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월터 라쿼Walter Laqueur
미국의 역사학자 겸 정치평론가이다. 현재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러시아 전문가다. 1921년에 프로이센(독일)의 통치를 받던 폴란드 남서부의 상공업 도시 브로츠와프에서 태어났다. 월터 라쿼는 1938년에 팔레스타인의 브리튼 위임통치령으로 이주했으나 브로츠와프를 떠나지 못한 부모는 나치스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에 희생되었다. 이후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1년간 수학한 뒤 1939년부터 1944년까지 키부츠(이스라엘의 농촌생활공동체)에서 농업노동자로 생활했다. 예루살렘으로 이주한 뒤 1953년까지 팔레스타인과 중동 지역의 사건들을 취재하는 기자로 활동했다. 1954년 런던으로 이주한 뒤부터 소련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외교 정책 전문잡지 《서베이Survey》와 역사전문잡지 《저널 오브 컨템 퍼러리 히스토리Journal of Contemporary History》를 창간하여 1964년까지 편집주간 겸 필자로도 활동했다.
1965년부터 1994년까지 런던에서 운영되는 홀로코스트 전문연구기관인 현대역사연구소의 소장과 비너도서관의 관장을 겸임했다. 1969년에 미국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 국제연구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었고, 이후 2000년까지 위원장을 역임했다. 미국의 브랜다이스 대학교 사상역사학과 교수(1968~1972년)와 조지타운 대학교 교수(1976~1988년)를 차례로 역임하면서 하버드 대학교, 시카코 대학교, 존스홉킨스 대학교,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대학교 방문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역사와 정치를 가르치기도 했다.
1956년부터 수백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30여 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1989년 《자유를 향해 가는 머나먼 길: 러시아와 글라 스노트》은 소련 해체 원인을 탁월하게 해설한 저서로서 권위를 인정받았고, 1993년 《검은 100인단: 러시아 극우파의 부 활》은 ‘러시아가 극우 국가주의 성향을 띠는 나라로 변하리라’고 정확하게 예언한 명저로 평가되어왔다. 그의 논문들과 저서들은 미국 외교 정책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옮긴이 : 김성균
숭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헤겔의 변증법적 이성과 인정투쟁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서구 자본주의 욕망에 대한 제3세계의 강박적 욕망과 그 전망」 같은 논문들과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그래서 누가 더 많이 돌았는가」,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왜 쓸쓸했는가」, 「적대적 비판에 대한 고독한 냉소」 같은 메타비평들을 썼고, 『유한계급론』, 『자유주의의 본질』, 『테네시 윌리엄스』, 『바바리안의 유럽침략』, 『군중심리』, 『군중행동』, 『니체 자서전: 나의 여동생과 나』,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은 자들의 공동체』, 『자살클럽』, 『자본주의와 노예제도』, 『니체 귀족적 급진주의』, 『쇼펜하우어 평전』 같은 책들을 번역했다.
저자소개
지은이 : 월터 라쿼Walter Laqueur
1965년부터 1994년까지 런던에서 운영되는 홀로코스트 전문연구기관인 현대역사연구소의 소장과 비너도서관의 관장을 겸임했다. 1969년에 미국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 국제연구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되었고, 이후 2000년까지 위원장을 역임했다. 미국의 브랜다이스 대학교 사상역사학과 교수(1968~1972년)와 조지타운 대학교 교수(1976~1988년)를 차례로 역임하면서 하버드 대학교, 시카코 대학교, 존스홉킨스 대학교,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대학교 방문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역사와 정치를 가르치기도 했다.
1956년부터 수백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30여 권의 저서를 출판했다. 1989년 《자유를 향해 가는 머나먼 길: 러시아와 글라 스노트》은 소련 해체 원인을 탁월하게 해설한 저서로서 권위를 인정받았고, 1993년 《검은 100인단: 러시아 극우파의 부 활》은 ‘러시아가 극우 국가주의 성향을 띠는 나라로 변하리라’고 정확하게 예언한 명저로 평가되어왔다. 그의 논문들과 저서들은 미국 외교 정책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옮긴이 : 김성균
책정보 및 내용요약
미국의 대표적 러시아 전문가 월터 라쿼,
러시아 사회와 역사에 대한 거시적 분석을 바탕으로
21세기 러시아의 방향을 조망하다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 2000년 러시아의 대통령이 된 뒤 지금까지 러시아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온 적 없는 철의 통치자. 그의 권력은 러시아를 넘어 최근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푸틴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푸틴은 어쩌면 러시아를 넘어 미국까지 손아귀에 쥐고 흔드는 권력자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은 비정상적인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최고 권력자를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독특한 현상이 되고 있는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에 대해 살핀다. 하지만 푸틴 개인의 역사가 아니라 푸틴을 통해 드러나는 러시아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짚는다. 미국 내 최고의 러시아 전문가 월터 라쿼의 이 책은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넘어 우경화된 러시아가 세계 사회에 가져다 줄 현실적인 위협과 변화를 심도 있게 제시한다.
목차
● 나의 관심을 러시아 역사로 이끈 계기들과 고마운 분들
● 서문
제1장 소련시대의 종말
소련은 정의롭고 진보한 사회를 지향하는 새로운 이상을 내세우며 출범했다. 그러나 이상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고르바초프는 개혁을 단행했고, 소련은 해체되었으며, 부유하되 가난하고 강력하되 나약한 러시아가 재등장했다.
제2장 누가 러시아를 지배하는가?
소련이 해체되면서 재등장한 러시아에서는 올리가르히들로 통칭되는 신흥재력가들이 득세했고 옐친 시대의 러시아 정치사회적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전직 KGB요인 푸틴이 ‘제복 입은 사람들’ 즉 실로비키와 함께 러시아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올리가르히들은 쇠락했다.
제3장 새로운 러시아 이상을 떠받치는 기둥들
러시아 정교회와 우익사상가들, 유럽과 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기반으로 삼는 유라시아주의와 지정학, 공산주의를 대신하는 정치적 메시아주의. 이것들이 바로 현대 러시아의 새로운 이상을 떠받쳐왔다.
제4장 푸틴과 푸티니즘
석유천연가스 가격급등이라는 행운을 맞이한 푸틴은 유례없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정치지도자로 급부상했다. 당연히 그의 실권과 정권은 더 막강해졌다. 러시아 국민은 민주주의와 자유보다는 안전과 행복을 더 바랐고 세계최강대국의 자부심마저 염원했다. 그리하여 국가자본주의적 독재정치로 정의될 수 있는 푸티니즘이 탄생했다.
제5장 스탈린과 ‘비잔티움 제국의 쇠망’
스탈린 시대에 소련은 영토를 대폭 확장하면서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런 위업을 달성했다고 믿기던 스탈린을 동경하고 숭배하는 심리가 현대 러시아에서는 이른바 ‘재-스탈린화’ 현상마저 유발한다.
제6장 인구통계학
21세기에는 러시아의 인구정책이 러시아의 세계적 영향력을 좌우할 핵심 관건일 것이다. 러시아는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인구증가를 도모하지만, 인접한 자치공화국들로부터 유입되는 이슬람인구는 러시아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들이 과연 러시아 체제에 순응하는 ‘올바른 인구’가 될 수 있을까?
제7장 새로운 국가노선
21세의 러시아는 서구의 해묵은 러시아공포증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러시아에서 군주정치와 전제적 독재정치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보수적 이념론자 이반 일리인의 사상을 이용하는 푸틴의 저의는 과연 무엇일까?
제8장 외교정책과 페트로스테이트
현대 러시아의 외교정책을 규정하는 핵심요소는 에너지자원이다. 왜냐면 러시아는 특히 수출총액의 50퍼센트를 차지하는 석유천연가스를 이용하여 국내경제를 부흥시켰을 뿐 아니라 세계의 외교무대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9장 미래의 갈등요인들
러시아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푸틴이 주도하는 권위주의적 통치체제는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현재 러시아의 인구전망은 어둡고, 다민족국가로서 정체성의 혼란마저 겪는다. 청년세대의 정치적 미성숙과 우경화도 러시아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 에필로그 카모 그랴데쉬, 로시야?—쿼바디스, 러시아?
● 번역자 후기
● 참고문헌
● 찾아보기
편집자 추천글
이 책 《푸티니즘》은 1950년대부터 구소련과 러시아를 연구해온 언론인이자 정치학자인 월터 라쿼가 2015년 그의 나이 94세 때 출간한 책이다. 폴란드 출신인 라쿼는 러시아 관련 저서만 25권 이상을 펴낸 세계적인 러시아 전문가다. 이 책에서 라쿼는 푸티니즘을 ‘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가미한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방법론은 철저한 반反 서방이다. 푸틴을 현대판 스탈린의 부활로 보는 그는 푸틴이 러시아의 선지자로 20세기 초에 활동한 망명러시아 이념학자 이반 일리인에 주목한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반 일리인Ivan Ilyin(1883~1954)은 볼셰비즘에 반대하고 군주정치와 전제적 독재정치를 지지한 반동적 사상가였다.
거대한 스케일의 서사와 심성사적 접근법에 충실한 이 책은 단순히 정치 분석서일 뿐 아니라 역사서로도 손색이 없다. 러시아의 역사적 과정을 이해해야만 푸틴과 푸틴의 정책, 그의 엄청난 대중적 지지도 이해할 수 있다고 월터 라쿼는 주장한다.
푸틴은 누구인가?
푸틴은 레닌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레닌과 스탈린이 먹은 음식을 여러 번 요리한 요리사였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격투기에 관심이 많은 난폭한 학생이었다. 1975년 국립 레닌그라드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뒤 KGB 요원이 되었고, 1985년~1990년까지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근무했다. 1991년 예비역 중력으로 KGB에서 퇴직한 뒤 한동안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에서 근무했다.
1997년에 모스크바로 이사한 그는 국가기관의 다양한 직책들을 역임했고, 1998년 5월에 옐친 대통령의 수석보좌관으로 발탁되었다. 옐친은 푸틴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를 후임으로 삼고자 했다. 1998년 7월에 푸틴은 KGB를 계승한 FSB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1999년 8월에 제1부총리로 임명된 푸틴은 7일 후에는 러시아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2000년 푸틴이 대통령에 당선했을 때 러시아는 극심한 곤경에 빠져 있었다. 경제는 엉망이었고, 국정도 기능을 하지 못했다. 대통령 임기 시작 세 달 만인 2000년 8월에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바렌츠 해에서 침몰했다. 휴가 중이던 푸틴은 모스크바로 복귀하지도 않았고 사고 현장을 방문하지도 않았으며, 외국의 구조 제의를 수락하지도 않았다. 2002년에는 체첸 반군 단체가 모스크바의 한 극장을 공격했다. 러시아 특수부대의 엉성한 작전 탓에 인질 130명이 사망했다. 이때도 푸틴은 태연했다. 그래도 푸틴의 인기는 시들지 않았다.
2001~2007년 러시아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7퍼센트를 유지했고, 러시아는 모든 빚을 청산했다. 신생 중산층이 등장했으며 각종 연금들도 두 배로 증가했다. 그의 집권 기간에 GDP는 4배, 외환보유액은 10배, 수출 3배, 주가지수는 12배나 증가했다. 거의 모든 러시아인은 푸틴의 현 명하고 효율적인 지도력 덕분에 이런 경제 성장이 가능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석유천연가스 가격 급등이라는 놀라운 행운 덕분이었다.
러시아 내에서 푸틴 열풍은 국가 지도자의 대중적 인기를 넘어 하나의 독특한 현상이 되고 있다. 푸틴은 좌파 정치인일까, 우파 정치인일까? 그는 개혁주의자일까, 보수주의자일까? 분명한 것은 그는 결코 공산주의를 믿지 않았을 뿐더러 사회주의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민주주의자일까? 민주주의에 대해 알고 있는 그 누구도 푸틴을 민주주의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푸티니즘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푸틴은 2000년 러시아의 3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4대 대통령, 10대 총리를 거쳐 현재 6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다. 그리고 2018년 7대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할 예정이다. 20년 가까이 권력을 쥐고 있었음에도 러시아 민중은 푸틴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고 있다. 푸틴에 대항할 야권의 지도자는 없고(사실상 야당이라고 부를 만한 정치단체도 없다), 여당 내에서도 그의 권력을 이어갈 만한 사람은 없다. 메드베데프는 푸틴이 총리직을 수행할 때 잠시 대통령직을 맡았을 뿐 그 뒤로는 뉴스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푸티니즘Putinism이라는 표현은 푸틴 중심의 과도한 권력과 세계패권주의 위주의 정치철학을 이르는 표현이다. 러시아 민중에게 푸틴과 푸티니즘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세간의 시선대로, 푸티니즘은 과연 파시즘일까? 이 책은 러시아는 파시즘 국가가 아니며, 가까운 미래에 파시즘에 도달할 가능성도 없다고 답한다.
푸티니즘은 국가자본주의이고 자유주의 경제일 뿐 아니라 국가의 엄청난 개입 정책이다. 푸티니즘은 독재 정치의 일종이다. 국회는 존재하지만, 집권 여당의 반대 정당들은 진정한 반대 정당들이 아니다. 자유로운 언론이 존재하지만, 자유는 단지 소규모 일간지들에게만 허용되고 비판도 제한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헌법이 존재하지만 씁쓸한 풍자들과 온갖 우스갯말들의 소재로 전락했다.
‘러시아 이상’의 적임자로 선택된 푸틴
푸티니즘의 등장 배경에는 과거의 영광을 향한 열망이 있다. 소련의 등장은 새로운 시대와 정의롭고 진보한 사회의 출발점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열정은 비현실적인 것임이 드러났다.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하지 못했고, 경제는 무너졌다. 새로운 역사를 향한 소련의 이상은 물거품이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개혁을 단행했고, 소련은 해체되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옐친 정부를 거치는 동안 물가는 1000퍼센트 가까이 올랐고, 범죄와 비리가 들끓었다.
옐친의 후임으로 등장한 옐친은 기존의 친서방주의를 거부했다. 그리고 우연히도 석유천연가스 가격의 급등으로 엄청난 경제적 성장도 이루게 되었다. 푸틴은 여기에 국가의 권위와 공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사상적 장치를 썼다. 바로 공산주의를 대신해 ‘러시아 이상’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 이상은 러시아가 종교, 정치, 사상면에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세계 체제를 지배하는 국가가 되고자 하는 이념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 국민들은 민주주의와 자유보다는 안전과 행복을 더 바라고, 그것을 위해 푸틴의 강권 통치를 찬양하고 푸틴을 숭배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러시아 이상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세 가지 기둥에 지탱된다. 첫째는 강력한 정교회 신앙이다. 러시아 정교회는 지금까지 러시아인들의 사상적 기반들 만드는 역할을 충실히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히 반서구주의를 선전선동하는 분야에서, 정권을 뒷받침하는 정치적 기능을 대체로 충실히 수행해왔다. 둘째 기둥은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이다. 유라시아주의는 서구와 구별되는 러시아 특유의 가치관과 역사에서 탄생한 또다른 제국주의이다. 셋째 기둥은 서구공포증(자파도포비아Zapadophobia)이다. 서구공포증은 서구의 이익과 러시아의 이익은 늘 상충하기 때문에 서구에 어떤 주도권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러시아 이상은 ‘메시아적 사명을 부여받은 영원한 러시아’라는 개념으로 이어져 새로운 제국주의과 메시아주의를 부활시켰다. 그리고 푸틴은 이러한 부활에 적임자였던 것이다.
러시아를 이끄는 자들은 누구인가?
구소련 시대에 소련의 권력을 독점하던 사람들은 소련공산당 서기장과 소수의 수뇌진이었다. 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들은 공산당 지도부가 채택한 정책들의 출발점이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별로 중요시되지 않던 일정한 특권을 보유한 사람들의 불완전한 집단이었다.
소련공산당이 위세를 잃으면서 등장한 사람들은 신흥 재벌가, 즉 올리가르히Oligarch 였다. 이들은 1990년 소련 해체 이후 중형 및 대형 국영기업들이 민영화되면서, 정식 혹은 편법으로 이를 인수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신흥 재벌이다. 이때 민간에 넘어간 국영기업의 수만 13만 곳이었다. 이들은 러시아의 경제가 무너지는 와중에도 확실히 부를 쌓았지만, 푸틴이 권력을 잡은 뒤 거의 지위를 잃었다.
오늘날 러시아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실로비키siloviki다. ‘제복 입은 남자’를 뜻하는 이 말은 21세기 러시아의 신흥권력자 혹은 실세를 지칭한다. 이들은 KGB 혹은 그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을 포함한 비밀 정보기관과 군대, 경찰 출신자들이다. 푸틴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 러시아의 주요 권력기관을 장악하면서부터 푸틴에게 충성해온 이들 실로비키는 푸틴의 권력을 유지시키는 활동을 최대 과업으로 삼는다고 알려졌다.
스탈린과 이반 일리인, 푸티니즘의 사상적 뿌리
푸티니즘은 러시아 이상을 지탱하는 사상적 근거로 스탈린주의를 불러왔다. 스탈린이 공산당을 장악한 30년 동안 소련의 영토는 대폭 확장되었고 세계 초강대국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사망과 함께 소련 ‘제국’의 위엄은 무너졌다. 소련이 해체되고 경제위기가 찾아오자 스탈린에 대한 숭배가 다시 시작되었다. 화려했던 그 시절, 세계 최강대국의 상징인 스탈린에 대한 향수는 현대 러시아에서 ‘재-스탈린화’란 이름으로 부활하고 있다. 푸틴은 스탈린이 이끌던 강대국 소련에 대한 러시아 민중의 향수를 만족시켜줄 적임자였다. 그는 스탈린의 업적을 찬양하고, 그의 정치적 결정을 치켜세웠다.
푸틴이 자신의 이념의 근거로 삼는 사람은 이반 일리인Ivan Ilyin(1883~1954)이라는 보수적 이념학자이다. 푸틴은 연설과 기고문에서 일리인을 자주 인용하고, 측근에게 그의 책을 권하기도 했다. 이반 일리인은 소련 정권에 의해 1922년 독일로 추방된 뒤 그곳에서 볼셰비즘에 반대하는 투쟁에 몰두했다. 그는 볼셰비즘의 한계를 지적하며, 군주정치와 전제적 독재정치를 노골적으로 지지하였다.
강력한 러시아의 과거에 대한 향수와 절대 권력을 가진 군주정치 체제의 향기를 짙게 풍기는 푸티니즘에서 스탈린과 이반 일리인의 철학은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