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나라



일상철학잡지 ≪뉴필로소퍼≫11호에서는 코로나 이전에도 문제였고, 지금도 문제이며, 앞으로가 더 문제인 ‘기후변화’에 주목합니다. 

기후변화는 TV에서 보던 여느 재난처럼 ‘안타까운 일이네’하고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어쩌면 코로나 19보다 더 참담한 결과를 우리 생애에 볼지 모른다고 경고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코로나 19 사태와 기후변화는 사실 과도한 인간의 욕망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사건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미루어 짐작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작가 클라리사 시벡 몬테피오리는 <불타버린 나라>에서 올해 초 호주에서 발생한 거대한 산불이 

기후변화의 명징한 증거이자 모든 인류에게 주는 일종의 경고라고 강조합니다.

세계는 호주 산불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일이네’하고 넘기고 있는 것일까요?





종종 친구들이 베이징 특파원을 그만두고 호주로 돌아온 이유를 묻곤 한다. 나는 언제나 손가락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하늘 때문에.” 이것이 내 대답이었다.


중국, 인도 등 몇 나라는 먼지로 뒤덮이지 않은, 소위 ‘푸르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매우 드물다. 맑은 공기는 그 자체로 사치였다. 하지만 지난 6개월 사이, 호주에서 누리던 사치도 사라졌다.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토해낸 연기가 캔버라와 멜버른, 시드니 하늘을 뒤덮었다. 시드니항을 향해 난 우리집 창문을 내다보면 언제나 요트들이 유유히 떠다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장면을 뿌연 먼지 속에서 겨우 식별할 수 있을 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가 (베이징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건강을 해치는 각종 오염원을 말 그대로 피부로 느낀다는 점이다. 나쁜 공기는 내 눈과 폐를 공격했고, 추측컨대 심장에도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호주로 집중된 그 기간 동안 우리가 겪은 산불은 기후변화 이후의 현실, 즉 극단적인 기상재해와 대규모 생태계 파괴, 인간의 터전 파괴를 암시하는 일종의 경고처럼 보였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화창한 기후, 아름다운 자연, 여유로운 생활환경 때문에 ‘행운의 나라’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호주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깨달음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민족주의 시대의 기후The Climate Majority: Apathy and Action in an Age of Nationalism》의 저자인 레오 바라시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분류되는 국가가 전국을 뒤덮은 불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 이러한 사태를 보면서도 탄소 배출량이 높은 국가들이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기후변화의 희생양은 북극곰만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호주는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땅 중 하나였고, 산불은 오랫동안 낡은 것을 치우고 새로운 생명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화재는 그런 수준을 뛰어넘는 극단적 사건이었다. 총 1,000만 헥타르 이상이 파괴되었으며, 약 10억 마리의 동물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에 본사를 둔 비영리 기후연구단체인 카본브리프에 따르면, 호주 산불은 100여 개 국가의 연간 배출량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방출했다. 그 연기는 수도인 캔버라를 한동안 지구에서 가장 오염도가 높은 도시로 만들었다.


태즈매니아대학교 환경생물학 교수인 데이비드 보먼은 《애틀랜틱》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다. “이 사건은 현대판 갈리폴리*다. 산불 갈리폴리다.” 이 비극적인 사건에 한 가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진정한 변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필요한 경각심을 일깨워줬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변화할 수 있을까?

*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격전지로 연합군 25만 명, 터키군 21만 명은 물론 호주 병사도 9,000명 가까이 희생되었다.


호주는 석탄 수출로 부를 축적했으며, 지금도 철광석 뒤를 잇는 2대 수출품목이다. 세계 탄소 배출량의 관점에서 보면 호주는 전혀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0.3퍼센트를 차지하는 호주의 배출량이 거의 5퍼센트 가까이 된다. 정부는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데 필요한 비용을 기꺼이 부담해 왔지만, 이것만으로는 결정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정책 싱크탱크 오스트레일리아 인스티튜트 수석연구원인 리처드 데니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호주 국민들은 지난 10년 간 기후변화를 줄이는 데 필요한 정책 비용에 대해 들어 왔다. 하지만 이제서야 기후변화를 줄이지 못했을 때 소요되는 비용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기온이 1도 상승했을 뿐인데, 엄청한 변화를 가져왔다. 정부는 시민들의 생활 습관이 지금과 같다면 향후 기온이 3도까지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호주의 주요 도시들은 훨씬 살기 힘든 곳이 될 것이다.”


이런 사실과는 별개로 많은 심리학자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무관심, 이를 테면 ‘어차피 개인의 노력으로는 변화를 일으키지도 못할 텐데 왜 나를 귀찮게 하느냐’ 같은 생각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집단적 행동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분석했다. 산불로 인한 자연경관 훼손 때문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얼마 전에 겨우 다시 문을 연 한 리조트의 환경 담당 매니저는 “많은 사람들이 압도되었고, 깊은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력감은 행동할 의욕을 앗아간다. 기후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나 혼자뿐이고, 주변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커다란 비용이 들어가는 데도 불구하고 탐욕스러운 소비를 멈추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훌륭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행동만으로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숨어 있다. 기후변화 웹사이트인 클라이매토그래퍼의 설립자인 마크 트렉슬러 박사는 “기후변화를 우려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막상 기후변화와 싸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대안이 많지 않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에게 기후변화와 싸우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물어보면 대개 재활용이나 물 절약, 탄소발자국 줄이기, 배출량 감소를 상쇄하는 제품 구입하기 등을 꼽는다.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당장 기후변화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트렉슬러 박사의 설명이다. 이런 시도들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구입하는 물건의 진짜 배출량을 상쇄하는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기후변화에 실질적이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기후변화 개선에 필요한 광범위한 시도를 막는 가장 큰 장벽은 인간의 두뇌다. 우리 뇌는 수천 년 동안 위험을 피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금자리와 짝과 음식을 찾는 것처럼 즉각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현재에 초점을 맞추도록 설계되었으며, 기후변화를 미래 세대가 다뤄야 할 멀고 먼 미래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상황이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을 의미하는 낙관주의 편향성Optimism bias과 의미 없는 사건들에서 패턴을 찾는 경향을 뜻하는 패턴성Patternicity 또한 상황을 악화시키는 편견들이다. 트렉슬러 박사는 “우리는 작년보다 올해 기온이 얼마나 올랐는지 논쟁하는 일에 집착하느라 2도, 3도, 4도 상승이 현실화되었을 때의 구체적인 시나리오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기후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2019년이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 문제는 지난 1만 년 사이에 일어난 인간의 진화가 ‘기후가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진행됐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간 사회의 시스템 전체가 온갖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진다는 것은 (길을 걷는 평범한 시민이든 정부의 지도자이든)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병리생물학자 느시칸 악판은 한 기고문에서 “자신의 일상적 활동이 수백만 명을 기후난민으로 만들고 수십 명의 사망자를 낸 세계적 재앙의 원인이라는 진실과 마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리처드 데니스 박사는 호주 정부가 제2의 산불 사태를 막기 위해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그리고 일으켜야 한다고) 믿는다.


“정부는 재생에너지와 배터리, 대중교통, 에너지 효율 부문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다. 새로운 탄광과 가스정 채굴 승인을 중단할 수도 있다. 탄소로 인한 오염이나 화석연료 생산에 부담금을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렇게 얻은 수익금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전환의 준비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반대 노선을 취할 수도 있다. 본인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우기면서 모든 책임을 환경론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트렉슬러 박사와 같은 전문가들이 “우리는 앞으로 수십 년 안에 나타날 기후변화의 물리적 영향을 체험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우리의 다음 행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개인적으로 그 메시지를 체감한 것은 얼마 전 집으로 배달된 《인디펜던트》의 1면에 실린 사진을 본 순간이었다. 사진 속 호주 대륙의 상공에는 하늘로 곧장 치솟은 거대한 연기 기둥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이런 헤드라인이 달려 있었다.



기후 위기의 실상 



뉴필로소퍼 11호 지구가 1.5℃ 더 더워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