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추천글
“이 책은 정신의학과 문화 연구에 대한 중대한 추가자료다.
해킹은 이야기꾼의 재능과 천연덕스러운 위트,
무엇보다 쉽게 읽히도록 글을 쓰면서도
울림은 크게 만드는 작가로서의 비범한 화법을 가지고 있다.”
일레인 쇼월터(문학평론가, 작가)
“해킹은 보기 드문 연민과 품격으로 글을 쓸 뿐 아니라
철학적 배경지식을 이용하여 의학사의 이 뒤안길을 커다란 울림으로 채운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그는 왜 미친 듯이 계속 걸었는가?
영원한 것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가던
‘아름다운 시절’ 프랑스, 미스터리한 세기말 유행병
1886년 프랑스 보르도의 정신병원에 한 남자가 제 발로 찾아온다. 알베르 다다(Albert Dadas, 1860~1907)라는 이름의, 평소 성실하고 수줍음 많던 가스정비공에게는 남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는 12살 때부터 갑작스레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는 경험을 반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여행을 떠나려는 욕구에 사로잡히면 그는 가족도 직장도 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행을 하는지도 모른 채 엄청난 속도로 무작정 걸어갔고, 낯선 곳에서 제정신을 차리고 나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의 예기치 않은 여행은 점점 길어져 보르도를 넘어 파리와 마르세유, 벨기에와 독일, 오스트리아까지 이어졌고, 급기야 군대에서 탈영해 알제리와 러시아, 터키까지 다녀왔다. 때로 기차와 배를 타기도 했지만 주로 걸어다녔고, 시속 12킬로미터(일반인의 걷기 평균속력은 시속 4~5킬로미터 정도다) 속력으로 하루 70킬로미터를 걸을 때도 있었다.
놀랍게도, 젊은 담당 의사 필리프 티씨에(Philippe Tissie, 1852~1935)가 최면을 걸자 알베르는 잊고 있던 몇 주 전, 몇 년 전 여행 때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다 기억해냈다. 티씨에는 1887년 〈미치광이 여행자〉라는 낭만적인 제목의 박사논문에서 이 새로운 정신질환을 학계에 처음 보고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후 비슷한 사례들이 프랑스는 물론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에서 잇달아 보고되기 시작했다. 당시 정신의학계는 미치광이 여행자의 병인(病因)을 둘러싸고 일대 논쟁을 벌였고, 치열한 논쟁은 다시 이 진단의 유행을 부채질했다. 이 둔주가 세기말의 유행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정신의학계의 양대 미스터리였던 간질과 히스테리아를 둘러싼 논쟁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더 놀랍게도, 1909년 낭트에서 열린 정신의학 총회를 끝으로 이 특이한 정신질환에 대한 관심은 차갑게 식어버렸고, 오늘날 이 정신질환은 일반인은 물론 정신과 의사들에게도 거의 잊혀 버렸다.
‘둔주(fugue, 遁走 / ‘달아나다’ ‘도주’라는 뜻에서 유래)’ ‘보행성 자동증’ ‘방랑벽’ 등으로 불린 이 정신질환은 현재 미국정신의학협회의 《진단과 통계 요람》(DSM)에 ‘해리성둔주’라는 진단명으로 아직도 올라 있지만 사실상 거의 진단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은 한 세기 전 20여 년간 유행한 이 특이한 사례를 검토하며 정신질환의 실재성에 관한 중대한 물음을 던진다.
어느 한 시대, 한 공간에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시대적 정신질환’
정신질환은 실재하는가?
해킹은 책의 서두에서 왜, 지금, 이미 ‘죽었다’고 볼 수 있는 질병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지 분명히 밝힌다. “현재 우리는 온갖 정신질환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 많은 신경증 중 어떤 것이 꾸며낸 것인지, 문화적 산물인지, 의사가 확대시킨 것인지, 아니면 그저 카피캣 증후군 같은 모방에 불과한 것인지, 모호한 말이긴 하나 단적으로 말해서 어느 게 실재하는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월경전증후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섭식장애(거식증과 폭식증), 해리성정체성장애(다중인격), 반사회성인격장애, 간헐적폭발성장애(분노조절장애), 만성피로증후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해킹이 드는 의심스러운 질병의 목록은 끝이 없다. 이것들은 “정말 실재하는 정신장애” “정신의학적 실체를 가진 진짜 질병”일까? 어쩌면 사회와 미디어가 조장하고 의사들이 의료화한, 의학적으로 실질적 내용이라곤 전혀 없는, 정신의학적 인공물은 아닐까? (현대의 사례가 아니라 굳이 둔주라는 옛날의 사례를 든 것은 즉각적인 당파적 반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해킹은 직설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해킹은 둔주와 같이 어느 한 시대, 어느 공간에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정신질환을 ‘시대적 정신질환(transient mental illness)’이라 부르며, 그 실재성에 관한 복잡한 철학적 논증의 늪에 빠지기보다는 프래그머티즘의 관점을 수용하여 앞으로의 의학이 규명해야 할 영역으로 남겨 놓는다. 대신에 이 책에서 해킹의 주된 관심사는 그가 생물학에서 가져온 개념, 시대적 정신질환을 탄생시키고 번성케 하는 ‘생태학적 틈새(ecological niche)’라는 은유다. 어떤 시대적 정신질환(가령 ‘둔주’)이 특정 시대(‘세기말’)와 특정 장소(‘유럽대륙’)에 나타나 유행할 수 있는 것은 그때 그곳을 자신의 서식지로 만들도록 여러 상반된 힘들이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그 힘들, ‘벡터’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주제다.
하지만 이것을 둔주와 같은 시대적 정신질환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자연과학에 대해서 확고한 실재론자였던 해킹은 미셸 푸코의 영향 아래 인간과학(의학이나 심리학 같은)으로 관심을 넓힌 후에는 역사적 사례연구를 통해서 인간세계의 현상과 그 개념화의 상호작용을 추적하는 ‘역사적 존재론’을 전개했지만, 줄곧 사회구성주의에는 반대했다. 그는 정신질환의 생태학적 틈새에 사회적 벡터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나태한 용어인 ‘사회적 구성물’보다는 더 생생하고 더 구체적인 묘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와 똑같은 그들이 언제 어떻게 무너졌는가?
환자의 솟구치는 여행 욕구와 모험담에
매료된 스타 의사의 관찰기
이 책의 또 하나의 중심적 이야기는 우리의 스타 환자와 의사, 알베르와 티씨에의 관계다. 티씨에는 애초에 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알베르에게 관심을 가졌을까? 무엇보다 알베르의 놀라운 모험담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알베르는 여행하는 동안 수많은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사나운 개에 물려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고, 눈사태에 깔려 죽을 뻔하기도, 얼어붙은 라인강 위를 걸어가다 얼음이 깨져 강물에 휩쓸릴 뻔하기도 했다. 실제로 함께 탈영한 친구는 배고픔과 추위,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얼마 못 가 사망하고 말았다. 모스크바에서는 차르 암살범 무리로 오인되어 체포되었으며, 다행히 시베리아 유형은 면했으나 다른 무정부주의자들, 집시들과 함께 터키 국경까지 끌려가 추방당하는 형벌을 받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다 지어낸 얘기였을까? 최면 상태에서 그가 방문한 곳의 풍경 묘사는 정확했고, 만난 사람들도 해외 프랑스 교포들과 대사관의 증언과 증거를 종합해보면 모두 사실이었다. “알베르는 자기 나이도 잊을 수 있었고, 처음으로 친해졌던 사람도, 개에 물린 사건도, 무정부주의자로 오인되어 고초를 겪은 일도 모두 다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광활한 지평선과 찬탄하며 올려다보았던 기념비는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둔주가 거듭될수록 그가 이 여행을 즐겼다고도 말할 수 있다. 둔주의 원인이 간질성이든 히스테리성이든 다른 무엇이든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지만, 둔주 충동이 일단 습관화되면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유발될 수 있었다. 나중에 알베르는 둔주를 떠나기 며칠 전부터 신중히 여행서류와 가방을 챙기고 여비를 준비하기도 했다.
현대의 진단기준으로 알베르의 병인은 어릴 적 나무에서 떨어져 생긴 두부외상과 측두엽 간질, 해리성둔주의 복합적 요인 때문이었다고 추정된다. 그렇다면 국소적 감각이상과 과잉감각 같은 히스테리아 증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해킹은 알베르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증상을 (계획하지는 않았겠지만) 학습한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티씨에와 여러 해를 함께 하면서 티씨에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행동과, 한편으로는 통제할 수 없이 솟구치는 여행욕구가 자의적인 기억상실과 함께 모두 뭉뚱그려져 나타난 복합적 산물은 아니었을까?” “한 의사와 한 환자의 상호작용이 낳은, 반은 감응성 정신병이라고 불리는 광기이자, 반은 광대짓인 환상적인 거래”가 둔주라는 세기말 유행병의 서막을 연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이는 하나의 흥미로운 가능성에 불과하다.
해킹은 머리말에서 광기에 관한 이런 유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과연 어떤 종류의 이해인가?”라고 자문한다. “오래전에 죽은 광인들과, 유사하게 광기를 품었을 오래전에 죽은 의사들에 관한 이야기로 감히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현실도피인가? 단순한 엿보기 이상의 것일까?” 우리가 정신질환에만 주목하면 한때 삶을 누리던 인간이었던 환자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내면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우리 역시 정신의학 의사학(醫史學)자들처럼 환자와의 접점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와 똑같은 남자, 여자들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 요구된다.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의 본문 뒤에 옛 프랑스 의사들의 사례사(事例史) 화법을 그대로 보여주는 티씨에의 진찰기록을 덧붙인 이유일 것이다. 그 기록을 찬찬히 읽다 보면 우리는 특이한 환자와 의사에 대한 단순한 관음증을 넘어, 어느새 그들의 모험 가득한 여정의 진정한 길동무가 되어 있을 것이다.
흥미진진한 역사적 비화와
주요 인물들의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
시대적 정신질환과 그것을 가능케 한 생태학적 틈새에 관한 분석도 흥미롭지만, 이 책은 둔주와 그 주요 인물들에 얽힌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읽는 재미가 일품이다. 그중 몇 가지만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
*티씨에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9번이나 언급되지만 의사로서보다는 체육 진흥의 선구자로서 더 유명한 인물이다. 근대 올림픽을 창시하여 엘리트들의 경쟁식 스포츠를 뿌리내린 쿠베르탱의 라이벌로서 사회체육과 생활체육을 옹호했다. 멋진 체육관 시설과 육상트랙을 배격하고 프랑스 국토 전체가 하나의 일주 트랙이라고 주장했던 이 야외운동 마니아에게 알베르의 모험담은 너무나 매력적이었으리라.
*아르투르 랭보는 확실히 미치광이 같은 면이 있었고, 대단한 여행자였다. 그럼 혹시 미치광이 여행자였을까? 랭보 자신이 ‘둔주’라는 단어를 자주 썼으나, 그것은 둔주의 원래 뜻인 ‘도주’라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알베르가 아프리카의 알제리를 여행하던 즈음에 랭보는 더 먼 에티오피아의 중심부까지 나아갔다.
*1890년 유일한 엘리트계급 둔주 환자 에밀의 사례가 학계에 보고된다. 이 발표를 한 사람은 아드리앵 프루스트로,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아버지였다. 프루스트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지막 권에서 닥터 코타르는 마담 베르뒤랭의 하인이 트라우마로 인해 갑자기 다중인격이 나타났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것은 마르셀이 아버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였을까?
*프로이토스 왕의 세 딸이나 안티오페, 이오의 이야기처럼 그리스 신화에는 신들의 노여움을 사 미친 후(흔히 동물로 변한다) 광야를 떠도는 미치광이 여행자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황금 가지》의 작가 제임스 프레이저는 이것이 당시 실재했던 정신병을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하며, 말레이반도의 원주민 여자들이 주기적으로 광기에 사로잡혀 밀림을 헤매고 다니는 라타(latah)라는 증상과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라타가 처음 서구에 알려졌을 때 샤르코의 제자인 뚜렛은 이를 새로운 병리현상으로 진단하고 뚜렛증후군이라 이름붙였다. 샤르코에 의해 라타와 뚜렛증후군은 다른 질병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어쨌든 오늘날 유명한 뚜렛증후군은 라타 연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신실한 목사 앤설 본(Ansel Bourne)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고 2개월 후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존 브라운이라는 이름으로 잡화점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본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소설 《꿈 이야기》(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에도 언급될 만큼 미국의 둔주 사례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 기억상실을 겪는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이야기는 영화로 더 유명해진 소설 《본 아이덴티티》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외에도 몽테뉴와 모리아크의 글을 통해 본 보르도 지방의 역사와 풍광, 정서에 관한 이야기, 19세기 말 대중스포츠로 막 등장한 자전거 이야기, 19세기 말 정신의학계의 대부 샤르코와 그 제자들의 반란, 예수의 고난을 비난해 영원히 방랑하도록 저주받은 ‘유랑하는 유대인’ 전설과 살페트리에르 병원의 유대인 둔주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 등 흥미로운 역사적, 인문학적 정보가 풍부하다.
시대적 정신질환을 번성시키는
사회적 압력과 생태학적 틈새의 4가지 힘
해킹은 히스테리성 둔주라는 사례를 통해서 시대적 정신질환이 태어나고 번성할 수 있는 생태학적 틈새를 조성하는 4가지 힘을 제시한다.
(1)질병분류법: 어떤 증상이 정신질환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질병분류법이라는 기존 진단체계 안에 들어와야 한다. 둔주는 당시의 질병분류체계와 모순되지 않았고, 단지 히스테리아에 속하냐 간질에 속하냐가 논란이 되었을 뿐이다. 첨예한 논쟁 덕분에 둔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진단명으로서 유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히스테리아에 속한 것이 둔주에게는 불운이기도 했다. 히스테리아가 오래지 않아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정신의학계에서 퇴장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조기치매[정신분열증의 옛 이름]라는 새로운 진단명으로 대체되었다). 상위 진단명(히스테리아)이 허물어지자 그 아래 있던 하위 진단명(히스테리성 둔주)도 함께 흩어져버렸다.
(2)문화적 양극성: 시대적 정신질환은 동시대 문화에서 중대하게 인식되는 두 가지 요소의 중간에 위치해야 한다. 둔주에게 그 두 가지는 무엇이었을까? 당시는 대중관광이 막 보급되던 시기였고 중산층 사이에서 너도나도 외국을 여행하려는 욕구가 팽배했다. 낭만적 여행을 예찬하는 경향의 다른 한편에는 경기불황의 여파로 늘어난 떠돌이 노동자와 홈리스 같은 하층계급의 범죄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둔주는 대중관광 대 부랑자 공포, 낭만 대 범죄, 미덕 대 악덕이라는 양극단의 문화적 관념 사이에서 알베르와 같은 이들이 찾아낸 매우 좁은 선택지였다.
(3)식별 가능성: 경찰은 물론 일반인의 눈에도 불안과 이상행동이 뚜렷이 보여야 하고, 환자 스스로도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애써야 한다. 또한 환자를 식별해내는 사회적 감시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세기말 프랑스 시민은 여행을 하려면 통행증을 소지해야 했고, 특히 남자는 탈영병과 병역기피자를 색출하기 위한 불심검문에 언제든 응해야 했다. 부랑자를 감옥과 수용소에 가두기 위한 반부랑자법도 19세기 내내 온존해서 둔주 환자가 경찰의 눈을 피해 돌아다니기란 어려웠다. 실제로, 알베르의 둔주 기간 중 절반은 부랑죄로 체포되어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4)해방구로서의 기능: 19세기의 히스테리아가 몸으로 표현된 여성의 무력함이라면, 둔주는 그 남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둔주 환자들은 대개 안정된 직업을 지닌 도시 거주자였고 범죄를 혐오했지만 무력한 일상에서의 일탈, 도주를 꿈꾸었다. 둔주는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무력한 남자들에게 당시의 문화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어떤 해방구로의 기능을 했다. “붕괴되기 직전의 정신적 위기를 수시로 겪었던 이 남자들은 정신질환으로 낙인찍힘으로써 오히려 자유로워졌고, 그렇게 정신질환자가 됨으로써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의학은 그 무력함을 배양하여 당대의 문화, 관광여행과 부랑죄라는 양극단이 내포된 문화적 토양에서 성공적으로 의료화를 이루어내었던 것이다.”
4가지 벡터의 의미는 둔주 진단이 프랑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던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를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미국에도 히스테리성 둔주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둔주가 아니라 당시 미국에서 유행한 다른 진단, 곧 다중인격으로 분류되었다(질병분류법). 미국에서는 관광사업이 아직 기업화되지 않았고, 서부 개척을 고취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부랑자는 큰 사회문제가 아니었다(문화적 양극성). 미국은 징집제가 아니라 모병제여서 탈영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고, 여행서류를 조직적으로 조사하지도 신분증명서조차 필요로 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집과 일터에서 도주하는 것을 반사회적 행위로 처벌했지만, 미국에서는 둔주 환자가 죄를 짓지 않는 한 눈에 띌 일이 없었다(식별 가능성). 프랑스보다 10년 늦게 둔주 연구를 시작한 독일의 경우에도 나름의 둔주 일화들이 있었고 의사들이 ‘방랑벽’을 독립된 진단명으로 만들려 애를 썼지만 4가지 벡터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에 둔주가 번성할 생태학적 틈새를 만들지 못했다.
저자소개
지은이 : 이언 해킹Ian Hacking
이언 해킹은 초기에 토머스 쿤, 임레 라카토스, 파울 파이어아벤트 등의 영향을 받아 과학철학에 대한 역사적 접근법으로 유명해졌으나 거기서 더 나아가 인간과학으로 연구의 중심을 옮겼다. 특히 학 자들이 인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인간 유형의 개념을 고안해 내면, 역으로 그러한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고리 효과looping effect’를 제시하여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즉 ‘아 동학대’와 ‘다중인격장애’에 대한 개념의 발전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타인을 ‘학대받는 아동’나 ‘아동학대자’ ‘다중인격 환자’로 규정함으로써 그러한 사람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해킹은 과학의 군사화가 한참일 때 이를 비판하는 철학 논문을 썼고, 극단적 사회구성주의를 비판하는 《대체 무엇이 사회적으 로 구성되었다는 말인가》(1999)라는 책을 펴내 사회구성주의자들의 격렬한 비난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캐나다의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탠포드 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거쳐 토론토 대학교의 철학 분야 대학직속 석좌교수로 있었다. 이후 콜레 주 드 프랑스의 ‘과학적 개념의 철학과 역사’ 교수이자 학과장을 거쳐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지은 책으로 《통계적 영향의 논리》, 《확률의 출현》, 《철학에 왜 언어가 문제가 되는가》, 《표상하기와 개입하기》, 《과학적 혁명》, 《영혼을 다시 쓰다》, 《미치광이 여행자》, 《대체 무엇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었다는 말인가》, 《확률과 귀납 논리 입문》, 《역사적 존재론》 등이 있다.
옮긴이 : 최보문
책정보 및 내용요약
지금은 잊혀진 어느 정신질환의 기묘한 이야기
평범한 남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얼마 후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부랑자의 모습으로 발견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그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최면을 걸자 모든 여정을 기억해내는데…….《미치광이 여행자》는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한 특이한 정신질환에 관한 이야기다. 1887년 프랑스의 한 가스정비공 환자를 통해 처음 알려진, 강박적인 여행 욕구에 시달리는 그 질병은 당시 정신의학계에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놀랍게도 1909년 마지막 환자를 끝으로 의학사에서 돌연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은 인상파 그림과도 같은 세기말 유럽대륙의 풍경 속에서 펼쳐진, 달아나려는 환자들과 잡으려는 경찰 그리고 그들을 변호하고 치료하려는 의사들이 벌인 20여 년간의 흥미로운 소동극을 자세히 복기하며 묻는다. 어떻게 정신병이 갑자기 생겨났다가 사라질 수 있는가? 미치광이 여행자들이 앓은 정신질환은 정말 실재했는가? 어떤 정신질환이 특정한 시대, 특정한 장소에서만 존재한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인가? 이 너무도 기묘한 광기의 탄생과 몰락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정신질환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는가?
목차
옮긴이의 말
머리말
1장 그는 왜 갑자기 떠났을까?
2장 방랑은 병이다
3장 아름다운 시절이 낳은 광기
4장 그 병은 정말 실재했을까?
서플먼트1 알베르를 괴롭힌 것은 무엇이었을까?
서플먼트2 유랑하는 유대인
서플먼트3 독일의 ‘방랑벽’
기록1 알베르의 이야기 (1872년~1886년 5월)(5월)
기록2 알베르 관찰일지 (1886년 6월~1887년 2월)(2월)
기록3 꿈 (1887년 5월~1889년 9월)(9월)
기록4 병인적 꿈 (1892년)(1892년)
기록5 실험 (1888년, 1893년)(1893년)
기록6 에필로그 (1907년)(1907년)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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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쉽게 읽히도록 글을 쓰면서도
울림은 크게 만드는 작가로서의 비범한 화법을 가지고 있다.”
일레인 쇼월터(문학평론가, 작가)
“해킹은 보기 드문 연민과 품격으로 글을 쓸 뿐 아니라
철학적 배경지식을 이용하여 의학사의 이 뒤안길을 커다란 울림으로 채운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그는 왜 미친 듯이 계속 걸었는가?
영원한 것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가던
‘아름다운 시절’ 프랑스, 미스터리한 세기말 유행병
1886년 프랑스 보르도의 정신병원에 한 남자가 제 발로 찾아온다. 알베르 다다(Albert Dadas, 1860~1907)라는 이름의, 평소 성실하고 수줍음 많던 가스정비공에게는 남다른 문제가 있었다. 그는 12살 때부터 갑작스레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는 경험을 반복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여행을 떠나려는 욕구에 사로잡히면 그는 가족도 직장도 버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행을 하는지도 모른 채 엄청난 속도로 무작정 걸어갔고, 낯선 곳에서 제정신을 차리고 나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그의 예기치 않은 여행은 점점 길어져 보르도를 넘어 파리와 마르세유, 벨기에와 독일, 오스트리아까지 이어졌고, 급기야 군대에서 탈영해 알제리와 러시아, 터키까지 다녀왔다. 때로 기차와 배를 타기도 했지만 주로 걸어다녔고, 시속 12킬로미터(일반인의 걷기 평균속력은 시속 4~5킬로미터 정도다) 속력으로 하루 70킬로미터를 걸을 때도 있었다.
놀랍게도, 젊은 담당 의사 필리프 티씨에(Philippe Tissie, 1852~1935)가 최면을 걸자 알베르는 잊고 있던 몇 주 전, 몇 년 전 여행 때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다 기억해냈다. 티씨에는 1887년 〈미치광이 여행자〉라는 낭만적인 제목의 박사논문에서 이 새로운 정신질환을 학계에 처음 보고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이후 비슷한 사례들이 프랑스는 물론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에서 잇달아 보고되기 시작했다. 당시 정신의학계는 미치광이 여행자의 병인(病因)을 둘러싸고 일대 논쟁을 벌였고, 치열한 논쟁은 다시 이 진단의 유행을 부채질했다. 이 둔주가 세기말의 유행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정신의학계의 양대 미스터리였던 간질과 히스테리아를 둘러싼 논쟁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더 놀랍게도, 1909년 낭트에서 열린 정신의학 총회를 끝으로 이 특이한 정신질환에 대한 관심은 차갑게 식어버렸고, 오늘날 이 정신질환은 일반인은 물론 정신과 의사들에게도 거의 잊혀 버렸다.
‘둔주(fugue, 遁走 / ‘달아나다’ ‘도주’라는 뜻에서 유래)’ ‘보행성 자동증’ ‘방랑벽’ 등으로 불린 이 정신질환은 현재 미국정신의학협회의 《진단과 통계 요람》(DSM)에 ‘해리성둔주’라는 진단명으로 아직도 올라 있지만 사실상 거의 진단되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은 한 세기 전 20여 년간 유행한 이 특이한 사례를 검토하며 정신질환의 실재성에 관한 중대한 물음을 던진다.
어느 한 시대, 한 공간에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시대적 정신질환’
정신질환은 실재하는가?
해킹은 책의 서두에서 왜, 지금, 이미 ‘죽었다’고 볼 수 있는 질병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지 분명히 밝힌다. “현재 우리는 온갖 정신질환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 많은 신경증 중 어떤 것이 꾸며낸 것인지, 문화적 산물인지, 의사가 확대시킨 것인지, 아니면 그저 카피캣 증후군 같은 모방에 불과한 것인지, 모호한 말이긴 하나 단적으로 말해서 어느 게 실재하는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월경전증후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섭식장애(거식증과 폭식증), 해리성정체성장애(다중인격), 반사회성인격장애, 간헐적폭발성장애(분노조절장애), 만성피로증후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해킹이 드는 의심스러운 질병의 목록은 끝이 없다. 이것들은 “정말 실재하는 정신장애” “정신의학적 실체를 가진 진짜 질병”일까? 어쩌면 사회와 미디어가 조장하고 의사들이 의료화한, 의학적으로 실질적 내용이라곤 전혀 없는, 정신의학적 인공물은 아닐까? (현대의 사례가 아니라 굳이 둔주라는 옛날의 사례를 든 것은 즉각적인 당파적 반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해킹은 직설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해킹은 둔주와 같이 어느 한 시대, 어느 공간에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정신질환을 ‘시대적 정신질환(transient mental illness)’이라 부르며, 그 실재성에 관한 복잡한 철학적 논증의 늪에 빠지기보다는 프래그머티즘의 관점을 수용하여 앞으로의 의학이 규명해야 할 영역으로 남겨 놓는다. 대신에 이 책에서 해킹의 주된 관심사는 그가 생물학에서 가져온 개념, 시대적 정신질환을 탄생시키고 번성케 하는 ‘생태학적 틈새(ecological niche)’라는 은유다. 어떤 시대적 정신질환(가령 ‘둔주’)이 특정 시대(‘세기말’)와 특정 장소(‘유럽대륙’)에 나타나 유행할 수 있는 것은 그때 그곳을 자신의 서식지로 만들도록 여러 상반된 힘들이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그 힘들, ‘벡터’를 밝히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주제다.
하지만 이것을 둔주와 같은 시대적 정신질환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자연과학에 대해서 확고한 실재론자였던 해킹은 미셸 푸코의 영향 아래 인간과학(의학이나 심리학 같은)으로 관심을 넓힌 후에는 역사적 사례연구를 통해서 인간세계의 현상과 그 개념화의 상호작용을 추적하는 ‘역사적 존재론’을 전개했지만, 줄곧 사회구성주의에는 반대했다. 그는 정신질환의 생태학적 틈새에 사회적 벡터가 있음은 분명하지만, 나태한 용어인 ‘사회적 구성물’보다는 더 생생하고 더 구체적인 묘사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와 똑같은 그들이 언제 어떻게 무너졌는가?
환자의 솟구치는 여행 욕구와 모험담에
매료된 스타 의사의 관찰기
이 책의 또 하나의 중심적 이야기는 우리의 스타 환자와 의사, 알베르와 티씨에의 관계다. 티씨에는 애초에 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알베르에게 관심을 가졌을까? 무엇보다 알베르의 놀라운 모험담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알베르는 여행하는 동안 수많은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사나운 개에 물려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고, 눈사태에 깔려 죽을 뻔하기도, 얼어붙은 라인강 위를 걸어가다 얼음이 깨져 강물에 휩쓸릴 뻔하기도 했다. 실제로 함께 탈영한 친구는 배고픔과 추위,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얼마 못 가 사망하고 말았다. 모스크바에서는 차르 암살범 무리로 오인되어 체포되었으며, 다행히 시베리아 유형은 면했으나 다른 무정부주의자들, 집시들과 함께 터키 국경까지 끌려가 추방당하는 형벌을 받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다 지어낸 얘기였을까? 최면 상태에서 그가 방문한 곳의 풍경 묘사는 정확했고, 만난 사람들도 해외 프랑스 교포들과 대사관의 증언과 증거를 종합해보면 모두 사실이었다. “알베르는 자기 나이도 잊을 수 있었고, 처음으로 친해졌던 사람도, 개에 물린 사건도, 무정부주의자로 오인되어 고초를 겪은 일도 모두 다 잊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광활한 지평선과 찬탄하며 올려다보았던 기념비는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둔주가 거듭될수록 그가 이 여행을 즐겼다고도 말할 수 있다. 둔주의 원인이 간질성이든 히스테리성이든 다른 무엇이든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지만, 둔주 충동이 일단 습관화되면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유발될 수 있었다. 나중에 알베르는 둔주를 떠나기 며칠 전부터 신중히 여행서류와 가방을 챙기고 여비를 준비하기도 했다.
현대의 진단기준으로 알베르의 병인은 어릴 적 나무에서 떨어져 생긴 두부외상과 측두엽 간질, 해리성둔주의 복합적 요인 때문이었다고 추정된다. 그렇다면 국소적 감각이상과 과잉감각 같은 히스테리아 증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해킹은 알베르가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증상을 (계획하지는 않았겠지만) 학습한 것은 아닐까 의심한다. “티씨에와 여러 해를 함께 하면서 티씨에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행동과, 한편으로는 통제할 수 없이 솟구치는 여행욕구가 자의적인 기억상실과 함께 모두 뭉뚱그려져 나타난 복합적 산물은 아니었을까?” “한 의사와 한 환자의 상호작용이 낳은, 반은 감응성 정신병이라고 불리는 광기이자, 반은 광대짓인 환상적인 거래”가 둔주라는 세기말 유행병의 서막을 연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이는 하나의 흥미로운 가능성에 불과하다.
해킹은 머리말에서 광기에 관한 이런 유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과연 어떤 종류의 이해인가?”라고 자문한다. “오래전에 죽은 광인들과, 유사하게 광기를 품었을 오래전에 죽은 의사들에 관한 이야기로 감히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것은 어떤 종류의 현실도피인가? 단순한 엿보기 이상의 것일까?” 우리가 정신질환에만 주목하면 한때 삶을 누리던 인간이었던 환자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내면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우리 역시 정신의학 의사학(醫史學)자들처럼 환자와의 접점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와 똑같은 남자, 여자들이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어떻게 무너져갔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 요구된다. 아마도 이것이 이 책의 본문 뒤에 옛 프랑스 의사들의 사례사(事例史) 화법을 그대로 보여주는 티씨에의 진찰기록을 덧붙인 이유일 것이다. 그 기록을 찬찬히 읽다 보면 우리는 특이한 환자와 의사에 대한 단순한 관음증을 넘어, 어느새 그들의 모험 가득한 여정의 진정한 길동무가 되어 있을 것이다.
흥미진진한 역사적 비화와
주요 인물들의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
시대적 정신질환과 그것을 가능케 한 생태학적 틈새에 관한 분석도 흥미롭지만, 이 책은 둔주와 그 주요 인물들에 얽힌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읽는 재미가 일품이다. 그중 몇 가지만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
*티씨에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9번이나 언급되지만 의사로서보다는 체육 진흥의 선구자로서 더 유명한 인물이다. 근대 올림픽을 창시하여 엘리트들의 경쟁식 스포츠를 뿌리내린 쿠베르탱의 라이벌로서 사회체육과 생활체육을 옹호했다. 멋진 체육관 시설과 육상트랙을 배격하고 프랑스 국토 전체가 하나의 일주 트랙이라고 주장했던 이 야외운동 마니아에게 알베르의 모험담은 너무나 매력적이었으리라.
*아르투르 랭보는 확실히 미치광이 같은 면이 있었고, 대단한 여행자였다. 그럼 혹시 미치광이 여행자였을까? 랭보 자신이 ‘둔주’라는 단어를 자주 썼으나, 그것은 둔주의 원래 뜻인 ‘도주’라는 의미에서였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알베르가 아프리카의 알제리를 여행하던 즈음에 랭보는 더 먼 에티오피아의 중심부까지 나아갔다.
*1890년 유일한 엘리트계급 둔주 환자 에밀의 사례가 학계에 보고된다. 이 발표를 한 사람은 아드리앵 프루스트로,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아버지였다. 프루스트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지막 권에서 닥터 코타르는 마담 베르뒤랭의 하인이 트라우마로 인해 갑자기 다중인격이 나타났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이것은 마르셀이 아버지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였을까?
*프로이토스 왕의 세 딸이나 안티오페, 이오의 이야기처럼 그리스 신화에는 신들의 노여움을 사 미친 후(흔히 동물로 변한다) 광야를 떠도는 미치광이 여행자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황금 가지》의 작가 제임스 프레이저는 이것이 당시 실재했던 정신병을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하며, 말레이반도의 원주민 여자들이 주기적으로 광기에 사로잡혀 밀림을 헤매고 다니는 라타(latah)라는 증상과의 유사성에 주목한다. 라타가 처음 서구에 알려졌을 때 샤르코의 제자인 뚜렛은 이를 새로운 병리현상으로 진단하고 뚜렛증후군이라 이름붙였다. 샤르코에 의해 라타와 뚜렛증후군은 다른 질병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어쨌든 오늘날 유명한 뚜렛증후군은 라타 연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신실한 목사 앤설 본(Ansel Bourne)이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고 2개월 후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존 브라운이라는 이름으로 잡화점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본은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소설 《꿈 이야기》(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에도 언급될 만큼 미국의 둔주 사례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 기억상실을 겪는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이야기는 영화로 더 유명해진 소설 《본 아이덴티티》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외에도 몽테뉴와 모리아크의 글을 통해 본 보르도 지방의 역사와 풍광, 정서에 관한 이야기, 19세기 말 대중스포츠로 막 등장한 자전거 이야기, 19세기 말 정신의학계의 대부 샤르코와 그 제자들의 반란, 예수의 고난을 비난해 영원히 방랑하도록 저주받은 ‘유랑하는 유대인’ 전설과 살페트리에르 병원의 유대인 둔주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 등 흥미로운 역사적, 인문학적 정보가 풍부하다.
시대적 정신질환을 번성시키는
사회적 압력과 생태학적 틈새의 4가지 힘
해킹은 히스테리성 둔주라는 사례를 통해서 시대적 정신질환이 태어나고 번성할 수 있는 생태학적 틈새를 조성하는 4가지 힘을 제시한다.
(1)질병분류법: 어떤 증상이 정신질환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질병분류법이라는 기존 진단체계 안에 들어와야 한다. 둔주는 당시의 질병분류체계와 모순되지 않았고, 단지 히스테리아에 속하냐 간질에 속하냐가 논란이 되었을 뿐이다. 첨예한 논쟁 덕분에 둔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진단명으로서 유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히스테리아에 속한 것이 둔주에게는 불운이기도 했다. 히스테리아가 오래지 않아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며 정신의학계에서 퇴장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조기치매[정신분열증의 옛 이름]라는 새로운 진단명으로 대체되었다). 상위 진단명(히스테리아)이 허물어지자 그 아래 있던 하위 진단명(히스테리성 둔주)도 함께 흩어져버렸다.
(2)문화적 양극성: 시대적 정신질환은 동시대 문화에서 중대하게 인식되는 두 가지 요소의 중간에 위치해야 한다. 둔주에게 그 두 가지는 무엇이었을까? 당시는 대중관광이 막 보급되던 시기였고 중산층 사이에서 너도나도 외국을 여행하려는 욕구가 팽배했다. 낭만적 여행을 예찬하는 경향의 다른 한편에는 경기불황의 여파로 늘어난 떠돌이 노동자와 홈리스 같은 하층계급의 범죄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둔주는 대중관광 대 부랑자 공포, 낭만 대 범죄, 미덕 대 악덕이라는 양극단의 문화적 관념 사이에서 알베르와 같은 이들이 찾아낸 매우 좁은 선택지였다.
(3)식별 가능성: 경찰은 물론 일반인의 눈에도 불안과 이상행동이 뚜렷이 보여야 하고, 환자 스스로도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애써야 한다. 또한 환자를 식별해내는 사회적 감시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세기말 프랑스 시민은 여행을 하려면 통행증을 소지해야 했고, 특히 남자는 탈영병과 병역기피자를 색출하기 위한 불심검문에 언제든 응해야 했다. 부랑자를 감옥과 수용소에 가두기 위한 반부랑자법도 19세기 내내 온존해서 둔주 환자가 경찰의 눈을 피해 돌아다니기란 어려웠다. 실제로, 알베르의 둔주 기간 중 절반은 부랑죄로 체포되어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4)해방구로서의 기능: 19세기의 히스테리아가 몸으로 표현된 여성의 무력함이라면, 둔주는 그 남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둔주 환자들은 대개 안정된 직업을 지닌 도시 거주자였고 범죄를 혐오했지만 무력한 일상에서의 일탈, 도주를 꿈꾸었다. 둔주는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무력한 남자들에게 당시의 문화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 어떤 해방구로의 기능을 했다. “붕괴되기 직전의 정신적 위기를 수시로 겪었던 이 남자들은 정신질환으로 낙인찍힘으로써 오히려 자유로워졌고, 그렇게 정신질환자가 됨으로써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의학은 그 무력함을 배양하여 당대의 문화, 관광여행과 부랑죄라는 양극단이 내포된 문화적 토양에서 성공적으로 의료화를 이루어내었던 것이다.”
4가지 벡터의 의미는 둔주 진단이 프랑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행하지 않았던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를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미국에도 히스테리성 둔주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둔주가 아니라 당시 미국에서 유행한 다른 진단, 곧 다중인격으로 분류되었다(질병분류법). 미국에서는 관광사업이 아직 기업화되지 않았고, 서부 개척을 고취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부랑자는 큰 사회문제가 아니었다(문화적 양극성). 미국은 징집제가 아니라 모병제여서 탈영 문제가 심각하지 않았고, 여행서류를 조직적으로 조사하지도 신분증명서조차 필요로 하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집과 일터에서 도주하는 것을 반사회적 행위로 처벌했지만, 미국에서는 둔주 환자가 죄를 짓지 않는 한 눈에 띌 일이 없었다(식별 가능성). 프랑스보다 10년 늦게 둔주 연구를 시작한 독일의 경우에도 나름의 둔주 일화들이 있었고 의사들이 ‘방랑벽’을 독립된 진단명으로 만들려 애를 썼지만 4가지 벡터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에 둔주가 번성할 생태학적 틈새를 만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