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부한다. 법과 종교와 의료가 결정하는 죽음을.”
말기 암 저널리스트의 ‘죽을 수 있는 권리’에 관한 마지막 기록
삶은 가장 고독한 사람에게조차도 집단적으로 굴러간다. 반면 죽음은 명백히 개인적인 일이자, 그 개인의 선택이고 결정이다. 나에게 죽음의 권리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 권리에 해당한다. 죽음의 권리야말로 인간을 속박하는 종교적, 사회적 구속 그 모든 것들을 끊어낼 개인의 자유와 그 개인의 자유의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축도(縮圖)이다.
- 본문 38쪽 중에서
그리스 언론계의 요직을 두루 거친 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가 2016년 9월 세상을 떠나자 그리스의 여러 매체에서 그의 부고를 알렸다.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말기 암 환자였던 그의 사망 소식에 사람들이 더욱 놀랐던 것은, 그의 사인이 병으로 인한 자연사가 아닌 ‘비非조력 안락사’ 다시 말해 자살이라는 점이었다. 견디기 힘든 통증은 물론이거니와, 어느 순간 암세포가 뇌로 전이되어 식물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인 그는, 자신이 선택할 최선의 길이 바로 안락사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가 원했던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가 직접 죽음에 이르는 약을 투여하는 것이고, 그것이 어렵다면 차선의 방법으로 자신이 스스로 투여해서 죽을 수 있도록 약을 처방해주는 ‘조력죽음’을 허용해주길 요청하였다. 그러나 법 체제로도, 의료제도에서도, 종교 교리적으로도, 안락사와 관련된 어떠한 행위도 살인죄가 되는 그리스에서 그의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든 요청과 노력이 거부되자 그는 낙담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스위스에 있는 조력죽음 단체에 마지막 도움을 청하게 된다.
이 책은 그의 모든 요청이 거부된 뒤 집필하기 시작해 그가 자살하기 3개월 전에 그리스 현지에서 출간되었다. 죽음을 앞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딱 두 가지, 즉 ‘다가오는 죽음에 의연히 맞서기’ 그리고 안락사의 필요성에 대해 온힘을 다해 역설하는 것으로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책이 출간된 이후의 자살 직전까지, 그는 바스라질 것 같은 몸과 정신을 이끌고, 자신의 무기인 글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SNS 등의 미디어를 통해 ‘죽을 수 있는 권리(Right to Die)’를 외치며 안락사를 향한 사회의 인식과 제도가 개혁되기를 강력하게 부르짖었다.
그가 죽기 하루 전에 촬영한 페이스북 동영상에는 손수 작별노트를 읽으며 가족과 지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이렇게 말한다. “내게 남은 시간은 이제 몇 주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급격히 퇴행하게 될 내 상황을 직시하면, 맑은 정신으로 떠나기 위해서 여기에서 끝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평온하게 떠난다. 나는 품격을 지키고 살았고 이제 품격을 지키며 죽음을 선택한다.”
그리고는 주위 사람들을 모두 물러나게 한 뒤 스스로 약을 투여하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받을 상처를 배려하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죽음을 선택할 권리야말로 개인의 자유를 궁극적으로 실천하는 행위’임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진정한 자유란 삶의 권리뿐 아니라,
죽음을 결정할 권리도 보장받아야 한다.
- “누가 죽음을 결정하는가?” 죽음에 대한 금기를 넘어선 처절한 문제 제기 -
어느 누가 무슨 권한으로 나와 상의하지도 않고, 내가 죽어도 될 때와 장소, 그리고 죽음의 방식을 결정할 권리를, 나 자신이 아닌 종교, 법, 의료 등등에 넘겨주었단 말인가? 누가 어떤 권한으로 우리네 삶에 경계선을 그으려는 자들로 하여금 죽음을 선택할 자유를 빼앗아가게 하였는가?
- 본문 66쪽 중에서
그는 스위스 조력죽음 단체에 도움을 구해놓았지만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은 비조력 죽음을 택했다. 스스로의 몸에 직접 약물을 주사한 그의 자살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이었을까? 진정한 자유란 생의 권리는 물론 죽음의 권리도 향유하는 것임을 외치는 목소리이지 않을까. 그리고 극한의 상황에서도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허용하지 않는 그리스 법체제를 고발하는 한 인간의 절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글의 앞부분에서는 죽음이 임박해 있음을 인정하면서 인간적인 절망과 소리 없는 울음을 삼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철학을 전공한 그리스인답게 고대 철학자들의 죽음에 대한 담론과 사상을 상기하며 조금의 위안도 취해본다. 하지만 안락사 요청이 각 기관에서마다 거부당하는 현실을 맞닥뜨리자, 그는 결코 길지 않은 이 원고를 통해 법과 종교, 그리고 의료계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가며 논리정연하게 이 현실을 반박한다.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앗아간 현재의 법과 종교, 그리고 의료제도를 꼬집으며 이 또한 제2의 전체주의라고 일갈하며, 개개인의 죽음을 이토록 획일적으로 국가나 제도가 지휘한다면 어떤 폐해들이 미래에 벌어질지를 경고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생명은 신의 선물’이므로 함부로 인간이 끝낼 수 없다는 종교적 교리에 차갑게 대꾸하며 자신은 ‘경건한 무신론자’라고 선언하다. 생명의 신성함을 내세우며 오직 신만이 ‘언제 어떻게’를 결정할 수 있고, 극단적 고통일지라도 신이 주는 것이므로 감내해야 한다는 기독교의 욥 증후군도 그의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
유권자들의 선거 결과에 좌우되는 정치인들의 줏대 없는 정책 결정도 그의 안락사 투쟁의 표적이 된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법 또한 고쳐져야 하지만 여전히 안락사를 허락지 않는 그리스 법 체제의 경직성도 언급한다. 무엇보다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인 그리스 인이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 뒤에 숨어 문자 그대로 생존에만 집착할 뿐 인간의 삶과 현실적 고통을 보지 않으려는 의사를, 그리고 의료계를 비난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생명경제정책과 경제다윈주의가 현 종교와 의료계가 주장하는 생명의 신성함을 무너뜨릴 수도 있으며,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안락사가 입법화될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죽음은 누구의 것입니까?”
- 안락사의 어제와 오늘,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정면으로 살펴보는
옮긴이 최보문 교수의 해설 -
이 책을 번역한 동기는 이런 죽음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죽음 자체는 존엄하지 않다. 또 집착을 내려놓고 해탈한 듯 죽어가는 모습만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죽는 것도, 공포와 혼란 속에서 죽는 것도 모두 다 인간의 모습이다.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정형화가 될 수 없다.
이 책은 ‘자비로운 죽음’과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허용하지 않는 그리스 법체제와 종교, 그리고 의사의 위선적 행태를 고발하는 한 인간의 절규이자, 진정한 자유란 생의 권리는 물론 죽음의 권리를 향유하는 것임을 외치는 목소리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을 번역한 최보문 교수는 가톨릭대학교 신경정신과 및 인문사회의학과 명예교수이다. 정신의학에 관한 여러 저역서와 말기환자에 관한 전문 강의 등으로 깊은 경험과 연륜을 가진 의학자인 만큼 이 책 《나의 죽음은 나의 것》도 그의 번역과 해설을 통해 더욱 견고한 책으로 출간할 수 있었다.
특히 책의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해설’에서는 역자의 단순한 번역 후기가 아닌, 전문가적 지식과 조사 등으로 논문을 방불케 하는 안락사 전반에 관한 역사와 현황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고대로부터 시작되어 온 안락사의 어원과 탄생,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기득권자에게,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안락사라는 키가 어떻게 취급되어 왔는지, 무엇보다 20세기 들어 유럽 일부 국가와 미국 특정 주를 중심으로 자살의 탈범죄화가 조금씩 이뤄지면서 안락사를 수용해주는 변화 등을 보여준다.
현재 안락사는 국가별로, 혹은 사안별로 그 의미와 행위의 스펙트럼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처럼 모든 요청이 거부되어 안락사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죽을 수 있는 권리의 개념으로 놓고 보자면 그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말기 환자가 아님에도 조력죽음을 신청한 100세 노인이 있는가 하면, 딱히 앓고 있는 질병이 없음에도 비참하게 늙기 싫어 미리 안락사 단체에 문을 두드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한다.
죽음 직전에 원고를 완성한 저자 벨리오스의 절망과 분노의 기록을 읽고 독자들은 삶의 마지막 지점에 가 닿은 누군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어서 소개되는 역자의 해설 덕분에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안락사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저자소개
지은이 : 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Alexandros Velios)
파리4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그리스 언론계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리스 채널1(CHANNEL ONE) 방송국장을 거쳐 주요 TV프로그램의 제작 및 진행을 맡았다. 그리스 경제기업연합의 정치자문단, 그리스 싱크탱크인 디아네오시스(DIANEOSIS) 창립멤버이자 리더였다.
저서로는 《투키디데스-마키아벨리 비교연구》 《나폴레옹 보나파르티즘 현상 연구》 《데모스테네스-이소크라테스 비교모음집》 등이 있다.
옮긴이 : 최보문
책정보 및 내용요약
그리스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가 고통스런 투병과정 속에서 힘겹게 써내려간 최후의 기록이다. 이 책은 그의 모든 요청이 거부된 뒤 집필하기 시작해 그가 자살하기 3개월 전에 그리스 현지에서 출간되었다.
하지만 이 글은 죽음을 앞둔 환자의 통증과 절망의 기록이 아니다. 죽음을 앞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딱 두 가지, 즉 ‘다가오는 죽음에 의연히 맞서기’ 그리고 안락사의 필요성에 대해 온힘을 다해 역설하는 것으로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책이 출간된 이후의 자살 직전까지, 그는 바스라질 것 같은 몸과 정신을 이끌고, 자신의 무기인 글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SNS 등의 미디어를 통해 ‘죽을 수 있는 권리(Right to Die)’를 외치며 안락사를 향한 사회의 인식과 제도가 개혁되기를 강력하게 부르짖었다.
목차
나의 죽음은 나의 것 15
옮긴이의 해설 92
편집자 추천글
말기 암 저널리스트의 ‘죽을 수 있는 권리’에 관한 마지막 기록
삶은 가장 고독한 사람에게조차도 집단적으로 굴러간다. 반면 죽음은 명백히 개인적인 일이자, 그 개인의 선택이고 결정이다. 나에게 죽음의 권리는 가장 근본적인 인간 권리에 해당한다. 죽음의 권리야말로 인간을 속박하는 종교적, 사회적 구속 그 모든 것들을 끊어낼 개인의 자유와 그 개인의 자유의지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축도(縮圖)이다.
- 본문 38쪽 중에서
그리스 언론계의 요직을 두루 거친 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가 2016년 9월 세상을 떠나자 그리스의 여러 매체에서 그의 부고를 알렸다.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말기 암 환자였던 그의 사망 소식에 사람들이 더욱 놀랐던 것은, 그의 사인이 병으로 인한 자연사가 아닌 ‘비非조력 안락사’ 다시 말해 자살이라는 점이었다. 견디기 힘든 통증은 물론이거니와, 어느 순간 암세포가 뇌로 전이되어 식물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인 그는, 자신이 선택할 최선의 길이 바로 안락사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가 원했던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가 직접 죽음에 이르는 약을 투여하는 것이고, 그것이 어렵다면 차선의 방법으로 자신이 스스로 투여해서 죽을 수 있도록 약을 처방해주는 ‘조력죽음’을 허용해주길 요청하였다. 그러나 법 체제로도, 의료제도에서도, 종교 교리적으로도, 안락사와 관련된 어떠한 행위도 살인죄가 되는 그리스에서 그의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든 요청과 노력이 거부되자 그는 낙담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스위스에 있는 조력죽음 단체에 마지막 도움을 청하게 된다.
이 책은 그의 모든 요청이 거부된 뒤 집필하기 시작해 그가 자살하기 3개월 전에 그리스 현지에서 출간되었다. 죽음을 앞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딱 두 가지, 즉 ‘다가오는 죽음에 의연히 맞서기’ 그리고 안락사의 필요성에 대해 온힘을 다해 역설하는 것으로 이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책이 출간된 이후의 자살 직전까지, 그는 바스라질 것 같은 몸과 정신을 이끌고, 자신의 무기인 글뿐만 아니라 방송이나 SNS 등의 미디어를 통해 ‘죽을 수 있는 권리(Right to Die)’를 외치며 안락사를 향한 사회의 인식과 제도가 개혁되기를 강력하게 부르짖었다.
그가 죽기 하루 전에 촬영한 페이스북 동영상에는 손수 작별노트를 읽으며 가족과 지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이렇게 말한다. “내게 남은 시간은 이제 몇 주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급격히 퇴행하게 될 내 상황을 직시하면, 맑은 정신으로 떠나기 위해서 여기에서 끝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평온하게 떠난다. 나는 품격을 지키고 살았고 이제 품격을 지키며 죽음을 선택한다.”
그리고는 주위 사람들을 모두 물러나게 한 뒤 스스로 약을 투여하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받을 상처를 배려하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죽음을 선택할 권리야말로 개인의 자유를 궁극적으로 실천하는 행위’임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진정한 자유란 삶의 권리뿐 아니라,
죽음을 결정할 권리도 보장받아야 한다.
- “누가 죽음을 결정하는가?” 죽음에 대한 금기를 넘어선 처절한 문제 제기 -
어느 누가 무슨 권한으로 나와 상의하지도 않고, 내가 죽어도 될 때와 장소, 그리고 죽음의 방식을 결정할 권리를, 나 자신이 아닌 종교, 법, 의료 등등에 넘겨주었단 말인가? 누가 어떤 권한으로 우리네 삶에 경계선을 그으려는 자들로 하여금 죽음을 선택할 자유를 빼앗아가게 하였는가?
- 본문 66쪽 중에서
그는 스위스 조력죽음 단체에 도움을 구해놓았지만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은 비조력 죽음을 택했다. 스스로의 몸에 직접 약물을 주사한 그의 자살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이었을까? 진정한 자유란 생의 권리는 물론 죽음의 권리도 향유하는 것임을 외치는 목소리이지 않을까. 그리고 극한의 상황에서도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허용하지 않는 그리스 법체제를 고발하는 한 인간의 절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글의 앞부분에서는 죽음이 임박해 있음을 인정하면서 인간적인 절망과 소리 없는 울음을 삼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철학을 전공한 그리스인답게 고대 철학자들의 죽음에 대한 담론과 사상을 상기하며 조금의 위안도 취해본다. 하지만 안락사 요청이 각 기관에서마다 거부당하는 현실을 맞닥뜨리자, 그는 결코 길지 않은 이 원고를 통해 법과 종교, 그리고 의료계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가며 논리정연하게 이 현실을 반박한다.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앗아간 현재의 법과 종교, 그리고 의료제도를 꼬집으며 이 또한 제2의 전체주의라고 일갈하며, 개개인의 죽음을 이토록 획일적으로 국가나 제도가 지휘한다면 어떤 폐해들이 미래에 벌어질지를 경고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생명은 신의 선물’이므로 함부로 인간이 끝낼 수 없다는 종교적 교리에 차갑게 대꾸하며 자신은 ‘경건한 무신론자’라고 선언하다. 생명의 신성함을 내세우며 오직 신만이 ‘언제 어떻게’를 결정할 수 있고, 극단적 고통일지라도 신이 주는 것이므로 감내해야 한다는 기독교의 욥 증후군도 그의 비판을 피하지 못한다.
유권자들의 선거 결과에 좌우되는 정치인들의 줏대 없는 정책 결정도 그의 안락사 투쟁의 표적이 된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법 또한 고쳐져야 하지만 여전히 안락사를 허락지 않는 그리스 법 체제의 경직성도 언급한다. 무엇보다 히포크라테스의 후예인 그리스 인이지만, ‘히포크라테스 선서’ 뒤에 숨어 문자 그대로 생존에만 집착할 뿐 인간의 삶과 현실적 고통을 보지 않으려는 의사를, 그리고 의료계를 비난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의 생명경제정책과 경제다윈주의가 현 종교와 의료계가 주장하는 생명의 신성함을 무너뜨릴 수도 있으며,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안락사가 입법화될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죽음은 누구의 것입니까?”
- 안락사의 어제와 오늘,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정면으로 살펴보는
옮긴이 최보문 교수의 해설 -
이 책을 번역한 동기는 이런 죽음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죽음 자체는 존엄하지 않다. 또 집착을 내려놓고 해탈한 듯 죽어가는 모습만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죽는 것도, 공포와 혼란 속에서 죽는 것도 모두 다 인간의 모습이다. 죽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으로 정형화가 될 수 없다.
이 책은 ‘자비로운 죽음’과 ‘죽음의 자기결정권’을 허용하지 않는 그리스 법체제와 종교, 그리고 의사의 위선적 행태를 고발하는 한 인간의 절규이자, 진정한 자유란 생의 권리는 물론 죽음의 권리를 향유하는 것임을 외치는 목소리이다.
이 책을 번역한 최보문 교수는 가톨릭대학교 신경정신과 및 인문사회의학과 명예교수이다. 정신의학에 관한 여러 저역서와 말기환자에 관한 전문 강의 등으로 깊은 경험과 연륜을 가진 의학자인 만큼 이 책 《나의 죽음은 나의 것》도 그의 번역과 해설을 통해 더욱 견고한 책으로 출간할 수 있었다.
특히 책의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해설’에서는 역자의 단순한 번역 후기가 아닌, 전문가적 지식과 조사 등으로 논문을 방불케 하는 안락사 전반에 관한 역사와 현황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고대로부터 시작되어 온 안락사의 어원과 탄생, 중세와 근대를 거치며 기득권자에게,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에게 안락사라는 키가 어떻게 취급되어 왔는지, 무엇보다 20세기 들어 유럽 일부 국가와 미국 특정 주를 중심으로 자살의 탈범죄화가 조금씩 이뤄지면서 안락사를 수용해주는 변화 등을 보여준다.
현재 안락사는 국가별로, 혹은 사안별로 그 의미와 행위의 스펙트럼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처럼 모든 요청이 거부되어 안락사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죽을 수 있는 권리의 개념으로 놓고 보자면 그 범위가 점차 넓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말기 환자가 아님에도 조력죽음을 신청한 100세 노인이 있는가 하면, 딱히 앓고 있는 질병이 없음에도 비참하게 늙기 싫어 미리 안락사 단체에 문을 두드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한다.
죽음 직전에 원고를 완성한 저자 벨리오스의 절망과 분노의 기록을 읽고 독자들은 삶의 마지막 지점에 가 닿은 누군가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어서 소개되는 역자의 해설 덕분에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안락사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