and Where It Comes From》, 로버트 앤턴 윌슨Robert Anton Wilson의 《모든 것은 통제되고 있다: 음모, 컬트, 은폐공작Everything is Under Control: Conspiracies, Cults, and Cover-Ups》, 데번 잭슨Devon Jackson의 《음모론! 모든 음모론의 뿌리Conspiranoia! The Mother of All Conspiracy Theories》 등은 역사적 사건, 자연, 그리고 공포증의 기능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낱낱이 해부한다. 이제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도 없고 보통 사람들은 어떤 음모론이 있었다는 것 자체도 모르지만, 음모론은 사회정치적 담론의 전형적인 요소가 되었다. 왜 그럴까?
논리학자는 음모론의 매력은 추론과 추리의 기본적인 규칙을 비껴가는 교묘한 기술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세계는 복잡하다. 한 가지 사건에도 많은 요인이 개입될 수 있다. 그러나 음모론은 사건들을 상당한 솜씨로 아주 단순하게 만든다. 한편 심리학자는 현대 사회의 임의성과 무질서함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음모론이 종교를 대신해서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거대서사를 제공한다고 설명할 것이다. 사람들은 배후조종자가 어떤 악당인지에는 관심이 없으며 어쩌면 배후조종자가 아예 없는 쪽을 더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사학자는 음모론을 어떤 논쟁이든 종식시키는 논쟁의 승자에 비유할 것이다. 음모론은 그 존재와 영향력을 입증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로 존재가 증명되는 음험한 비밀요원과도 같다. 이 모든 것—추측, 회피, 빈정거림—을 통해, 음모론은 미디어, 교육, 정치적 활동, 일상의 대화 속으로 확산된다. 하지만 음모론에 허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음모론에도 몇 가지 패턴이 존재한다. 이 패턴을 알면 음모론이 위험한 괴물로 변하기 전에 그것을 탐지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다 우연일 리 없다!「 숨겨진 연관성 음모론 」
조지 H. W. 부시George H. W. Bush 대통령과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은 둘 다 사우디 석유 회사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는 훗날 자신을 암살하게 될 잭 루비Jack Ruby가 운영하는 댈러스 나이트클럽에 간 적이 있다. 빌 게이츠Bill Gates의 이름을 숫자로 변환하여 합치면 666이 된다. 혹은 아무 신문이나 들춰보자. 1면에는 ‘부정부패 조사의 갑작스런 중단’이란 기사가, 10면에는 ‘○○ 변호사의 사인이 살인인 것으로 드러나다’라는 기사가 실려 있을 수도 있다. ‘숨겨진 연관성’이란 정황적 증거에서 시간, 장소, 사건의 사소한 공통점을 찾아 연결시킨 후, 이를 증거로 원래부터 계획적인 공모나 결탁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우리 모두는 몇 단계의 관계만 거치면 서로 연결된다. (소위 말하는 ‘6단계 분리이론’이다.) 뒤늦게 돌이켜보면, 모든 사건에는 매우 가까운 곳에 그것을 일으킨 원인이 있다. 숨겨진 연관성이 정말로 있다면 우리는 단지 사건이 일어난 후에 여러 이질적인 요인들을 엮는 수준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숨겨진 연관성 음모론의 신봉자는 우연, 운, 동시성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은 후, 그 모든 것에 ‘유죄’ 평결을 내린다.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은 조작되었다!「 미디어 조작 음모론 」
미디어 조작 음모론은 신문이나 방송, 연예 사업계의 최대 관심사가 순진하고 별로 까다롭지 않은 소비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있다는 나름 합리적인 관점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미디어 조작 음모론이 보내는 메시지는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모두 믿지는 마라.’라기보다는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을 믿지 마라.’에 더 가깝다.
물론 사소한 사건을 이용해서 중대한 사건으로부터 일반 대중의 관심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디어 조작 음모론은 이 단순한 사실을 확대해석하여 모든 미디어가 기업이나 정부의 악행을 덮기 위해 조작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암시하는 것은 ‘미디어’ 전체를 누군가가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이 할리우드를 조종하고 있다.’는 식의 소문이 되어 사라지지 않고 떠돈다. 결국 우리는 이런 소문에만 의지하여 판단을 내림으로써 수많은 뉴스와 정보를 모두 찾아봐야 한다는 귀찮은 책임감을 떨쳐버리게 된다.
자신이 믿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공중파 뉴스나 일간지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는 사람일수록 특히 미디어 조작 음모론을 좋아한다. 역설적인 것은 그들이 미디어가 어떻게 정보를 조작하고 억압하며 검열하는지 알리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어떤 사람이든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정보 조작도 매우 용이한 인터넷 게시판 같은 미디어란 점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배후조종자 음모론 」
이 음모론에 따르면,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사건을 일으킨 배후 조종자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9·11 테러를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천연가스 송유관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CIA가 승인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올리버 스톤Oliver Stone의 영화 는 배후조종자 음모론의 가장 극단적인 예를 보여준다.
배후조종자 음모론의 문제는 이처럼 공들인 암살 책략들이 역사의 흐름을 조종하는 수단으로서는 비효과적이며 그 결과를 예측하기도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만약 프랭클린 D.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미국이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할 명분을 얻기 위해 모른 척했다면, 왜 마지막 순간까지도 방어하지 않았을까? 중간 해역에서 ‘깜짝’ 방어를 했어도 충분히 성공적으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중동의 가스유전을 개발하기 위해 수천 명의 뉴욕 시민의 목숨이 반드시 필요했을까? 미군은 왜 TWA 800을 목격자가 그토록 많은 롱아일랜드 위에서 격추시켰을까?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하면 뒤이어 취임할 대통령이 미국 군수업체의 이익을 위해 베트남 전쟁을 다시 일으킬 것이라고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누구건 간에, 만약 ‘그들’이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왜 그토록 위험한 도박을 했을까? 그리고 ‘그들’의 음모가 이토록 쉽게 탄로날 정도라면, 사실 ‘그들’은 음모를 꾸미는 데 별로 소질이 없는 게 아닐까?
실상 음모론은 사건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음모론은 이미 존재하는 선입견을 이용할 뿐이거나(사람들은 정부·미디어·대기업이 으레 부패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서로 모순이 되거나(만일 부시 정부가 핼리버튼Halliburton을 위해 이라크전쟁을 일으켰다면 부시 행정부 안의 유대-기독교 천년왕국 광신도는 이 전쟁과 관계가 없을 것이다. 또 마피아가 JFK를 암살했다면 프리메이슨은 이 사건과 관계없다.) 혹은 이성적인 논쟁을 거부한다. 결국 음모론은 더 많이 부정될수록 더 오래 살아남는다.
음모론자는 선량한 공무원과 민간기업 직원이 저지른 작은 실수가 의도치 않게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울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몇몇 이기적인 개인이 인간과 조직의 상호작용에 관련된 무한한 변수를 은밀하게 조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암시를 풍기며(대니얼 파이프스에 따르면 음모론자의 주장은 “우리가 틀린 게 아니라 저들이 속임수를 쓴 것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사회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적극 참여하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우리 스스로 포기하도록 만든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검은 손이 있다면 우리는 왜 굳이 읽고 투표하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행동하고 전진해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진지하게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숨겨진 연관성과 미디어 조작, 그리고 배후조종자, 우리가 이것들을 ‘음모론’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이제는 이런 음모론이 있다고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글 조지 케이스 George Case
문화비평가. 《침묵의 엄습: 정보 시대의 종말(Silence Descends: The End of the Information Age)》, 《지미 페이지에 대한 비공인 평전: 마술사, 뮤지션, 그리고 인간(Jimmy Page: Magus, Musician, Man: An Unauthorized Biography)》 등의 책을 썼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발행되는 <선데일리(Sun Daily)>지에 논평을 쓰고 있다. 더 많은 글은 georgecaseblog.wordpress.com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번역 김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