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지은이 :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
1943년 나가노 현 이야마 시에서 태어났다. 1964년부터 도쿄의 한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집필한 <여름의 흐름>으로 1966년 《문학계》신인상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1968년에 <정오이다>로 귀향한 청년의 고독을 그린 후, 본인도 나가노 현 아즈미노로 이주했다. 이후 문단과 선을 긋고 집필 활동에만 매진하고 있다.
소설 《달에 울다》《물의 가족》 등을 냈고, 최근작으로는 《파랑새의 밤》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나는 길들지 않는다》《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그렇지 않다면 저녁노을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가 없다》《개와 웃다》 등이 있다.
옮긴이 : 고재운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한국에 돌아와 고만고만한 직장 몇 곳을 다녔지만 도시 생활에 마음을 붙이지는 못했다. 마흔 이전에 귀촌할 생각으로 목공을 배웠고, 결국 서른아홉 되던 해 포항에 정착했다. 지금은 포항시 북구 기계면이라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목공학교를 운영하면서 번역 일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개와 웃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일상을 철학하다》 《작고 강한 농업》 《남극의 셰프》 《논리학 콘서트》 《생각하는 어린이가 힘이 세다》 《무명인》 등이 있다.
편집자 추천글
“개를 기르지 않았다면 어떤 인간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마루야마 겐지의 개 이야기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 일상은 단순하다. 집필 아니면 정원 가꾸기. 여기에 하나 더 있었다. 개 기르기다. 20대에 귀촌한 이후 겐지는 오랫동안 개들을 길러 왔다. 《개와 웃다》는 그 개들에 관한 이야기다.
‘개’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괴팍한 소설가
겐지는 어릴 때부터 개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개를 기를 만한 집안 형편도 아니었고, 개한테 여러 번 물린 경험도 있어 개는 차라리 복수의 대상이었다. 언젠가 물린 만큼 되갚아 주리라 벼르는 존재였다.
나는 원래 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어릴 때 두세 번 개에게 쫓긴 경험이 있기도 하다. 부끄러움이고 뭐고 다 버리고 울며불며 필사적으로 도망 다녔는데도 개가 다리를 덥석 물고 늘어졌다. 그때, 어른이 되어 몸집이 커지면 언젠가는 반드시 개들에게 복수하겠다고 마음먹고 그 방법을 이리저리 생각하면서 화를 억눌렀다. 개를 붙잡아 기둥에 묶고는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패 주든지 불에 태워 주겠다고 생각했다. -10쪽에서
이런 그가 개를 기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소설가가 된 이후 주변에서 친구가 하나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직업을 가지고 나서,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
야말로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에는 아주 많았다. 학생 시절, 월급쟁 이 시절, 어디를 둘러봐도 친구들로 넘쳐 났고 일 년 내내 즐겁게 보냈다. 그 대부분이 평생을 함께할 것 같은 사람으로, 비록 직장은 달라도 전화 한 통이면 다들 모였다.
물론 한꺼번에 그들이 떠난 것은 아니고, 한 사람, 또 한 사람 하는 식이다. 단 3~4년 만에 나는 이런 비참한 상태로 전락했다. 이따금 전화나 편지로 연락을 취해 보지만, 예전처럼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상대도 같은 기분인지, 말마다 조심스러워 기침을 수시로 한다든지, “잘 있다니 다행이다”라든지 “잘 지내?”와 같은 문장을 열거한다. -17쪽에서
겐지가 처음 선택한 개는 셰퍼드. 개를 복수 대상쯤으로나 여겼으니 처음엔 개와 잘 지내지 못한다. “사랑이 넘치는 친구 사이도 아니고, 주인과 개의 정겨운 관계도 아니”었다. 개 주인은 호시탐탐 “채찍을 가할 기회를 엿보고”, 이런 주인 태도를 눈치 챈 개는 개대로 “불안에 떨며 눈을 치켜뜨”는 게 일상이었다.
이런 겐지가 서서히 달라진다. 이 셰퍼드를 비롯해 여러 개와 만나고 헤어지면서 개와 사람의 관계, 더 나아가 자신을 성찰한다. 개 역시 자신을 비추는 타자였던 셈이다. 마침내 그는 “이상한 길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해서 훈훈한 에피소드 일색이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겐지는 자신이 기른 개를 모두 좋아하지는 않았다. 이 개는 바보에 가까울 정도로 머리가 나쁘고, 또 이 개는 어떻다느니 하며 곳곳에서 개 품평을 한다. 어떤 개는 너무 싫어해 지인들에게 줘 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바롱이 싫었다. 주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온종일 제멋대로 행동하니 도무지 좋아질 리가 없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이 같은 타입이 여러 명 있는데(여기저기서 알게 되기는 했지만) 결국 친구로 받아들인 적은 없다. -86쪽에서
장고의 멍청한 부분이 싫었다. 보고 있기만 해도 공연히 짜증이 났다. 그래서 장고를 기르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나자마자 그날로 줘 버리고 말았다. -160쪽에서
그러다 뒤늦게 깨닫는다. 자신도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 아니면서 완벽한 개를 원했다는 것을. 이런 자신의 상태를 겐지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얼마 후, 나는 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나 자신도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 아닌데 개에게 높은 이상을 품는 것은 좋지 않다고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악몽을 꾸고 있었는지 모른다. -65쪽에서
개와 인간은 집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개와 웃다》는 겐지가 기른 개 순서로 배치되었다. 조로, 맥, 바롱, 조르바, 장고, 구마, 류, 구로, 돈구리가 그 존재들이다. 겐지는 차우차우 외에 셰퍼드, 아프간하운드, 세인트버나드, 아이리시 울프하운드, 도사견, 래브라도레트리버 같은 큰 개를 주로 길렀다. 큰 개를 좋아하고, 특히 검은 개에 매료되었다.
한때는 두세 마리를 한꺼번에 기른 적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엔 집 안에서 함께 지내는 차우차우 말고는 더는 큰 개를 기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개를 기르면서 겐지가 깨달은 것은 개와 인간은 집 안에서 함께 지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개와 인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대형견 기르기를 포기했다. 기르던 대형견이 죽어 개집이 텅 비게 되어도 다음 개를 기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형견을 키우려면 집 자체를 고치거나 새로 짓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그것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참기로 마음먹었다. -266쪽에서
개를 사슬로 묶어 키우거나 개집에 가두어 기르는 것이 잘못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낙담하기도 한다.
개집에 가둬 키운 대부분의 개는 주인의 어리석음 탓에 개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없었고,그 때문에 우리는 그저 개를 길렀다는 이상의 감동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간단한 사실을 알기까지 길고 긴 시간을 허비하면서 수많은 개를 불행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런 것도 모르면서 소설가랍시고 잘도 행세해 왔다, 라고 낙담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에 나는 늘 이런 말을 한다. 어떤 잘못 탓에 책이 많이 팔리게 되면 개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짓고 대형견을 사자, 라고. -267쪽에서
시각장애인 한 명당 안내견 한 마리씩
개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게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은 여러 가지다. 그중 집만 두고 생각할 때도 나는 늘 개를 염두에 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집과 집 사이 거리는 반드시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정도면 피아노 소리도 부부싸움 소리도 일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282쪽에서
또한 시각장애인들에게 국가가 안내견을 한 마리씩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
다. 그때까지는 선진국이라느니 복지국가라느니 하는 말은 꺼내지도 말라고 일침을 가한다.
맹인 안내견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맹인 한 사람당 안내견 한 마리를 무료로 제공해야만 한다. 맹인 안내견 훈련소를 일본 각지에 만들고, 수많은 훈련사를 국가공무원으로 채용해 뛰어난 안내견을 계속 사회에 내보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개를 동반하지 않은 맹인이 한 사람도 없어지게 되면 이 나라를 조금 다시 봐줘도 좋다. 그때까지는 선진국이라고, 복지국가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국가는 왜 하지 않는 것일까.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비싼 무기는 잔뜩 사들이거나 게으름뱅이들 뒤치다꺼리 같은 일에는 세금을 아낌없이 퍼붓는 주제에. -227쪽에서
완벽한 주인이 아니면서
완벽한 개를 찾았다
겐지가 괜찮은 애견가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겐지는 늘 낯선 것을 동경했다. 개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길러 봤으면 다음 개, 그 개를 손에 넣으면 또 다음 개” 하는 식이었다. “애견가와는 거리가 먼, 무책임한 주인”이었다. “기르기로 한 개의 단점도 받아들이고 인정해 무던히 어울리게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자신도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 아닌데 개에게 높은 이상을 품는 것은 좋지 않다”고 뒤늦게나마 깨달았으며, “이상적인 개를 찾는 일에만 열중해 정작 자신이 이상적인 주인이 되는 일을 잊고 있었다”고 깊이 반성한다.
지금껏 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책에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중요한 점들이었다. 자연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개에게서 배운 것이 많다. 개를 기르지 않았다면 어떤 인간이 되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훌륭한 애견가였던 것은 아니다. 개를 이해해 주는 마음은 부족했다. 이상적인 개를 찾는 일에만 열중해 정작 자신이 이상적인 주인이 되는 일을 잊고 있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깊이 반성하고 있다. -284쪽에서
《개와 웃다》는 단순히 반려동물을 예찬하는 책이 아니다. 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내 삶에 받아들이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우친다. 자신을 바로 보지 않는 한 새로운 관계는 열리지 않는다는 진부한 진리도 일깨운다. 생명과 생명의 가장 좋은 관계는 무엇일까라는 묵직한 물음도 남긴다.
저자소개
지은이 :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
1968년에 <정오이다>로 귀향한 청년의 고독을 그린 후, 본인도 나가노 현 아즈미노로 이주했다. 이후 문단과 선을 긋고 집필 활동에만 매진하고 있다.
소설 《달에 울다》《물의 가족》 등을 냈고, 최근작으로는 《파랑새의 밤》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나는 길들지 않는다》《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그렇지 않다면 저녁노을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가 없다》《개와 웃다》 등이 있다.
옮긴이 : 고재운
책정보 및 내용요약
마루야마 겐지의 개 이야기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 일상은 단순하다. 집필 아니면 정원 가꾸기. 여기에 하나 더 있었다. 개 기르기다. 20대에 귀촌한 이후 겐지는 오랫동안 개들을 길러 왔다. 《개와 웃다》는 그 개들에 관한 이야기다.
목차
개를 길러 보기로 했다
친구가 없다
큰 개는 체력이 될 때나
병든 개들
고양이에게 당한 셰퍼드
첫 주인을 잊지 못한 사스케
죽은 맥을 기다리던 바롱
묶거나 가두지 말자
UFO를 발견한 개
덥석 아이 손을 문 조르바
나는 장고가 싫었다
웃지 않을 수 없었던 일
첫눈에 반한 류
제시는 자네가 죽인 거야
이런 개가 안내견이라니!
스피드광 구마
나는 검은 개가 좋다
집 안에서 같이 살자
개와 웃다
편집자 추천글
마루야마 겐지의 개 이야기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 일상은 단순하다. 집필 아니면 정원 가꾸기. 여기에 하나 더 있었다. 개 기르기다. 20대에 귀촌한 이후 겐지는 오랫동안 개들을 길러 왔다. 《개와 웃다》는 그 개들에 관한 이야기다.
‘개’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괴팍한 소설가
겐지는 어릴 때부터 개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개를 기를 만한 집안 형편도 아니었고, 개한테 여러 번 물린 경험도 있어 개는 차라리 복수의 대상이었다. 언젠가 물린 만큼 되갚아 주리라 벼르는 존재였다.
나는 원래 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어릴 때 두세 번 개에게 쫓긴 경험이 있기도 하다. 부끄러움이고 뭐고 다 버리고 울며불며 필사적으로 도망 다녔는데도 개가 다리를 덥석 물고 늘어졌다. 그때, 어른이 되어 몸집이 커지면 언젠가는 반드시 개들에게 복수하겠다고 마음먹고 그 방법을 이리저리 생각하면서 화를 억눌렀다. 개를 붙잡아 기둥에 묶고는 몽둥이로 흠씬 두들겨 패 주든지 불에 태워 주겠다고 생각했다. -10쪽에서
이런 그가 개를 기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소설가가 된 이후 주변에서 친구가 하나둘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직업을 가지고 나서,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
야말로 한 사람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에는 아주 많았다. 학생 시절, 월급쟁 이 시절, 어디를 둘러봐도 친구들로 넘쳐 났고 일 년 내내 즐겁게 보냈다. 그 대부분이 평생을 함께할 것 같은 사람으로, 비록 직장은 달라도 전화 한 통이면 다들 모였다.
물론 한꺼번에 그들이 떠난 것은 아니고, 한 사람, 또 한 사람 하는 식이다. 단 3~4년 만에 나는 이런 비참한 상태로 전락했다. 이따금 전화나 편지로 연락을 취해 보지만, 예전처럼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상대도 같은 기분인지, 말마다 조심스러워 기침을 수시로 한다든지, “잘 있다니 다행이다”라든지 “잘 지내?”와 같은 문장을 열거한다. -17쪽에서
겐지가 처음 선택한 개는 셰퍼드. 개를 복수 대상쯤으로나 여겼으니 처음엔 개와 잘 지내지 못한다. “사랑이 넘치는 친구 사이도 아니고, 주인과 개의 정겨운 관계도 아니”었다. 개 주인은 호시탐탐 “채찍을 가할 기회를 엿보고”, 이런 주인 태도를 눈치 챈 개는 개대로 “불안에 떨며 눈을 치켜뜨”는 게 일상이었다.
이런 겐지가 서서히 달라진다. 이 셰퍼드를 비롯해 여러 개와 만나고 헤어지면서 개와 사람의 관계, 더 나아가 자신을 성찰한다. 개 역시 자신을 비추는 타자였던 셈이다. 마침내 그는 “이상한 길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해서 훈훈한 에피소드 일색이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겐지는 자신이 기른 개를 모두 좋아하지는 않았다. 이 개는 바보에 가까울 정도로 머리가 나쁘고, 또 이 개는 어떻다느니 하며 곳곳에서 개 품평을 한다. 어떤 개는 너무 싫어해 지인들에게 줘 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바롱이 싫었다. 주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온종일 제멋대로 행동하니 도무지 좋아질 리가 없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이 같은 타입이 여러 명 있는데(여기저기서 알게 되기는 했지만) 결국 친구로 받아들인 적은 없다. -86쪽에서
장고의 멍청한 부분이 싫었다. 보고 있기만 해도 공연히 짜증이 났다. 그래서 장고를 기르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나자마자 그날로 줘 버리고 말았다. -160쪽에서
그러다 뒤늦게 깨닫는다. 자신도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 아니면서 완벽한 개를 원했다는 것을. 이런 자신의 상태를 겐지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얼마 후, 나는 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로 했다. 나 자신도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 아닌데 개에게 높은 이상을 품는 것은 좋지 않다고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악몽을 꾸고 있었는지 모른다. -65쪽에서
개와 인간은 집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개와 웃다》는 겐지가 기른 개 순서로 배치되었다. 조로, 맥, 바롱, 조르바, 장고, 구마, 류, 구로, 돈구리가 그 존재들이다. 겐지는 차우차우 외에 셰퍼드, 아프간하운드, 세인트버나드, 아이리시 울프하운드, 도사견, 래브라도레트리버 같은 큰 개를 주로 길렀다. 큰 개를 좋아하고, 특히 검은 개에 매료되었다.
한때는 두세 마리를 한꺼번에 기른 적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엔 집 안에서 함께 지내는 차우차우 말고는 더는 큰 개를 기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개를 기르면서 겐지가 깨달은 것은 개와 인간은 집 안에서 함께 지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개와 인간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대형견 기르기를 포기했다. 기르던 대형견이 죽어 개집이 텅 비게 되어도 다음 개를 기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형견을 키우려면 집 자체를 고치거나 새로 짓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그것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참기로 마음먹었다. -266쪽에서
개를 사슬로 묶어 키우거나 개집에 가두어 기르는 것이 잘못이었다는 걸 깨닫고는 낙담하기도 한다.
개집에 가둬 키운 대부분의 개는 주인의 어리석음 탓에 개 이상의 존재가 될 수 없었고,그 때문에 우리는 그저 개를 길렀다는 이상의 감동을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간단한 사실을 알기까지 길고 긴 시간을 허비하면서 수많은 개를 불행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런 것도 모르면서 소설가랍시고 잘도 행세해 왔다, 라고 낙담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에 나는 늘 이런 말을 한다. 어떤 잘못 탓에 책이 많이 팔리게 되면 개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짓고 대형견을 사자, 라고. -267쪽에서
시각장애인 한 명당 안내견 한 마리씩
개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게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은 여러 가지다. 그중 집만 두고 생각할 때도 나는 늘 개를 염두에 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집과 집 사이 거리는 반드시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정도면 피아노 소리도 부부싸움 소리도 일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282쪽에서
또한 시각장애인들에게 국가가 안내견을 한 마리씩 무료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
다. 그때까지는 선진국이라느니 복지국가라느니 하는 말은 꺼내지도 말라고 일침을 가한다.
맹인 안내견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맹인 한 사람당 안내견 한 마리를 무료로 제공해야만 한다. 맹인 안내견 훈련소를 일본 각지에 만들고, 수많은 훈련사를 국가공무원으로 채용해 뛰어난 안내견을 계속 사회에 내보내야 한다. 그럼으로써 개를 동반하지 않은 맹인이 한 사람도 없어지게 되면 이 나라를 조금 다시 봐줘도 좋다. 그때까지는 선진국이라고, 복지국가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국가는 왜 하지 않는 것일까.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비싼 무기는 잔뜩 사들이거나 게으름뱅이들 뒤치다꺼리 같은 일에는 세금을 아낌없이 퍼붓는 주제에. -227쪽에서
완벽한 주인이 아니면서
완벽한 개를 찾았다
겐지가 괜찮은 애견가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겐지는 늘 낯선 것을 동경했다. 개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길러 봤으면 다음 개, 그 개를 손에 넣으면 또 다음 개” 하는 식이었다. “애견가와는 거리가 먼, 무책임한 주인”이었다. “기르기로 한 개의 단점도 받아들이고 인정해 무던히 어울리게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자신도 그렇게 대단한 인간이 아닌데 개에게 높은 이상을 품는 것은 좋지 않다”고 뒤늦게나마 깨달았으며, “이상적인 개를 찾는 일에만 열중해 정작 자신이 이상적인 주인이 되는 일을 잊고 있었다”고 깊이 반성한다.
지금껏 개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책에서는 절대로 배울 수 없는 중요한 점들이었다. 자연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개에게서 배운 것이 많다. 개를 기르지 않았다면 어떤 인간이 되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훌륭한 애견가였던 것은 아니다. 개를 이해해 주는 마음은 부족했다. 이상적인 개를 찾는 일에만 열중해 정작 자신이 이상적인 주인이 되는 일을 잊고 있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깊이 반성하고 있다. -284쪽에서
《개와 웃다》는 단순히 반려동물을 예찬하는 책이 아니다. 한 존재를 있는 그대로 내 삶에 받아들이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깨우친다. 자신을 바로 보지 않는 한 새로운 관계는 열리지 않는다는 진부한 진리도 일깨운다. 생명과 생명의 가장 좋은 관계는 무엇일까라는 묵직한 물음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