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늘 거기 있는 산에 오르는 이유



늘 거기 있는 산에 오르려는 이유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작가, 편집자, 아트디렉터)


뉴필로소퍼 13호 부조리한 삶 속에서 목표를 갖는다는 것


“우리가 산을 정복했느냐고?”


영국의 전설적인 등반가 조지 맬러리는 끝내 죽음을 불러온 위험천만한 자신의 도전에 관해 이렇게 자문한 적이 있다. 그가 스스로 내린 답은 이렇다.



“우리가 산을 정복했느냐고?”


영국의 전설적인 등반가 조지 맬러리는 끝내 죽음을 불러온 위험천만한 자신의 도전에 관해 이렇게 자문한 적이 있다. 

그가 스스로 내린 답은 이렇다. 


우리가 정복한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우리가 성공을 거뒀는지, 아닌지는 여기서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가 왕국을 얻었느냐고? 아니, …… 하지만 그렇기도 하다. 우리는 궁극의 만족에 도달했고, 운명을 완성했다. 투쟁과 깨달음. 전자 없이 후자는 결코 있을 수 없다. 그것이 곧 법칙이다.”


1924년 여름, 건장하고 훤칠한 30대 후반의 청년 맬러리는 마지막 여행길에 올랐다.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던 그와 동료 앤드류 어빈은 정상 부근에서 실종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실종된 맬러리의 시체는 1999년이 돼서야 발견되었다. 얼굴은 땅을 향한 채 손과 팔은 W자 모양으로 벌어져 있었다. 허리에는 여전히 밧줄이 묶여 있었으며 한쪽 신발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시신은 쓰러진 자세 그대로 냉동 미라가 되어 해발 8,156미터 높이의 산 위에 남아 있었다.


등반가 조지 맬러리 

출처 : 위키피디아

우리가 정복한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우리가 성공을 거뒀는지, 아닌지는 여기서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가 왕국을 얻었느냐고? 아니, …… 하지만 그렇기도 하다. 우리는 궁극의 만족에 도달했고, 운명을 완성했다. 투쟁과 깨달음. 전자 없이 후자는 결코 있을 수 없다. 그것이 곧 법칙이다.”


1924년 여름, 건장하고 훤칠한 30대 후반의 청년 맬러리는 마지막 여행길에 올랐다.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던 그와 동료 앤드류 어빈은 정상 부근에서 실종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실종된 맬러리의 시체는 1999년이 돼서야 발견되었다. 얼굴은 땅을 향한 채 손과 팔은 W자 모양으로 벌어져 있었다. 허리에는 여전히 밧줄이 묶여 있었으며 한쪽 신발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시신은 쓰러진 자세 그대로 냉동 미라가 되어 해발 8,156미터 높이의 산 위에 남아 있었다.

조지 맬러리와 그의 등반 동료들 

출처:위키피디아

“우리가 산을 정복했느냐고?”


영국의 전설적인 등반가 조지 맬러리는 끝내 죽음을 불러온 위험천만한 자신의 도전에 관해 이렇게 자문한 적이 있다. 그가 스스로 내린 답은 이렇다.



맬러리는 지금껏 신들에게만 허락되었던 곳에 오르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혔으나 끝내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서양 사람들에게 그는 영웅으로 기억되는데, 개인의 목표를 좇는 ‘추구자追求者’의 전형으로 존경받고 있다.


《히말라야 도전의 역사》의 공저자 중 하나인 스튜어트 위버는 맬러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맬러리는 산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목적과 자유를 발견한 사람이다.”


자기반성이나 상상력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추구하려는 욕망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특징이다. 목적지에 도달하리라는 확신 없이 길을 떠나는 것, 답을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탐색하는 것, 길을 잃으면서도 계속 여행하는 것, 지식과 생각의 틀을 습득하고 넓히고 시험하는 것, 개인의 해방에 이르는 것. 이러한 것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케임브리지 사전》은 ‘추구하다’라는 단어를 “다른 무언가를 찾는 행위, 유형적이고 물질적인 세계 너머에 있거나 그보다 커다란 무언가를 찾는 행위”로 정의한다. “대체로 물질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시도하고 찾고 얻으려 하는 행위”가 곧 추구인 셈이다.


“조지 맬러리는 제국 시대의 등반을 누구보다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위버와 함께 《히말라야 도전의 역사》를 쓴 모리스 이서먼은 1886년 성직자 가문에서 태어난 맬러리를 이렇게 평한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교에 다녔고,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서부전선에서 싸운 포병 장교였다. 그가 이름을 떨치게 된 세 번의 에베레스트 등반은 전국적 규모의 사업이었다.”


이서먼에 따르면, 맬러리는 사회 기득권층이었으나 “제국을 위해 복무하는 자의 표준과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그는 사회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였고 양성애자였다. 등반 원정대의 리더들을 비판하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개인주의자였고, 몽상가였다. 그가 히말라야산맥에 매료된 까닭은, 어찌 보면 그곳이 조금은 반체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의 규칙은 잉글랜드 사람들을 지배하는 규칙과 달랐다.”


왜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려 하느냐는 질문에 맬러리는 다음과 같이 응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성공을 거뒀는지, 아닌지는 여기서 아무 의미도 없다. 우리가 왕국을 얻었느냐고? 아니, …… 하지만 그렇기도 하다. 우리는 궁극의 만족에 도달했고, 운명을 완성했다. 투쟁과 깨달음. 전자 없이 후자는 결코 있을 수 없다. 그것이 곧 법칙이다.”


1924년 여름, 건장하고 훤칠한 30대 후반의 청년 맬러리는 마지막 여행길에 올랐다.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던 그와 동료 앤드류 어빈은 정상 부근에서 실종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실종된 맬러리의 시체는 1999년이 돼서야 발견되었다. 얼굴은 땅을 향한 채 손과 팔은 W자 모양으로 벌어져 있었다. 허리에는 여전히 밧줄이 묶여 있었으며 한쪽 신발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시신은 쓰러진 자세 그대로 냉동 미라가 되어 해발 8,156미터 높이의 산 위에 남아 있었다.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그런데 적지 않은 추구자들은 그러한 질문을 받으면 낯섦의 매력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반복적인 일상을 깨고 두뇌를 깨우는 짜릿함이 그 이유라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관광과 여행은 때로 우리를 몹시 지치게 한다. 계속해서 낯선 정보를 흡수하여 처리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반면 평범한 일상에서 우리는 거의 자동반사적으로 살아간다. 이서먼은 “우리의 삶은 꽤 기계적으로 굴러간다. 하지만 산 위에서는 결코 기계적일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가 자극하는 정신적 명료함과 집중력을 이유로 꼽는다. 일례로 익스트림 스포츠가 있다. 사회신경과학 분야를 연구해 온 던 미네에 따르면 “몸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면 두뇌가 강력한 생화학적 변화를 일으켜 눈앞의 난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고 한다. 즉 두뇌가 우리 몸을 투쟁-도피 모드로 바꾼다. 미네에 따르면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감각과 집중력은 날카로워진다. “레이저처럼 날카로워져 당신은 ‘특별한 지점’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안에 들어서면 일상의 고민이 사라지고 주변의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심장 박동이 당신의 귓전에 울려 퍼진다. 시야와 집중력이 바늘 끝처럼 정확해진다.” 그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완전한 몰입’을 경험한다.


이후 몰려드는 흥분의 감각은 모험가들이 점점 더 위험한 것을 추구하는 이유이자, 잠시 모험을 그만두었을 때 마약 중독자처럼 금단 증상을 보이는 이유다. 이렇듯 추구의 행위가 갈수록 강력해지는 것은 고통과 투쟁을 무릅쓴 결과가 아니라 바로 그 고통과 투쟁으로 인한 결과이다.


J. W. A. 힉슨은 1931년 <산을 오르는 것의 심리적 측면>이라는 글에서 영국의 등반가이자 식물학자인 프랭크 시드니 스미스의 말을 인용하는데, 스미스는 여행을 가리켜 “정어리와 상한 버터의 악취를 풍기는 옷”이라고 표현한다. 또 산을 오르는 사람은 “불편, 의심, 불안, 피곤, 부족한 음식과 몇 번 없는 목욕의 기회”를 감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힉슨이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자신의 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고생하지 않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분은 고된 등산 후에 주변을 바라볼 때와 전혀 다를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여정이다. 정신적·육체적 용기를 발휘하여 고난을 이겨내는 여정이 없으면, 산꼭대기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다.


《아주 간략한 탐험 입문서Exploration: A Very Short Introduction》를 쓰기도 한 위버는, 무언가를 발견하려고 하는 찾기와 찾는 행위 자체에 의의를 두는 찾기 사이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발견은 하나의 사건이다. 그 행위에는 어떠한 사실이나 장소가 우리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고, 발견의 행위가 곧 클라이맥스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거나 ‘바이킹족이 뉴펀들랜드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반면에 탐험은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그것 자체로 불확실한 과정이요, 영원히 끝나지 않는 행위다. 탐험은 계속된다.”

 



탐험가는 무언가를 발견하지 않더라도 계속 탐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구자라고 할 수 있다. 위버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탐험과 발견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서로의 힘에 의지하는 때가 많지만, 엄밀히 말해 탐험은 일종의 정신 상태를 의미한다.”


추구의 방향은 내면을 향한다. 소셜미디어에 중독되어 자신의 정신적·육체적 여정을 온라인에 과시하려는 요즘 사람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깃발을 꽂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전을 받아들이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낯선 풍경을 보기 위해 산을 올라라.” 20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웰즐리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영어 교사 데이비드 맥컬로프 주니어는 이러한 축사로 많은 공감을 받았다.

 

세상에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보기 위해 산을 올라야 한다.

 

유명해지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대영제국을 향한 애국심은 분명 맬러리의 모험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그를 진정으로 움직인 원동력은 절대 충족되지 않는 무엇, 늘 더 많은 것을 갈망하고 탐색하려는 욕구였다. 위버는 말한다. “맬러리는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것에 가책을 느꼈고, 연달아 등반길에 오르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아내와 자식들을 떠나야 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하지만 그에게 지워진 마음의 짐이 그를 계속 움직였다.”


맬러리는 등반을 떠날 때마다 자기 자신을 정복하려 했었다고 비판적으로 시인했다. 산은 늘 그렇듯 무심한 구경꾼처럼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장엄하고 아름답게 위험한 자태를 드러냈다. 무언가를 추구하려는 맬러리의 욕망이 물리적 세계에서 드러나기는 했어도 사실 그 욕망은 그의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자기 내면과 분투했다. 그가 정복하려 한 것은 가파른 산꼭대기가 아니라 내면의 적이었다. 자연학자 존 뮤어의 말처럼 “산이 부르니 나는 가야 한다”고 되뇌며.

 



※이 글은 뉴필로소퍼 13호_'부조리한 삶 속에서 목표를 갖는다는 것' 중

글 <늘 거기 있는 산에 오르려는 이유>를 발췌하여 재가공한 것입니다.

 



뉴필로소퍼 13호 부조리한 삶 속에서 목표를 갖는다는 것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 Clarissa Sebag Montefiore

작가. 《타임아웃 베이징》 편집자, 《타임아웃 상하이》 아트디렉터, 《인터내셔널 뉴욕타임스》 자유기고가로 활동했다.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 타임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뉴스테이츠먼》 《뉴 인터내셔널리스트》 《허핑턴 포스트》 《타임》 등에 글을 쓰고 있다.


번역 송예슬

대학에서 영문학과 국제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다.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계간지 《뉴필로소퍼》 번역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전설의 가위바위보》 《그들은 말을 쏘았다》 《미국,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꿈꾸는가》 《우먼즈헬스 요가 대백과》 《계란껍질 두개골 법칙》 《예스 민즈 예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