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이두호
1943년 7월 5일 대구 출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 입학 후 만화를 그리기 시작, 1969년〈소년중앙〉창간호에 「투명인간」연재를 시작으로 만화계에 정식 데뷔했다. 그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소년, 소녀 만화를 그렸고 1980년대 중반부터는 조선시대 민초들의 삶에 시선을 옮겨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 특히「객주」는 역사를 바라보는 명확한 사관과 고증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9년 제2회 YMCA '우수만화 작가상'수상, 1993년 제6회 YMCA '우수만화 작가상'수상, 1995년에는 '한국만화문화상(문화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한국 간행물 윤리위원회 위원, 한일 문화정책 자문위원, 초대 SICAF(서울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발)운영위원, 한국 만화가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세종대학교 만화 애니메이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대표작으로는 「폭풍의 그라운드」「머털도사와 108 요괴」「바람소리」「객주」「임꺽정」등이 있다.
_윤태호(《미생》 《오리진》 만화가, 한국만화가협회 회장)
이두호 선생님의 《만화 임꺽정》이 복간됐다는 소식에 아련하고도 반갑다. 선생님의 인품과 작품에 마음의 빚을 진 오랜 세월 탓일 것이다. 나는 지금 유명하고 오래된 한 질의 역사만화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거장의 60여 년에 걸친 일상이 한국만화의 가장 벅차고 소중한 역사가 된 놀라운 현장을 추천하는 것이다.
_주완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독자로서의 시작과 작가로서의 시작, 대부분의 작가들은 아마도 이 두 가지 시작점을 모두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작점은 대부분 ‘특정한 작품’을 접하는 순간이다. 내가 만화에 빠지게 된 작품은 많지만 작가로서의 인생을 진지하게 시작하도록 이끌어준 작품은 이두호 선생님의 《만화 임꺽정》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작가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경로를 만들어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방향을 잃는 경험은 일상적인 고통이다. 그럴 때마다 등대 혹은 나침반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시작점이 되어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 이두호 선생님은 “작가는 엉덩이로 그린다”는 말과 함께 당신의 작품들로 언제나 방향을 제시해주신 분이다. 《만화 임꺽정》의 재발간은 나의 시작점이 다시 눈앞에 살아나는 가슴 벅찬 순간이자 또 다른 작가들을 탄생시킬 수 있는 멋진 지점이 될 것이다.
_이종범(《닥터 프로스트》 만화가)
저자소개
지은이 : 이두호
책정보 및 내용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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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임꺽정》은 1991년부터 5년 3개월 동안 신문에 연재가 되었던 작품으로, 그 후 지금까지 두 차례 단행본으로 선보였다. 1996년 프레스빌에서 21권으로, 2002년 자음과모음에서 32권으로 재출간된 바 있다. 프레스빌 판은 청소년 독자를 겨냥해 신문 연재분에서 500쪽 이상 삭제된 아쉬움이 있고 이를 되살린 자음과모음 판은 절판되어 현재 온라인상에서 매니아들 사이에 몇 십만 원에 호가되고 있는 실정이어서 재복간은 이 같은 독자들의 갈증을 덜어줄 마지막 기회라 하겠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지 15년 만에 나오는 이번 복간본은 초판 2,000질 한정판으로, 무엇보다 소장용답게 꾸며 눈길을 끈다. 각 권의 표지는 재출간을 기념하여 작가가 새로 그렸다. 여기에 임꺽정의 느낌을 살린 고급스러운 박스에 작가의 낙관과 함께 2,000번째까지 넘버링을 넣어 소장 가치를 높였다.
별책부록으로 《만화 임꺽정》을 더 깊이 감상하다
복간을 맞이하여 <별책부록>을 마련해 작품을 보다 깊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이번 복간본에서 돋보이는 배려다. 작가 이두호의 인터뷰에는 만화가로서의 철학과 《만화 임꺽정》을 그리면서 고민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담겼다. 이와 함께 실존인물인 임꺽정의 이야기와 그의 시대, 임꺽정의 형제들과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만화 임꺽정》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만화평론가 백정숙의 평론 ‘민초들의 불꽃을 촛불로 만나다’는 한국 만화의 역사 속에서 《만화 임꺽정》이 나오기까지의 과정, 지금까지 읽히는 이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풀어냄으로써 작품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촛불집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주목할 점은 무엇보다 내 옆에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우리 내면에는 박차복도 있고 정난정도 있고 서림도 있다. 그리고 임꺽정과 그의 동료들도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다. 그 가치를 지키려는 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꿈은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이두호의 《만화 임꺽정》이 다시 한 번 크게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러한 가치가 작품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후 우리 삶은 또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매일 우리의 삶이 우리가 어떤 가치를 선택할 것인지를 시험한다. 10년 후에 다시 《임꺽정》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우리는 지금 임꺽정의 삶을 살고 있다.” _평론 중에서
백정의 눈을 통한 사회모순 고발
임꺽정은 실존 인물이다. 《명종실록》에는 조선 13대 왕인 명종 14년(1559) 영의정 상진 등 당대 최고 권력자들이 모여 황해도 일대를 휩쓰는 임꺽정의 도적떼를 없앨 대책을 논의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임꺽정 무리가 평안도, 경기 지역까지 세를 넓히면서 3년간 활동하는 동안 가짜 임꺽정 소동이 벌어지는 등 여러 벼슬아치들이 곤욕을 치렀다.
실록의 서술 몇 줄에 그친 임꺽정을 민중의 영웅으로 재탄생시킨 이가, 일제강점기에 이광수 등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로 꼽히던 벽초 홍명희다. 언론인· 교사로 독립운동에도 가세했던 그는 1928년 11월 <조선일보>에 소설 《임꺽정》 연재를 시작해 몇 번의 연재중단을 거치며 1940년 10월까지 연재했다.
소설은 생생한 묘사, 풍성한 우리말 구사로 “조선 현대 문학의 거탑” “동양 최초의 대작이며 우리의 생활사전” “조선어 광구의 노다지” 등 문학적 호평을 받는 한편 당시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이는 사회주의적 계급의식이 강했던 벽초가 임꺽정이란 백정의 눈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려 했던 집필 의도가 호응을 얻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하 명궁 이봉학 등 수호지를 방불케 하는 임꺽정의 ‘형제들’ 이야기가 지닌 흡인력 덕분이기도 하다.
벽초의 문학성을 온전히 살려낸 한국적 붓 터치
이후 임꺽정을 소재로 한 여러 판본의 소설과 만화가 나왔지만 큰 틀에서 벽초의 임꺽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만화 임꺽정》 또한 벽초의 작품을 토대로 하지만 이른바 ‘바지저고리 만화’라는 한국적 만화의 대가 이두호 화백이 벽초의 사회의식과 향토성을 살리면서도 새롭게 구성하고 그려냈기에 또 다른 ‘걸작’으로 꼽힌다. 이 화백이 이 작품으로 1996년 한국만화문화상을 받았고 2013년엔 프랑스에서 불어판이 출간돼 큰 인기를 모았다는 두 가지 사실이 《만화 임꺽정》의 작품성을 증언한다.
이두호 화백은 1991년부터 1996년까지 5년여간 <스포츠조선>에 《만화 임꺽정》을 연재했다. 벽초의 작품에 더해 《대동야승》 등 96가지의 참고서적, 박물관· 민속촌 등 숱한 현장답사를 바탕으로 그만의 임꺽정을 창조해냈다. 그러는 동안 숱한 뒷이야기를 남겼다. 스포츠신문 사상 최장기 연재 극화라는 점도 그렇고,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하루 8시간씩 작업에 매달리느라 쇠로 된 펜촉이 하루 두 개씩 망가졌다든가 관련 자료를 정리한 노트가 수십 권에 달한다는 일화도 그렇다.
소설과는 다른 캐릭터, 만화 특유의 빛나는 상상력
임꺽정과 우정을 맺지만 연정을 지키기 위해 다른 길을 가는 마빡이란 캐릭터를 등장시켜 당대의 세도가 윤원형의 첩 정난정의 전횡을 그려내는 등 소설과 다른 장치를 다수 마련했다. 소설 속에서 각각 표창과 돌팔매의 명수인 박유복과 배돌석을 합쳐 조금맹으로 등장시키는 등 ‘의형제’를 7명에서 6명으로 줄인 것 역시 이 화백의 고심의 결과이다. 그러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미완으로 끝난 벽초의 임꺽정과 달리 이두호의 《만화 임꺽정》은 야사집 《기재잡기》에 기대어 임꺽정의 최후를 담았다는 점이다. 관군의 화살 세례로 온몸이 벌집이 된 채 스러지는 임꺽정의 라스트신은 비장미마저 풍긴다. 이러한 미덕에 힘입어 설사 소설 임꺽정을 읽었더라도 《만화 임꺽정》을 읽는 재미는 각별하다.
무엇보다 《만화 임꺽정》은 임꺽정과 그 동료들이 도적이 될 수밖에 없던 타당한 이유를 그리는 한편 한양에 간 임꺽정이 산채의 재물을 펑펑 쓰면서 세 명의 첩을 두는 등 인간적 약점까지 담아내는 등 ‘보통 사람’ 임꺽정을 성공적으로 재탄생시켰다.
우리는 ‘임꺽정의 시대’를 살고 있다
임꺽정은 홍길동, 장길산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도적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시대가 낳고 세상이 키운” 도적 아닌 도적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소설, 영화, TV드라마 등 다양한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는데 이는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부조리한 상황이 ‘현재’와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3포 세대’ ‘5포 세대’란 말과 더불어 ‘헬조선’이란 말이 생명력을 가지고 오르내리는 실정이다. 불과 지난해만 해도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행복한 이는 도둑 아니면 바보”라는 말이 설득력을 지니지 않았는가. 게다가 지금 우리는 이른바 ‘적폐 청산’을 통해 상상할 수 없는 권력층의 부패와 전횡을 목격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화 임꺽정》에서 그려지는 박차복의 개인적 악행, 정난정을 통해 보여주는 국정농단, 보우스님과 그 일당에 의해 자행되는 호가호위의 악행, 서림으로 대표되는 ‘먹물’의 배신을 보면 시대의 모순이 피부에 와닿는다. 그러기에 비록 ‘실패한 혁명’으로 끝났지만 임꺽정의 행보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