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추천글
《퍼블리셔스 위클리》《뉴욕 타임스》
“올해의 책The Best Books of the Year”(2007) 선정
종교와 정치, 그 불온한 관계의 역사를 파헤친 문제작
“이 시대 가장 탁월한 통찰을 담고 있으며 다음 세대의 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도발적이다. 서구의 종교와 정치사상에 대한 지적인 설명에 섬세함을 더했다.” 뉴욕타임즈
“정치와 종교에 대한 놀라운 지식과 명민한 통찰로 가득 찬 눈부신 역작” 보스턴 글로브
2007년 7월, 《사산된 신》이 출간되자마자 미국 지성계는 마크 릴라가 던진 도발적인 메시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과학기술이 발달했고, 건국이념부터 자유와 합리주의로 가득 차 있던 미국에 “신권정치”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순식간에 미국 지성계의 화두가 되었다. 특히 대對 이라크 전쟁을 단순히 “이슬람 과격파”의 공격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지키기 위해서라고만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미국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를 중심으로 신정국가가 되어 가고 있다는 릴라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부시 정권의 탄생과 재선으로 미국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입지는 강화되었고, 그들의 신앙과 신념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책을 좌우하면서 미국의 정치는 종교적 열정에 휘둘리게 되었다.
마크 릴라는 20세기가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 계급과 사회정의, 민족해방과 국가정체성 등과 같은 세속 이데올로기 투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투쟁이 사회의 중심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일어난 9·11테러부터 미국은 물론 동구권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는 인종주의적 갈등,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산발적인 테러와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21세기의 사회적·정치적 분쟁의 기저에는 종교적 순혈주의와 배타성이 있다는 것이다. 마크 릴라에 따르면 종교는 역사적으로 인간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한 가장 확실한 면죄부가 되어 왔다. 종교는 전쟁에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고, 살생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 주었다. 따라서 정치가 종교에 사로잡힐 경우 또 어떤 비극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결국 마크 릴라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적 열정이 정치권력을 장악하지 말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크 릴라의 주장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수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2007년 《퍼블리셔스 위클리》와 《뉴욕 타임스》는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뉴욕 타임스》는 “도발적이다. 서구의 종교와 정치사상에 대한 지적인 설명에 섬세함을 더했다”고 평가했으며,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이 책이 “이 시대 가장 탁월한 통찰을 담고 있다”고 극찬했다.
“21세기 국제 정치 지형이 16세기 식 종교 논쟁으로 돌변했다.
인류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 전쟁에 휘말릴 것이다.” 마크 릴라
정교분리가 완성되었다는 오판,
21세기는 새로운 위기이자 도전의 시대
우리에게 알려진 대부분의 문명, 대부분의 시대,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간은 정치적 문제를 숙고할 때 신에 의존함으로써 답을 찾아 왔다. 정치는 인간이 아닌 신의 문제였으며, 종교적 결정이 세속 정치를 좌우했다. 특히 서구 사회에서는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부터 십자군 전쟁, 이교도에 대한 잔혹한 탄압, 식민지 개척 이후의 노예제까지 모든 정치적 결정은 신의 뜻에 따른 것이었고, 따라서 그 자체로 정당한 행위였다.
이 책 《사산된 신》은 서구 사회의 정치화된 종교, 종교화된 정치권력의 역사를 파헤치고, 지금까지 그것이 어떻게 이어져 오고 있는지를 밝힌 책이다. 저자 마크 릴라는 21세기의 국제 정치 지형이 16세기 식의 종교논쟁으로 돌변했다고 말한다. 즉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현실적인 영향력을 상실한 지금 종교적 신념이 사회의 중심 이념으로 자리매김하였다는 것이다. 9·11테러부터 미국의 이라크전쟁,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와 인종주의의 부활까지, 최근 서구 사회의 반동적 변화에는 종교적 열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상태가 현실적인 정치권력을 획득할 때, 또다시 인류는 또 다른 비극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이 책은 16세기 계몽주의자들로부터 시작한다. 로크와 흄, 홉스 같은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과 정치의 기원에 대해 탐구한 결과 종교와 정치의 명백한 분리만이 세속 정치의 안정성을 꾀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들은 종교를 신의 선물이 아닌 인간의 발명품으로 바라봄으로써, 정치를 신의 계시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하려고 했다. 이후 인류는 종교와 정치 문제를 구분하는 법을 배웠으며, 광신주의는 사라졌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그리고 9․11 테러까지…… 오늘날 인류는 다시 16세기의 투쟁을 반복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 종교적 열정이 다시 세계 정치를 움직이고 있다.
사산된 신, 그들의 기획은 왜 실패하였나
정교분리, 위대한 도전의 시작
서구에서 종교와 정치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종교가 정치였고, 정치가 종교였던 시대가 1000년 넘게 이어질 뿐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내부의 갈등과 분열, 그리고 그로 인한 지난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을 바라본 16세기의 철학자들은 이에 근본적인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무언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느꼈다. 그들은 종교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때까지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재고하기 시작했다.
로크와 홉스, 흄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인간의 본성과 정치의 기원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에서 종교가 정치에 해로운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인물은 홉스였다. 철저한 정교 분리주의자인 홉스는 《리바이어선》에서 종교를 무지와 공포에서 오는 인간적 현상으로 치부하며, 정치 지도자가 종교를 감독하는 절대군주제와 단일국교제를 주장했다. 반면 로크와 흄은 정교분리의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종교는 강요할 수 없는 것이므로, 종교관용과 권력 분화 같은 개념을 도입하고자 했다. 이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근대 민주주의 제도의 기초가 성립될 수 있었다.
도덕의 옷을 입은 부르주아의 신
유럽 대륙에서의 움직임은 영국과 달랐다. 프랑스의 루소와 독일의 칸트 역시 기독교의 계시를 부인했고, 종교와 이성의 근원으로 인간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루소는 《에밀》에서 종교의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즉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빛나는 내면의 빛과 양심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며, 종교가 바로 그 개인과 사회의 도덕성을 계발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루소에 의해 종교는 정치권력과는 멀어졌지만, 그 자신의 도덕적 정통성을 가지게 되었다.
칸트는 루소의 도덕 종교에 동의하였지만, 그것이 감성적인 분석이라고 지적했다. 칸트는 특유의 치밀하고 합리적인 논리로 종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기독교의 정통 교리는 부인하면서도 종교와 인간은 떨어질 수 없으며, 바르게만 개혁된다면 기독교야말로 인간의 도덕성 향상에 가장 적합한 종교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칸트는 행복을 추구하는 이성적 인간은 누구나 “최고의 선”을 추구할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신의 존재와 인간 영혼의 불멸성이라는 두 가지 공리를 인정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최고의 선”이 개인의 목표뿐 아니라 사회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칸트는 종교를 통한 사회적·집단적 도덕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한 셈이었다. 결국 칸트는 종교를 인간적 현상으로 바라보면서도 종교가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공헌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종교를 다시 정치에 접목시키고 말았다.
이들보다 조금 뒤에 인간과 세계의 화합을 강조한 헤겔이 등장했는데, 그에게 있어 종교는 결국 사회적 화합의 힘으로 치부되었다. 헤겔은 신교가 “절대지”라는 인간 지식의 절정에 도달했으며, 독일은 신교 중심의 도덕 생활을 통해 인류의 화합을 달성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 정신과 인간적 제도를 신성화함으로써 근대 부르주아 체제를 찬양하고 악을 정당화함으로써 나치주의와 공산주의에 바탕을 제공한 것으로 이해된다.
너무나 순진해서 실패한 기획, 자유주의 신학
칸트와 헤겔을 거친 19세기 독일에서는 신교 중심의 부르주아 생활방식을 지향하며, 종교는 올바르게 이해될 경우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식의 믿음이 생겨났다. 이러한 믿음의 바탕 위에 종교가 이전처럼 정치를 위협하거나 광신주의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와 다비트 슈트라우스 등을 위시한 이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너무 쉽게 인간 사회가 진보적이라고 가정했고, 광적인 종교심이 더이상 근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은 성서에 대한 비판적 접근과 예수의 신성에 대한 부정은 유지했지만, 기독교 복음의 도덕적 메시지는 합리화했고, 이를 근대 정치와 문화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독일의 의도와 신의 의도는 같다는 전제 아래 독일의 전쟁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의 재앙으로 자유주의 신학은 그들이 찬양하던 부르주아 사회와 함께 무너지고, 그들이 꿈꾸었던 신은 “사산된 신”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다시 인간을 성서 속 구원의 신, 메시아 하느님과 화합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일어났다. 카를 바르트, 로젠츠바이크의 메시아주의적·종말론적 구원사상은 정치적 목적과는 무관했지만 그것은 독일에서 정치적 구원에 대한 신학적 필요성을 주장하는 데 악용되었고, 결국 20세기 최악의 재앙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본문 인용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한때 이슬람교도나 유대교도, 이교도에게 하듯 광기 어린 분노 속에서 추적하고 살해했다. 마침내 지친 평화가 찾아왔으나 기독교 정치신학의 운명을 되살리지 못한 채 정치적 타협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평화를 지키고 종교 분쟁을 줄이자는 내용의 새로운 정치사상이 나타나 이전의 지적 전통을 대체했다. 그것은 중세 후기 기독교 정치사상의 변화와 르네상스, 새로운 자연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점진적인 변화였다. _ 55쪽 제1장 기독교 정치의 위기
홉스는 유럽을 정치신학의 미궁에서 단번에 빼내기 위한 치유책을 제시했다. 그의 제안은 급진적이며 사실상 무시무시했다. 그는 공포를 제거할 의도는 없었고, 오히려 그것을 군주라는 한 인물에만 집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만약 절대군주가 피지배층을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인간이건 신이건,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평화는 유지될지도 모른다. 홉스는 그런 존재를 “지상의 신”이라고 불렀다. _ 91쪽 제2장 분리주의의 도전
루소는 제3의 길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했고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아주 위험한 인물이었다. 루소는 인간을 비도덕적인 존재로 간주하지 않았고, 기독교 성직자와는 달리 양심과 자선, 동료의식, 미덕 같은 인간적 특성을 신성한 은혜의 작용에 귀속시키지 않았다. 그에게는 인간 자체가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였다. 그는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에게 종교의 유익을 선사한 최초의 인물이었고, 그래서 기독교에 대한 가장 심각한 근대적 도전의 상징이 되었다. _ 118쪽 제3장 도덕적인 신
신교는 종교 체제를 완성시켰다. 프랑스혁명이 낳은 근대 국가는 탄탄한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체제적 상황을 이룩했다. 그리고 헤겔 철학은 그런 두 가지 발달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절대지”에 도달했다. 근대에는 종교와 철학, 좋은 사회 간에 완벽한 화합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건 철학자들이 왕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교가 철학자-군주들을 여분의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_ 206쪽 제4장 부르주아의 신
정치 연설에 늘 성서적 용어를 끼워 넣는 미국에서조차 정치제도의 근본 원리는 이성에 입각해야 하며 계시 의존은 불필요한 것으로 믿어졌다. 독일 자유주의 신학은 이성과 계시 간에 구분이 명확치 않았고, 신의 말씀에 직접 의존하지 않으면서 신과 인간과 세상의 관계에 대해 상당히 복잡한 이론을 개발해 냈다. 그와 동시에 근대 정치`문화 생활을 축하하는 분위기 위로 계시의 희미한 색채를 남기며 그것이 신의 축복을 받은 것임을 암시했다. 축복이 시작되면 생각은 멈춘다. _ 251쪽 제5장 자유주의 신학의 몰락
자유주의 신학은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으며 과거는 과거라는 전제 아래 근대 사회에 희망을 걸었었다. 메시아주의는 인간이 아직 무지하고 미신에 빠져 있을 때, 무자비한 군주들과 교활한 사제들이 정치를 주도하던 시대의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 근대 국가에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기 고가르텐과 블로흐 같은 인물들이 20세기 유럽의 중심에서 정치 메시아를 예언하고 나왔다. 마치 홉스가 《리바이어선》을 쓰기 위해 펜을 들었던 17세기 이래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듯했다. _ 297쪽 제6장 구원의 신
자유주의 신학은 부푼 꿈이 아닌 합리적 희망에서 출발했다. 그 소박한 바람은 성서적 종교의 도덕진리를 근대 정치 생활의 실상에 단지 적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과 화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유주의의 신은 궁극적인 진리를 찾는 이들에게 진정한 확신을 심어 주지 못한 “사산된 신”임이 드러났다. 바이마르 시대, 사람들에겐 근대 질서 전체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새로운 계시에 근거한 보다 튼튼한 신앙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강렬했다. 그것은 구원에 대한 갈증이었다. _ 306쪽 제7장 사산된 신
저자소개
지은이 : 마크 릴라 Mark Lilla
시카고 대학교 사회사상위원회 교수를 지냈으며, 《유럽정치학European Journal of Political Theory》의 편집위원으로 있으면서 《뉴욕 타임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등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바이츠만 추모 강연을 하기도 했고,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칼라일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분별 없는 열정》《비코: 반근대인의 형성》《이사야 벌린의 유산》 등이 있다.
이 책 《사산된 신》은 2003년 옥스퍼드 대학교가 주최하는 칼라일 강연에서 발표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책이며, 2007년 《뉴욕 타임스》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올해의 책”으로 각각 선정했다.
옮긴이 : 마리 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중세가 지나고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16세기에 이르자 계몽주의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했다. 그들은 종교가 세속 정치에 악영향만을 끼쳐왔다고 판단했으며, 정치와 종교의 완전한 분리, 나아가 종교 자체에 대해서까지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19세기, 독일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긍정적 기능의 종교를 상상했다. 그들은 종교가 올바로 기능하기만 한다면 근대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메시아사상의 부활과 20세기의 비극을 거치면서 그들의 계획은 애초부터 실패한 것임이 드러났다. 그들이 꿈꾸었던 신은 결국 “사산된 신”이었던 것이다.
* stillborn: [형용사] 사산의, 처음부터 실패작인
목차
제1장 기독교 정치의 위기
제2장 정교분리의 도전
제3장 도덕에 갇힌 신
제4장 부르주아 신의 탄생
제5장 재유주의 신학의 몰락
제6장 메시아의 부활
제7장 사산된 신
주 석
옮긴이의 글
찾 아 보 기
편집자 추천글
“올해의 책The Best Books of the Year”(2007) 선정
종교와 정치, 그 불온한 관계의 역사를 파헤친 문제작
“이 시대 가장 탁월한 통찰을 담고 있으며 다음 세대의 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도발적이다. 서구의 종교와 정치사상에 대한 지적인 설명에 섬세함을 더했다.” 뉴욕타임즈
“정치와 종교에 대한 놀라운 지식과 명민한 통찰로 가득 찬 눈부신 역작” 보스턴 글로브
2007년 7월, 《사산된 신》이 출간되자마자 미국 지성계는 마크 릴라가 던진 도발적인 메시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과학기술이 발달했고, 건국이념부터 자유와 합리주의로 가득 차 있던 미국에 “신권정치”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순식간에 미국 지성계의 화두가 되었다. 특히 대對 이라크 전쟁을 단순히 “이슬람 과격파”의 공격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지키기 위해서라고만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미국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를 중심으로 신정국가가 되어 가고 있다는 릴라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부시 정권의 탄생과 재선으로 미국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입지는 강화되었고, 그들의 신앙과 신념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책을 좌우하면서 미국의 정치는 종교적 열정에 휘둘리게 되었다.
마크 릴라는 20세기가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 계급과 사회정의, 민족해방과 국가정체성 등과 같은 세속 이데올로기 투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투쟁이 사회의 중심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일어난 9·11테러부터 미국은 물론 동구권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는 인종주의적 갈등,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산발적인 테러와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21세기의 사회적·정치적 분쟁의 기저에는 종교적 순혈주의와 배타성이 있다는 것이다. 마크 릴라에 따르면 종교는 역사적으로 인간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한 가장 확실한 면죄부가 되어 왔다. 종교는 전쟁에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고, 살생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 주었다. 따라서 정치가 종교에 사로잡힐 경우 또 어떤 비극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결국 마크 릴라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적 열정이 정치권력을 장악하지 말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크 릴라의 주장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수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2007년 《퍼블리셔스 위클리》와 《뉴욕 타임스》는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뉴욕 타임스》는 “도발적이다. 서구의 종교와 정치사상에 대한 지적인 설명에 섬세함을 더했다”고 평가했으며,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이 책이 “이 시대 가장 탁월한 통찰을 담고 있다”고 극찬했다.
“21세기 국제 정치 지형이 16세기 식 종교 논쟁으로 돌변했다.
인류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 전쟁에 휘말릴 것이다.” 마크 릴라
정교분리가 완성되었다는 오판,
21세기는 새로운 위기이자 도전의 시대
우리에게 알려진 대부분의 문명, 대부분의 시대,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간은 정치적 문제를 숙고할 때 신에 의존함으로써 답을 찾아 왔다. 정치는 인간이 아닌 신의 문제였으며, 종교적 결정이 세속 정치를 좌우했다. 특히 서구 사회에서는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부터 십자군 전쟁, 이교도에 대한 잔혹한 탄압, 식민지 개척 이후의 노예제까지 모든 정치적 결정은 신의 뜻에 따른 것이었고, 따라서 그 자체로 정당한 행위였다.
이 책 《사산된 신》은 서구 사회의 정치화된 종교, 종교화된 정치권력의 역사를 파헤치고, 지금까지 그것이 어떻게 이어져 오고 있는지를 밝힌 책이다. 저자 마크 릴라는 21세기의 국제 정치 지형이 16세기 식의 종교논쟁으로 돌변했다고 말한다. 즉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현실적인 영향력을 상실한 지금 종교적 신념이 사회의 중심 이념으로 자리매김하였다는 것이다. 9·11테러부터 미국의 이라크전쟁,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와 인종주의의 부활까지, 최근 서구 사회의 반동적 변화에는 종교적 열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상태가 현실적인 정치권력을 획득할 때, 또다시 인류는 또 다른 비극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이 책은 16세기 계몽주의자들로부터 시작한다. 로크와 흄, 홉스 같은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본성과 정치의 기원에 대해 탐구한 결과 종교와 정치의 명백한 분리만이 세속 정치의 안정성을 꾀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들은 종교를 신의 선물이 아닌 인간의 발명품으로 바라봄으로써, 정치를 신의 계시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하려고 했다. 이후 인류는 종교와 정치 문제를 구분하는 법을 배웠으며, 광신주의는 사라졌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그리고 9․11 테러까지…… 오늘날 인류는 다시 16세기의 투쟁을 반복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 종교적 열정이 다시 세계 정치를 움직이고 있다.
사산된 신, 그들의 기획은 왜 실패하였나
정교분리, 위대한 도전의 시작
서구에서 종교와 정치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고,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종교가 정치였고, 정치가 종교였던 시대가 1000년 넘게 이어질 뿐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내부의 갈등과 분열, 그리고 그로 인한 지난한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을 바라본 16세기의 철학자들은 이에 근본적인 의심을 품기 시작했고, 무언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느꼈다. 그들은 종교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때까지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재고하기 시작했다.
로크와 홉스, 흄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인간의 본성과 정치의 기원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에서 종교가 정치에 해로운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인물은 홉스였다. 철저한 정교 분리주의자인 홉스는 《리바이어선》에서 종교를 무지와 공포에서 오는 인간적 현상으로 치부하며, 정치 지도자가 종교를 감독하는 절대군주제와 단일국교제를 주장했다. 반면 로크와 흄은 정교분리의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종교는 강요할 수 없는 것이므로, 종교관용과 권력 분화 같은 개념을 도입하고자 했다. 이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근대 민주주의 제도의 기초가 성립될 수 있었다.
도덕의 옷을 입은 부르주아의 신
유럽 대륙에서의 움직임은 영국과 달랐다. 프랑스의 루소와 독일의 칸트 역시 기독교의 계시를 부인했고, 종교와 이성의 근원으로 인간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루소는 《에밀》에서 종교의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즉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빛나는 내면의 빛과 양심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며, 종교가 바로 그 개인과 사회의 도덕성을 계발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루소에 의해 종교는 정치권력과는 멀어졌지만, 그 자신의 도덕적 정통성을 가지게 되었다.
칸트는 루소의 도덕 종교에 동의하였지만, 그것이 감성적인 분석이라고 지적했다. 칸트는 특유의 치밀하고 합리적인 논리로 종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기독교의 정통 교리는 부인하면서도 종교와 인간은 떨어질 수 없으며, 바르게만 개혁된다면 기독교야말로 인간의 도덕성 향상에 가장 적합한 종교라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칸트는 행복을 추구하는 이성적 인간은 누구나 “최고의 선”을 추구할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신의 존재와 인간 영혼의 불멸성이라는 두 가지 공리를 인정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최고의 선”이 개인의 목표뿐 아니라 사회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칸트는 종교를 통한 사회적·집단적 도덕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한 셈이었다. 결국 칸트는 종교를 인간적 현상으로 바라보면서도 종교가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공헌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종교를 다시 정치에 접목시키고 말았다.
이들보다 조금 뒤에 인간과 세계의 화합을 강조한 헤겔이 등장했는데, 그에게 있어 종교는 결국 사회적 화합의 힘으로 치부되었다. 헤겔은 신교가 “절대지”라는 인간 지식의 절정에 도달했으며, 독일은 신교 중심의 도덕 생활을 통해 인류의 화합을 달성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 정신과 인간적 제도를 신성화함으로써 근대 부르주아 체제를 찬양하고 악을 정당화함으로써 나치주의와 공산주의에 바탕을 제공한 것으로 이해된다.
너무나 순진해서 실패한 기획, 자유주의 신학
칸트와 헤겔을 거친 19세기 독일에서는 신교 중심의 부르주아 생활방식을 지향하며, 종교는 올바르게 이해될 경우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식의 믿음이 생겨났다. 이러한 믿음의 바탕 위에 종교가 이전처럼 정치를 위협하거나 광신주의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자유주의 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와 다비트 슈트라우스 등을 위시한 이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너무 쉽게 인간 사회가 진보적이라고 가정했고, 광적인 종교심이 더이상 근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은 성서에 대한 비판적 접근과 예수의 신성에 대한 부정은 유지했지만, 기독교 복음의 도덕적 메시지는 합리화했고, 이를 근대 정치와 문화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독일의 의도와 신의 의도는 같다는 전제 아래 독일의 전쟁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의 재앙으로 자유주의 신학은 그들이 찬양하던 부르주아 사회와 함께 무너지고, 그들이 꿈꾸었던 신은 “사산된 신”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다시 인간을 성서 속 구원의 신, 메시아 하느님과 화합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일어났다. 카를 바르트, 로젠츠바이크의 메시아주의적·종말론적 구원사상은 정치적 목적과는 무관했지만 그것은 독일에서 정치적 구원에 대한 신학적 필요성을 주장하는 데 악용되었고, 결국 20세기 최악의 재앙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본문 인용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한때 이슬람교도나 유대교도, 이교도에게 하듯 광기 어린 분노 속에서 추적하고 살해했다. 마침내 지친 평화가 찾아왔으나 기독교 정치신학의 운명을 되살리지 못한 채 정치적 타협에 그치고 말았다. 이후 평화를 지키고 종교 분쟁을 줄이자는 내용의 새로운 정치사상이 나타나 이전의 지적 전통을 대체했다. 그것은 중세 후기 기독교 정치사상의 변화와 르네상스, 새로운 자연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점진적인 변화였다. _ 55쪽 제1장 기독교 정치의 위기
홉스는 유럽을 정치신학의 미궁에서 단번에 빼내기 위한 치유책을 제시했다. 그의 제안은 급진적이며 사실상 무시무시했다. 그는 공포를 제거할 의도는 없었고, 오히려 그것을 군주라는 한 인물에만 집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만약 절대군주가 피지배층을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인간이건 신이건,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면 평화는 유지될지도 모른다. 홉스는 그런 존재를 “지상의 신”이라고 불렀다. _ 91쪽 제2장 분리주의의 도전
루소는 제3의 길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했고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아주 위험한 인물이었다. 루소는 인간을 비도덕적인 존재로 간주하지 않았고, 기독교 성직자와는 달리 양심과 자선, 동료의식, 미덕 같은 인간적 특성을 신성한 은혜의 작용에 귀속시키지 않았다. 그에게는 인간 자체가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였다. 그는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에게 종교의 유익을 선사한 최초의 인물이었고, 그래서 기독교에 대한 가장 심각한 근대적 도전의 상징이 되었다. _ 118쪽 제3장 도덕적인 신
신교는 종교 체제를 완성시켰다. 프랑스혁명이 낳은 근대 국가는 탄탄한 자유를 바탕으로 하는 체제적 상황을 이룩했다. 그리고 헤겔 철학은 그런 두 가지 발달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절대지”에 도달했다. 근대에는 종교와 철학, 좋은 사회 간에 완벽한 화합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건 철학자들이 왕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신교가 철학자-군주들을 여분의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_ 206쪽 제4장 부르주아의 신
정치 연설에 늘 성서적 용어를 끼워 넣는 미국에서조차 정치제도의 근본 원리는 이성에 입각해야 하며 계시 의존은 불필요한 것으로 믿어졌다. 독일 자유주의 신학은 이성과 계시 간에 구분이 명확치 않았고, 신의 말씀에 직접 의존하지 않으면서 신과 인간과 세상의 관계에 대해 상당히 복잡한 이론을 개발해 냈다. 그와 동시에 근대 정치`문화 생활을 축하하는 분위기 위로 계시의 희미한 색채를 남기며 그것이 신의 축복을 받은 것임을 암시했다. 축복이 시작되면 생각은 멈춘다. _ 251쪽 제5장 자유주의 신학의 몰락
자유주의 신학은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으며 과거는 과거라는 전제 아래 근대 사회에 희망을 걸었었다. 메시아주의는 인간이 아직 무지하고 미신에 빠져 있을 때, 무자비한 군주들과 교활한 사제들이 정치를 주도하던 시대의 것이었다. 그런 상황이 근대 국가에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여기 고가르텐과 블로흐 같은 인물들이 20세기 유럽의 중심에서 정치 메시아를 예언하고 나왔다. 마치 홉스가 《리바이어선》을 쓰기 위해 펜을 들었던 17세기 이래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듯했다. _ 297쪽 제6장 구원의 신
자유주의 신학은 부푼 꿈이 아닌 합리적 희망에서 출발했다. 그 소박한 바람은 성서적 종교의 도덕진리를 근대 정치 생활의 실상에 단지 적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과 화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유주의의 신은 궁극적인 진리를 찾는 이들에게 진정한 확신을 심어 주지 못한 “사산된 신”임이 드러났다. 바이마르 시대, 사람들에겐 근대 질서 전체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새로운 계시에 근거한 보다 튼튼한 신앙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강렬했다. 그것은 구원에 대한 갈증이었다. _ 306쪽 제7장 사산된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