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
vol. 24 : 나는 어떤 지능을 가졌을까?
수메르 속담에 ‘힘은 지능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오래 전 인류에게도, 그리고 현대인들에게도 두뇌의 비상함이 물리적인 강한 힘보다 더 우위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공통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지능’은 흔히 말하는 지능지수, 즉 IQ 수치로 파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인간의 두뇌에서 발현되는 지능은 수식의 패턴과 도형의 변화를 재빨리 알아채는 수학적 지능, 오직 이 한 종류뿐일까? 게다가 인공지능이 세상 구석구석에 침투하여 인간의 수고를 대신하는 이 시대에, 인간의 지능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일까?
이번 호 《뉴필로소퍼》는 인텔리전스(intelligence, 지능)라는 단어가 던지는 과학적 혹은 사회적 통용과 편견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지능에 대한 폭넓은 인식과 발달을 위한 다양한 제안들을 들어본다.
‘인공지능’ 시대에 더 필요한 ‘인간지능’ 이야기
우리에게 지능이라는 말은 ‘높고 낮음’이라는 우열식 결론으로 판단되거나, 지능지수 테스트에 의한 수치로 증명되어 받아들이게 되는 단어가 되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지능에 대해, 혹은 타인의 지능에 대해 다양한 관점 없이 한 가지 결론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IQ 검사에서 판명되는 수치는 정말로 인간 두뇌가 발현하는 ‘모든 지능’을 증명해주는 것일까? 3D 물체를 180도 회전시키는 모양과, 여러 숫자의 패턴을 재빨리 파악하는 정보 처리 속도가 인간 지능이라는 무궁한 힘을 모두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호 《뉴필로소퍼》에서는 세상 곳곳에서 AI와 챗GPT의 영향력이 매일 같이 소개되는 현 시대에, 다시 한번 근본적인 인간의 지능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지능이 아이큐 테스트로 관찰되는 처리속도의 능력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감정으로, 혹은 신체로, 공감력으로, 대인관계 능력으로 나타나듯, 다양하게 지능을 구분하는 것이 합리적인 인식임을 전한다.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키스 스타노비치는 “IQ가 충분히 높은데도 체계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책에서 설명하였다. 그가 말하는 합리적 행동이란 최선의 수단을 사용해서 삶의 목표를 이루려는 행동을 가리키며, 이것이 곧 단순 지능지수가 아닌, 삶 전체에서 드러나는 전반적 지능이 골고루 뛰어난 사람에게서 보이는 모습일 터이다.
기타를 연주하기 위해 단순 연습이 아닌 셈여림과 손떨림의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 테니스 코트 뒤쪽으로 달려가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위치에서 탑스핀을 성공시키는 능력도 유난히 발달한 신체 지능을 갖고 있기에 실현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들어 ‘감정 민첩성’이라 일컬어지는 감정지능 또한 인간 지능의 큰 축을 차지한다. 피터 셀러베이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분별하고, 그 정보를 이용해 생각과 행동을 끌어낼 줄 아는 사회적 지능’으로 감정지능을 정의하였다. 이렇듯 지능의 세계는 다양화되고 종류화되어, 한 사람의 삶에서 어느 지능이 얼마만큼 작용하는가에 따라 개인의 특성이 만들어져 갈 것이다. 지능은 한 가지 방식의 우열로 판단되지 않는다.
합리적 사고 능력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게 도와준다. 그러나 IQ가 합리성을 측정하는 척도는 아니다. IQ 검사는 얼마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며 현명한 의사 결정을 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노비치의 결론은 이렇다. “많은 사람이 합리성 장애를 앓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이 IQ 검사로 측정되는 사고 기술들을 과대평가하고, 합리적 사고와 같은 대단히 중요한 인지 능력은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본문 9쪽)
단일지능이 아닌, 이제는 다중지능의 시대
- 다중지능 이론의 창시자 하워드 가드너 인터뷰
하버드대 교수이자 세계적인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와의 인터뷰는 이번 호의 가장 하이라이트이다. 인간의 지능에는 여러 다른 유형이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다양한 능력 또는 지능이 어느 정도씩은 모두 존재한다고 그는 말했다. 지능의 유형이 단일하다고 인식되었던 1980년대 초에, 하워드 가드너가 처음 발표한 이 도전은 심리학 학계에서 꽤나 큰 반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큐 테스트는 당시 계량심리학의 수입과 관심의 원천이었기에, 인간의 지능을 다양한 종류와 방식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반겨줄 리가 없었다.
시험지와 연필을 건네주고 제한 시간 동안 문제를 풀어야 지능을 파악할 수 있다는 그간의 테스트로는 한 사람이 지닌 다중지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가령, 누가 신체(운동) 지능을 가졌는지 알고 싶다면 그가 춤추고 공을 다루고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모습을 봐야 한다. 누군가가 대인관계 능력을 가졌는지 알고 싶다면, 며칠간 그가 타인과 대화하고 교류하는 모습을 관찰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단시간에 파악이 불가능한 분야인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언어를 다루면서 복잡한 사례를 추론해야 하는 법학자의 능력은 언어와 논리력을 측정할 수 있는 IQ 테스트로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훌륭한 영업사원에게 필요한 능력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에게 필요한 능력은 방문 판매에서의 적극성과, 광고문구 작성 기술,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하도록 만드는 지략일 터이니, 이 능력이 IQ 테스트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워드 가드너는 일곱 가지로 지능을 정리하였는데, 언어지능과 논리-수학 지능, 음악 지능, 신체운동 지능, 시각-공간 지능, 대인관계 지능, 자기성찰 지능이 그것이다. 개개인마다 어느 지능이 두드러지고 어느 지능이 다소 부족한 것인지로 한 사람의 지능을 파악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복잡다단한 생명체를 규정하는 데 더 적합한 방법일 것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지능을 지니고 있는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당신이 그 지능을 긍정적으로, 호의적으로 사용하는지 아닌지에 관심이 더 많다.” (본문 123쪽)
인공지능이 지배할 미래를 인간의 지혜로 대처할 때
- AI가 만들어낼 정보와 모방의 공격 속에서
스티븐 호킹은 2014년 《인디펜던트》지 특집논평에서 “인공지능 개발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일 것이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인공지능의 위험을 피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 인류의 마지막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사람의 지능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번 《뉴필로소퍼》에서도 인공지능, 즉 AI가 점차 영역을 넓혀가는 현 시대에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기란 어렵다. 기계가 대량의 생산성을 아무리 높인다 해도 인간의 언어능력과 추론능력을 모방할 순 없을 거라 자신했지만, 이제 챗GPT가 쏟아내는 엄청난 정보와 텍스트를 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 지능을 연구하는 일보다 더 고도화된 인공 지능을 개발하는 일이 인류의 주력이 되었다. 이제 이를 멈출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책 속에서 인터뷰한 두 명의 삽화가는 텍스트를 읽고 순수 인간의 창의력으로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보다, 수많은 명화와 기존의 그림 이미지들을 데이터에 저장해둔 채 ‘고기 분쇄기에서 다져져 나오는 고기처럼’ 수많은 일러스트 그림들이 대량으로 아웃풋 되어 저가에 공급되는 미래를 예상하며 두려워한다. 인공지능을 다루는 인간의 지능이 기술과 상업의 문제에서 벗어나, 인류 보편의 윤리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지능이 아닌 지혜의 영역으로 넓혀야 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인 스튜어트 러셀은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함께, 인공지능 공동 안전규약이 만들어질 때까지 모든 관련 연구소가 GPT-4보다 강력한 인공지능 개발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다. 러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계산 능력과 지능이 우리보다 우수해져서 결국 우리를 대체하고 퇴물로 만들 비인간적 존재를 계속 개발해야 하는가? 문명의 통제력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인간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던 이유는 바로 지능 때문인데, 인간보다 강력한 지능을 개발해서 이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내는 관련 전문가들의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지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더불어, 이번 호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현실적 문제와 불안한 미래를 지적하는 여러 이야기를 실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엮은이 뉴필로소퍼 편집부
《뉴필로소퍼》는 인류가 축적한 웅숭깊은 철학적 사상을 탐구하여 “보다 충실한 삶”의 원형을 찾고자 2013년 호주에서 처음 창간된 계간지다. 《뉴필로소퍼》의 창간 목표는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으로, 소비주의와 기술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뉴필로소퍼》가 천착하는 주제는 ‘지금, 여기’의 삶이다. 인간의 삶과 그 삶을 지지하는 정체성은 물론 문학, 철학, 역사, 예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인문적 관점을 선보인다. 인문학과 철학적 관점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2013년 창간 당시부터 광고 없는 잡지로 발간되고 있다. 《뉴필로소퍼》 한국판 역시 이러한 정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일체의 광고 없이 잡지를 발간한다.
옮긴이 성소희, 송예슬, 강이수, 최이현, 강경아
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
vol. 24 : 나는 어떤 지능을 가졌을까?
수메르 속담에 ‘힘은 지능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오래 전 인류에게도, 그리고 현대인들에게도 두뇌의 비상함이 물리적인 강한 힘보다 더 우위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공통된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지능’은 흔히 말하는 지능지수, 즉 IQ 수치로 파악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인간의 두뇌에서 발현되는 지능은 수식의 패턴과 도형의 변화를 재빨리 알아채는 수학적 지능, 오직 이 한 종류뿐일까? 게다가 인공지능이 세상 구석구석에 침투하여 인간의 수고를 대신하는 이 시대에, 인간의 지능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일까?
이번 호 《뉴필로소퍼》는 인텔리전스(intelligence, 지능)라는 단어가 던지는 과학적 혹은 사회적 통용과 편견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지능에 대한 폭넓은 인식과 발달을 위한 다양한 제안들을 들어본다.
‘인공지능’ 시대에 더 필요한 ‘인간지능’ 이야기
우리에게 지능이라는 말은 ‘높고 낮음’이라는 우열식 결론으로 판단되거나, 지능지수 테스트에 의한 수치로 증명되어 받아들이게 되는 단어가 되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지능에 대해, 혹은 타인의 지능에 대해 다양한 관점 없이 한 가지 결론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IQ 검사에서 판명되는 수치는 정말로 인간 두뇌가 발현하는 ‘모든 지능’을 증명해주는 것일까? 3D 물체를 180도 회전시키는 모양과, 여러 숫자의 패턴을 재빨리 파악하는 정보 처리 속도가 인간 지능이라는 무궁한 힘을 모두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호 《뉴필로소퍼》에서는 세상 곳곳에서 AI와 챗GPT의 영향력이 매일 같이 소개되는 현 시대에, 다시 한번 근본적인 인간의 지능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지능이 아이큐 테스트로 관찰되는 처리속도의 능력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감정으로, 혹은 신체로, 공감력으로, 대인관계 능력으로 나타나듯, 다양하게 지능을 구분하는 것이 합리적인 인식임을 전한다.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키스 스타노비치는 “IQ가 충분히 높은데도 체계적으로 사고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책에서 설명하였다. 그가 말하는 합리적 행동이란 최선의 수단을 사용해서 삶의 목표를 이루려는 행동을 가리키며, 이것이 곧 단순 지능지수가 아닌, 삶 전체에서 드러나는 전반적 지능이 골고루 뛰어난 사람에게서 보이는 모습일 터이다.
기타를 연주하기 위해 단순 연습이 아닌 셈여림과 손떨림의 강약을 조절하는 능력, 테니스 코트 뒤쪽으로 달려가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위치에서 탑스핀을 성공시키는 능력도 유난히 발달한 신체 지능을 갖고 있기에 실현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들어 ‘감정 민첩성’이라 일컬어지는 감정지능 또한 인간 지능의 큰 축을 차지한다. 피터 셀러베이는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분별하고, 그 정보를 이용해 생각과 행동을 끌어낼 줄 아는 사회적 지능’으로 감정지능을 정의하였다. 이렇듯 지능의 세계는 다양화되고 종류화되어, 한 사람의 삶에서 어느 지능이 얼마만큼 작용하는가에 따라 개인의 특성이 만들어져 갈 것이다. 지능은 한 가지 방식의 우열로 판단되지 않는다.
합리적 사고 능력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게 도와준다. 그러나 IQ가 합리성을 측정하는 척도는 아니다. IQ 검사는 얼마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며 현명한 의사 결정을 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노비치의 결론은 이렇다. “많은 사람이 합리성 장애를 앓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이 IQ 검사로 측정되는 사고 기술들을 과대평가하고, 합리적 사고와 같은 대단히 중요한 인지 능력은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본문 9쪽)
단일지능이 아닌, 이제는 다중지능의 시대
- 다중지능 이론의 창시자 하워드 가드너 인터뷰
하버드대 교수이자 세계적인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와의 인터뷰는 이번 호의 가장 하이라이트이다. 인간의 지능에는 여러 다른 유형이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다양한 능력 또는 지능이 어느 정도씩은 모두 존재한다고 그는 말했다. 지능의 유형이 단일하다고 인식되었던 1980년대 초에, 하워드 가드너가 처음 발표한 이 도전은 심리학 학계에서 꽤나 큰 반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큐 테스트는 당시 계량심리학의 수입과 관심의 원천이었기에, 인간의 지능을 다양한 종류와 방식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반겨줄 리가 없었다.
시험지와 연필을 건네주고 제한 시간 동안 문제를 풀어야 지능을 파악할 수 있다는 그간의 테스트로는 한 사람이 지닌 다중지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가령, 누가 신체(운동) 지능을 가졌는지 알고 싶다면 그가 춤추고 공을 다루고 새로운 운동을 배우는 모습을 봐야 한다. 누군가가 대인관계 능력을 가졌는지 알고 싶다면, 며칠간 그가 타인과 대화하고 교류하는 모습을 관찰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단시간에 파악이 불가능한 분야인 것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언어를 다루면서 복잡한 사례를 추론해야 하는 법학자의 능력은 언어와 논리력을 측정할 수 있는 IQ 테스트로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훌륭한 영업사원에게 필요한 능력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그에게 필요한 능력은 방문 판매에서의 적극성과, 광고문구 작성 기술,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하도록 만드는 지략일 터이니, 이 능력이 IQ 테스트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워드 가드너는 일곱 가지로 지능을 정리하였는데, 언어지능과 논리-수학 지능, 음악 지능, 신체운동 지능, 시각-공간 지능, 대인관계 지능, 자기성찰 지능이 그것이다. 개개인마다 어느 지능이 두드러지고 어느 지능이 다소 부족한 것인지로 한 사람의 지능을 파악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복잡다단한 생명체를 규정하는 데 더 적합한 방법일 것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지능을 지니고 있는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당신이 그 지능을 긍정적으로, 호의적으로 사용하는지 아닌지에 관심이 더 많다.” (본문 123쪽)
인공지능이 지배할 미래를 인간의 지혜로 대처할 때
- AI가 만들어낼 정보와 모방의 공격 속에서
스티븐 호킹은 2014년 《인디펜던트》지 특집논평에서 “인공지능 개발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일 것이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인공지능의 위험을 피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 인류의 마지막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사람의 지능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번 《뉴필로소퍼》에서도 인공지능, 즉 AI가 점차 영역을 넓혀가는 현 시대에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기란 어렵다. 기계가 대량의 생산성을 아무리 높인다 해도 인간의 언어능력과 추론능력을 모방할 순 없을 거라 자신했지만, 이제 챗GPT가 쏟아내는 엄청난 정보와 텍스트를 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 지능을 연구하는 일보다 더 고도화된 인공 지능을 개발하는 일이 인류의 주력이 되었다. 이제 이를 멈출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책 속에서 인터뷰한 두 명의 삽화가는 텍스트를 읽고 순수 인간의 창의력으로 일러스트를 그리는 것보다, 수많은 명화와 기존의 그림 이미지들을 데이터에 저장해둔 채 ‘고기 분쇄기에서 다져져 나오는 고기처럼’ 수많은 일러스트 그림들이 대량으로 아웃풋 되어 저가에 공급되는 미래를 예상하며 두려워한다. 인공지능을 다루는 인간의 지능이 기술과 상업의 문제에서 벗어나, 인류 보편의 윤리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지능이 아닌 지혜의 영역으로 넓혀야 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컴퓨터과학과 교수인 스튜어트 러셀은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함께, 인공지능 공동 안전규약이 만들어질 때까지 모든 관련 연구소가 GPT-4보다 강력한 인공지능 개발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다. 러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계산 능력과 지능이 우리보다 우수해져서 결국 우리를 대체하고 퇴물로 만들 비인간적 존재를 계속 개발해야 하는가? 문명의 통제력을 잃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가?”
인간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던 이유는 바로 지능 때문인데, 인간보다 강력한 지능을 개발해서 이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내는 관련 전문가들의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지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더불어, 이번 호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현실적 문제와 불안한 미래를 지적하는 여러 이야기를 실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엮은이 뉴필로소퍼 편집부
《뉴필로소퍼》는 인류가 축적한 웅숭깊은 철학적 사상을 탐구하여 “보다 충실한 삶”의 원형을 찾고자 2013년 호주에서 처음 창간된 계간지다. 《뉴필로소퍼》의 창간 목표는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으로, 소비주의와 기술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뉴필로소퍼》가 천착하는 주제는 ‘지금, 여기’의 삶이다. 인간의 삶과 그 삶을 지지하는 정체성은 물론 문학, 철학, 역사, 예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인문적 관점을 선보인다. 인문학과 철학적 관점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독립성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2013년 창간 당시부터 광고 없는 잡지로 발간되고 있다. 《뉴필로소퍼》 한국판 역시 이러한 정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일체의 광고 없이 잡지를 발간한다.
옮긴이 성소희, 송예슬, 강이수, 최이현, 강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