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 19호
“사랑이 두려운 시대의 사랑법”
모든 곳에 존재하는 사랑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 부모와 가족, 연인과 친구를 사랑하고 요즘은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가 하면 음식, 음악, 게임, 운동, 지식, 아름다움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랑은 어디나 존재하는 감정이지만, 그것의 의미를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벅찬 사랑의 기쁨보다 어긋난 사랑의 아픔이 우리 곁에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더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에는 사랑의 여신이 적어도 14명은 존재했다. 사랑 · 성 ·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설득과 유혹의 화신 페이토가 대표적인데, 인구 100만 명당 사랑의 여신 한 명이 존재했던 셈이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전 세계에 사랑의 여신 8000명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사랑마저도 사랑하는, 알다가도 모를 존재들이다.
열광적인 사랑 vs. 일상적인 사랑
《뉴필로소퍼》 19호는 “사랑이 두려워진 시대의 사랑법”을 주제로, 인간의 오랜 관심사이자 세상을 아름답게도, 때론 혼탁하게도 하는 사랑의 세계를 고찰한다. 생각해 보면, 요즘 흔하디흔한 말이 ‘사랑’이다. 수없이 많은 유행가 가사에 사랑이 넘쳐나고, 숱한 문학작품의 단골 소재 역시 사랑이다. 제목조차 다 외울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영화와 TV 드라마도 사랑이 없으면 존재조차 장담할 수 없다. 항차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삶에도 사랑이라는 말은 차고 넘친다. 그만큼 사랑이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일 터. 하지만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는 옛말처럼, 그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온전한 혹은 완전한 사랑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우리 현실이다. 《성서》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는데 그런 사랑은 언감생심焉敢生心, 대개의 콘텐츠가 보여주는 사랑은 오히려 갖가지 죄를 잉태하는 모양새다.
<사랑에 이유가 있을까?>에서 철학자 패트릭 스톡스는 대개의 사람들이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깊이 빠져든다고 말한다. 실제로 사랑이 시작될 때를 정확하게 알기란 어려운 일이며 중심, 즉 불타는 사랑의 심정이 될 때야 사랑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은 결국 선택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선택을 의지적으로 지켜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시간이 얼마 지난 후에야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사랑에 뛰어드는 것은 단순히 어떤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벌써 어느 정도는 그런 선택을 내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작가 마리나 벤저민은 <사랑과 결혼>이라는 고전적인 제목의 글에서 “열광적이고 강박적인 사랑”이 아닌 “오랜 친밀감에서 생겨나는 잔잔하고 일상적인 사랑”의 중요성을 옹호한다. 세상 사람들은 열렬한 로맨스에 열광하겠지만 “서로의 진가를 알아보고 공존 가능성을 조율하면서 은은하게 번지는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때문이다. 어디 남녀 간의 사랑만 그럴까? 세상 모든 사랑이 이런 모양이라면 행복은 저절로 우리 사회에 퍼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기 노출이나 두 사람의 결합, 심지어 파멸적인 열렬한 사랑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결혼이 사랑의 끝일까봐 두려워한다. 특히 앞뒤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빠져드는 열정적 사랑은 종종 절정의 감정으로 치닫는다. 이런 사랑이 결혼이라는 인내심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까? 아닐 수도 있다. 설령 이만한 사랑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세상 헛살았다고 흔히들 말하는, 그런 죽고 못 사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사랑과 자본의 함수
사랑이 범람하는 시대지만, 정작 현대인들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사랑의 본래적 가치를 잊어가고 있다. 철학자 캐리 젠킨스는《선물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나눌 때》에서 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의 ‘선물 경제gift economy’ 개념, 즉 재화나 용역이 개개인의 금전적 이득이 아닌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소비되는 경제체제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자고 주장한다. 키머러는 여분의 재산을 선물로 나눠주기보다 차라리 허비하도록 부추기는 사회를 질타한다. 전 세계인들에게 선물로 주어져야 하는 ‘물’마저 “정체불명의 회사들이 약탈해서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해 판매”하는 현실은 과연 온당한가 묻는 것이다. 다음은 캐리 젠킨스가 인용한 키머러의 에세이《서비스베리Serviceberry》중 한 대목이다.
“선물 경제는 시장 경제에 앞서는 대안이다. …… 선물 경제체제에서 부는 이웃에게 나눠줄 만큼 충분히 소유한 상태라고 인식되며 여분의 재산은 선물하는 것이 관습이다. 실제로 사회적 지위는 부를 얼마나 쌓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베푸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선물 경제에서 통용되는 유통수단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인데, 관계는 감사 표시, 상호의존, 지속적 호혜주의로 표현된다. 선물 경제는 공동체의 결속을 바탕으로 호혜적 복지를 강화한다. 선물 경제의 구성단위는 ‘나’가 아니라 ‘우리’다. 모든 번영을 공동체가 함께 누리기 때문이다.”
한편 심리학자 W. 키스 캠벨은《나르시시즘이라는 전염병》에서 각종 SNS에 드러난 현대인의 자기애가 갖는 심각성을 경고한다. 캠벨은 셀카 자체가 “대단히 자기 초점적”이라고 말한다. 각종 SNS 셀카를 올리고 그에 대한 ‘좋아요’ 숫자에 따라 지위나 영향력을 획득한다. 그런 점에서 SNS는 과대망상적인 나르시시트들에게 꼭 맞도록 설계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만의 브랜드가 있는 양 홍보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상품이 되는 동안, 경제적 이득은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들이 수확한다는 점이다. 캠벨은 이런 시대 부모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현대 사회에서 부모가 아이를 완전히 격리시키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나 영향력을 미치는지 잘 모르겠다. 이것은 어려운 과제다. 내 말의 핵심은 아이들이 세상에 접속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우리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면 아이는 핸드폰을 꺼내어 자기 볼일을 본다. 이런 행동은 내 손을 떠난 일이다. 그래서 내가 자녀 양육에 대해 자주 하는 조언은 “좋은 역할 모델이 되어주고, 연민을 가르치고, 열정을 가르치고, 책임지는 법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즘과는 반대되는 덕목들 말이다.”
사랑만이 여전히 우리의 희망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은 사랑과 지식이 모두 필요하지만, 사랑이 더 근본적이라고 말했다. 사랑은 지적인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이로운 길을 찾아내기 위해 지식을 추구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소설가 DBC 피에르는《저마다 다른 사랑의 방식》에서 상상을 초월한 세상의 사랑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독일의 한 방사선사는 첫눈에 반한 여인의 시신을 가족들 몰래 2년 넘게 방부 처리해 감춰두었다. 그런가 하면 인간에게 말을 배우는 실험을 받은 한 청백돌고래는 6개월의 간의 훈련이 끝나고 수조 바닥으로 내려가서 수면 밖으로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 자살했다. 혹자는 이들의 행위도 사랑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무언가를 갈망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을 싹틔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찌르르함을 갈구하고 느끼고 싶어 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짜릿함을 느끼려면, 꽃처럼 만개해야 한다. 즉 우주의 필수 성분인 질을, 태고의 핵융합 과정에서 탄생한 그 본능적이고 경쟁적인 불꽃을 찾아 나서야 한다.”
사랑은 어디든 존재한다. 하지만 존재하는 만큼 그 아름다운 영향력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앞으로도 사랑을 계속해서 찾을 것이고, 허무한 사랑이든 온전한 사랑이든 이어갈 것이다. 사랑의 철학자로도 불렸던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단순하지만 압도적으로 강력한 열정 세 가지가 내 삶을 지배했다. 바로 사랑을 향한 갈망, 지식 탐구, 인류의 고통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연민이다. 이 열정들은 강풍처럼 나를 여기저기로 날렸고, 위태로운 길을 거쳐 깊은 고통의 바라로, 절망의 한계로 내몰았다.” 사랑만이 여전히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목차
10 _ News from Nowhere
18 _ Feature _ 사랑에 이유가 있을까? _ 패트릭 스톡스
24 _ Feature _ 우리에게는 더 많은 사랑 이야기가 필요하다 _ 존 암스트롱
30 _ Interview _ 사랑을 이해한다는 것 _ 수전 울프
46 _ Comic _ 스피드 데이트에 도전한 니체 _ 코리 몰러
48 _ Feature _ 깊고도 넓은 인간의 사랑 _ 톰 챗필드
54 _ Feature _ 저마다 다른 사랑의 방식 _ DBC 피에르
62 _ Feature _ 선물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나눌 때 _ 캐리 젠킨스
70 _ Feature _ 사랑과 결혼 _ 마리나 벤저민
76 _ Feature _ 사랑에 빠진 낯선 사람들 _ 마리아나 알레산드리
82 _ Feature _ 출혈 없는 불륜은 없다 _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
90 _ Love letters
96 _ Feature _ 사랑을 이어주는 데이팅 앱? _ 매슈 비어드
102 _ Interview _ 나르시시즘이라는 전염병 _ W. 키스 캠벨
124 _ 고전 읽기 _ 에코와 나르키소스 _ 오비디우스
132 _ 고전 읽기 _ 사랑에 관하여 _ 스탕달
142 _ 6thinkers _ 사랑Love
146 _ Our Library
150 _ Column _ 아이들이 담요를 사랑하는 이유 _ 앙드레 다오
160 _ Interview _ 나만의 인생철학 13문 13답 _ 벤스 나네이
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 19호
“사랑이 두려운 시대의 사랑법”
모든 곳에 존재하는 사랑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 부모와 가족, 연인과 친구를 사랑하고 요즘은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가 하면 음식, 음악, 게임, 운동, 지식, 아름다움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랑은 어디나 존재하는 감정이지만, 그것의 의미를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벅찬 사랑의 기쁨보다 어긋난 사랑의 아픔이 우리 곁에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더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에는 사랑의 여신이 적어도 14명은 존재했다. 사랑 · 성 ·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설득과 유혹의 화신 페이토가 대표적인데, 인구 100만 명당 사랑의 여신 한 명이 존재했던 셈이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전 세계에 사랑의 여신 8000명이 존재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사랑마저도 사랑하는, 알다가도 모를 존재들이다.
열광적인 사랑 vs. 일상적인 사랑
《뉴필로소퍼》 19호는 “사랑이 두려워진 시대의 사랑법”을 주제로, 인간의 오랜 관심사이자 세상을 아름답게도, 때론 혼탁하게도 하는 사랑의 세계를 고찰한다. 생각해 보면, 요즘 흔하디흔한 말이 ‘사랑’이다. 수없이 많은 유행가 가사에 사랑이 넘쳐나고, 숱한 문학작품의 단골 소재 역시 사랑이다. 제목조차 다 외울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는 영화와 TV 드라마도 사랑이 없으면 존재조차 장담할 수 없다. 항차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삶에도 사랑이라는 말은 차고 넘친다. 그만큼 사랑이 우리 삶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일 터. 하지만 “홍수에 마실 물이 없다”는 옛말처럼, 그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온전한 혹은 완전한 사랑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 우리 현실이다. 《성서》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는데 그런 사랑은 언감생심焉敢生心, 대개의 콘텐츠가 보여주는 사랑은 오히려 갖가지 죄를 잉태하는 모양새다.
<사랑에 이유가 있을까?>에서 철학자 패트릭 스톡스는 대개의 사람들이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깊이 빠져든다고 말한다. 실제로 사랑이 시작될 때를 정확하게 알기란 어려운 일이며 중심, 즉 불타는 사랑의 심정이 될 때야 사랑을 인지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은 결국 선택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선택을 의지적으로 지켜내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시간이 얼마 지난 후에야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사랑에 뛰어드는 것은 단순히 어떤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벌써 어느 정도는 그런 선택을 내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작가 마리나 벤저민은 <사랑과 결혼>이라는 고전적인 제목의 글에서 “열광적이고 강박적인 사랑”이 아닌 “오랜 친밀감에서 생겨나는 잔잔하고 일상적인 사랑”의 중요성을 옹호한다. 세상 사람들은 열렬한 로맨스에 열광하겠지만 “서로의 진가를 알아보고 공존 가능성을 조율하면서 은은하게 번지는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때문이다. 어디 남녀 간의 사랑만 그럴까? 세상 모든 사랑이 이런 모양이라면 행복은 저절로 우리 사회에 퍼질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기 노출이나 두 사람의 결합, 심지어 파멸적인 열렬한 사랑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결혼이 사랑의 끝일까봐 두려워한다. 특히 앞뒤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빠져드는 열정적 사랑은 종종 절정의 감정으로 치닫는다. 이런 사랑이 결혼이라는 인내심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까? 아닐 수도 있다. 설령 이만한 사랑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세상 헛살았다고 흔히들 말하는, 그런 죽고 못 사는 사랑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사랑과 자본의 함수
사랑이 범람하는 시대지만, 정작 현대인들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사랑의 본래적 가치를 잊어가고 있다. 철학자 캐리 젠킨스는《선물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나눌 때》에서 생태학자 로빈 월 키머러의 ‘선물 경제gift economy’ 개념, 즉 재화나 용역이 개개인의 금전적 이득이 아닌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소비되는 경제체제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자고 주장한다. 키머러는 여분의 재산을 선물로 나눠주기보다 차라리 허비하도록 부추기는 사회를 질타한다. 전 세계인들에게 선물로 주어져야 하는 ‘물’마저 “정체불명의 회사들이 약탈해서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해 판매”하는 현실은 과연 온당한가 묻는 것이다. 다음은 캐리 젠킨스가 인용한 키머러의 에세이《서비스베리Serviceberry》중 한 대목이다.
“선물 경제는 시장 경제에 앞서는 대안이다. …… 선물 경제체제에서 부는 이웃에게 나눠줄 만큼 충분히 소유한 상태라고 인식되며 여분의 재산은 선물하는 것이 관습이다. 실제로 사회적 지위는 부를 얼마나 쌓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베푸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선물 경제에서 통용되는 유통수단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인데, 관계는 감사 표시, 상호의존, 지속적 호혜주의로 표현된다. 선물 경제는 공동체의 결속을 바탕으로 호혜적 복지를 강화한다. 선물 경제의 구성단위는 ‘나’가 아니라 ‘우리’다. 모든 번영을 공동체가 함께 누리기 때문이다.”
한편 심리학자 W. 키스 캠벨은《나르시시즘이라는 전염병》에서 각종 SNS에 드러난 현대인의 자기애가 갖는 심각성을 경고한다. 캠벨은 셀카 자체가 “대단히 자기 초점적”이라고 말한다. 각종 SNS 셀카를 올리고 그에 대한 ‘좋아요’ 숫자에 따라 지위나 영향력을 획득한다. 그런 점에서 SNS는 과대망상적인 나르시시트들에게 꼭 맞도록 설계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만의 브랜드가 있는 양 홍보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상품이 되는 동안, 경제적 이득은 실리콘밸리의 기술기업들이 수확한다는 점이다. 캠벨은 이런 시대 부모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현대 사회에서 부모가 아이를 완전히 격리시키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나 영향력을 미치는지 잘 모르겠다. 이것은 어려운 과제다. 내 말의 핵심은 아이들이 세상에 접속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우리 아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면 아이는 핸드폰을 꺼내어 자기 볼일을 본다. 이런 행동은 내 손을 떠난 일이다. 그래서 내가 자녀 양육에 대해 자주 하는 조언은 “좋은 역할 모델이 되어주고, 연민을 가르치고, 열정을 가르치고, 책임지는 법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르시시즘과는 반대되는 덕목들 말이다.”
사랑만이 여전히 우리의 희망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은 사랑과 지식이 모두 필요하지만, 사랑이 더 근본적이라고 말했다. 사랑은 지적인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이로운 길을 찾아내기 위해 지식을 추구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소설가 DBC 피에르는《저마다 다른 사랑의 방식》에서 상상을 초월한 세상의 사랑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독일의 한 방사선사는 첫눈에 반한 여인의 시신을 가족들 몰래 2년 넘게 방부 처리해 감춰두었다. 그런가 하면 인간에게 말을 배우는 실험을 받은 한 청백돌고래는 6개월의 간의 훈련이 끝나고 수조 바닥으로 내려가서 수면 밖으로 나오지 않는 방식으로 자살했다. 혹자는 이들의 행위도 사랑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무언가를 갈망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을 싹틔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찌르르함을 갈구하고 느끼고 싶어 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짜릿함을 느끼려면, 꽃처럼 만개해야 한다. 즉 우주의 필수 성분인 질을, 태고의 핵융합 과정에서 탄생한 그 본능적이고 경쟁적인 불꽃을 찾아 나서야 한다.”
사랑은 어디든 존재한다. 하지만 존재하는 만큼 그 아름다운 영향력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앞으로도 사랑을 계속해서 찾을 것이고, 허무한 사랑이든 온전한 사랑이든 이어갈 것이다. 사랑의 철학자로도 불렸던 버트런드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단순하지만 압도적으로 강력한 열정 세 가지가 내 삶을 지배했다. 바로 사랑을 향한 갈망, 지식 탐구, 인류의 고통에 대한 견딜 수 없는 연민이다. 이 열정들은 강풍처럼 나를 여기저기로 날렸고, 위태로운 길을 거쳐 깊은 고통의 바라로, 절망의 한계로 내몰았다.” 사랑만이 여전히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일 것이다.
목차
10 _ News from Nowhere
18 _ Feature _ 사랑에 이유가 있을까? _ 패트릭 스톡스
24 _ Feature _ 우리에게는 더 많은 사랑 이야기가 필요하다 _ 존 암스트롱
30 _ Interview _ 사랑을 이해한다는 것 _ 수전 울프
46 _ Comic _ 스피드 데이트에 도전한 니체 _ 코리 몰러
48 _ Feature _ 깊고도 넓은 인간의 사랑 _ 톰 챗필드
54 _ Feature _ 저마다 다른 사랑의 방식 _ DBC 피에르
62 _ Feature _ 선물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나눌 때 _ 캐리 젠킨스
70 _ Feature _ 사랑과 결혼 _ 마리나 벤저민
76 _ Feature _ 사랑에 빠진 낯선 사람들 _ 마리아나 알레산드리
82 _ Feature _ 출혈 없는 불륜은 없다 _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
90 _ Love letters
96 _ Feature _ 사랑을 이어주는 데이팅 앱? _ 매슈 비어드
102 _ Interview _ 나르시시즘이라는 전염병 _ W. 키스 캠벨
124 _ 고전 읽기 _ 에코와 나르키소스 _ 오비디우스
132 _ 고전 읽기 _ 사랑에 관하여 _ 스탕달
142 _ 6thinkers _ 사랑Love
146 _ Our Library
150 _ Column _ 아이들이 담요를 사랑하는 이유 _ 앙드레 다오
160 _ Interview _ 나만의 인생철학 13문 13답 _ 벤스 나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