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민족, 탈국가, 탈애국을 통해
구체화되는 톨스토이의 비폭력 평화 사상
톨스토이의 반전 평화 사상을 관통하는 것은 선함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에 기반을 두고 탈민족, 탈국가, 탈애국을 통해 자신의 평화 사상을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톨스토이는 러일 전쟁을 기독교 국가와 비기독교 국가의 충돌로 보았다. 러일 전쟁은 기독교 사회의 패배이자, 서유럽 국가의 모순을 폭로한 계기인 것이다. 그동안 인류가 쌓아 올린 기독교 문화는 중요하지 않으며, 쓸모없음을 러일 전쟁이 보여주었다고 톨스토이는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기독교 민족들이 이제는 그들의 노력을 군사력이 아닌, 기독교 교리에 충실한 삶의 구조 형성에 기울여야 할 때라고 믿었다.
러일 전쟁의 패배 이후, 톨스토이는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소통, 새로운 믿을 가진 대변혁의 시대를 꿈꾸었다. 더 이상 기독교에서 말하는 기적이나 성상, 권력을 숭배하는 것 대신에, 폭력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도덕적인 마음’을 따르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변혁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국가라고 불리는 인위적인 조직에 생명과 자유를 무조건적으로 희생할 필요가 없다고 톨스토이는 주장했다. 국가의 이기심으로 자행되는 전쟁에 대한 폭력 행위에 절대로 협조하지 말 것을 사람들에게 당부하며, 톨스토이는 비폭력 반전 평화 사상을 구체화시켜 나간다.
러일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다
톨스토이가 이 책 《비폭력에 대하여》에 실린 글들을 집필하던 시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우리가 역사적으로도 잘 알고 있는 러일 전쟁이 발발하기 전과 끝난 후였다.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에 형 니콜라이를 따라 무작정 군에 입대했다. 5년간의 군 생활은 그의 초기 작품인 <어린 시절>과 《전쟁과 평화》 등 자신의 여러 작품에 많은 문학적 영감을 주었지만, 러시아 군대의 실상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여러 전투를 참여하며 무분별한 죽음을 마주한 톨스토이는 전쟁의 참상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의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도 여기서부터 시작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폭력에 대하여》는 러일 전쟁과 관련된 톨스토이의 세 편의 에세이를 담은 것이다. 세 편의 에세이에는 전쟁의 참상이 가감 없이 묘사되어 있으며, 전쟁의 의미를 규명하고자 하는 톨스토이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전쟁이 꼭 필요한 것인가?’ 톨스토이는 이 질문을 시작으로 전쟁의 부조리함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한다. “전쟁은 고통스러운 노동이며, 비난받아야 할 현상이자,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비극”이라고 말이다. 우리나라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러일 전쟁은 1904년 일본이 아르투르항(현재의 뤼순항)에 있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함으로써 시작되었고, 결국 러시아의 패배로 끝났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자면, 러일 전쟁은 러시아 민중의 관심을 러시아 내부의 문제에서 전쟁으로 돌리게 했고, 러시아의 패배로 전제국가의 지위와 사회 조직이 파괴된 사건이었다.
크림 전쟁의 패배를 경험했던 톨스토이에게 러일 전쟁은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떠오르게 했다. 이에 톨스토이는 세 편의 에세이 <다시 생각하십시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세기말>을 통해 때로는 간결하고 단호하게, 때로는 호소력 짙은 수사로 전쟁의 근본 원인과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폭력은 인간 본성에 반하는 비극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전쟁과 폭력
<다시 생각하십시오!>에서는 러일 전쟁을 막기 위한 톨스토이의 일침과 인권의 존엄성에 대한 호소를 담고 있다. 국가와 지배 계층이 농민과 노동자들을, 특히 젊은이들을 전쟁에 보내고 있다고 호소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특히, 톨스토이는 전쟁에 관한 자신의 시각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다수의 에피그램을 담았다. 볼테르, 기 드 모파상 등의 작가부터, 노자, 파스칼, 칸트 등의 철학자와 아우렐리우스, 주세페 마치니 등의 지도자들까지, 여러 사상가들의 말을 빌려 전쟁의 부조리와 경고의 메시지를 시각적이면서도, 의미적으로 두드러지게 드러내었다. 여기에는 작가와 철학자들의 주장은 물론, 성경과 민중들의 편지도 포함이 된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에서도 전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전쟁은 그 준비 과정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의 불필요한 희생과 경제적 낭비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벨기에 경제학자인 구스타프 드 몰리나리의 말을 인용하며 전쟁에 소비되는 비용과 군의 유지비로 인한 재정 손실을 수치로 보여주기까지 한다. 나아가 전쟁에 관련된 각계각층의 입장을 분석하면서 인간의 이기적인 면을 보여준다.
“유럽의 여러 국가는 1천 3백억의 부채를 지고 있는데, 이 가운데 약 천 백억은 또 한 세기 동안 생겼으며 이 어마어마한 부채 전부가 특별히 전쟁에 지출되었다는 것, 유럽의 여러 국가는 평화 시에도 4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군대에 배치시키고, 전시에는 1억 천만 명을 동원할 수 있고, 국가 예산의 3분의 2가 부채에 대한 이자와 육군과 해군의 유지비로 투입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데서 그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폭력적인 세태가 반복되는 것은 기계적인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본 톨스토이는 국민들이 다 함께 국가에 반하여 전쟁을 원하지 말고, 참여하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인다(<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또한, 러일 전쟁 패배 이후에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으며, 기존에 있던 뒤떨어진 낡은 기독교주의와 정치체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세기말>). 특히, 톨스토이는 강력하게 사회제도의 변화를 추구하였는데,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는 비폭력을 수반한 인권의 평등함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급진적인 사상 속에서도 인간 본성의 선함을 믿은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전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였고, 이에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바로 “모든 개개인에게 호소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무익하고 비이성적이며 그 악을 확대할 뿐이라며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고, 각 개인의 도덕적 힘으로 폭력을 견뎌내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성취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다.
“이상하게 여겨지겠지만, 인간이 초래한 불행으로부터, 그리고 불행 가운데 가장 무서운 전쟁으로부터 인간을 가장 확실하고 의심의 여지 없이 구제하는 것은 어떤 외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 아니라, 모든 개별 인간의 자각에 호소하기만 하면 된다. 이 자각은 바로 1900년 전 그리스도가 제안한 것으로 모든 사람이 참회하고 스스로에게 그가 누구이며, 그가 왜 사는지, 그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무정부주의를 강하게 외치며, 국가와 교회의 위선을 폭로하였던 톨스토이는 당시 러시아 사회를 무섭게 뒤흔들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급진적인 시선을 통해 톨스토이의 말은 큰 울림이 되어 전쟁과 폭력의 근본적인 문제를 끊임없이 재고하게 만든다. 비폭력과 평화를 설파한 톨스토이의 사상은 그가 서거한 지 10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전쟁과 대립이 끊이지 않고, 군대와 경찰이 사회 약자보다 권력을 가진 자의 편을 드는 현실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강렬한 현재성을 가진다. 톨스토이의 깊고 넓은 사유를 통해 인류의 공동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다시 톨스토이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책 속으로
“또다시 전쟁이다. 또다시 어떤 사람에게도 필요하지 않으며, 무엇으로도 유발할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된다. 또다시 거짓이 시작되고, 또다시 사람들 모두가 넋이 나가 짐승이 된다.” ─ <다시 생각하십시오!> 1장, 13쪽 중에서
“전쟁의 무의미함과 불필요함을 노골적으로 폭로하고, 전쟁의 잔인함, 비도덕성, 야만성을 묘사한 볼테르, 몽테뉴, 파스칼, 조너선 스위프트, 칸트, 스피노자 등 수백 명의 작가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만 같다. 무엇보다 인간의 형제애, 신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가르쳤던 그리스도의 설교도 없었던 것만 같다. 만일 이 모든 것을 기억해 낸 다음 지금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본다면, 전쟁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인간 이성의 무기력에 대한 인식에서 오는 가장 무서운 공포를 체험할 것이다. 유일하게 인간을 짐승과 구별시키며 인간의 존엄을 형성하는 이성은 불필요하고 무익하며, 심지어는 그저 무익한 것이 아니라 해로운 부가물이 된다. 마치 말의 머리에서 벗겨져 발걸음을 엉키게 해 말을 자극하기만 할 뿐인 굴레처럼 말이다.” ─ <다시 생각하십시오!> 3장, 28~29쪽 중에서
“우리 세계, 우리 시대의 사람들 모두는, 다시 말해서 기독교 교의의 본질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잠시 동안 자신의 일을 멈추고 사람들이 자신을 무엇이라 여기든지, 즉 황제인지 병사인지 장관인지 기자인지를 잊고서,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활동이 유익한지 합법적인지 이성적인지 의심해 보기 위해, 그가 누구이며, 그의 사명은 어디에 있는지를 말이다.” ─ <다시 생각하십시오!> 6장, 51쪽 중에서
저자소개
지은이 :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Lev Nikolayevich Tolstoy)
옮긴이 : 박미정
책정보 및 내용요약
지배계급에 착취당하고 고통받는 민중에 대한
톨스토이의 깊은 애정과 연대
톨스토이 비폭력 사상집 국내 초역!
《비폭력에 대하여》는 바다출판사 톨스토이 사상 선집 제4권 《죽이지 마라》에 이어 국내에는 소개된 적이 없는 톨스토이 비폭력 반전 평화 사상을 담은 책이다. 러시아문학 연구자들이 직접 선별하여 번역한 국내 초역본이다. 지금까지 톨스토이의 비폭력 반전 평화론을 중역으로 다룬 책들은 간혹 있었지만, 러시아어 원전에 기반한 번역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처음 소개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더 깊은 의미가 있다.
《비폭력에 대하여》는 톨스토이의 후기 비폭력 평화 사상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비폭력과 평화에 대한 강한 신념과 실천 방안은 물론, 전쟁과 폭력에 의존해 유지되는 당시 유럽 국가 체제에 대한 비판과 변혁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 애국심, 전쟁과 폭력, 기독교의 교리를 비판한 톨스토이와 그의 글에서 나타난 사상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인류애를 기반한 진정한 톨스토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에서 출간된 100여 권의 《톨스토이 전집》 중 비폭력과 반전 평화론을 담은 글을 선별해 번역한 《비폭력에 대하여》에는 평화에 대한 톨스토이의 굳은 신념과 지배계급에 의해 착취당하고 고통받는 농민과 노동자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대의 정신이 담겨 있다. 또한 이 책은 시대에 앞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지지하고, 폭력을 재생산하는 애국주의(애국심)를 비판하며, 더 나아가 체제를 바꾸려고 노력한 급진적인 사회 사상가로서의 톨스토이의 면모를 새롭게 사유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목차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 109
세기말 · 187
옮긴이 해설 : 러일 전쟁, 그리고 새로운 시작 · 267
레프 톨스토이 연보 ·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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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민족, 탈국가, 탈애국을 통해
구체화되는 톨스토이의 비폭력 평화 사상
톨스토이의 반전 평화 사상을 관통하는 것은 선함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에 기반을 두고 탈민족, 탈국가, 탈애국을 통해 자신의 평화 사상을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톨스토이는 러일 전쟁을 기독교 국가와 비기독교 국가의 충돌로 보았다. 러일 전쟁은 기독교 사회의 패배이자, 서유럽 국가의 모순을 폭로한 계기인 것이다. 그동안 인류가 쌓아 올린 기독교 문화는 중요하지 않으며, 쓸모없음을 러일 전쟁이 보여주었다고 톨스토이는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기독교 민족들이 이제는 그들의 노력을 군사력이 아닌, 기독교 교리에 충실한 삶의 구조 형성에 기울여야 할 때라고 믿었다.
러일 전쟁의 패배 이후, 톨스토이는 새로운 세계관과 새로운 소통, 새로운 믿을 가진 대변혁의 시대를 꿈꾸었다. 더 이상 기독교에서 말하는 기적이나 성상, 권력을 숭배하는 것 대신에, 폭력이 아닌,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도덕적인 마음’을 따르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변혁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국가라고 불리는 인위적인 조직에 생명과 자유를 무조건적으로 희생할 필요가 없다고 톨스토이는 주장했다. 국가의 이기심으로 자행되는 전쟁에 대한 폭력 행위에 절대로 협조하지 말 것을 사람들에게 당부하며, 톨스토이는 비폭력 반전 평화 사상을 구체화시켜 나간다.
러일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다
톨스토이가 이 책 《비폭력에 대하여》에 실린 글들을 집필하던 시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우리가 역사적으로도 잘 알고 있는 러일 전쟁이 발발하기 전과 끝난 후였다. 톨스토이는 젊은 시절에 형 니콜라이를 따라 무작정 군에 입대했다. 5년간의 군 생활은 그의 초기 작품인 <어린 시절>과 《전쟁과 평화》 등 자신의 여러 작품에 많은 문학적 영감을 주었지만, 러시아 군대의 실상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여러 전투를 참여하며 무분별한 죽음을 마주한 톨스토이는 전쟁의 참상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의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도 여기서부터 시작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폭력에 대하여》는 러일 전쟁과 관련된 톨스토이의 세 편의 에세이를 담은 것이다. 세 편의 에세이에는 전쟁의 참상이 가감 없이 묘사되어 있으며, 전쟁의 의미를 규명하고자 하는 톨스토이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 전쟁이 꼭 필요한 것인가?’ 톨스토이는 이 질문을 시작으로 전쟁의 부조리함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한다. “전쟁은 고통스러운 노동이며, 비난받아야 할 현상이자,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비극”이라고 말이다. 우리나라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은 러일 전쟁은 1904년 일본이 아르투르항(현재의 뤼순항)에 있던 러시아 함대를 공격함으로써 시작되었고, 결국 러시아의 패배로 끝났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자면, 러일 전쟁은 러시아 민중의 관심을 러시아 내부의 문제에서 전쟁으로 돌리게 했고, 러시아의 패배로 전제국가의 지위와 사회 조직이 파괴된 사건이었다.
크림 전쟁의 패배를 경험했던 톨스토이에게 러일 전쟁은 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떠오르게 했다. 이에 톨스토이는 세 편의 에세이 <다시 생각하십시오!>,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세기말>을 통해 때로는 간결하고 단호하게, 때로는 호소력 짙은 수사로 전쟁의 근본 원인과 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폭력은 인간 본성에 반하는 비극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전쟁과 폭력
<다시 생각하십시오!>에서는 러일 전쟁을 막기 위한 톨스토이의 일침과 인권의 존엄성에 대한 호소를 담고 있다. 국가와 지배 계층이 농민과 노동자들을, 특히 젊은이들을 전쟁에 보내고 있다고 호소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특히, 톨스토이는 전쟁에 관한 자신의 시각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다수의 에피그램을 담았다. 볼테르, 기 드 모파상 등의 작가부터, 노자, 파스칼, 칸트 등의 철학자와 아우렐리우스, 주세페 마치니 등의 지도자들까지, 여러 사상가들의 말을 빌려 전쟁의 부조리와 경고의 메시지를 시각적이면서도, 의미적으로 두드러지게 드러내었다. 여기에는 작가와 철학자들의 주장은 물론, 성경과 민중들의 편지도 포함이 된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관점에서도 전쟁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전쟁은 그 준비 과정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의 불필요한 희생과 경제적 낭비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벨기에 경제학자인 구스타프 드 몰리나리의 말을 인용하며 전쟁에 소비되는 비용과 군의 유지비로 인한 재정 손실을 수치로 보여주기까지 한다. 나아가 전쟁에 관련된 각계각층의 입장을 분석하면서 인간의 이기적인 면을 보여준다.
“유럽의 여러 국가는 1천 3백억의 부채를 지고 있는데, 이 가운데 약 천 백억은 또 한 세기 동안 생겼으며 이 어마어마한 부채 전부가 특별히 전쟁에 지출되었다는 것, 유럽의 여러 국가는 평화 시에도 4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군대에 배치시키고, 전시에는 1억 천만 명을 동원할 수 있고, 국가 예산의 3분의 2가 부채에 대한 이자와 육군과 해군의 유지비로 투입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데서 그치고 있다.”
더불어 이러한 폭력적인 세태가 반복되는 것은 기계적인 사회 구조의 문제로 본 톨스토이는 국민들이 다 함께 국가에 반하여 전쟁을 원하지 말고, 참여하지 말자고 목소리를 높인다(<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또한, 러일 전쟁 패배 이후에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으며, 기존에 있던 뒤떨어진 낡은 기독교주의와 정치체계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세기말>). 특히, 톨스토이는 강력하게 사회제도의 변화를 추구하였는데,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는 비폭력을 수반한 인권의 평등함이 주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급진적인 사상 속에서도 인간 본성의 선함을 믿은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전쟁을 멈출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였고, 이에 한 가지 결론에 이른다. 바로 “모든 개개인에게 호소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무익하고 비이성적이며 그 악을 확대할 뿐이라며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고, 각 개인의 도덕적 힘으로 폭력을 견뎌내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성취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다.
“이상하게 여겨지겠지만, 인간이 초래한 불행으로부터, 그리고 불행 가운데 가장 무서운 전쟁으로부터 인간을 가장 확실하고 의심의 여지 없이 구제하는 것은 어떤 외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 아니라, 모든 개별 인간의 자각에 호소하기만 하면 된다. 이 자각은 바로 1900년 전 그리스도가 제안한 것으로 모든 사람이 참회하고 스스로에게 그가 누구이며, 그가 왜 사는지, 그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무정부주의를 강하게 외치며, 국가와 교회의 위선을 폭로하였던 톨스토이는 당시 러시아 사회를 무섭게 뒤흔들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급진적인 시선을 통해 톨스토이의 말은 큰 울림이 되어 전쟁과 폭력의 근본적인 문제를 끊임없이 재고하게 만든다. 비폭력과 평화를 설파한 톨스토이의 사상은 그가 서거한 지 10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전쟁과 대립이 끊이지 않고, 군대와 경찰이 사회 약자보다 권력을 가진 자의 편을 드는 현실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강렬한 현재성을 가진다. 톨스토이의 깊고 넓은 사유를 통해 인류의 공동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다시 톨스토이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책 속으로
“또다시 전쟁이다. 또다시 어떤 사람에게도 필요하지 않으며, 무엇으로도 유발할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된다. 또다시 거짓이 시작되고, 또다시 사람들 모두가 넋이 나가 짐승이 된다.” ─ <다시 생각하십시오!> 1장, 13쪽 중에서
“전쟁의 무의미함과 불필요함을 노골적으로 폭로하고, 전쟁의 잔인함, 비도덕성, 야만성을 묘사한 볼테르, 몽테뉴, 파스칼, 조너선 스위프트, 칸트, 스피노자 등 수백 명의 작가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만 같다. 무엇보다 인간의 형제애, 신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가르쳤던 그리스도의 설교도 없었던 것만 같다. 만일 이 모든 것을 기억해 낸 다음 지금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을 본다면, 전쟁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인간 이성의 무기력에 대한 인식에서 오는 가장 무서운 공포를 체험할 것이다. 유일하게 인간을 짐승과 구별시키며 인간의 존엄을 형성하는 이성은 불필요하고 무익하며, 심지어는 그저 무익한 것이 아니라 해로운 부가물이 된다. 마치 말의 머리에서 벗겨져 발걸음을 엉키게 해 말을 자극하기만 할 뿐인 굴레처럼 말이다.” ─ <다시 생각하십시오!> 3장, 28~29쪽 중에서
“우리 세계, 우리 시대의 사람들 모두는, 다시 말해서 기독교 교의의 본질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잠시 동안 자신의 일을 멈추고 사람들이 자신을 무엇이라 여기든지, 즉 황제인지 병사인지 장관인지 기자인지를 잊고서, 자신에게 진지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활동이 유익한지 합법적인지 이성적인지 의심해 보기 위해, 그가 누구이며, 그의 사명은 어디에 있는지를 말이다.” ─ <다시 생각하십시오!> 6장, 51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