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 15호 '우주를 생각한다' 중 <달은 누구의 것인가>를 발췌하여 가공한 것입니다.
악의 근원은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악의 근원으로 ‘돈’을 지목했다. 약 2,000년 후 리처드 도킨스는 ‘종교’가 악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토머스 홉스는 그 옛날 돈이나 종교가 인간을 망가트리는 게 아니라 ‘인간 본성’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홉스에 따르면 모두 위에 군림하는 강력한 군주가 없으면 인간은 서로에게 위협이 될 뿐이다. 자연 상태의 삶은 “더럽고 잔인하며 짧은 것”이다.
장 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조금 다른 주장을 펼친다. 물론 루소도 통제 없이는 삶이 잔인해지고 황망해진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우리 같은 근현대인을 인간 본성의 전형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는 사회화된 인류가 보이는 행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루소는 폭력적인 탐욕이 아니라 연민을 인간 본성의 진짜 특징으로 파악한다. 바울과 도킨스가 그랬듯, 루소 역시 악의 근원을 추적한 끝에 인간을 망가트리는 외부 요인을 발견한다. 돈이나 종교가 아니라 사회화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자신의 논지를 펼치기 위해 루소는 사고 실험에 가까운 가상의 인간 사회 역사를 제시하는데, 이 이야기 속 인류는 행복한 무지의 상태로 출발한다.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루소의 사회화 이야기는 개개인이 역사를 지나오며 공간을 어떻게 분배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공간 분배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좋은 결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 재산 소유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결말로 끝나기 때문이다.
루소식의 자연 상태에서 처음 인류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나무 아래서, 또 동굴 안에서 잠을 청했고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이러한 상태의 인간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자유롭고, 자유롭기에 진정으로 개별적이다. 그런데 석기의 발명으로 땅을 파고 나무를 자르고 최초의 오두막을 지을 수 있게 되면서, 첫 번째 혁명이 시작된다. 이렇게 공간을 분배하게 되면서 가족이 형성되었고 원시적으로나마 재산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루소는 오늘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징으로 여겨지는 감정과 이성의 발달이 공간 개념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최초의 오두막을 지어 살게 되면서부터 인류가 ‘함께 모여 사는 습성’을 기르게 되었고, 부부 사이의 사랑과 부모의 애정처럼 ‘인류가 느낄 수 있는 최고로 훌륭한 감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루소의 사유는 지극히 개인 중심적이어서, 그토록 훌륭한 감정을 길러 낸 최초의 가족 단위도 루소가 보기에는 자유의 상실이자 ‘종種의 노쇠’로 가는 첫 단계를 의미한다.
그다음 단계도 어김없이 공간과 관련이 있다. 가족 단위의 집단들이 가까운 곳에 오두막을 지어 살며 영구적인 마을을 이뤘다. 가족 집단끼리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서로 의존하게 되었다. 공간적 거리가 좁혀지자 사람들은 서로의 살림살이를 비교했다. 루소의 표현대로 사랑에는 질투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비로소 사람들 간의 계급이 매겨졌고, 그렇게 평등이 종말을 고했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개인 사이에 계약을 맺는 것의 이점에 눈을 떴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상대방보다 더 많은 걸 차지할 수 있었을까? 루소는 이른바 재산의 탄생이라고 하는 발달 과정을 하나의 사건으로 극화한다. “땅을 구획 지어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걸 인정받은 최초의 사람이야말로 시민 사회의 진정한 설립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최초의 구획 짓기로부터 인류에게 불어 닥친 “온갖 범죄와 전쟁과 살육…… 그리고 공포와 불행”이 비롯된다. 루소는 미래를 내다본 누군가가 말뚝을 뽑아버리고 배수로를 메우고 이웃들에게 “이 사기꾼의 말을 믿지 마시오. 이 땅의 열매는 우리 모두의 것이며, 이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님을 망각하는 순간 당신들은 폭삭 망하게 된다오”하고 외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탄한다.
법은 정의로부터 출발한 게 아니라,
힘으로 얻은 걸 다시 힘으로 빼앗길지 모른다는
재산 소유자의 공포심으로부터 출발했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구세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리어 재산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면서 강탈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하는 법이 처음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법은 정의로부터 출발한 게 아니라, 힘으로 얻은 걸 다시 힘으로 빼앗길지 모른다는 재산 소유자의 공포심으로부터 출발했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폭력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홉스식의 자연 상태를 도덕적 서사로 가공해 냈다. 무장 강도들이 들끓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부자와 가난한 자의 재산을 똑같이 보호하는 법적 제도를 세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루소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인간 머릿속에 떠오른 가장 심오한 계획”이었다. 이로 인해 약탈이 불변의 권리로 둔갑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계획은 “자유를 향한 희망과 뒤섞여 계급 사슬 전반으로 돌진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
모든 악이 처음 울타리를 친 순간에 근원을 두고 있는 거라면, 악의 확산은 법과 기술에 기인한다. 앞서 보았듯 법은 공간을 강제로 차지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 법의 권세가 없으면 재산은 소유자 개인의 힘으로만 지켜질 수 있고 재산의 영역도 소유자의 힘이 미치는 범위로만 한정된다. 법이 존재하고 경찰처럼 법을 지탱하는 강제적 제도가 있기에 멀리 떨어진 재산일지라도 영속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갓 태어난 아이에게 부를 물려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재산 소유자는 개인의 힘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국가 전체의 힘에 기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기술은 재산을 지키는 힘을 키우는 수단이다. 그러나 기술을 무기로 삼는다는 것은 재산을 가진 사람도 못 가진 사람도 모두 할 수 있는 일이어서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다. 기술은 재산을 지켜줄 뿐 아니라 점거 영역을 넓혀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루소의 이야기 속에서 최초의 재산 소유자는 울타리 말뚝과 발화로써 소유권을 주장한다. 이때 쓰인 기술은 제한적이다. 한 사람이 망치로 울타리 말뚝을 박을 수 있는 범위가 물리적으로 한정적인 데다 “이 땅은 내 것이다”라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 수도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근대식 지도 제작 기술이 발명되어 경험과 상상에 의존하던 중세식 지도 제작 기술을 대체하면서 상황은 판이하게 바뀌었다. 중세 지도는 인간이 경험하는 대로 공간을 그린다. 이를테면 수도원으로 가는 길이 잘 알려진 지형지물 위주로 표시된 식이어서 오늘날 일반적인 조감도보다는 경로를 단순히 펼쳐 놓은 모양에 가깝다. 좀 더 규모를 키워 보면, 세계 곳곳 미지의 영역이 용처럼 상상 속 생명체가 사는 공간으로 그려져 있다. 반면 과학적 방법에 기초한 근대 지도는 관념적이고 균질적인 공간 개념을 창조했다. 근대 지도 위에서는 어디든 일직선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 관념적이고 균질적인 공간은 가상의 격자무늬에 따라 표준화되었고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도와 위도다. 미지의 영역을 발견하더라도 격자무늬를 확장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더는 상상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하여 1494년 6월 7일,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교황의 중재로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었다. 아프리카 카보베르데 제도의 서쪽으로 370리그* 떨어진 지점에다 자오선**을 그어 두 나라가 신대륙을 나눠 갖는다는 내용의 조약이었다. 나눠 갖기로 한 대륙을 두 나라 모두 목격조차 못 했다는 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400여 년이 흘러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대륙을 땅따먹기 하듯 나눠 먹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심지어 그 땅을 열강이 실제로 통치하던 게 아니었음에도.
* 약 1,770킬로미터.
** 두 극에서부터 출발해 지구 표면을 지나는 가상의 선.
루소의 이야기가 들려주는 결말은 자명하다. 모두의 것이어야 하는 것들에 울타리가 쳐져 소수만 그 이익을 누렸다는 것. 그런데 이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요즘에도 심해저와 달을 나눠 갖자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가장 소중한 공간인 우리 내면의 생각과 감정까지 착취하려는 계획이 자꾸만 생겨나니 말이다. 과연 이번에는 “이 사기꾼 말을 믿지 마시오!” 하고 누가 외칠 것인가.
뉴필로소퍼 15호 우주를 생각한다
※ 이 글은 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 15호 '우주를 생각한다' 중 <달은 누구의 것인가>를 발췌하여 가공한 것입니다.
악의 근원은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악의 근원으로 ‘돈’을 지목했다. 약 2,000년 후 리처드 도킨스는 ‘종교’가 악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토머스 홉스는 그 옛날 돈이나 종교가 인간을 망가트리는 게 아니라 ‘인간 본성’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홉스에 따르면 모두 위에 군림하는 강력한 군주가 없으면 인간은 서로에게 위협이 될 뿐이다. 자연 상태의 삶은 “더럽고 잔인하며 짧은 것”이다.
장 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조금 다른 주장을 펼친다. 물론 루소도 통제 없이는 삶이 잔인해지고 황망해진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우리 같은 근현대인을 인간 본성의 전형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사실 홉스가 말한 자연 상태는 사회화된 인류가 보이는 행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루소는 폭력적인 탐욕이 아니라 연민을 인간 본성의 진짜 특징으로 파악한다. 바울과 도킨스가 그랬듯, 루소 역시 악의 근원을 추적한 끝에 인간을 망가트리는 외부 요인을 발견한다. 돈이나 종교가 아니라 사회화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자신의 논지를 펼치기 위해 루소는 사고 실험에 가까운 가상의 인간 사회 역사를 제시하는데, 이 이야기 속 인류는 행복한 무지의 상태로 출발한다.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루소의 사회화 이야기는 개개인이 역사를 지나오며 공간을 어떻게 분배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공간 분배의 역사는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좋은 결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간단히 말해 재산 소유가 모든 악의 근원이라는 결말로 끝나기 때문이다.
루소식의 자연 상태에서 처음 인류는 비바람을 막아주는 나무 아래서, 또 동굴 안에서 잠을 청했고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이러한 상태의 인간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자유롭고, 자유롭기에 진정으로 개별적이다. 그런데 석기의 발명으로 땅을 파고 나무를 자르고 최초의 오두막을 지을 수 있게 되면서, 첫 번째 혁명이 시작된다. 이렇게 공간을 분배하게 되면서 가족이 형성되었고 원시적으로나마 재산의 형태가 만들어졌다.
루소는 오늘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징으로 여겨지는 감정과 이성의 발달이 공간 개념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최초의 오두막을 지어 살게 되면서부터 인류가 ‘함께 모여 사는 습성’을 기르게 되었고, 부부 사이의 사랑과 부모의 애정처럼 ‘인류가 느낄 수 있는 최고로 훌륭한 감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루소의 사유는 지극히 개인 중심적이어서, 그토록 훌륭한 감정을 길러 낸 최초의 가족 단위도 루소가 보기에는 자유의 상실이자 ‘종種의 노쇠’로 가는 첫 단계를 의미한다.
그다음 단계도 어김없이 공간과 관련이 있다. 가족 단위의 집단들이 가까운 곳에 오두막을 지어 살며 영구적인 마을을 이뤘다. 가족 집단끼리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서로 의존하게 되었다. 공간적 거리가 좁혀지자 사람들은 서로의 살림살이를 비교했다. 루소의 표현대로 사랑에는 질투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비로소 사람들 간의 계급이 매겨졌고, 그렇게 평등이 종말을 고했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개인 사이에 계약을 맺는 것의 이점에 눈을 떴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상대방보다 더 많은 걸 차지할 수 있었을까? 루소는 이른바 재산의 탄생이라고 하는 발달 과정을 하나의 사건으로 극화한다. “땅을 구획 지어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걸 인정받은 최초의 사람이야말로 시민 사회의 진정한 설립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최초의 구획 짓기로부터 인류에게 불어 닥친 “온갖 범죄와 전쟁과 살육…… 그리고 공포와 불행”이 비롯된다. 루소는 미래를 내다본 누군가가 말뚝을 뽑아버리고 배수로를 메우고 이웃들에게 “이 사기꾼의 말을 믿지 마시오. 이 땅의 열매는 우리 모두의 것이며, 이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님을 망각하는 순간 당신들은 폭삭 망하게 된다오”하고 외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탄한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구세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도리어 재산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면서 강탈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하는 법이 처음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법은 정의로부터 출발한 게 아니라, 힘으로 얻은 걸 다시 힘으로 빼앗길지 모른다는 재산 소유자의 공포심으로부터 출발했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폭력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홉스식의 자연 상태를 도덕적 서사로 가공해 냈다. 무장 강도들이 들끓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부자와 가난한 자의 재산을 똑같이 보호하는 법적 제도를 세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루소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인간 머릿속에 떠오른 가장 심오한 계획”이었다. 이로 인해 약탈이 불변의 권리로 둔갑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계획은 “자유를 향한 희망과 뒤섞여 계급 사슬 전반으로 돌진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었다.
모든 악이 처음 울타리를 친 순간에 근원을 두고 있는 거라면, 악의 확산은 법과 기술에 기인한다. 앞서 보았듯 법은 공간을 강제로 차지하는 행위를 정당화한다. 법의 권세가 없으면 재산은 소유자 개인의 힘으로만 지켜질 수 있고 재산의 영역도 소유자의 힘이 미치는 범위로만 한정된다. 법이 존재하고 경찰처럼 법을 지탱하는 강제적 제도가 있기에 멀리 떨어진 재산일지라도 영속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갓 태어난 아이에게 부를 물려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재산 소유자는 개인의 힘에만 의존하는 게 아니라 국가 전체의 힘에 기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기술은 재산을 지키는 힘을 키우는 수단이다. 그러나 기술을 무기로 삼는다는 것은 재산을 가진 사람도 못 가진 사람도 모두 할 수 있는 일이어서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다. 기술은 재산을 지켜줄 뿐 아니라 점거 영역을 넓혀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루소의 이야기 속에서 최초의 재산 소유자는 울타리 말뚝과 발화로써 소유권을 주장한다. 이때 쓰인 기술은 제한적이다. 한 사람이 망치로 울타리 말뚝을 박을 수 있는 범위가 물리적으로 한정적인 데다 “이 땅은 내 것이다”라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 수도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근대식 지도 제작 기술이 발명되어 경험과 상상에 의존하던 중세식 지도 제작 기술을 대체하면서 상황은 판이하게 바뀌었다. 중세 지도는 인간이 경험하는 대로 공간을 그린다. 이를테면 수도원으로 가는 길이 잘 알려진 지형지물 위주로 표시된 식이어서 오늘날 일반적인 조감도보다는 경로를 단순히 펼쳐 놓은 모양에 가깝다. 좀 더 규모를 키워 보면, 세계 곳곳 미지의 영역이 용처럼 상상 속 생명체가 사는 공간으로 그려져 있다. 반면 과학적 방법에 기초한 근대 지도는 관념적이고 균질적인 공간 개념을 창조했다. 근대 지도 위에서는 어디든 일직선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 관념적이고 균질적인 공간은 가상의 격자무늬에 따라 표준화되었고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도와 위도다. 미지의 영역을 발견하더라도 격자무늬를 확장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더는 상상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하여 1494년 6월 7일,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교황의 중재로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맺었다. 아프리카 카보베르데 제도의 서쪽으로 370리그* 떨어진 지점에다 자오선**을 그어 두 나라가 신대륙을 나눠 갖는다는 내용의 조약이었다. 나눠 갖기로 한 대륙을 두 나라 모두 목격조차 못 했다는 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400여 년이 흘러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대륙을 땅따먹기 하듯 나눠 먹었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심지어 그 땅을 열강이 실제로 통치하던 게 아니었음에도.
* 약 1,770킬로미터.
** 두 극에서부터 출발해 지구 표면을 지나는 가상의 선.
루소의 이야기가 들려주는 결말은 자명하다. 모두의 것이어야 하는 것들에 울타리가 쳐져 소수만 그 이익을 누렸다는 것. 그런데 이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요즘에도 심해저와 달을 나눠 갖자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가장 소중한 공간인 우리 내면의 생각과 감정까지 착취하려는 계획이 자꾸만 생겨나니 말이다. 과연 이번에는 “이 사기꾼 말을 믿지 마시오!” 하고 누가 외칠 것인가.
뉴필로소퍼 15호 우주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