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전념한다는 기본을 무시하고
이 책을 쓴 것은 오직 당신 같은 소설가가
나타나 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정말 소설을 쓰고 싶은가?”
고독과 은둔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가
다가올 소설가들에게 건네는 조언
마루야마 겐지는 문단과 일절 교류하지 않고 오직 집필에 전념해 온 ‘고독’과 ‘은둔’의 작가다. 그런 그가 소설에 전념한다는 철칙을 깨고 다른 사람을 위해 펜을 들었다. 이 책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는 겐지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소설가들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그들이 펜을 쥐고 글을 쓰게 될 때를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문학의 세계에 뛰어들었다가 실망하고 도망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꼭 해 주고 싶었던 말들을 지난 30여 년간 쌓아 왔다.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해 주는, 말은 하지 않더라도 몸소 실천하는 선배 소설가가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나는 큰 용기를 얻었을지 모릅니다. 고민하거나 옆길로 새지 않고, 똑바로 소설가의 길을 헤쳐 나갔을 것입니다. (19쪽,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 중)
겐지가 쏟아내는 말들은 거침없고 냉철하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후배들이 고민하지 않고 이 길을 똑바로 갈 수 있도록, 문학이라는 무한히 너른 바다 한가운데로 용감히 뛰어들 수 있도록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단순히 소설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술적인 요소뿐 아니라 소설을 쓴다는 것, 문학을 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소설가에게 중요한 건 작법이 아닌 자세
소설 쓴다는 것, 문학 한다는 것의 의미를 묻다소설가가 소설 집필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 최소한의 상식이 이상적이거나 금욕적으로 보인다면, 당신이 진짜 노리는 것은 소설이 아닌 것에 있으므로 펜을 들기 전에 이렇게 자문하십시오. ‘정말 소설을 쓰고 싶은가’ 하고. (8~9쪽, ‘머리말’ 중)
겐지의 조언은 명료하다. 소설가라면 소설에 전념할 것, 전념하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면 정리하고 포기할 것. 불안과 고독과 분노와 슬픔을 뚫고 나아간 소설가만이 앞에 펼쳐진 ‘누구도 오르지 못한 산’을, ‘아무도 손대지 않은 광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평범한 직장인이 소설가로 살아가기까지의 여정을 보여 준다. 자신이 몸담은 세계를 떠나 문학의 세계로 들어오기까지, 소설가로 데뷔한 이후 한걸음 내딛기까지, 그리하여 문학의 너른 바다 한가운데로 헤엄쳐 나가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첫 번째 장 〈내가 기다리는 소설가〉에서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세 가지 유형’에 대해 말한다. 첫째, ‘누구의 무슨 작품 같은 소설을 나도 쓰고 싶다’고 하는 동경 유형. 둘째, ‘이 정도라면 나도 어떻게든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유형. 셋째, ‘이 정도 수준을 문학이라 할 수 있는가’ 하고 의심하다가 ‘이런 건 문학이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마침내 ‘훨씬 더 엄청난 소설을 쓰겠다’라는 다짐으로 펜을 드는 유형이다. 이 중에서 겐지가 고대하는 소설가는 ‘세 번째 유형’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소설가가 될 수 있는 진짜 재능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장 〈쓰면서 쓰는 법을 터득한다〉에서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위해 어떻게 원고를 준비하는지, 세 번째 〈소설가로 데뷔하고 나서〉에서는 등단 이후 현실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조언한다.
네 번째 장 〈펜 한 자루로 살아간다는 것〉과 다섯 번째 장 〈문학의 너른 바다 한가운데로〉에서는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자세에 대해 언급한다. 소설 쓴다는 것, 문학 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소설을 벗어나 돌아갈 곳이 있는지 되묻는다. 또한,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새로운 소설가, 즉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이 나타나 주기를 고대한다.
“오늘날 문학은 다 큰 어른들이 하는 예술가 놀음,
쇠퇴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문학에 관계한 사람이다”
지금의 문단을 만들어 온 사람들을 향한 일갈인간이 언어를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며 살아가는 한, 문학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쇠퇴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문학에 관계하는 인간입니다. (209쪽,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사람’ 중)
겐지는 지금까지의 문학이 추락하고 있다고 외친다. 정확히는 문학이 아니라 문학과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인간’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소설가뿐 아니라 편집자, 독자, 평론가도 포함된다. 소설이 아닌 것에 기웃거리면서 한눈파는 소설가, 문학에 대한 애정 없이 회삿돈으로 소설가와 친목을 도모하기 급급한 편집자, 소설가에게 작품 외적인 것을 기대하는 안목 없는 독자, 청춘 시절 읽고 감명받은 작품을 지상 최고라고 여긴 채 더는 나아가지 않는 평론가. 이들이 세력을 이루어 문단의 주류가 되고, 자신들과 다른 가치관을 비문학적인 것으로 배제하여, 결국 문학을 추락의 길로 내몬 것이다.
그는 오늘날의 문학이 ‘다 큰 어른들이 모여 예술가인 척하는 놀이’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특히 기존의 소설가, 개중에서도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강연을 하고, 어느 정도 알려진 유명세로 원고료의 몇 배나 높은 몸값을 주는 일을 척척 하는 소설가들, 밥벌이를 핑계로 의뢰받은 족족 ‘쓰나 마나 한’ 글을 쓰는 소설가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문단의 권위나 국가의 권력에 다가가는 소설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야말로 진정한 문학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고 안 되고는 기존의 소설가들과는 정반대인 소설가의 등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소설가들이 나타나지 않는 한, 문학은 언제까지고 부상하지 못한 채 침몰선 같은 운명을 밟게 될 겁니다. (25쪽, ‘편히 살 수 있는 시대의 소설가’ 중)
‘아직 않은 소설가’는 남은 인생을 걸고 이 세계에 뛰어들려는 사람일 수도, 어쩌면 “문학 따위는 나한테 맞지 않는다” 하며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수가 많든 적든, 겐지는 그들이 아직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뭘 써야 할지 모른 채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홀로 창조적인 일에 몰두하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세계로 들어오라고 초대한다.
“문학이라는 너른 바다 수평선 저 너머에서
당신 같은 소설가가 홀연히 나타나 주기를…”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새로운 소설가를 기다리며
당신은 당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모든 책임을 지고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자력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본입니다. 그 당연한 일을 하지 못하는 소설가가 끊이지 않는 것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자립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문학이 뒤틀린 정신 위에 성립해 있었다는 걸 믿고 안이하게 쓰려 했기 때문이지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런 작품은 문학이 아니라 벌레입니다. (97~98쪽, ‘자립이야말로 소설가로 가는 길’ 중)
겐지가 기다리는 소설가는 ‘자립한 삶’을 사는 소설가다. 자립했거나 자립하려는 소설가만이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수 있다. 안정된 시대에 태어나 모든 것이 너무 풍족한 사람,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 권위주의자, 사대주의자는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겐지가 지향하는 자립이 고립과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위 관계를 정리하고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다고 해서, 고독과 맞서 싸운다고 해서 마음을 완전히 닫고 사는 것이 아니다. 자립한 소설가의 자세는 자신의 본질을 깊이 천착하고, 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마음을 여는 고고한 자세다. 끝없이 안으로 틀어박히는 삶의 방식과는 반대되는, 미래지향적인 자세다. 그리하여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오로지 ‘작품’으로 쏟아내는 자세다.
책 속에서
문학이라는 너른 바다는 아직 거의 아무도 항해하지 않은 상태로 바로 거기에, 언제든지 손닿을 수 있는 곳에 드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문학은 대부분 해변에서 모래 놀이를 하거나 파도에 몸을 적시는 정도였을 뿐, 그 너른 바다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23~24쪽, ‘편히 살 수 있는 시대의 소설가’ 중
당신은 평생 펜을 쥐고 있기를 바랍니다. 한 작품을 쓸 때마다 더 높은 곳에 도전하는 모험심이 커지고, 한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실력이 향상되어 깊이 있고 굉장한 작품을 쓸 수 있는, 호흡이 긴 소설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사람이 경악할 만큼, 그리고 본인도 놀라 자빠질 만큼 압도적인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뜨기를 바랍니다.
-58~59쪽, ‘한 작품을 완성해도 투고하지 않는다’ 중
앞으로 소설가가 되려는 이들은 고독과 싸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 구원의 문학을 지향한다면 고독과 마주하고, 고독과 싸워 이기고, 고독을 초월하는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소설가만이 보다 높은 미답의 봉우리에 오를 수 있으며, 새로운 광맥을 발견하고 채굴할 수 있습니다.
-75쪽, ‘교우 관계를 정리한다’ 중
편집자와 일을 할 때, 일단 문학 얘기는 피하고 음악이나 영화, 미술 등의 얘기를 먼저 하십시오. 문학에 관해서는 직업상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갖고 있으니, 임기응변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야 얘기를 하면, 관심이 있지 않고서야 금방 바닥이 드러나니, 그 수준을 쉽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최근의 예술계 동향에 무지한 편집자들이 아주 많습니다.
-86쪽, ‘편집자를 너무 믿지 마라’ 중
땀으로 씻어낸 다음에 남는 것, 땀으로는 씻어낼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이야말로 쓸 가치 있는 주제입니다.
-139쪽, ‘정신의 피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
만약 내가 정치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펜을 내려놓을 겁니다. 그땐 언어에 의지할 수 없고 조용히 소설이나 쓰고 있을 수도 없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때이겠지요. 집단에 속할지 어쩔지는 알 수 없으나, 죽을힘을 다해 뛰어들 겁니다. 나 같은 소설가가 궐기했을 때에는 이미 시기가 늦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75쪽, ‘굶주린 아이 앞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중
현재 문학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당신은 절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을 이해해 주는 독자가 너무 적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문학이 되살아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오직 당신 같은 소설가의 노력에 달렸습니다. 당신이 문학을 되살리는 겁니다. 그 정도 기개로 임하기 바랍니다.
-186쪽, ‘당신이 필요하다’ 중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문학을 떠나면 할 일이 있는지요. 소설을 쓰는 것 외에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일이 당신에게 있는지요.
-197쪽, ‘당신의 안목에 휘둘리지 마라’ 중
내가 지금까지 늘어놓은 말을 부정하든 긍정하든, 소설가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 아니라 작품으로 보여 주십시오. (중략) 나와는 정반대되는 자세로, 이 책을 비웃으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을 들고 나타날 당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210쪽,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사람’ 중
저자소개
지은이 :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
1968년에 <정오이다>로 귀향한 청년의 고독을 그린 후, 본인도 나가노 현 아즈미노로 이주했다. 이후 문단과 선을 긋고 집필 활동에만 매진하고 있다.
소설 《달에 울다》《물의 가족》 등을 냈고, 최근작으로는 《파랑새의 밤》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나는 길들지 않는다》《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그렇지 않다면 저녁노을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가 없다》《개와 웃다》 등이 있다.
옮긴이 : 김난주
옮긴 책으로 마루야마 겐지의 《천 일의 유리》 《천 년 동안에》 《소설가의 각오》를 비롯해 《하느님의 보트》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사우스포인트의 연인》 등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고독과 은둔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가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들에게 건네는 조언
목차
내가 기다리는 소설가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 · 017 | 이상한 세계 · 019 | 편히 살 수 있는 시대의 소설가 · 022 | 문학적 재능 · 025 | 소설가를 지망하는 세 가지 유형 · 029 | 내가 고대하는 세 번째 유형 · 032
쓰면서 쓰는 방법을 터득한다
일단 쓴다 · 037 | 쓰기 시작했다면 뒤돌아보지 않는다 · 041 | 재능이 있으면 자기혐오에 빠진다 · 044 | 언어로 바꾸면 맛이 안 사는 이미지 · 047 | 적어도 일곱 번은 고쳐 쓴다 · 050 | 한 작품을 완성해도 투고하지 않는다 · 055 | 노트를 준비한다 · 059 | 작품을 낳는 꿈 · 062 | 영상에 지지 않는 표현력을 기른다 · 066 | 소설가의 도구 · 070 | 침묵을 지킨다 · 071 | 교우 관계를 정리한다 · 073
소설가로 데뷔하고 나서
소설가로서의 첫걸음 · 079 | 편집자를 너무 믿지 마라 · 083 |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 088 | 원고료는 작품에 대한 평가와는 다른 것 · 091 | 자립이야말로 소설가로 가는 길 · 095 | 시상식에서 · 098 | 원고료만으로 생활한다 · 101 | 눈앞의 욕망을 채우고 만족하지 마라 · 104 | 아무리 쪼들려도 선인세는 요구하지 않는다 · 108 | 소설가들과의 교류 · 110 | ‘고독’와 ‘개인성’를 관철한다 · 113 |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소설 · 116 | 자기 작품을 설명하지 마라 · 121 | 직장을 떠난다 · 125
펜 한 자루로 살아간다는 것
소설가에게 작품이란 · 131 | 다가오는 자들 · 134 | 영혼을 들여다보는 예술 · 136 | 정신의 피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 138 | 체력 관리도 중요하다 · 140 | 뇌세포를 죽이는 술과 마약 · 143 | 뇌는 굶주려 있을 때 가장 빛난다 · 145 |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하라 · 150 | 내려놓을 때가 있고 달려들 때가 있다 · 153 | 도시에 살 것인가 시골에 살 것인가 · 156 | 생활 수준을 낮춘다 · 162 | 창조를 위한 지식 · 166 | 시골이야말로 문학의 부활에 가장 적합한 곳 · 168 | 권력에 다가가지 마라 · 172 | 굶주린 아이 앞에서 뭘 할 수 있을까 · 174
문학의 너른 바다 한가운데로
나이에 걸맞은 작품인가 · 181 | 당신이 필요하다 · 183 | 장편소설의 늪 · 187 | 해변을 돌아보지 마라 · 190 | 써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 193 | 당신의 안목에 휘둘리지 마라 · 195 | 고독에 넌더리가 났을 때 · 198 | 소설로 돌아와 도전해야 할 일 · 202 | 전작소설을 쓴다 · 206 |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사람 ·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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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것은 오직 당신 같은 소설가가
나타나 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정말 소설을 쓰고 싶은가?”
고독과 은둔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가
다가올 소설가들에게 건네는 조언
마루야마 겐지는 문단과 일절 교류하지 않고 오직 집필에 전념해 온 ‘고독’과 ‘은둔’의 작가다. 그런 그가 소설에 전념한다는 철칙을 깨고 다른 사람을 위해 펜을 들었다. 이 책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에게》는 겐지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의 소설가들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그들이 펜을 쥐고 글을 쓰게 될 때를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문학의 세계에 뛰어들었다가 실망하고 도망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꼭 해 주고 싶었던 말들을 지난 30여 년간 쌓아 왔다.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해 주는, 말은 하지 않더라도 몸소 실천하는 선배 소설가가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나는 큰 용기를 얻었을지 모릅니다. 고민하거나 옆길로 새지 않고, 똑바로 소설가의 길을 헤쳐 나갔을 것입니다. (19쪽, ‘아직 오지 않은 소설가’ 중)
겐지가 쏟아내는 말들은 거침없고 냉철하지만, 동시에 거기에는 깊은 애정이 담겨 있다. 후배들이 고민하지 않고 이 길을 똑바로 갈 수 있도록, 문학이라는 무한히 너른 바다 한가운데로 용감히 뛰어들 수 있도록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단순히 소설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기술적인 요소뿐 아니라 소설을 쓴다는 것, 문학을 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소설가에게 중요한 건 작법이 아닌 자세
소설 쓴다는 것, 문학 한다는 것의 의미를 묻다
소설가가 소설 집필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 최소한의 상식이 이상적이거나 금욕적으로 보인다면, 당신이 진짜 노리는 것은 소설이 아닌 것에 있으므로 펜을 들기 전에 이렇게 자문하십시오. ‘정말 소설을 쓰고 싶은가’ 하고. (8~9쪽, ‘머리말’ 중)
겐지의 조언은 명료하다. 소설가라면 소설에 전념할 것, 전념하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면 정리하고 포기할 것. 불안과 고독과 분노와 슬픔을 뚫고 나아간 소설가만이 앞에 펼쳐진 ‘누구도 오르지 못한 산’을, ‘아무도 손대지 않은 광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평범한 직장인이 소설가로 살아가기까지의 여정을 보여 준다. 자신이 몸담은 세계를 떠나 문학의 세계로 들어오기까지, 소설가로 데뷔한 이후 한걸음 내딛기까지, 그리하여 문학의 너른 바다 한가운데로 헤엄쳐 나가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첫 번째 장 〈내가 기다리는 소설가〉에서는 소설가를 지망하는 ‘세 가지 유형’에 대해 말한다. 첫째, ‘누구의 무슨 작품 같은 소설을 나도 쓰고 싶다’고 하는 동경 유형. 둘째, ‘이 정도라면 나도 어떻게든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하는 유형. 셋째, ‘이 정도 수준을 문학이라 할 수 있는가’ 하고 의심하다가 ‘이런 건 문학이 아니다’라고 부정하고, 마침내 ‘훨씬 더 엄청난 소설을 쓰겠다’라는 다짐으로 펜을 드는 유형이다. 이 중에서 겐지가 고대하는 소설가는 ‘세 번째 유형’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소설가가 될 수 있는 진짜 재능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장 〈쓰면서 쓰는 법을 터득한다〉에서는 소설가로 데뷔하기 위해 어떻게 원고를 준비하는지, 세 번째 〈소설가로 데뷔하고 나서〉에서는 등단 이후 현실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조언한다.
네 번째 장 〈펜 한 자루로 살아간다는 것〉과 다섯 번째 장 〈문학의 너른 바다 한가운데로〉에서는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자세에 대해 언급한다. 소설 쓴다는 것, 문학 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소설을 벗어나 돌아갈 곳이 있는지 되묻는다. 또한,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새로운 소설가, 즉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이 나타나 주기를 고대한다.
“오늘날 문학은 다 큰 어른들이 하는 예술가 놀음,
쇠퇴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문학에 관계한 사람이다”
지금의 문단을 만들어 온 사람들을 향한 일갈
인간이 언어를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며 살아가는 한, 문학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쇠퇴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문학에 관계하는 인간입니다. (209쪽,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사람’ 중)
겐지는 지금까지의 문학이 추락하고 있다고 외친다. 정확히는 문학이 아니라 문학과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인간’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소설가뿐 아니라 편집자, 독자, 평론가도 포함된다. 소설이 아닌 것에 기웃거리면서 한눈파는 소설가, 문학에 대한 애정 없이 회삿돈으로 소설가와 친목을 도모하기 급급한 편집자, 소설가에게 작품 외적인 것을 기대하는 안목 없는 독자, 청춘 시절 읽고 감명받은 작품을 지상 최고라고 여긴 채 더는 나아가지 않는 평론가. 이들이 세력을 이루어 문단의 주류가 되고, 자신들과 다른 가치관을 비문학적인 것으로 배제하여, 결국 문학을 추락의 길로 내몬 것이다.
그는 오늘날의 문학이 ‘다 큰 어른들이 모여 예술가인 척하는 놀이’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특히 기존의 소설가, 개중에서도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강연을 하고, 어느 정도 알려진 유명세로 원고료의 몇 배나 높은 몸값을 주는 일을 척척 하는 소설가들, 밥벌이를 핑계로 의뢰받은 족족 ‘쓰나 마나 한’ 글을 쓰는 소설가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문단의 권위나 국가의 권력에 다가가는 소설가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야말로 진정한 문학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고 안 되고는 기존의 소설가들과는 정반대인 소설가의 등장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소설가들이 나타나지 않는 한, 문학은 언제까지고 부상하지 못한 채 침몰선 같은 운명을 밟게 될 겁니다. (25쪽, ‘편히 살 수 있는 시대의 소설가’ 중)
‘아직 않은 소설가’는 남은 인생을 걸고 이 세계에 뛰어들려는 사람일 수도, 어쩌면 “문학 따위는 나한테 맞지 않는다” 하며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수가 많든 적든, 겐지는 그들이 아직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뭘 써야 할지 모른 채 헛되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홀로 창조적인 일에 몰두하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세계로 들어오라고 초대한다.
“문학이라는 너른 바다 수평선 저 너머에서
당신 같은 소설가가 홀연히 나타나 주기를…”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새로운 소설가를 기다리며
당신은 당신의 페이스를 지키며 모든 책임을 지고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자력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본입니다. 그 당연한 일을 하지 못하는 소설가가 끊이지 않는 것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자립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문학이 뒤틀린 정신 위에 성립해 있었다는 걸 믿고 안이하게 쓰려 했기 때문이지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런 작품은 문학이 아니라 벌레입니다. (97~98쪽, ‘자립이야말로 소설가로 가는 길’ 중)
겐지가 기다리는 소설가는 ‘자립한 삶’을 사는 소설가다. 자립했거나 자립하려는 소설가만이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수 있다. 안정된 시대에 태어나 모든 것이 너무 풍족한 사람,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 권위주의자, 사대주의자는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겐지가 지향하는 자립이 고립과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위 관계를 정리하고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다고 해서, 고독과 맞서 싸운다고 해서 마음을 완전히 닫고 사는 것이 아니다. 자립한 소설가의 자세는 자신의 본질을 깊이 천착하고, 타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이 세상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마음을 여는 고고한 자세다. 끝없이 안으로 틀어박히는 삶의 방식과는 반대되는, 미래지향적인 자세다. 그리하여 하고 싶은 모든 말을 오로지 ‘작품’으로 쏟아내는 자세다.
책 속에서
문학이라는 너른 바다는 아직 거의 아무도 항해하지 않은 상태로 바로 거기에, 언제든지 손닿을 수 있는 곳에 드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문학은 대부분 해변에서 모래 놀이를 하거나 파도에 몸을 적시는 정도였을 뿐, 그 너른 바다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23~24쪽, ‘편히 살 수 있는 시대의 소설가’ 중
당신은 평생 펜을 쥐고 있기를 바랍니다. 한 작품을 쓸 때마다 더 높은 곳에 도전하는 모험심이 커지고, 한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실력이 향상되어 깊이 있고 굉장한 작품을 쓸 수 있는, 호흡이 긴 소설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사람이 경악할 만큼, 그리고 본인도 놀라 자빠질 만큼 압도적인 작품을 남기고 세상을 뜨기를 바랍니다.
-58~59쪽, ‘한 작품을 완성해도 투고하지 않는다’ 중
앞으로 소설가가 되려는 이들은 고독과 싸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진정 구원의 문학을 지향한다면 고독과 마주하고, 고독과 싸워 이기고, 고독을 초월하는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소설가만이 보다 높은 미답의 봉우리에 오를 수 있으며, 새로운 광맥을 발견하고 채굴할 수 있습니다.
-75쪽, ‘교우 관계를 정리한다’ 중
편집자와 일을 할 때, 일단 문학 얘기는 피하고 음악이나 영화, 미술 등의 얘기를 먼저 하십시오. 문학에 관해서는 직업상 이런저런 정보를 많이 갖고 있으니, 임기응변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야 얘기를 하면, 관심이 있지 않고서야 금방 바닥이 드러나니, 그 수준을 쉽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최근의 예술계 동향에 무지한 편집자들이 아주 많습니다.
-86쪽, ‘편집자를 너무 믿지 마라’ 중
땀으로 씻어낸 다음에 남는 것, 땀으로는 씻어낼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이야말로 쓸 가치 있는 주제입니다.
-139쪽, ‘정신의 피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
만약 내가 정치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펜을 내려놓을 겁니다. 그땐 언어에 의지할 수 없고 조용히 소설이나 쓰고 있을 수도 없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때이겠지요. 집단에 속할지 어쩔지는 알 수 없으나, 죽을힘을 다해 뛰어들 겁니다. 나 같은 소설가가 궐기했을 때에는 이미 시기가 늦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75쪽, ‘굶주린 아이 앞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중
현재 문학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당신은 절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당신을 이해해 주는 독자가 너무 적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문학이 되살아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오직 당신 같은 소설가의 노력에 달렸습니다. 당신이 문학을 되살리는 겁니다. 그 정도 기개로 임하기 바랍니다.
-186쪽, ‘당신이 필요하다’ 중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문학을 떠나면 할 일이 있는지요. 소설을 쓰는 것 외에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일이 당신에게 있는지요.
-197쪽, ‘당신의 안목에 휘둘리지 마라’ 중
내가 지금까지 늘어놓은 말을 부정하든 긍정하든, 소설가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 아니라 작품으로 보여 주십시오. (중략) 나와는 정반대되는 자세로, 이 책을 비웃으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을 들고 나타날 당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210쪽, ‘미래의 문학을 짊어질 사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