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
vol. 29 : 끝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간
모든 발명과 발견, 그리고 역사 이래 모든 문명 발달의 기원은 단연코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능에 있었다. 키케로 등 고대 철학자들도 새로움을 향한 인간의 맹목적 사랑에 대해 경계의 말을 던졌다. 새로움을 향한 갈망은 인간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만들거나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새로움 그 자체에 대한 탐닉과 욕심은 수많은 역사 속 전쟁과 갈등의 이야기가 증명하듯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현시대의 새로움은, 새 정보와 호기심 충족이라는 이유 아래 우리의 시간과 비용을 먹어치우는 또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
끝을 향한 불안이 새로움을 탐닉하게 만들까?
_ 인류가 새로움을 갈망하는 이유
새 물건을 좋아하고, 새로운 맛을 경험해보고, 난생 처음의 도전이라도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체험해보려는 등, 지루해진 기존의 것보다 새로움을 더 찾는 것은 인간의 지극히 당연한 본능이다. 그뿐인가? 인터넷 세상에 들어가 재빨리 스크롤과 클릭을 반복하는 현대인들도 모두 새로운 소식을 찾기 위해 때로는 주의를 집중해서, 때로는 습관적인 화면 터치를 지속한다. 기업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전의 물건과 조금이라도 차별되는 신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애를 쓴다. 세상의 크고 작은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도 오래 전부터 산적한 사건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하더라도 일단 ‘새 소식’이라는 기준을 충족하려 애를 쓴다.
《뉴필로소퍼》 29호는 인류가 왜 그토록 새로움이라는 낯선 변화를 갈망하는지, 그리고 새로움의 명과 암을 통해 얼마만큼의 추구와 제어를 적용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새로운 물건과 정보와 사건을 소비하는 속도가 우리 자신을 속여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하는 결정적 요소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다시 말해 삶의 끝을 향한 불안이 우리가 일상에서 더더욱 새것에 취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새로움을 소비하는 일이 환상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더라도 결코 오래갈 수 없는 단발성의 기쁨에 머무를 공산이 크다.
새로 구입한 물건은 내일이면 더 이상 새것이 아닌 물건이 되어버린다. 새로운 예술사조였던 모더니즘은 21세기에 이르러 구시대의 예술사조 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C. S. 루이스의 풍자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주인공인 악마는 그의 조카에게 인간 영혼을 더럽힐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이제는 그자가 먼저 두 팔 벌려 자기 목적을 산만하게 흐트러뜨려달라고 애원하게 될 게다…… 갈피를 잃은 그의 주의력은 무엇으로도 사로잡을 수 있고, 또 동시에 사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새로움에의 탐닉이 인간 본성의 치명적 약점임을 간파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인류에게 새로움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근원적 장치이기도 하다. 필자 안토니아 케이스의 말처럼 과거로부터 지속되어온 것과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을 모두 포용하는, 혹은 합리적 선택을 결정하는 분별력이 요구될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상 유지의 장점을 지키는 것과, 새로운 생각 또는 혁신을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본문 49쪽)
‘창조’가 아닌 ‘재조합’으로서의 새로움
_ 새로움의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두 석학의 인터뷰
이번 호 《뉴필로소퍼》에는 새로움에 관하여 각기 다른 시선으로 풀어간 두 명의 석학과의 대담이 실려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UCLA 영문과 교수인 마이클 노스는 새로움에 대하여 발견이나 발명처럼 ‘없던 것에서 새것을 만드는’ 창조의 개념으로 보지 말고, ‘있던 것으로부터의 재조합’으로 새로움을 인식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성경 속 구절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많은 사상가들이 인간은 물질이나 에너지를 창조할 수 없으므로 결국 이미 존재한 것을 재조합함으로써 새로움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개념에 집착하지 말고, 점진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 새로움을 받아들일 것을 강조한 것이다.
조지워싱턴대학교 정신의학 및 행동과학 임상교수로 재직 중인 대니얼 Z. 리버먼은 순간적인 쾌감과 행복감의 원천이 되는 도파민 호르몬에 주목하며, 이것이 새로움을 탐닉하고 갈망하는 인간 정신의 기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도파민이 우리 삶에 의욕과 성취욕을 향한 긍정적 신호를 부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도파민의 과잉으로 인해 생겨나는 중독과 내성 등은 말초적인 흥미와 새로움에 대한 순간적 유혹에 빠져 우리의 삶을 망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약은 물론이고 초가공식품, 소셜 미디어, 가벼운 섹스 등도 도파민의 분비를 과잉으로 만들어 자칫 ‘도파민의 노예’로 살게끔 만들 수 있다.
새로움을 향한 철학자들의 생각은 이외에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현생을 사는 인간들이 죽음, 즉 끝을 향해 나아간다는 원초적 불안에 시달리며, 실존주의자들 또한 필연적 죽음을 전제하며 이야기했지만,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특별히 ‘탄생성’에 주목할 것을 이른다. 만약 인간이 ‘재생산이 가능한 동일 모델의 반복’과 같은 복제품이라면 절망할 이유가 되겠으나, 인간은 저마다 고유한 존재이자 예상치 못한 일을 해낼 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새로움의 긍정적 해석인 탄생성을 일컬어 ‘세상을 구하는 기적’이라 표현한 아렌트의 말처럼, 인간은 시작 그 자체이므로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렌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시작 자체이므로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요컨대 인간은 행동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고, 우리는 지지하기 위해, 반대하기 위해, 창조하기 위해, 그리고 바로잡기 위해 태어났다. 새로움에 집착하는 사람은 무에서 참신함을 추구하는 동안 자신의 본성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한나 아렌트에게서 배울 수 있다. (본문 22쪽)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니 더 자유로워졌다’
- 20만 구독의 유튜버가 된 청년 철학자 이야기
《뉴필로소퍼》는 지난 호부터 국내의 인물도 인터뷰로 만나보는 지면을 시작하였고, 이번 호에는 철학 유튜버이자 젊은 철학자인 이충녕 작가와의 대화를 게재하였다. 책으로만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던 철학을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서 대중들과의 소통으로 풀어가는 그는 독일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박사학위 도전보다는 일상 철학을 쉬운 언어로 전파하는 철학 메신저, 즉 유튜버로서의 본격 활동을 시작하였다.
인문학을 다루는 유튜브로서 쉽사리 도달하기 어려운 2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그는, 인터뷰를 통해 철학을 공부한 학문적 베이스에, 다양한 철학자들의 문헌, 무엇보다 이 두 가지를 조합하여 자신만의 사유로 결론 내는 독창적 견해를 들려준다. ‘스스로 자유를 제한할 때 더 자유로워졌다’고 말하며, 현 시대에 인간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유에 대한 속삭임’이라는 뜻밖의 진단을 내린다.
“자유를 제한하라는 건, 모든 자유를 자발적으로 박탈당하라는 게 아니라, 특정한 부분에서만큼은 넘지 않고 지켜야 할 자신만의 선을 만들라는 겁니다. ……자유롭게 이 선에 스스로 예속돼 있는 상태인 거죠. 이런 상태는 모든 것이 열려 있는 상태보다 오히려 더 안정적입니다. 하나의 닫힌 바닥을 만들어놓고, 나머지 인생의 부분들을 자유롭게 열어놓는 거죠. 오히려 닫힌 바닥 덕분에 더 안정적으로 나머지 선택지들을 탐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150쪽)
엮은이 뉴필로소퍼 편집부
《뉴필로소퍼》는 인류가 축적한 웅숭깊은 철학적 사상을 탐구하여 “보다 충실한 삶”의 원형을 찾고자 2013년 호주에서 처음 창간된 계간지다. 《뉴필로소퍼》의 창간 목표는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으로, 소비주의와 기술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뉴필로소퍼》가 천착하는 주제는 ‘지금, 여기’의 삶이다. 인간의 삶과 그 삶을 지지하는 정체성은 물론 문학, 철학, 역사, 예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인문적 관점을 선보인다. 인문학과 철학적 관점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2013년 창간 당시부터 광고 없는 잡지로 발간되고 있다. 《뉴필로소퍼》 한국판 역시 이러한 정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일체의 광고 없이 잡지를 발간한다.
옮긴이 성소희, 송예슬, 강이수, 강경아, 이초희
본문 중에서
새로움을 좇는 일은 내일을 붙잡으려는 일과 같다. 내일이 가져다줄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근처에 있는 미래의 지평선을 가까이 끌어당기는 일이다. 나는 참신함과 시간을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생각하자면, 새로움을 단호하게 추구하는 일은 시간을 앞지르려는 시도로 보인다.
▲ 시간을 앞지르려는 사람들 _ 마리나 벤저민 (36쪽)
인터넷이 제공하는 것들의 문제는, 바이트 크기의 보상을 먹이로 주면서 보상에 기반한 학습 과정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셜 미디어 팔로워, 흥미로운 이메일, 재난 뉴스 이야기 같은 보상이 소셜 미디어를, 이메일 계정을, 온라인 뉴스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습관을 강화한다. 이때 문제는,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무언가를 반복할 때 중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얼마 안 있어 약물이나 도박 중독자처럼 아무런 보상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자꾸만 인터넷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게 된다.
▲ 새로움 끝의 공허 _ 안토니아 케이스 (47쪽)
나는 호프스태터처럼 인공 지능 같은 기술이 이룰 성과와 의미에 경외감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깊은 불확신도 느낀다. 나는 날마다 기쁨과 두려움 사이, 희망과 냉소 사이를 오간다. 내가 무엇보다도 걱정하는 것은 새로움을 향한 우리 욕구의 이면이다. 충격적인 참신함이 얼마나 빠르게 평범함으로 바뀔지, 우리가 태어나며 속한 질서와 사물의 본질을 얼마나 쉽게 혼동할지 걱정스럽다.
▲ 참신함이 평범함으로 바뀌는 속도 _ 톰 챗필드 (56쪽)
도파민은 강력하다. 그 중독을 극복하기란 대단히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도파민과 맞붙어도 될 만큼 강력한, 그래서 우리를 이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줄 방법이 없을까? 답은 바로 사회적 소통이다. 누군가와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 말이다. 유혹하려고, 또는 뭔가를 팔려고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다. 장차 그 사람과 함께할 휴가를 계획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즐길 때 그 자리에 도파민은 없다. 모든 것은 지금 이곳에, 현재의 화학작용으로만 돌아간다.
▲ 도파민의 노예를 살지 않기 위해 _ 대니얼 Z. 리버먼 (78쪽)
모더니즘은 새로운 것을 오래된 것과 함께 몰래 반입해서 새로움의 막이 오르도록 도왔다. 바로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모더니즘 예술가는 관람객을 충격에 빠뜨리는 데 틀림없이 성공했다. 하지만 꾸준하게 성공하려면 충격을 줄 새로운 방법을 찾아 헤매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더니즘 예술은 너무나도 큰 성공을 거뒀지만 진정으로 충격을 주는 능력은 점차 시들었다.
▲ 더 이상 참신하지 않은 모더니즘 _ 앙드레 다오 (86쪽)
파운드가 외친 ‘새롭게 하라’는 결국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에게 이미 계속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대립하는 힘들이 충돌과 갈등을 반복하다가 나름의 해결책에 도달하는, 끝없는 새로움과 창조의 과정, 한마디로 삶의 흐름에 몸을 싣는 수밖에 없다. 철학자 앨런 와츠는 말한다. “변화를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변화에 뛰어드는 것, 그것과 함께 움직이며 춤에 동참하는 것뿐”이라고.
▲ 창조와 파괴 사이의 인생 _ 안토니아 케이스 (100쪽)
차례
8 _ News from Nowhere
16 _ Intro _ 인간은 왜 새로움을 갈망할까? _ 잔 보그
18 _ Beginning _ 죽음보다 탄생에 눈을 돌릴 때 _ 마리아나 알레산드리
26 _ Philosophy _ 플라톤에 매이지 않는 현대 철학 _ 나이젤 워버튼
34 _ Opinion _ 시간을 앞지르려는 사람들 _ 마리나 벤저민
40 _ Comic _ 존재론적 쇼핑 네트워크 _ 코리 몰러
42 _ Balance _ 새로움 끝의 공허 _ 안토니아 케이스
52 _ Future _ 참신함이 평범함으로 바뀌는 속도 _ 톰 챗필드
60 _ Imagination _ 100퍼센트 상상력은 없다 _ 패트릭 스톡스
66 _ Interview _ 도파민의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 _ 대니얼 Z. 리버먼
82 _ Modernism _ 더 이상 참신하지 않은 모더니즘 _ 앙드레 다오
88 _ Artist _ 색채와 기하학으로 만나는 풍경 _ 멜리사 샹동
96 _ Change _ 창조와 파괴 사이의 인생 _ 안토니아 케이스
112 _ Interview _ 창조가 아닌 재조합으로서의 새로움 _ 마이클 노스
126 _ Novelty _ 새로운 것의 역사 _ 마이클 노스
130 _ Interview _ 스스로 제한하는 자유가 더 자유롭다 _ 이충녕
154 _ 공간이랑 _ 고작 하룻밤의 도피 _ 임이랑
162 _ Thinking in pictures _ 타인은 지옥이 아니다 _ 박보나
170 _ 앎과 삶 _ 철학이 무기가 될 때 _ 황진규
178 _ Our library
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
vol. 29 : 끝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인간
모든 발명과 발견, 그리고 역사 이래 모든 문명 발달의 기원은 단연코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능에 있었다. 키케로 등 고대 철학자들도 새로움을 향한 인간의 맹목적 사랑에 대해 경계의 말을 던졌다. 새로움을 향한 갈망은 인간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만들거나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새로움 그 자체에 대한 탐닉과 욕심은 수많은 역사 속 전쟁과 갈등의 이야기가 증명하듯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현시대의 새로움은, 새 정보와 호기심 충족이라는 이유 아래 우리의 시간과 비용을 먹어치우는 또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
끝을 향한 불안이 새로움을 탐닉하게 만들까?
_ 인류가 새로움을 갈망하는 이유
새 물건을 좋아하고, 새로운 맛을 경험해보고, 난생 처음의 도전이라도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체험해보려는 등, 지루해진 기존의 것보다 새로움을 더 찾는 것은 인간의 지극히 당연한 본능이다. 그뿐인가? 인터넷 세상에 들어가 재빨리 스크롤과 클릭을 반복하는 현대인들도 모두 새로운 소식을 찾기 위해 때로는 주의를 집중해서, 때로는 습관적인 화면 터치를 지속한다. 기업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전의 물건과 조금이라도 차별되는 신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애를 쓴다. 세상의 크고 작은 뉴스를 보도하는 언론도 오래 전부터 산적한 사건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하더라도 일단 ‘새 소식’이라는 기준을 충족하려 애를 쓴다.
《뉴필로소퍼》 29호는 인류가 왜 그토록 새로움이라는 낯선 변화를 갈망하는지, 그리고 새로움의 명과 암을 통해 얼마만큼의 추구와 제어를 적용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새로운 물건과 정보와 사건을 소비하는 속도가 우리 자신을 속여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하는 결정적 요소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다시 말해 삶의 끝을 향한 불안이 우리가 일상에서 더더욱 새것에 취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결국 새로움을 소비하는 일이 환상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더라도 결코 오래갈 수 없는 단발성의 기쁨에 머무를 공산이 크다.
새로 구입한 물건은 내일이면 더 이상 새것이 아닌 물건이 되어버린다. 새로운 예술사조였던 모더니즘은 21세기에 이르러 구시대의 예술사조 중 하나가 되었을 뿐이다. C. S. 루이스의 풍자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주인공인 악마는 그의 조카에게 인간 영혼을 더럽힐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주며 “이제는 그자가 먼저 두 팔 벌려 자기 목적을 산만하게 흐트러뜨려달라고 애원하게 될 게다…… 갈피를 잃은 그의 주의력은 무엇으로도 사로잡을 수 있고, 또 동시에 사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새로움에의 탐닉이 인간 본성의 치명적 약점임을 간파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 인류에게 새로움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근원적 장치이기도 하다. 필자 안토니아 케이스의 말처럼 과거로부터 지속되어온 것과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을 모두 포용하는, 혹은 합리적 선택을 결정하는 분별력이 요구될 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상 유지의 장점을 지키는 것과, 새로운 생각 또는 혁신을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본문 49쪽)
‘창조’가 아닌 ‘재조합’으로서의 새로움
_ 새로움의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두 석학의 인터뷰
이번 호 《뉴필로소퍼》에는 새로움에 관하여 각기 다른 시선으로 풀어간 두 명의 석학과의 대담이 실려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UCLA 영문과 교수인 마이클 노스는 새로움에 대하여 발견이나 발명처럼 ‘없던 것에서 새것을 만드는’ 창조의 개념으로 보지 말고, ‘있던 것으로부터의 재조합’으로 새로움을 인식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성경 속 구절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많은 사상가들이 인간은 물질이나 에너지를 창조할 수 없으므로 결국 이미 존재한 것을 재조합함으로써 새로움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개념에 집착하지 말고, 점진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 새로움을 받아들일 것을 강조한 것이다.
조지워싱턴대학교 정신의학 및 행동과학 임상교수로 재직 중인 대니얼 Z. 리버먼은 순간적인 쾌감과 행복감의 원천이 되는 도파민 호르몬에 주목하며, 이것이 새로움을 탐닉하고 갈망하는 인간 정신의 기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도파민이 우리 삶에 의욕과 성취욕을 향한 긍정적 신호를 부여하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도파민의 과잉으로 인해 생겨나는 중독과 내성 등은 말초적인 흥미와 새로움에 대한 순간적 유혹에 빠져 우리의 삶을 망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약은 물론이고 초가공식품, 소셜 미디어, 가벼운 섹스 등도 도파민의 분비를 과잉으로 만들어 자칫 ‘도파민의 노예’로 살게끔 만들 수 있다.
새로움을 향한 철학자들의 생각은 이외에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현생을 사는 인간들이 죽음, 즉 끝을 향해 나아간다는 원초적 불안에 시달리며, 실존주의자들 또한 필연적 죽음을 전제하며 이야기했지만,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특별히 ‘탄생성’에 주목할 것을 이른다. 만약 인간이 ‘재생산이 가능한 동일 모델의 반복’과 같은 복제품이라면 절망할 이유가 되겠으나, 인간은 저마다 고유한 존재이자 예상치 못한 일을 해낼 능력이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새로움의 긍정적 해석인 탄생성을 일컬어 ‘세상을 구하는 기적’이라 표현한 아렌트의 말처럼, 인간은 시작 그 자체이므로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아렌트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시작 자체이므로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 요컨대 인간은 행동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고, 우리는 지지하기 위해, 반대하기 위해, 창조하기 위해, 그리고 바로잡기 위해 태어났다. 새로움에 집착하는 사람은 무에서 참신함을 추구하는 동안 자신의 본성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한나 아렌트에게서 배울 수 있다. (본문 22쪽)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니 더 자유로워졌다’
- 20만 구독의 유튜버가 된 청년 철학자 이야기
《뉴필로소퍼》는 지난 호부터 국내의 인물도 인터뷰로 만나보는 지면을 시작하였고, 이번 호에는 철학 유튜버이자 젊은 철학자인 이충녕 작가와의 대화를 게재하였다. 책으로만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던 철학을 카메라와 마이크 앞에서 대중들과의 소통으로 풀어가는 그는 독일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박사학위 도전보다는 일상 철학을 쉬운 언어로 전파하는 철학 메신저, 즉 유튜버로서의 본격 활동을 시작하였다.
인문학을 다루는 유튜브로서 쉽사리 도달하기 어려운 2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그는, 인터뷰를 통해 철학을 공부한 학문적 베이스에, 다양한 철학자들의 문헌, 무엇보다 이 두 가지를 조합하여 자신만의 사유로 결론 내는 독창적 견해를 들려준다. ‘스스로 자유를 제한할 때 더 자유로워졌다’고 말하며, 현 시대에 인간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유에 대한 속삭임’이라는 뜻밖의 진단을 내린다.
“자유를 제한하라는 건, 모든 자유를 자발적으로 박탈당하라는 게 아니라, 특정한 부분에서만큼은 넘지 않고 지켜야 할 자신만의 선을 만들라는 겁니다. ……자유롭게 이 선에 스스로 예속돼 있는 상태인 거죠. 이런 상태는 모든 것이 열려 있는 상태보다 오히려 더 안정적입니다. 하나의 닫힌 바닥을 만들어놓고, 나머지 인생의 부분들을 자유롭게 열어놓는 거죠. 오히려 닫힌 바닥 덕분에 더 안정적으로 나머지 선택지들을 탐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문 150쪽)
엮은이 뉴필로소퍼 편집부
《뉴필로소퍼》는 인류가 축적한 웅숭깊은 철학적 사상을 탐구하여 “보다 충실한 삶”의 원형을 찾고자 2013년 호주에서 처음 창간된 계간지다. 《뉴필로소퍼》의 창간 목표는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으로, 소비주의와 기술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뉴필로소퍼》가 천착하는 주제는 ‘지금, 여기’의 삶이다. 인간의 삶과 그 삶을 지지하는 정체성은 물론 문학, 철학, 역사, 예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인문적 관점을 선보인다. 인문학과 철학적 관점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2013년 창간 당시부터 광고 없는 잡지로 발간되고 있다. 《뉴필로소퍼》 한국판 역시 이러한 정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일체의 광고 없이 잡지를 발간한다.
옮긴이 성소희, 송예슬, 강이수, 강경아, 이초희
본문 중에서
새로움을 좇는 일은 내일을 붙잡으려는 일과 같다. 내일이 가져다줄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근처에 있는 미래의 지평선을 가까이 끌어당기는 일이다. 나는 참신함과 시간을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생각하자면, 새로움을 단호하게 추구하는 일은 시간을 앞지르려는 시도로 보인다.
▲ 시간을 앞지르려는 사람들 _ 마리나 벤저민 (36쪽)
인터넷이 제공하는 것들의 문제는, 바이트 크기의 보상을 먹이로 주면서 보상에 기반한 학습 과정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셜 미디어 팔로워, 흥미로운 이메일, 재난 뉴스 이야기 같은 보상이 소셜 미디어를, 이메일 계정을, 온라인 뉴스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습관을 강화한다. 이때 문제는,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무언가를 반복할 때 중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얼마 안 있어 약물이나 도박 중독자처럼 아무런 보상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자꾸만 인터넷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게 된다.
▲ 새로움 끝의 공허 _ 안토니아 케이스 (47쪽)
나는 호프스태터처럼 인공 지능 같은 기술이 이룰 성과와 의미에 경외감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낀다. 하지만 깊은 불확신도 느낀다. 나는 날마다 기쁨과 두려움 사이, 희망과 냉소 사이를 오간다. 내가 무엇보다도 걱정하는 것은 새로움을 향한 우리 욕구의 이면이다. 충격적인 참신함이 얼마나 빠르게 평범함으로 바뀔지, 우리가 태어나며 속한 질서와 사물의 본질을 얼마나 쉽게 혼동할지 걱정스럽다.
▲ 참신함이 평범함으로 바뀌는 속도 _ 톰 챗필드 (56쪽)
도파민은 강력하다. 그 중독을 극복하기란 대단히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도파민과 맞붙어도 될 만큼 강력한, 그래서 우리를 이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줄 방법이 없을까? 답은 바로 사회적 소통이다. 누군가와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 말이다. 유혹하려고, 또는 뭔가를 팔려고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다. 장차 그 사람과 함께할 휴가를 계획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즐길 때 그 자리에 도파민은 없다. 모든 것은 지금 이곳에, 현재의 화학작용으로만 돌아간다.
▲ 도파민의 노예를 살지 않기 위해 _ 대니얼 Z. 리버먼 (78쪽)
모더니즘은 새로운 것을 오래된 것과 함께 몰래 반입해서 새로움의 막이 오르도록 도왔다. 바로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모더니즘 예술가는 관람객을 충격에 빠뜨리는 데 틀림없이 성공했다. 하지만 꾸준하게 성공하려면 충격을 줄 새로운 방법을 찾아 헤매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더니즘 예술은 너무나도 큰 성공을 거뒀지만 진정으로 충격을 주는 능력은 점차 시들었다.
▲ 더 이상 참신하지 않은 모더니즘 _ 앙드레 다오 (86쪽)
파운드가 외친 ‘새롭게 하라’는 결국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에게 이미 계속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대립하는 힘들이 충돌과 갈등을 반복하다가 나름의 해결책에 도달하는, 끝없는 새로움과 창조의 과정, 한마디로 삶의 흐름에 몸을 싣는 수밖에 없다. 철학자 앨런 와츠는 말한다. “변화를 이해하는 유일한 길은 변화에 뛰어드는 것, 그것과 함께 움직이며 춤에 동참하는 것뿐”이라고.
▲ 창조와 파괴 사이의 인생 _ 안토니아 케이스 (100쪽)
차례
8 _ News from Nowhere
16 _ Intro _ 인간은 왜 새로움을 갈망할까? _ 잔 보그
18 _ Beginning _ 죽음보다 탄생에 눈을 돌릴 때 _ 마리아나 알레산드리
26 _ Philosophy _ 플라톤에 매이지 않는 현대 철학 _ 나이젤 워버튼
34 _ Opinion _ 시간을 앞지르려는 사람들 _ 마리나 벤저민
40 _ Comic _ 존재론적 쇼핑 네트워크 _ 코리 몰러
42 _ Balance _ 새로움 끝의 공허 _ 안토니아 케이스
52 _ Future _ 참신함이 평범함으로 바뀌는 속도 _ 톰 챗필드
60 _ Imagination _ 100퍼센트 상상력은 없다 _ 패트릭 스톡스
66 _ Interview _ 도파민의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 _ 대니얼 Z. 리버먼
82 _ Modernism _ 더 이상 참신하지 않은 모더니즘 _ 앙드레 다오
88 _ Artist _ 색채와 기하학으로 만나는 풍경 _ 멜리사 샹동
96 _ Change _ 창조와 파괴 사이의 인생 _ 안토니아 케이스
112 _ Interview _ 창조가 아닌 재조합으로서의 새로움 _ 마이클 노스
126 _ Novelty _ 새로운 것의 역사 _ 마이클 노스
130 _ Interview _ 스스로 제한하는 자유가 더 자유롭다 _ 이충녕
154 _ 공간이랑 _ 고작 하룻밤의 도피 _ 임이랑
162 _ Thinking in pictures _ 타인은 지옥이 아니다 _ 박보나
170 _ 앎과 삶 _ 철학이 무기가 될 때 _ 황진규
178 _ Our libr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