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2018년 아흔두 살이셨던 할머니는 《런던 타임스》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셨다.



“선생님, 왜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망 소식을 알리면서 

이들이 ‘편안하게’ 눈을 감았다고 말하는 거죠? 

좀 더 현실적이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는 건가요?

 감사하며, 기쁘게, 꿈꾸듯, 조용히, 갈망하며, 

애정을 담아, 신나게, 의기양양하게, 희망에 부풀어, 

용감하게, 마지못해, 질질 끌면서, 

반항하듯, 분노하며, 익살맞게, 불가사의하게 

죽었다고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적어도 ‘의미 있는’ 죽음이라고 말할 수는 있잖아요.”



잘록한 허리와 짙은 색 머리칼을 가진 배우에서 작가로 변신한 후 최근까지 긍정적인 에너지와 매력이 넘쳤던 할머니는 사시는 동안 수많은 죽음을 경험하셨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유럽 전역에서 동족 유대인들이 죽어가는 동안, 자신은 영국에 살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사실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셨다. 최근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중에는 할머니와 62년간 행복하게 사시다가 여든일곱 살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있다.


이제 90대 중반으로 접어드신 할머니는 세상과 이별할 준비가 되었다면서 “스위스로 데려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도 (단호하지만 두려운 표정으로) 책을 마치기 전에는 안 된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자신의 책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른 채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 몹시 싫으신 듯하다.


당연히 죽음이란, 삶에서 유일하게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하지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좀 복잡하다. 할머니에게 좋은 죽음이란 통제 가능해야 하고,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솔직해야 함을 의미한다. 할아버지에게 좋은 죽음이란 죽기 전까지 인지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할아버지는 말년에 갑자기 늙고 여위었지만, 그때도 두꺼운 역사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눈을 반짝이며 들여다보고 계셨다.) 또한 당신 시신을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해서 과거 자신처럼 젊은 수련의들이 할아버지의 팔다리와 뇌, 심장 등을 연구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좋은 죽음이라고 생각하셨다.


미치 앨봄은 유명한 베스트셀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사실, 일단 죽는 방법을 알게 되면 사는 방법도 알 수 있게 된다”고 썼다. 하지만 그 말은 현실에 맞지 않다. 평화로운 죽음이라도 고통이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죽는 일은 육체적으로 힘든 과정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떠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중요한 직업에 종사했고, 네 자녀와 다수의 손주를 남기셨다.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셨고, 전공 분야인 정신의학 분야에 중요한 업적을 남기셨다. 또한 상쾌한 아침에 시골길을 산책하는 일처럼 소소한 삶을 사랑할 줄도 아셨다.


그러나 죽음은 할아버지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가족에 둘러싸여 임종을 맞을 때, 할아버지의 육체는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며 버텼다. 팔다리에 경련이 일었고, 두 눈은 흰자위를 드러냈다. 그런데도 할아버지의 장기들은 삶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친절한 의사가 급히 모르핀을 주사한다면 할아버지는 편안하게 눈을 감으실 테지만, 오늘날 그런 행위는 소송을 당할지 모를 일이므로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왜 ‘죽음’을 전통적으로 ‘사신’으로 표현하는지 알 것 같다.


오늘날처럼 대체로 사후 세계를 가공의 신화로 여기는 세속화된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필립 라킨이 다음과 같이 부른 것과 싸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영원히 완벽하게 공허한 것.

우리가 이르게 될 확실한 끝.

그리고 늘 지워지는 것.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이란 정해진 고통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우디 앨런은 “죽는 것이 두렵지는 않지만, 죽음이 일어나는 동안 그 자리에 있고 싶지는 않다”고 재치 있게 말한 바 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나쁜 죽음의 종류를 수천 가지나 알고 있다. 비행기 사고나 화재로 죽을 수도 있고, 맞아 죽거나 칼에 찔리거나 교살당할 수도 있다. 학대받거나 구타당하거나 익사할 수도 있다.


좋은 죽음의 종류에 대해서도 너무나 많은 생각들이 존재한다. 좋은 죽음이란 죽는 시기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안락사를 의미할까? 아니면 자다가 죽는 것일까? 시간을 여유롭게 쓰다 죽는 것은 어떨까? 혹시 작별 인사를 하고, 빚을 갚고, 후회할 일들을 바로잡은 후 편안하게 눈을 감는 것을 말하는 걸까? 그럼 갑작스런 죽음은? 다행히 신속하게 죽었다고 하면 위안이 될까? 어떤 사람들은 “즉사했으니, 고인은 전혀 몰랐을 겁니다”라고 안도하듯 조심스럽게 말하기도 한다. 아니면 18세기 스웨덴의 아돌프 프레드릭 왕처럼,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하다가 죽는 것이 좋은 죽음일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1771년에 한 연회에서 바닷가재, 훈제 청어, 캐비어, 샴페인, 셈라Semla* 열네 접시, 따뜻한 우유 등을 게걸스레 먹어 치운 후 의식을 잃고 사망했다고 한다.

*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 즐겨먹는 전통 디저트로 촉촉한 빵 위에 아몬드크림이나 생크림을 올린 과자의 일종


영국의 존경받는 코미디언 이안 코그니토는 예순 살에 무대 위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켰는데, 당황한 청중 앞에서 그대로 사망하여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죽기 불과 몇 분 전에 그는 앞일을 안다는 듯 이런 농담을 던졌다고 한다.



제가 여러분 앞에서 죽는다고 상상해보세요.


코그니토의 친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그런 방식으로 떠나고 싶어 했을 거예요. …… 물론 더 많은 돈과 더 큰 무대를 원했지만요”라고 말했다.


거창한 대의명분을 위해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니체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방식의 삶을 감내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죽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산꼭대기 요새에 살았던 마사다족은 로마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고 집단 자살(먼저 어린이와 여자들을 죽인 후 마지막에 남자들이 죽었다)했다고 전해진다.


죽음에 직면해서 품위와 유머를 보이는 모습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전설에 따르면, 성 로렌스는 화형당할 때(짓궂게도 성 로렌스는 요리의 성인이다) 사형 집행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반대편으로 뒤집으시오. 

이쪽 면은 다 구워졌으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심장병이나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요즘처럼 오랫동안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 시대를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서서히 다가오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수전 손택이 말한 것처럼 거의 모든 사람들이 ‘병자의 왕국Kingdom of the sick’으로 들어가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삶을 마감한다.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죽을 장소(와 죽음이 일어날 때 누가 그 자리에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도 중요하지만, 고통을 제어하는 능력도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가 편지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죽음을 표현하는 말도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암에 관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암 진단을 받은 사람은 ‘용감하게’라는 단어와, 질병은 ‘싸움’이나 ‘투쟁’이라는 단어와 함께 언급된다. 질병의 골치 아픈 면은 상투어를 남발함으로써 감춰버린다. 오늘날 문화에서는 죽음을 금기시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승자’와 ‘패자’, ‘끝까지 싸운’ 사람과 ‘결코 포기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뉠 뿐이다. 하지만 진짜 죽음이란 무엇인가(우리 할아버지가 겪었던 것처럼, 죽음에는 수많은 신체 기능의 저하와 극심한 고통, 경련이 따른다)에 관한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신적 고통은 또 어떤가? 《숨결이 바람 될 때》의 저자인 신경외과 의사 폴 칼라니티는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음에도 아내와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다. 그의 아내는 “아이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면 죽음이 더 고통스럽지 않겠어?”라고 물었다. 칼라니티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멋지지 않을까?”라는 말과 함께 이런 말도 덧붙였다. “아내와 나는 둘 다 삶이란 고통을 피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널리스트 앤드루 덴튼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죽는 게 나을지도Better Off Dead’에서 안락사 문제를 다룬 내용을 경청한 적이 있다. 위암 말기 환자로 고통 완화 의료 시설에 입원해 있던 레이먼드 갓볼드의 이야기였다. 자신에게 닥칠 육체적 고통이 두려웠던 갓볼드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먹으려고 불법 자살약인 넴부탈을 몰래 구해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갓볼드는 그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이 생각나서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한 시간이라도 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고, 한 시간이라도 더 햇볕을 쪼이고 싶었으며, 한 시간이라도 더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었다. 그런 식으로 하고 싶은 일들이 자꾸 늘었다. 결국 병세가 악화되어 넴부탈을 삼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갓볼드는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병원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다 눈을 감았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었던 그는 ‘좋은 죽음’을 시간과 맞바꾸었다.



뉴필로소퍼 9호 삶을 죽음에게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