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과학이토록 기묘한 양자


이토록 기묘한 양자

과학이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기묘한 6가지 이야기

존 그리빈 지음 | 강형구 옮김


양자역학은 이제까지의 과학이론 중 가장 성공적인 이론이다. 하지만 양자의 세계는 우리의 상식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다. 양자 세계에서는 고양이가 살이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기도 하고, 입자는 파동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상한 양자의 세계는 1920년대 말 에르빈 슈뢰딩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폴 디랙 등이 찾아낸 여러 방정식에 의해서 수학적으로 완전하게 기술되었지만 그 방정식의 의미, 즉 양자적 세계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상식적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과학도들은 그저 “닥치고 계산이나 해”라는 말만 들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은 일군의 물리학자들은 나름의 ‘설명’을 시도했고, 우리가 양자적 현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고안된 개념적 모형이 바로 양자역학의 ‘해석’이라고 불린다.
지금은 고전이 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찾아서》(1984)로 양자물리학 대중화의 첫 물꼬를 텄던 존 그리빈은 신작 《이토록 기묘한 양자》에서 지난 90년 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들이 양자역학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제시한 최고의 생각들, 양자역학의 가장 중요한 6가지 해석을 공정하게 검토한다. 그리빈은 특정 해석을 지지하거나 비판하기보다는, 6가지 해석 모두 동일한 정도로 좋거나 나쁘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6가지 해석은 모두 동일한 예측(수학적 결론)을 제시하며, 오직 해석만이 다를 뿐이다. 그리빈은 해석들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문제의 본질, 양자 세계의 두 가지 미스터리를 조명한다.

미스터리1 파동인가, 입자인가
19세기 초 토머스 영은 이중슬릿 실험을 통해 빛이 파동임을 증명했지만, 20세기 초에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를 통해 빛이 입자임을 밝혔다. 빛보다 더 확실해 보였던 전자의 경우, J. J. 톰슨은 전자가 입자임을 증명하여 노벨상(1906)을 받았고, 아들 조지 톰슨은 전자가 파동임을 증명하여 노벨상(1937)을 받았다. 전자와 같은 양자적 개체가 때로는 파동처럼 행동하고 때로는 입자처럼 행동하는 ‘파동-입자 이중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빈은 이 수수께끼의 최근 버전들도 들려준다. 물리학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실험으로 꼽히는 ‘단일 전자 이중슬릿 회절’ 실험은 전자를 하나하나 쏘아 보내 두 개의 구멍을 통과시키는데, 구멍 하나를 막고 쏘기도 하고(2008), 전자를 발사한 후 구멍 하나를 자동장치로 막기도 한다(2013). 실험들에서 두 개의 구멍이 모두 열려 있을 때는 간섭무늬가 나타나고, 한쪽이 막혀 있을 때는 나타나지 않았다. 각각의 전자들은 자신이 통과하는 순간 몇 개의 구멍이 열려 있는지, 이전 전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고 다음 전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마치 ‘아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미스터리2 유령과 같은 원격작용
전자의 스핀이 ‘위 방향’(업) 대 ‘아래 방향’(다운)일 확률은 5 대 5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는 두 전자의 스핀은 보존법칙에 따라 하나가 업이면 다른 하나는 다운이 되어 서로 상쇄되어야 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의 스핀은 업인지 다운인지 명확하지 않은 ‘중첩’ 상태로 있다가 상호작용할 때 확률의 규칙에 따라 방향이 결정된다. 즉 하나의 전자가 업 스핀으로 결정되는 순간, 다른 전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다운 스핀으로 결정된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유령 같은 원격작용’을 거부하며 기저에 깔린 ‘숨은 변수’를 찾고자 했다.
1960년대 중반 존 벨은 숨은 변수 이론을 지지하며, 국소성 즉 ‘유령 같은 원격작용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실험을 고안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광자를 이용한 그 실험에서 벨의 부등식에 위배되는 비국소성이 밝혀졌고, 유령 같은 원격작용 즉 ‘얽힘’은 이제 엄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빈은 ‘유령 같은 원격작용’의 선례로 뉴턴이 발견한 중력을 든다. 우리가 양자 원격작용에 당혹스러워하듯, 뉴턴 역시 중력 원격작용에 당혹스러워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중력 원격작용을 훨씬 덜 유령 같이 만들었듯이, 그리빈은 미래의 아인슈타인이 나타나 양자 원격작용을 더 멋지게 설명해주길 희망한다.
얽힘은 오늘날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되고 있는데, 그리빈은 일례로 ‘양자 전송’(양자 암호통신)을 든다. 얽혀 있는 두 광자에서 한쪽에 일어나는 변화는 다른 쪽에 영향을 미친다. 만일 첫 번째 광자를 변화시켜 두 번째 광자를 첫 번째의 복제로 만든 후 첫 번째 광자가 사라진다면, 결과적으로 첫 번째 광자가 두 번째 광자로 원격 전송된 셈이다. 2012년 중국 연구팀은 얽혀 있는 광자들을 97km 원격 전송하는 데 성공했고, 같은 해 유럽 연구팀은 143km 원격 전송에 성공했다. 2016년 중국은 인공위성 묵자를 이용해 1200km 원격 전송에 성공했다.

해석1 코펜하겐 해석
우리가 바라보지 않으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수십 년간 양자역학의 표준적인 관점으로 군림한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우리가 입자를 찾으면 양자적 개체는 마치 입자처럼 행동하고, 우리가 파동을 찾으면 마치 파동처럼 행동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볼지에 대해 내린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가 바라보지 않을 때(측정하지 않을 때) 양자적 개체가 무엇을 하는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더욱이 양자적 개체는 ‘확률 파동’으로 퍼져 있다가, 관측되는 순간 하나의 입자로 ‘붕괴’한다.
상자 안에 전자 하나가 갇혀 있다고 하자. 확률 파동이 상자 안을 고르게 채우고 있으므로 임의의 위치에서 전자를 발견할 확률은 동일하다. 이제 상자를 둘로 쪼개어 하나를 화성으로 보낸다. 실험실의 반쪽상자를 열어 전자를 발견하든 못하든, 그 순간 파동함수는 붕괴하고 화성으로 보낸 반쪽상자의 상태도 결정된다. 관측되기 전까지는 중첩 상태로 존재하다가 관측되는 순간 즉시 파동함수가 붕괴한다.
실용주의자였던 닐스 보어는 서로 다른 개념을 조각조각 이어붙여 체계를 만드는 데 능했지만 그 체계의 의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측정에 인간의 지성이 개입되어야 하는가? 아무도 쳐다보지 않으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가? 인간이 우주를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지성적인 까닭에 우주는 존재하는가? 코펜하겐 해석은 이와 같은 질문은 하지 말라고 한다는 점에서 그다지 근사하지는 않은 해석이다.

해석2 파일럿 파동 해석
세계는 우리가 바라보기 전까지 숨어 있다

코펜하겐 해석과 같은 시기 루이 드 브로이에 의해 제시된 대안적 해석은 보어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잊혔다가 1950년대 초 독자적 연구로 같은 결론에 도달한 데이비드 봄에 의해 부활했다. 그래서 ‘드 브로이-봄 해석’이라고도 한다.
파동-입자 이중성을 설명하는 가장 자연스럽고 간단한 이 해석에 따르면, 파동과 입자 모두 실재하며, 입자는 보이지 않는 파동의 안내를 받아 움직이지만(그래서 ‘파일럿 파동’이다) 파동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마치 파도가 서퍼를 해변으로 데려오듯, 파동이 입자를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것이다. 우리는 입자의 속성은 측정할 수 있지만 파동의 속성은 측정할 수 없다. 입자의 행동으로부터 파동의 존재를 추론할 뿐이며, 입자는 탐지되기 전까지 우리에게 숨겨져 있다(숨은 변수 이론). “모든 입자는 항상 명확한 속성을 갖고 있다. 단지 우리가 보기 전까지는 그 속성이 무엇인지 모를 뿐이다.” 잘 섞인 카드 한 벌을 생각해보자. 그중 한 장을 뒤집어 보기 전까지 그 값은 숨겨져 있다. 하지만 그 카드는 우리가 보지 않을 때도 항상 그 값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코펜하겐 해석은 “우리가 바라보기 전까지 그 카드는 어떤 값도 갖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수학적 결과(확률)는 똑같지만, 해석은 이처럼 상이하다.
퍼팅 연습을 할 때 골프공들은 그린 위에 특정한 패턴을 그린다. 만일 우리가 그린 표면의 상태와 공의 속력과 방향 등을 정확히 안다면, 우리는 원리상 공의 최종 위치를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파일럿 파동 해석은 파동함수의 붕괴 같은 우연적 요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결정론적 해석이다.
파일럿 파동 해석에 따르면, 입자가 갖는 어느 순간의 속성도 동일한 순간에 예전에 그 입자와 상호작용했던 모든 입자의 속성에 의존한다. 이를 우주 전체에 적용하면, 지금 여기에 있는 단일한 입자의 행동은 이 순간에 우주에 있는 다른 모든 입자의 위치에 의존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해석3 다세계 해석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평행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난다

다세계 해석은 흔히 휴 에버렛이 처음 제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리빈은 슈레딩거가 원형을 제시했다고 본다. 슈레딩거는 양자역학의 방정식들 어디에도 붕괴에 대한 내용은 없다고 누누이 지적했다. 붕괴는 우리가 중첩 상태를 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보어가 이론에 덧붙인 것일 뿐이다. 그리빈은 슈레딩거의 고양이 비유를 들어 설명한다. 상자를 열었을 때 고양이가 살아 있는 세계와 죽어 있는 세계는 둘 다 항상 존재했고, 고양이의 운명이 결정되기 전까지 두 세계는 완전히 동일했다. 파동방정식이 기술하는 모든 가능한 해는 단순히 이러저러한 일들이 일어날 확률이 아니다. 그 모든 일은 실제로 동시에 일어나고, 서로 다른 우주가 무한히 존재한다.
에버렛의 다세계 해석은 처음에는 하나의 우주, 한 마리의 고양이만 존재하지만 상자를 여는 순간 (마치 아메바가 분열하듯) 두 개의 우주, 그 각각의 고양이로 ‘분기’한다는 점이 슈레딩거와 다르다. 형이상학적으로 과도한 부담을 안고 있는 해석으로 여겨져 처음에는 무시되었지만, 1970년대 양자컴퓨터와 우주론에 적용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양자컴퓨터의 큐비트는 0과 1이 중첩된 상태여서 2의 거듭제곱으로 커진다. 고작 300큐비트로도 2300비트, 즉 우주에서 관측할 수 있는 원자 수보다 더 많은 비트를 가진 일반 컴퓨터와 동등하다. 계산이 중첩에 대응하는 각각의 평행우주 속에 있는 동일한 컴퓨터들에 의해서 동시에 수행되기 때문에 일반 컴퓨터보다 성능이 강력한 것이다.
우주론자들은 ‘우리가 사는 대단히 있을 법하지 않은’ 우주의 존재 자체를 설명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다세계 해석을 받아들인다. 우주적 파동함수는 모든 가능한 시간에서 모든 가능한 우주들을 기술한다. 소설 속 세계도 물리법칙을 따르기만 한다면 다중우주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 즉 《폭풍의 언덕》의 세계는 실제로 존재할 수 있지만 《해리포터》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적 파동함수는 상태의 변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모든 상태가 그저 존재할 뿐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해석4 결어긋남 해석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났고 우리는 그 일부를 알 뿐이다

하나의 빛에서 출발해 두 개의 구멍을 통과한 파동들은 보조가 잘 맞아, 파동의 오르고 내리는 규칙적 패턴이 서로 어우러져 간섭무늬를 만든다. 반면에 벽을 비추는 두 개의 횃불은 간섭무늬를 만들지 못하는데, 둘의 차이는 결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다. 경기장의 파도타기를 생각해보자. 경기장에서 옆 사람을 따라 제시간에 팔을 올렸다 내리면 파동이 경기장 전체를 휩쓸게 된다. 이것은 결이 맞지만, 사람들이 무작위로 손을 흔드는 것은 결이 맞지 않는다. 결어긋남 해석 옹호자들에 따르면, 양자 세계를 지금과 같이 작동하게 하는 원리가 ‘결맞음’이다.
양자 세계와 일상 세계의 차이는 크기가 아니라 결맞음에 의존한다. 앤서니 레깃은 SQUID(초전도 양자 간섭 장치)를 만들어 원자보다 큰 거시적 대상에도 양자역학을 적용할 수 있는지 실험했다. 반지 크기의 이 장치를 따라 맴도는 전자 파동은 마치 단일한 양자적 개체처럼 행동했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전자 파동이 동시에 두 방향으로 가는 중첩도 보여주었다. “대상의 양자성을 결정하는 것은 대상의 크기가 아니라 파동의 결이 맞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장치의 온도가 올라가 파동들의 결이 어긋나면 양자성이 사라지는데, 마치 결어긋남이 파동함수의 붕괴를 야기한 듯하다. 이 때문에 결어긋남 해석을 다른 이름의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여기는 이도 있다.
결어긋남 해석에서 중첩과 얽힘은 동전의 양면이다. 순수한 양자적 개체가 외부 세계와 상호작용하여 결이 어긋날 때 얽힘은 오히려 증가한다. 외부 세계와 분리된 순수한 양자적 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원래의 입자와 상호작용했던 모든 것과, 그 모든 것이 지금까지 상호작용했거나 접촉했던 모든 것들이 중첩된, 두 개의 얽힌 계가 존재할 따름이다.” 결어긋남은 대상이 클수록 더 빨리 일어나는데, 다른 대상과 그리고 서로 간에 상호작용할 비트가 더 많기 때문이다. 사실상 결어긋남은 순식간에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으면 달은 존재하지 않느냐?’라는 반론에 코펜하겐 해석은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지만, 결어긋남 해석은 “햇빛의 광자들까지도 필요 없이 우주배경복사로부터 오는 광자들만으로도 결어긋남을 일으켜 달을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결어긋남 해석을 지금 여기만이 아니라 우주 전체 역사로 적용해볼 수 있다. 이 ‘정합적 역사 해석’에 따르면,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측정의 결과가 무엇이든지 간에 과거 즉 역사와 ‘일관’되어야 한다. 모든 측정, 모든 양자적 상호작용이란 가능한 역사들(일관된 과거들)의 배열 속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모든 역사들은 동등하게 실재하며, 우리가 무엇을 우리 세계의 ‘유일한’ 역사로서 지각할지는 우리가 세계에 대해 묻는 질문들에 달려 있다.
우주의 기원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빅뱅에서부터 오늘날의 우주로 나아가는 ‘아래에서 위로의’ 접근법이 있고, 지금 여기에서 출발해 과거로 거슬러가며 우주의 기원이 될 파동함수를 결정하는 스티븐 호킹의 ‘위에서 아래로의’ 접근법이 있다. 이때 하나 이상의 정합적 역사가 존재할 수 있으며, 유일한 ‘우주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어긋남 해석은 결국 다른 경로를 통해 ‘다세계’라는 주제로 돌아온다.

해석5 앙상블 해석
존재 가능한 모든 것은 공간을 뛰어넘어 상호작용한다

앙상블 해석은 코펜하겐 해석에 대한 최초이자 가장 단순한 대안으로서 아인슈타인이 선호한 해석이다. 이에 따르면, 양자이론적인 기술은 개별적인 계들이 아니라 유사한 계들의 ‘앙상블’을 지칭하는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기체 분자가 가득한 상자 하나는 앙상블이 아니다. 다수의 동일한 상자들로 동일한 실험을 여러 번 시행한 결과가 앙상블이다.) 즉 이 해석은 양자 세계를 통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며, 그래서 ‘통계적 해석’이라고도 불린다.
100만 개의 전자들을 동시에 이중슬릿에 통과시키는 대신, 하나의 전자를 이중슬릿에 100만 번 통과시키면 전자는 단순히 파동함수로서 있지 않고 막스 보른의 확률 분포를 따르는 실제 입자가 통계의 앙상블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앙상블 해석에서는 “파동-입자 이중성이 없고, 중첩이 없으며, 죽어 있으면서 살아 있는 고양이들도 없다.”
앨런 튜링은 지속적으로 관측되는 양자 계는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고 예측했다. 물리학자들은 베릴륨 이온 붕괴를 자동 감지하는 레이저 장치를 만들어 관측 간격을 조절함으로써, ‘양자 냄비를 계속 바라보면 끓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아주 짧은 간격으로 관측을 계속하면 확률이 변할 시간이 없어서 계는 동일한 상태에 있게 된다. 우리가 쳐다보면 파동함수는 붕괴하지 않는다. 레슬리 밸런타인은 이것이 앙상블 해석의 실험적 증거라고 주장했다.
리 스몰린의 ‘실재적 앙상블 해석’에서 앙상블의 모든 구성요소는 실제로 동시에 (공간에 상관없이) 존재한다. “임의의 주어진 시간에 임의의 양자 계에서는 존재 가능한 것들의 값들에 의해 결정되는 실재적인 사태들의 상태가 존재한다.” 앙상블의 구성요소들은 서로 비국소적인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며, 이때 존재 가능한 것들은 그 양자 상태들과 관련되는 확률의 규칙들을 따라 서로의 상태들을 복제한다. “그러나 고양이나 사람처럼 거시적인 계들은 우주 속 어디에도 복제물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이들은 상호작용하는 양자적 존재 가능한 것들을 포함하는 복제 과정에 의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해석6 거래 해석
미래는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

빛의 속력이 모든 관측자에게 같음을 말해주는 맥스웰 방정식의 해는 항상 둘로, 하나는 ‘지연된’ 파동(원천으로부터 나와서 시간 속에서 앞의 방향으로 진행하며 세계 속 다른 곳에서 흡수된다)을 기술하고, 다른 하나는 ‘앞선’ 파동(미래의 흡수체로부터 나와서 파동의 원천으로 수렴한다)을 기술한다. 1940년대에 파인만은 이를 바탕으로 전자가 대전된 다른 입자와 상호작용할 때 절반의 파동은 미래로 가고, 절반의 파동은 과거로 간다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도 미래로 흘러가는 양의 에너지 파동(지연된 파동)에 상응하는 하나의 해와 과거로 흘러가는 음의 에너지 파동(앞선 파동)을 기술하는 또 하나의 해를 갖는다. (하지만 이제껏 후자는 무의미하다고 버리고 전자만 취해왔다.)
1970년대 말 존 크레이머는 이 개념을 발전시켜 독창적인 거래 해석을 생각해냈다. 플로리다에서 던진 술병이 대서양을 건너 영국 해안에 도착할 때, 입자는 파동으로 바뀌어 이동하다가 입자로 도달하는 순간 다른 파동은 사라진다. 이는 앞선 파동과 지연된 파동의 ‘악수’로 설명할 수 있다. “영국에 있는 병으로부터 나온 파동들이 시간을 거슬러 대양을 가로질러 플로리다로 이동했고, 이 파동들이 유일한 연결을 수립하여 다른 파동들을 소거해버린 것이다.” “방출기는 흡수체로 이동하는 ‘제안’ 파동을 생성한다고 간주될 수 있다. 그러면 흡수체는 방출기에게 ‘승인’ 파동을 되돌려보내고,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악수’와 함께 거래가 완료된다.”
코펜하겐 해석이 시간을 고전역학의 방식으로 다루는 데 비해, 거래 해석은 상대성이론의 효과를 포함한다. 시간을 역행하는 앞선 양자 파동이 일상 세계의 인과율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모든 것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거래에 의해서 확정되어 있다.

저·역자 약력
지은이 존 그리빈 John Gribbin

영국의 과학작가이자 천체물리학자.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평생토록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생생한 글쓰기 방법을 연구했고,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지금까지 양자물리학, 진화와 유전,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우주의 기원은 물론 유명 과학자들의 전기, SF 소설 등 100여 권의 책을 저술한 ‘대중과학계에서 가장 뛰어나고 왕성한 다작가’로 평가받는다. 지금은 고전이 된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찾아서》(1984)는 물리학 대중화의 첫 물결을 연 작품으로, BBC에 의해 수학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는 방법의 성공적인 사례로 상찬받았다.
서식스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천문학을 공부하고, 1971년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천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레드 호일의 이론천문학연구소에서 일하다가 전업 과학작가가 되어 《네이처》 《뉴사이언티스트》 등에서 일했고, 《타임스》 《가디언》 《인디펜던트》 등의 과학면에 많은 글을 발표했다. 현재 서식스대학교 천문학과 객원연구원으로 있다. 영국과학작가협회가 수여하는 평생공로상(2009)을 비롯해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
주요 저서로 《과학자들》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찾아서》 《에르빈 슈뢰딩거와 양자 혁명》 《빙하기》 《멀티버스를 찾아서》 《태초에》 《138억 년》 《우주에서 홀로》 《양자 미스터리》 《스티븐 호킹의 삶과 과학》 《아인슈타인의 삶과 과학》 《다윈의 삶과 과학》 《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 등이 있다.

옮긴이 강형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자연대학원 과학학과에서 과학철학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같은 대학원에서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다. 한국장학재단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연구원이자 학예사로서 근무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한스 라이헨바흐의 《양자역학의 철학적 기초》 《상대성이론과 선험적 지식》 《원자와 우주》와 리처드 뮬러의 《나우: 시간의 물리학》(공역)이 있다.


목차

들어가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 양자해석의 필요성
미스터리1 파동인가, 입자인가
미스터리2 유령과 같은 원격작용
해석1 코펜하겐 해석 우리가 바라보지 않으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석2 파일럿 파동 해석 세계는 우리가 바라보기 전까지 숨어 있다 

해석3 다세계 해석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평행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난다 

해석4 결어긋남 해석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났고 
우리는 그 일부를 알 뿐이다
해석5 앙상블 해석 존재 가능한 모든 것은 공간을 뛰어넘어 상호작용한다 

해석6 거래 해석 미래는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 

나오며 제정신인 말이 하나도 없는
옮긴이의 말
더 읽을거리
그림 출처



원서명Six Impossible Things
부제목과학이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기묘한 6가지 이야기
펴낸날2022-05-20
옮긴이강형구
도서상태정상
책꼴/쪽수122X190, 172쪽
책 가격13,800원
ISBN979-11-6689-087-1
태그양자역학; 양자해석; 다세계우주; 슈뢰딩거의 고양이
추천기관





양자의 모든 것에 관한 이해하기 쉬운 입문서. 엄밀하면서도 친근하게 설명한다. -- 《선데이 타임스》

“양자물리학은 이상하다.” 존 그리빈의 뛰어난 신간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양자역학의 가장 중요한 6가지 해석에 대한 작지만 무게 있는 분석. -- 《엔지니어링 & 테크놀로지》

그리빈은 우리에게 미시세계에 대한 놀라운 양의 정보로 가득하고 정확성과 명료함이 돋보이는 향연을 선사한다. 이 책은 대중과학서의 타디스(타임머신)다. 그리빈은 매우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요약해낸다. 양자물리학의 핵심을 다년간 숙고한 끝에 간결한 형태로 압축한 이 책은 영국 대중과학계의 대가가 써낸 단연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다. -- 《파퓰러 사이언스》(UK)

이 얇은 책은 양자물리학을 비전문가들에게 명쾌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하려 시도한다. 과학도와 SF 팬들은 물론이고 양자물리학의 이상한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하는 모든 이에게 추천한다. -- 《포브스》

그리빈은 자신이 쓴 대중과학서들로 여러 세대의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어왔다. 이번 그의 신작은 양자역학의 진정한 해석을 놓고 겨루는 주요 경쟁자들을 간결하면서도 유쾌하게 요약한다. 그의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찾아서》은 출간된 지 35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내가 즐겨 읽는 책과 비슷하다(지금은 고전이 된 이 책은 초판이 1984년에 나왔다). 당신이 우리 시대 가장 성공적인 과학이론의 의미를 궁리해본 적이 있든 없든, 혹은 최신 사고의 흐름이 어떠한지 알고 싶어한다면, 이 신간은 당신에게 붕괴하는 파동함수보다 더 빠르게 그 정보를 알려줄 것이다. -- 짐 알칼릴리(영국 서리대학교 이론물리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