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 13호
“부조리한 삶 속에서 목표를 갖는다는 것”
분명한 목적이 있는 삶 vs 물 흐르는 듯 사는 삶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한 번 사는 인생, 분명한 뜻과 목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러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뜻대로 되는 인생이 어디 있어, 물 흐르는 듯 사는 거지.’ 누구 말이 맞다 틀리다,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다. 보통의 사람들은 대개 양쪽을 기웃거리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살아가지만, 또 어느 경우에는 물 흐르듯 사는 게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다.
분명한 목적을 향해 달음질했던 사람 중에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가 있다. 세네카는 정치인으로서도 비교적 주관이 뚜렷했고, 스토아 철학의 대가라 불릴 만큼 철학적 신념 또한 강했던 사람이다. 그런 세네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어느 항구를 향해 갈 것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노를 젓는다면 바람조차 도와주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자주 듣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반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등의 작품을 남긴 루이스 캐럴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른다면, 어느 길을 택하든 목적지에 도달할 것입니다.” 흥청망청 살라는 의미로 루이스 캐럴이 말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확고한 목적이 없을지라도 “어느 길을 택하든”, 즉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면 그만한 보람도 없다는 뜻일 것이다.
가치 있다고 믿는 일, 그것이 곧 삶의 목적
《뉴필로소퍼》 13호는 “부조리한 삶 속에서 목표를 갖는다는 것”을 주제로 인간사와 얽힌 다양한 ‘목적’에 대해 고찰한다. 일찍이 사르트르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보다 스스로 선택한 의미로 인생을 채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르트르의 말을 믿는다면, 어떤 의미 혹은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헛된 몸부림일 수도 있다. 카뮈도 마찬가지여서 삶은 부조리하지만, 바로 거기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여러 작품을 통해 말한 바 있다.
작가이자 편집자인 마리나 벤저민은 <목표가 있으면 인생이 행복할까?>에서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자가 격리와 봉쇄가 개인과 사회를 퇴행시킨 것은 아닌지 묻는다. 퇴행이 곧 목적 없는 삶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자칫 그 퇴행 속에 몸과 마음을 맡기면 일상도 삶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마리나 벤저민은 직접 바느질해서 마스크를 만들고, 빵을 굽고, 온라인 강의를 듣고, 무엇이든 스스로 만들어보려는 사람들의 행동, 즉 “의도적 활동”이 퇴행을 막는다고 강조한다. 거창한 목적보다 삶에서 지속 가능한 일들을 찾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핵심적인 사례는 이어지는 영국 노화 종단 연구(English Longitudinal Study of Ageing, ELSA)의 책임자인 심리학자 앤드루 스텝토와의 인터뷰 <인생의 목표 찾기>에 충분히 등장한다. ELSA는 20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연구로, 나이 들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살펴보는 포트폴리오 프로젝트이다. 이 인터뷰에서 앤드루 스텝토는 “문제를 꽤 작은 규모로, 실질적인 과업 지향적 활동으로 축소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한다는 느낌을 날마다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대단한 활동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관련 있는 소소한 행동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면서 하는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 인생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식을 유지해주는 모든 일, 다른 사람이나 세상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일이 전부 포함될 수 있다.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것처럼 자연이나 환경과 관련된 활동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활동이 사회생활만큼이나 중요할 수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은 꽤 다양한 셈이다.”
인간 존재 목적과 부조리
물론 일상의 소소한 삶을 넘어 원대한 꿈과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다. 작가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는 <늘 거기 있는 산에 오르려는 이유>에서 영국의 등반가 조지 맬러리를 대표적인 인물로 소환한다. 맬러리는 1920년대 중반, 오늘날 최첨단의 장비를 가지고도 이뤄내기 어려운 에베레스트산 등반에 나섰다가 실종된다. 그는 “신들에게만 허락되었던 곳에 오르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혔고, 죽음이라는 대가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도전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열망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다.
“맬러리는 등반을 떠날 때마다 자기 자신을 정복하려 했었다고 비판적으로 시인했다. 산은 늘 그렇듯 무심한 구경꾼처럼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장엄하고 아름답게 위험한 자태를 드러냈다. 무언가를 추구하려는 맬러리의 욕망이 물리적 세계에서 드러나기는 했어도 사실 그 욕망은 그의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자기 내면과 분투했다. 그가 정복하려 한 것은 가파른 산꼭대기가 아니라 내면의 적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명징하게 경험하든 그렇지 못하든, 내면의 적과 조우할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일이 다 내 뜻대로만 돌아가지 않고, 나 자신도 스스로의 뜻대로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기술철학자 톰 챗필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위해 투쟁하는 인간>에서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를 언급하며 “인간의 이성과 세상의 불합리한 침묵이 대립할 때”라고 규정한다. 카뮈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조리’도 이렇게 탄생한다. 부조리한 인간, 그것보다 훨씬 더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톰 챗필드는 카뮈의 말을 인용해 “삶에 궁극적 의미란 없다. 하지만 삶을 목적으로 채울 수는 있다. 그리고 부조리한 상황에서 살아야 한다면,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톰 챗필드는 《시시포스 신화》 마지막 구절을 인용해 글을 마친다.
“높은 곳을 향한 투쟁 그 자체로 인간의 마음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 우리는 행복한 시시포스를 상상해야 한다.”
‘목적’ 하면 흔히 인간의 존재 그 자체와 삶의 지향을 묻는 것이 보통이지만, 《뉴필로소퍼》 13호는 그 영역을 확장해 철학과 예술의 목적, 나아가 역사를 바꾸는 원동력 중 하나인 시위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철학자 마이샤 체리는 <시위는 계속될 것이다!>에서 사회 혁신이나 혁명의 길 가운데 있었던, 혹은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시위가 왜 끊이지 않는지 분석한다. 마이샤 체리가 보기에 시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함께함, 즉 ‘연대’를 기억하는 일이다.
“시위대는 시위를 통해 불의와 선을 긋는 동시에 불의의 희생자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희생자들을 존중하며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찬사를 보낸다. 이를테면 성차별에 항의하는 것은 차별받은 피해자들의 가치에 명예를 부여하는 행동이다. 시위대는 또한 성차별적 관행을 규탄하고 여성 인권과 공정성을 지지하며 불공평한 처우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다. 시위를 통해 부당한 행위를 방지하고 불의를 비난하며 피해자들 편에 선다.”
행복과 부조리를 같은 땅에서 나온 두 아들
카뮈는 일찍이 “행복과 부조리는 같은 땅에서 나온 두 아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큰 기둥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아무 목적 없이 살 수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목적에만 집착해서 살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이를 철학자 패트릭 스톡스는 <철학의 목적은 무엇인가?>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려 재미있게 표현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스스로에게 “네가 ‘철학’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자주 물었는데, 그 대답 중 하나가 “파리에게 파리통 밖으로 나갈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시답잖은 질문과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보는 시점에 따라 그 느낌이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패트릭 스톡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파리가 파리통을 탈출하게 돕는 일은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리 대단찮은 목표처럼 들린다. 하지만 파리 같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덫에 걸리는지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평생을 걸어야 할 만큼) 커다란 과업이다.”
인생의 과업이나 목적은 이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거창한 목적을 지녔다고 그것 자체로 폼 나는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 하찮은 목적, 아니 아예 그런 것이 없다고 무시해서도 안 된다. 일상, 즉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면 나와 내 이웃을 보듬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 당신 삶이 목표는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묻는 세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뉴필로소퍼》 13호와 함께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엮은이 뉴필로소퍼 편집부
《뉴필로소퍼》는 인류가 축적한 웅숭깊은 철학적 사상을 탐구하여 “보다 충실한 삶”의 원형을 찾고자 2013년 호주에서 처음 창간된 계간지다. 《뉴필로소퍼》의 창간 목표는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으로, 소비주의와 기술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뉴필로소퍼》가 천착하는 주제는 ‘지금, 여기’의 삶이다. 인간의 삶과 그 삶을 지지하는 정체성은 물론 문학, 철학, 역사, 예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인문적 관점을 선보인다. 인문학과 철학적 관점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2013년 창간 당시부터 광고 없는 잡지로 발간되고 있다. 《뉴필로소퍼》 한국판 역시 이러한 정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일체의 광고 없이 잡지를 발간한다.
옮긴이 성소희, 송예슬, 최이현, 이시은, 강이수
본문에서
자기반성이나 상상력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추구하려는 욕망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특징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리라는 확신 없이 길을 떠나는 것, 답을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탐색하는 것, 길을 잃으면서도 계속 여행하는 것, 지식과 생각의 틀을 습득하고 넓히고 시험하는 것, 개인의 해방에 이르는 것. 이러한 것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 늘 거기 있는 산에 오르려는 이유 _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 46쪽
불확실한 상황에서 삶의 목적을 알게 하는 것은 명료한 정신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인간이 끝없는 한계 속에서 투쟁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카뮈는 이렇게 묻는다. 보건대원들은 칭찬받아 마땅할까? 이들을 칭찬하는 일은 2 더하기 2는 4라고 가르치는 교사를 칭찬하는 경우와 같을까? 보건대원들의 행동이 영웅적이지는 않다. 그들은 그저 불가피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니까. 하지만 “2 더하기 2는 4라고 감히 말하는 사람이 사형을 당하는 때가 온다.” 이따금 그저 눈앞에 있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위해 투쟁하는 인간 _ 톰 챗필드 53쪽
시위대는 시위를 통해 불의와 선을 긋는 동시에 불의의 희생자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희생자들을 존중하며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찬사를 보낸다. 이를테면 성차별에 항의하는 것은 차별받은 피해자들의 가치에 명예를 부여하는 행동이다. 시위대는 또한 성차별적 관행을 규탄하고 여성 인권과 공정성을 지지하며 불공평한 처우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다. 시위를 통해 부당한 행위를 방지하고 불의를 비난하며 피해자들 편에 선다.
▲ 시위는 계속될 것이다! _ 마이샤 체리 92~93쪽
역량은 개인에게 가치 있는 삶을 누리게 해주는 실질적인 기회들이다. 사람들이 가진 자원이나 물건을 역량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단순히 양으로만 판단할 때보다 좀 더 광범위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의 욕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어서 차를 운전할 수 없거나 성차별적인 제도 때문에 운전을 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면, 차가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사회 정의 역량 이론은 광범위한 사회 문제들을 고려하고 해결하라고 요구한다. 또한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를 마땅히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역량 이론은 건강・교육 기회・사회적 지원 등에 관심을 둔다. 그러므로 나는 사회 정의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 특히 차별이나 소외로 역량을 강화하지 못할 경우, 그 문제들을 먼저 해결하지 않고는 웰빙이나 에우다이모니아를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스스로의 목적과 계획을 추구하라 _ 그렉 D. 카루소 112쪽
인간은 얼마나 부조리한가! 그들은 결코 자신이 가진 자유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갖지 못한 자유를 요구한다. 그들은 생각의 자유가 있지만 언론의 자유를 요구한다. ― 《이것이냐 저것이냐》 제1부, 1843년
▲ 경이와 의심 _ 쇠렌 키르케고르 122쪽
차례
10 News from Nowhere
20 Feature _ 목표가 있으면 인생이 행복할까? _ 마리나 벤저민
26 Interview _ 인생의 목표 찾기 _ 앤드루 스텝토
38 Comic _ 시시포스가 카뮈를 만난다면 _ 코리 몰러
44 Feature _ 늘 거기 있는 산에 오르려는 이유 _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
50 Feature _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위해 투쟁하는 인간 _ 톰 챗필드
58 Feature _ 오직 내적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다 _ 마시모 피글리우치
64 Feature _ 인정 욕구, 인간 존재의 이유 _ 앙드레 다오
72 Feature _ 철학의 목적은 무엇인가? _ 패트릭 스톡스
80 Feature _ 예술에는 목적이 없다? _ 나이젤 워버튼
90 Feature _ 시위는 계속될 것이다! _ 마이샤 체리
98 Interview _ 스스로의 목적과 계획을 추구하라 _ 그렉 D. 카루소
116 6 thinkers _ 목적Purpose
118 고전 읽기 _ 경이와 의심 _ 쇠렌 키르케고르
124 고전 읽기 _ 시시포스 신화 _ 알베르 카뮈
134 고전 읽기 _ 자아실현의 욕구 _ 에이브러햄 매슬로
146 Our Library
148 Essay _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 _ 캐리 젠킨스
156 Interview _ 나만의 인생철학 13문 13답 _ 안드레스 로에메르
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 13호
“부조리한 삶 속에서 목표를 갖는다는 것”
분명한 목적이 있는 삶 vs 물 흐르는 듯 사는 삶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한 번 사는 인생, 분명한 뜻과 목적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더러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뜻대로 되는 인생이 어디 있어, 물 흐르는 듯 사는 거지.’ 누구 말이 맞다 틀리다, 결론 내리기는 쉽지 않다. 보통의 사람들은 대개 양쪽을 기웃거리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살아가지만, 또 어느 경우에는 물 흐르듯 사는 게 평범한 사람들의 하루하루다.
분명한 목적을 향해 달음질했던 사람 중에 로마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가 있다. 세네카는 정치인으로서도 비교적 주관이 뚜렷했고, 스토아 철학의 대가라 불릴 만큼 철학적 신념 또한 강했던 사람이다. 그런 세네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어느 항구를 향해 갈 것인지 생각하지도 않고 노를 젓는다면 바람조차 도와주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자주 듣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반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 등의 작품을 남긴 루이스 캐럴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지금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지 모른다면, 어느 길을 택하든 목적지에 도달할 것입니다.” 흥청망청 살라는 의미로 루이스 캐럴이 말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확고한 목적이 없을지라도 “어느 길을 택하든”, 즉 지금 여기의 삶에 충실하면 그만한 보람도 없다는 뜻일 것이다.
가치 있다고 믿는 일, 그것이 곧 삶의 목적
《뉴필로소퍼》 13호는 “부조리한 삶 속에서 목표를 갖는다는 것”을 주제로 인간사와 얽힌 다양한 ‘목적’에 대해 고찰한다. 일찍이 사르트르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보다 스스로 선택한 의미로 인생을 채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사르트르의 말을 믿는다면, 어떤 의미 혹은 목적을 추구하는 것은 헛된 몸부림일 수도 있다. 카뮈도 마찬가지여서 삶은 부조리하지만, 바로 거기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여러 작품을 통해 말한 바 있다.
작가이자 편집자인 마리나 벤저민은 <목표가 있으면 인생이 행복할까?>에서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자가 격리와 봉쇄가 개인과 사회를 퇴행시킨 것은 아닌지 묻는다. 퇴행이 곧 목적 없는 삶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자칫 그 퇴행 속에 몸과 마음을 맡기면 일상도 삶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마리나 벤저민은 직접 바느질해서 마스크를 만들고, 빵을 굽고, 온라인 강의를 듣고, 무엇이든 스스로 만들어보려는 사람들의 행동, 즉 “의도적 활동”이 퇴행을 막는다고 강조한다. 거창한 목적보다 삶에서 지속 가능한 일들을 찾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 핵심적인 사례는 이어지는 영국 노화 종단 연구(English Longitudinal Study of Ageing, ELSA)의 책임자인 심리학자 앤드루 스텝토와의 인터뷰 <인생의 목표 찾기>에 충분히 등장한다. ELSA는 20년 넘게 진행되고 있는 연구로, 나이 들면서 일어나는 변화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살펴보는 포트폴리오 프로젝트이다. 이 인터뷰에서 앤드루 스텝토는 “문제를 꽤 작은 규모로, 실질적인 과업 지향적 활동으로 축소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치 있다고 믿는 일을 한다는 느낌을 날마다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다.
“대단한 활동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관련 있는 소소한 행동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면서 하는 다양한 자원봉사 활동, 인생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식을 유지해주는 모든 일, 다른 사람이나 세상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일이 전부 포함될 수 있다.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것처럼 자연이나 환경과 관련된 활동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활동이 사회생활만큼이나 중요할 수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은 꽤 다양한 셈이다.”
인간 존재 목적과 부조리
물론 일상의 소소한 삶을 넘어 원대한 꿈과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다. 작가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는 <늘 거기 있는 산에 오르려는 이유>에서 영국의 등반가 조지 맬러리를 대표적인 인물로 소환한다. 맬러리는 1920년대 중반, 오늘날 최첨단의 장비를 가지고도 이뤄내기 어려운 에베레스트산 등반에 나섰다가 실종된다. 그는 “신들에게만 허락되었던 곳에 오르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혔고, 죽음이라는 대가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도전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열망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다.
“맬러리는 등반을 떠날 때마다 자기 자신을 정복하려 했었다고 비판적으로 시인했다. 산은 늘 그렇듯 무심한 구경꾼처럼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장엄하고 아름답게 위험한 자태를 드러냈다. 무언가를 추구하려는 맬러리의 욕망이 물리적 세계에서 드러나기는 했어도 사실 그 욕망은 그의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자기 내면과 분투했다. 그가 정복하려 한 것은 가파른 산꼭대기가 아니라 내면의 적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명징하게 경험하든 그렇지 못하든, 내면의 적과 조우할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일이 다 내 뜻대로만 돌아가지 않고, 나 자신도 스스로의 뜻대로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기술철학자 톰 챗필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위해 투쟁하는 인간>에서 알베르 카뮈의 《시시포스 신화》를 언급하며 “인간의 이성과 세상의 불합리한 침묵이 대립할 때”라고 규정한다. 카뮈 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조리’도 이렇게 탄생한다. 부조리한 인간, 그것보다 훨씬 더 부조리한 세상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톰 챗필드는 카뮈의 말을 인용해 “삶에 궁극적 의미란 없다. 하지만 삶을 목적으로 채울 수는 있다. 그리고 부조리한 상황에서 살아야 한다면,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톰 챗필드는 《시시포스 신화》 마지막 구절을 인용해 글을 마친다.
“높은 곳을 향한 투쟁 그 자체로 인간의 마음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 우리는 행복한 시시포스를 상상해야 한다.”
‘목적’ 하면 흔히 인간의 존재 그 자체와 삶의 지향을 묻는 것이 보통이지만, 《뉴필로소퍼》 13호는 그 영역을 확장해 철학과 예술의 목적, 나아가 역사를 바꾸는 원동력 중 하나인 시위의 목적과 의미에 대해서도 고찰한다. 철학자 마이샤 체리는 <시위는 계속될 것이다!>에서 사회 혁신이나 혁명의 길 가운데 있었던, 혹은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시위가 왜 끊이지 않는지 분석한다. 마이샤 체리가 보기에 시위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함께함, 즉 ‘연대’를 기억하는 일이다.
“시위대는 시위를 통해 불의와 선을 긋는 동시에 불의의 희생자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희생자들을 존중하며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찬사를 보낸다. 이를테면 성차별에 항의하는 것은 차별받은 피해자들의 가치에 명예를 부여하는 행동이다. 시위대는 또한 성차별적 관행을 규탄하고 여성 인권과 공정성을 지지하며 불공평한 처우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다. 시위를 통해 부당한 행위를 방지하고 불의를 비난하며 피해자들 편에 선다.”
행복과 부조리를 같은 땅에서 나온 두 아들
카뮈는 일찍이 “행복과 부조리는 같은 땅에서 나온 두 아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큰 기둥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아무 목적 없이 살 수도, 그렇다고 지나치게 목적에만 집착해서 살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이를 철학자 패트릭 스톡스는 <철학의 목적은 무엇인가?>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빌려 재미있게 표현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스스로에게 “네가 ‘철학’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자주 물었는데, 그 대답 중 하나가 “파리에게 파리통 밖으로 나갈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시답잖은 질문과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는 보는 시점에 따라 그 느낌이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패트릭 스톡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파리가 파리통을 탈출하게 돕는 일은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리 대단찮은 목표처럼 들린다. 하지만 파리 같은 우리가 얼마나 쉽게 덫에 걸리는지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평생을 걸어야 할 만큼) 커다란 과업이다.”
인생의 과업이나 목적은 이처럼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거창한 목적을 지녔다고 그것 자체로 폼 나는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 하찮은 목적, 아니 아예 그런 것이 없다고 무시해서도 안 된다. 일상, 즉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면 나와 내 이웃을 보듬는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 당신 삶이 목표는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묻는 세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뉴필로소퍼》 13호와 함께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엮은이 뉴필로소퍼 편집부
《뉴필로소퍼》는 인류가 축적한 웅숭깊은 철학적 사상을 탐구하여 “보다 충실한 삶”의 원형을 찾고자 2013년 호주에서 처음 창간된 계간지다. 《뉴필로소퍼》의 창간 목표는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으로, 소비주의와 기술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뉴필로소퍼》가 천착하는 주제는 ‘지금, 여기’의 삶이다. 인간의 삶과 그 삶을 지지하는 정체성은 물론 문학, 철학, 역사, 예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인문적 관점을 선보인다. 인문학과 철학적 관점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2013년 창간 당시부터 광고 없는 잡지로 발간되고 있다. 《뉴필로소퍼》 한국판 역시 이러한 정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일체의 광고 없이 잡지를 발간한다.
옮긴이 성소희, 송예슬, 최이현, 이시은, 강이수
본문에서
자기반성이나 상상력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추구하려는 욕망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특징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리라는 확신 없이 길을 떠나는 것, 답을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탐색하는 것, 길을 잃으면서도 계속 여행하는 것, 지식과 생각의 틀을 습득하고 넓히고 시험하는 것, 개인의 해방에 이르는 것. 이러한 것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 늘 거기 있는 산에 오르려는 이유 _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 46쪽
불확실한 상황에서 삶의 목적을 알게 하는 것은 명료한 정신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인간이 끝없는 한계 속에서 투쟁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카뮈는 이렇게 묻는다. 보건대원들은 칭찬받아 마땅할까? 이들을 칭찬하는 일은 2 더하기 2는 4라고 가르치는 교사를 칭찬하는 경우와 같을까? 보건대원들의 행동이 영웅적이지는 않다. 그들은 그저 불가피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이니까. 하지만 “2 더하기 2는 4라고 감히 말하는 사람이 사형을 당하는 때가 온다.” 이따금 그저 눈앞에 있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위해 투쟁하는 인간 _ 톰 챗필드 53쪽
시위대는 시위를 통해 불의와 선을 긋는 동시에 불의의 희생자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희생자들을 존중하며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찬사를 보낸다. 이를테면 성차별에 항의하는 것은 차별받은 피해자들의 가치에 명예를 부여하는 행동이다. 시위대는 또한 성차별적 관행을 규탄하고 여성 인권과 공정성을 지지하며 불공평한 처우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한다. 시위를 통해 부당한 행위를 방지하고 불의를 비난하며 피해자들 편에 선다.
▲ 시위는 계속될 것이다! _ 마이샤 체리 92~93쪽
역량은 개인에게 가치 있는 삶을 누리게 해주는 실질적인 기회들이다. 사람들이 가진 자원이나 물건을 역량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단순히 양으로만 판단할 때보다 좀 더 광범위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의 욕구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어서 차를 운전할 수 없거나 성차별적인 제도 때문에 운전을 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면, 차가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사회 정의 역량 이론은 광범위한 사회 문제들을 고려하고 해결하라고 요구한다. 또한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떤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를 마땅히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역량 이론은 건강・교육 기회・사회적 지원 등에 관심을 둔다. 그러므로 나는 사회 정의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 특히 차별이나 소외로 역량을 강화하지 못할 경우, 그 문제들을 먼저 해결하지 않고는 웰빙이나 에우다이모니아를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 스스로의 목적과 계획을 추구하라 _ 그렉 D. 카루소 112쪽
인간은 얼마나 부조리한가! 그들은 결코 자신이 가진 자유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이 갖지 못한 자유를 요구한다. 그들은 생각의 자유가 있지만 언론의 자유를 요구한다. ― 《이것이냐 저것이냐》 제1부, 1843년
▲ 경이와 의심 _ 쇠렌 키르케고르 122쪽
차례
10 News from Nowhere
20 Feature _ 목표가 있으면 인생이 행복할까? _ 마리나 벤저민
26 Interview _ 인생의 목표 찾기 _ 앤드루 스텝토
38 Comic _ 시시포스가 카뮈를 만난다면 _ 코리 몰러
44 Feature _ 늘 거기 있는 산에 오르려는 이유 _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
50 Feature _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위해 투쟁하는 인간 _ 톰 챗필드
58 Feature _ 오직 내적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다 _ 마시모 피글리우치
64 Feature _ 인정 욕구, 인간 존재의 이유 _ 앙드레 다오
72 Feature _ 철학의 목적은 무엇인가? _ 패트릭 스톡스
80 Feature _ 예술에는 목적이 없다? _ 나이젤 워버튼
90 Feature _ 시위는 계속될 것이다! _ 마이샤 체리
98 Interview _ 스스로의 목적과 계획을 추구하라 _ 그렉 D. 카루소
116 6 thinkers _ 목적Purpose
118 고전 읽기 _ 경이와 의심 _ 쇠렌 키르케고르
124 고전 읽기 _ 시시포스 신화 _ 알베르 카뮈
134 고전 읽기 _ 자아실현의 욕구 _ 에이브러햄 매슬로
146 Our Library
148 Essay _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 _ 캐리 젠킨스
156 Interview _ 나만의 인생철학 13문 13답 _ 안드레스 로에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