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정보 및 내용요약
불온한 신화 아메리카
종교적 자유와 신념, 용기와 공동체, 타협과 좌절, 그리고 전쟁……
미국 건국사의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다!
왜 미국은 필그림을 선조로 생각하는가
역사적 양심과 가치에 위배되는 진실은 은폐되거나 축소되기 쉽다. 사람들은 역사를 깨끗하고 흥미로운 축제의 장이라고 생각하며 피비린내와 분노, 아첨과 협잡의 역사는 외면하려 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을 묻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온 최초의 유럽인들은 필그림Pilgrim(순례자)이 아닌, 1607년 봄에 버지니아에 도착한 104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제임스타운이라는 식민지를 건설하고 정착 생활에 들어갔다. 그러나 미국은 그들을 선조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부분 빈민, 부랑자, 범죄자 등으로, 선조로 내세우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비천한 계층 출신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조건 미달이었다.
미국의 건국 신화는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 1620년 종교적 자유와 신념을 위해 메이플라워Mayflower라는 낡은 배를 타고 뉴잉글랜드 플리머스로 건너온 순례자들에게서 시작된다. 이들은 분리주의자Separatist라고 하는 청교도의 한 급진적 분파였는데, 영국 제임스 왕의 종교적 박해와 억압을 피해 순수하게 종교적 자유와 신념을 위해 척박한 땅, 아메리카에 닿은 것이다. 필그림이 상징하는 가치는 ‘자유’와 ‘신념’, 그리고 ‘개척’과 ‘모험’이라고 하는 고결함이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 건국사의 첫 페이지를 당당히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순결한 동기로만 미국 건국사의 무수한 페이지를 논할 수 있을까? 과연 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면서 어떠한 영광과 비극의 역사를 썼을까?
미국의 탄생, 그 희망과 야만의 역사를 촘촘히 읽다
《메이플라워》는 미국을 탄생시킨 중요한 사건, 메이플라워 호의 항해와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최초의 순례자들이 이룩한 신화에 가려진 것은 무엇인지를 섬세하고 생생한 필치로 추적하는 작품이다. 간결한 서술과 탁월한 공정성, 소설을 능가하는 서술력과 명확한 논지를 겸비한 이 책은 필그림이 뉴잉글랜드에 정착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을 말살하려 했던 비극적인 사건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수많은 책과 영화에서 1620년에 필그림이 어떻게 종교적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떠나 왔는지,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 체결 후 어떻게 플리머스 록에 상륙하고 그곳의 인디언과 친구가 되었는지, 그들이 최초의 추수감사절을 기념할 수 있도록 인디언 추장 마사소이트가 어떻게 도왔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미국 탄생 이야기는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은 대개 필그림에 관한 신화가 추수감사절이라는 일종의 역사적 환상으로 마무리되는 지점에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자 너새니얼 필브릭은 이 책의 반을 필그림의 이주와 정착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할애하고, 나머지 반을 필립 왕 전쟁이라고 하는 미국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을 서술하는 데 할애한다. 필그림과 그들의 후손이 아메리카 원주민과 50년 넘게 유지한 평화 관계가 어떻게 어느 날 갑자기 전쟁으로 산산이 부서졌는지 살펴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익숙한 미국 건국사는 훨씬 새롭고 복잡해진다.
“결국 한 민족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필브릭이 새로 쓰는 미국 건국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지금의 미국이라는 나라가 전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의 한 원형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정착민의 압승으로 끝이 난 필립 왕 전쟁은 이주민과 원주민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전쟁 당시 원주민의 75퍼센트가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비율로 보면 남북전쟁 당시 사망자의 두 배가 넘고, 미국 독립전쟁과 비교하면 거의 일곱 배에 달한다. 결국 한 민족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노예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라면서 신대륙 발견과 적응, 공동체 형성과 전쟁이라는 패턴은 미국이 전 세계로 진출할 때마다 그대로 적용되어 왔다고 밝힌다.
편집자 추천글
세계적인 논픽션 작가 너새니얼 필브릭이 재구성한
‘가식 없는’ 미국의 역사
왜 필브릭은 이 책을 썼는가
1920년에 일어난 미국의 포경선 에식스 호 조난 사건을 바탕으로 쓴 《바다 한가운데서》로 2000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너새니얼 필브릭Nathaniel Philbrick. 그는 1986년, 19세기 미국 포경 산업의 본거지였던 난투켓 섬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이곳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2000년에 발표한 《바다 한가운데서》이고, 또 다른 하나가 미국 건국사를 독특한 시각으로 서술한 이 책 《메이플라워》이다.
필브릭은 난투켓 섬이 고향인 부모님의 가족사를 연구하다가 포카노케트 족의 지도자였던 필립(원래 이름은 메타코메트, 또는 메타콤이었다. 백인들에 의해 필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만나게 되었고, 동시에 필그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료를 연구하던 중 그는, 오늘날 로드아일랜드의 브리스톨이 본거지였던 필립이 왜 100킬로미터도 넘게 떨어진 난투켓으로 이동했는지 의문스러웠다. 《메이플라워》는 이 의문을 시작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는 답을 얻기 위해 필립의 아버지 마사소이트와 필그림에 대한 정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역사 수정주의자가 재구성한 필그림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야기
기막힌 스토리텔러 필브릭은 철저한 고증과 치밀한 분석을 통해 필그림과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관계를 한 편의 역사소설과도 같은 장대함과 섬세함으로 전개해 나간다. 그가 고고학, 인류학, 민속학 등에 관한 700종이 넘는 사료를 바탕으로 당시의 문화를 연구하면서 깨달은 것은, “신이 아메리카 대륙에 내린 존재”라는 필그림에 대한 평가가 생각만큼 온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필브릭은 이 책에서 지금까지 필그림과 메이플라워 호가 미국의 모호한 민족성을 대단히 효과적으로 보완해 주는 정치적인 상징이자 편견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는 필그림을 재평가한다.
여기서 필브릭은 척박한 정치적 풍토에서 살아온 미국인이 국가를 세운 사람들의 일대기에 탐욕스러울 정도로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건국사에 대한 미국인의 욕망이 역사를 감상주의 혹은 진실이 은폐된 신화로 전락시킨 것이다. 그는 소위 불온한 역사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소홀하게 다뤄지거나 아예 삭제되어 버리는 ‘껄끄러운’ 부분에 거울을 들이댄다. 그렇다고 해서 필그림의 도덕성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초창기 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사건과 이후 역사와의 연관성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황무지에 에덴동산을 만들고 번영을 누리려던 꿈이 땅에 대한 집착, 인종 차별, 비열한 편의주의로 변질되어 끝내 전쟁을 불러오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현명하고 매혹적인 역사 수정주의자가 재구성한 필그림과 아메리카 원주민 간의 만남, 우정, 그리고 대립과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놀랄 만큼 생생하고 섬세하다. 17세기 필그림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실생활, 그리고 수많은 원주민 부족에 대한 뛰어난 세부 묘사와 아주 작은 대화 하나에까지도 심혈을 기울이는 집요함이 역사의 한 장면을 새롭고 생동하는 이미지로 되살려 냈다. 필브릭은 축복받은 글쟁이이자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동시에 깊이 있는 학술적 연구로 ‘가식 없는’ 미국의 역사를 탄생시켰다.
2006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뉴스위크》 선정 ‘올해의 책’
2007 퓰리처상 역사 부문 노미네이트
《메이플라워》는 2006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유수의 언론사들이 출간된 그해 최고의 책으로 추천하기에 서슴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의 조너선 야들리는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도 선입견을 버리고 그 모든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고까지 평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단의 고른 지지와 함께 일반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출간된 후 20주 동안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차지했으며, 현재까지도 그 열기가 이어져 《아마존닷컴》에 올라온 독자 서평은 300개가 넘는다. 출간된 해에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뉴스위크》 《퍼블리셔스 위클리》《보스턴 글로브》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시카고 트리뷴》 등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였고, 2007년 퓰리처상 역사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최종 우승 후보로서 경합을 벌였다.
★ 책 속으로
《메이플라워》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어판에는 주요 인물들을 선별하여 소개하는 장을 마련했으며, 책 속에 소개된 주요 사건들을 바탕으로 일지를 구성하여 좀 더 체계적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제1부 발견
그들은 참 이상한 정복자였다. 그들은 기쁠 때 찬양을 드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참아 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다른 청교도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영국 국교회가 그동안 저지른 끝없는 부정과 악습의 죄를 모두 속죄해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이주를 둘러싼 모든 논쟁은 “신이 그곳에 가기를 원한다”는 믿음 하나로 끝이 났다. _<01. 그들은 필그림이었다> 중에서
1620년 9월, 102명의 필그림들이 낡고 거대한 배 메이플라워에 몸을 실었다. 청교도적 신념을 공유한 그들은 영국 제임스 왕의 종교적 박해와 억압을 피해 아메리카로 떠났다. 악몽 같은 항해 끝에 돌투성이 불모의 땅 플리머스에 도착했으나 그중 절반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한겨울의 혹한 속에서 플리머스 언덕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1621년 2월에 처음으로 인디언이 플리머스 정착지에 나타났고, 필그림은 곧바로 강철 대포 여섯 문을 설치했다. 필그림과 인디언이 대치하던 중 서툰 영어를 구사하는 인디언 사모셋이 필그림을 방문하여 영국인을 환영한다는 의사를 전달한다. 이후 영어에 능통한 스콴토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필그림과 인디언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1621년 3월 22일, 필그림과 포카노케트 족 추장 마사소이트는 우호 조약을 체결한다. 필그림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도움으로 옥수수 재배에 성공하고 가까스로 이주 첫해에 북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추수감사절을 치른다.
제2부 적응
네덜란드 라이덴에 남아 있던 존 로빈슨 목사는 인디언 학살 소식을 듣자마자 브래드퍼드에게 편지를 썼다. “오, 그토록 잔인하게 모두 죽여 버리다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일단 붉은 피가 넘쳐흐르기 시작하면 오랫동안 멈추지 않는 법이오. 그들이 당해도 싸다고? 그렇다 해도 그 유혈 사태를 굳이 그리스도교인이 도발해야만 했소?” _<09. 혼란의 시간> 중에서
포카노케트 족과 동맹을 맺은 필그림 측은 포카노케트 족이 나라간셋 족과 문제를 일으키자 이 두 부족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나라간셋 족 추장 캐노니쿠스가 곧 플리머스 정착지를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를 접하고, 필그림은 정착지에 방벽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 스콴토가 필그림과 포카노케트 족 사이를 오가며 이간질하고, 뉴잉글랜드 원주민들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악한 계획을 꾸민다. 이에 격노한 포카노케트 족은 스콴토의 머리와 손을 자르려고 했지만, 플리머스의 총독 브래드퍼드는 원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역자인 스콴토를 지키려 했다. 1623년 봄, 마사소이트가 당시 네덜란드 무역상이 마을에 전염시켰을 것으로 추정되는 티푸스에 걸려 거의 죽을 지경이었으나 에드워드 윈슬로의 간호를 받고 극적으로 살아났다. 마사소이트의 완쾌 소식으로 포카노케트 족은 영국인을 더욱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플리머스 정착지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웨사구세트에 정착한 이주민과 원주민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웨사구세트 정착민과 같은 영국인으로서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 판단한 플리머스 정착민들은 마일스 스탠디시를 필두로 인디언을 선제공격하기로 한다. 살육의 시작과 함께 스탠디시에 의해 웨사구세트 지역의 부족장들이 거의 사살되었다. 웨사구세트 대량 학살이 자행되는 동안 필그림 편에 섰던 포카노케트 족은 학살 이후 인디언 사이에서 독보적인 지도자가 된다.
제3부 공동체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디딘 영국인은 힘없는 아이와 같은 존재였고, 포카노케트 족은 그들을 돌보는 마음 좋은 어머니와 같았다. 당시 포카노케트 족 추장이었던 마사소이트는 필그림을 안전하게 지켜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필립은 지금이야말로 영국인이 인디언을 관용으로 품어 은혜를 갚아야 하며 인디언 정복을 획책하지 말고 포카노케트 족이 자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필그림의 후손은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 아무도 필립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두려움에 떨며 살아남으려 애쓸 필요가 없게 된 지금, 영국인의 눈에는 인디언이 하찮게 보일 뿐이었다. _<12. 고난> 중에서
브래드퍼드는 마일스 스탠디시가 가진 군사적 역량에 크게 의존했고 정착지를 잔인하게 통제해 나갔다. 이후 이것이 뉴잉글랜드의 필그림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정착민들 사이에서도 필그림의 정당성은 의심받게 되었고, 플리머스 정착지의 근엄한 배타성은 조롱을 받았다. 종교적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에 온 필그림의 열정과 열의가 비열한 광신적 행동으로 인해 퇴색되어 가는 가운데, 필그림과 새로 이주한 영국인들은 새로운 정착지를 개척하기 위해 인디언의 땅을 헐값에 사들이기 시작했다. 돈에 눈이 먼 필그림이 해당 지역의 인디언과 충돌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1637년, 매사추세츠 당국은 영국 무역선의 선장 몇 명이 인디언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을 꼬투리 삼아 코네티컷 강 부근의 피쿼트 족을 공격하여 400여 명을 학살했다. 피쿼트 전투 이후 뉴잉글랜드 전 지역에 걸쳐 형성된 인디언과 영국군 동맹 관계가 위협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뉴잉글랜드 연합이라는 정착지 연합체가 구성되었다. 필그림은 ‘신심 깊고 결속력 강한 공동체’를 꿈꾸었지만 정착지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땅은 신앙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축재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17세기 중반이 되자, 필그림의 후손들에게 최고의 관심사는 돈이었고 종교적 구원은 뒷전이었다. 땅 매매 문제로 플리머스 법원의 출두 명령을 받은 마사소이트의 첫째아들 알렉산더가 법원 출두 후 원인 모를 이유로 죽자, 그의 동생 필립은 당시 정착지의 총사령관 조사이어 윈슬로가 독살했다고 믿게 된다. 포카노케트 족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필립은 독립된 부족으로 살아남기 위해 남은 인디언의 영토를 사수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알렉산더의 죽음에 연관된 인물이자 가장 공격적이고 비열한 수단으로 인디언의 땅을 매입해 댄 조사이어 윈슬로에 대항해 전쟁을 감행한다.
제4부 전쟁
처치는 포카노케트 족 임시 거처가 있는 언덕에 병사들을 집합시키고 필립의 사망을 알렸다. 영국군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사코넷 족은 필립의 바지와 양말을 붙잡고 질질 끌어다 시신을 임시 거처 옆에 눕혔다. 처치는 진흙투성이 시체 앞에서 판결문을 선고했다. “필립은 무수히 많은 영국군의 시신을 땅에 묻지도 않고 그대로 썩도록 방치한 죄가 있으므로 그의 시신 또한 땅에 묻히면 안 될 것이다.” 처치는 능숙한 한 사코넷 족 인디언에게 필립의 사지를 찢도록 명령했다.
_<16. 더 좋은 편에 서다> 중에서
1675년 6월, 부족 간의 힘을 합쳐 병력을 키워 가던 필립은 영국인 마을을 공격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보스턴에서 다국적 선원 300명이 뉴잉글랜드에 합류한다. 뉴잉글랜드의 남쪽 지역과 마운트 호프 주변 인디언에 대해 잘 아는 벤저민 처치가 새로운 정보통으로 활약한다. 1975년 12월,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플리머스 연방은 뉴잉글랜드 사상 가장 큰 군대를 조직했고, 이 거대한 대군의 지휘관으로 조사이어 윈슬로를 임명했다.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격전을 벌였으나, 1976년 중순에 접어들자 필립과 포카노케트 족 전사들은 병력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병들고 지친 데다 도망치는 신세로 전락했다. 영국군은 개종 인디언을 이용해 부족 간의 동맹을 이간했고, 인디언 측에 불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필립의 군대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결국 1676년 8월이 되자, 처치 부대의 맹렬한 추격에 사기가 꺾인 필립의 군대는 전의를 상실했다. 처치 부대의 습격으로 필립이 사망하고, 필립의 오른팔이었던 애나원까지 생포되면서 전쟁은 끝이 났다. 한때 인디언으로 번화했던 마운트 호프는 사실상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마을이 되었다.
저자소개
지은이 : 너새니얼 필브릭Nathaniel Philbrick
대학을 졸업한 후 4년 동안 《세일링 월드Sailing World》라는 잡지사에서 항해와 관련된 몇 권의 책을 쓰고 편집을 했다. 1986년, 19세기 미국 포경 산업의 본거지였던 난투켓 섬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이곳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20년 실제로 일어났던 미국의 포경선 에식스 호의 조난 이야기를 재구성한 《바다 한가운데서》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2003년에는 《영광의 바다》로 시어도어와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양사 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미국 건국사를 다른 시각으로 서술한 《메이플라워》를 발표하여 기막힌 스토리텔러로서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이 책은 출간된 그해에 매사추세츠 북 어워드에서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으며, 《뉴욕 타임스 북 리뷰》가 뽑은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2007년 퓰리처상 역사 부문에 후보로 올라 마지막까지 수상 경합을 벌였다.
그는 현재 난투켓 섬에서 살고 있으며, 1876년 6월 몬태나 주 리틀빅혼 카운티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이 연합하여 미국에 대항해 승리를 거둔 기념비적인 전투인 리틀빅혼 전투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옮긴이 : 황정하
책정보 및 내용요약
종교적 자유와 신념, 용기와 공동체, 타협과 좌절, 그리고 전쟁……
미국 건국사의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다!
왜 미국은 필그림을 선조로 생각하는가
역사적 양심과 가치에 위배되는 진실은 은폐되거나 축소되기 쉽다. 사람들은 역사를 깨끗하고 흥미로운 축제의 장이라고 생각하며 피비린내와 분노, 아첨과 협잡의 역사는 외면하려 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기원을 묻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온 최초의 유럽인들은 필그림Pilgrim(순례자)이 아닌, 1607년 봄에 버지니아에 도착한 104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제임스타운이라는 식민지를 건설하고 정착 생활에 들어갔다. 그러나 미국은 그들을 선조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부분 빈민, 부랑자, 범죄자 등으로, 선조로 내세우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비천한 계층 출신이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조건 미달이었다.
미국의 건국 신화는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후, 1620년 종교적 자유와 신념을 위해 메이플라워Mayflower라는 낡은 배를 타고 뉴잉글랜드 플리머스로 건너온 순례자들에게서 시작된다. 이들은 분리주의자Separatist라고 하는 청교도의 한 급진적 분파였는데, 영국 제임스 왕의 종교적 박해와 억압을 피해 순수하게 종교적 자유와 신념을 위해 척박한 땅, 아메리카에 닿은 것이다. 필그림이 상징하는 가치는 ‘자유’와 ‘신념’, 그리고 ‘개척’과 ‘모험’이라고 하는 고결함이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 건국사의 첫 페이지를 당당히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순결한 동기로만 미국 건국사의 무수한 페이지를 논할 수 있을까? 과연 그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면서 어떠한 영광과 비극의 역사를 썼을까?
미국의 탄생, 그 희망과 야만의 역사를 촘촘히 읽다
《메이플라워》는 미국을 탄생시킨 중요한 사건, 메이플라워 호의 항해와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최초의 순례자들이 이룩한 신화에 가려진 것은 무엇인지를 섬세하고 생생한 필치로 추적하는 작품이다. 간결한 서술과 탁월한 공정성, 소설을 능가하는 서술력과 명확한 논지를 겸비한 이 책은 필그림이 뉴잉글랜드에 정착하고 아메리카 원주민을 말살하려 했던 비극적인 사건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수많은 책과 영화에서 1620년에 필그림이 어떻게 종교적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떠나 왔는지,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 체결 후 어떻게 플리머스 록에 상륙하고 그곳의 인디언과 친구가 되었는지, 그들이 최초의 추수감사절을 기념할 수 있도록 인디언 추장 마사소이트가 어떻게 도왔는지를 설명한다.
그러나 미국 탄생 이야기는 결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은 대개 필그림에 관한 신화가 추수감사절이라는 일종의 역사적 환상으로 마무리되는 지점에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저자 너새니얼 필브릭은 이 책의 반을 필그림의 이주와 정착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 할애하고, 나머지 반을 필립 왕 전쟁이라고 하는 미국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을 서술하는 데 할애한다. 필그림과 그들의 후손이 아메리카 원주민과 50년 넘게 유지한 평화 관계가 어떻게 어느 날 갑자기 전쟁으로 산산이 부서졌는지 살펴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익숙한 미국 건국사는 훨씬 새롭고 복잡해진다.
“결국 한 민족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필브릭이 새로 쓰는 미국 건국사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지금의 미국이라는 나라가 전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의 한 원형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정착민의 압승으로 끝이 난 필립 왕 전쟁은 이주민과 원주민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전쟁 당시 원주민의 75퍼센트가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비율로 보면 남북전쟁 당시 사망자의 두 배가 넘고, 미국 독립전쟁과 비교하면 거의 일곱 배에 달한다. 결국 한 민족의 자유에 대한 열망이 다른 민족을 정복하고 노예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라면서 신대륙 발견과 적응, 공동체 형성과 전쟁이라는 패턴은 미국이 전 세계로 진출할 때마다 그대로 적용되어 왔다고 밝힌다.
목차
PART 1 발견
01 그들은 필그림이었다 17
02 위험한 모래톱과 포효하는 파도 55
03 황무지에 들어서다 71
04 회초리로 스스로를 때리다 80
05 겨울 한복판 104
06 어둡고 황량한 습지 120
07 추수감사절 132
PART 2 적응
08 장벽 153
09 혼란의 시간 173
PART 3 공동체
10 작은 촛불 하나 197
11 위대한 어머니 221
12 고난 238
PART 4 전쟁
13 점화 271
14 만군의 하나님 302
15 낯선 길 329
16 더 좋은 편에 서다 359
나오며 내 이름은 ‘양심’이오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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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논픽션 작가 너새니얼 필브릭이 재구성한
‘가식 없는’ 미국의 역사
왜 필브릭은 이 책을 썼는가
1920년에 일어난 미국의 포경선 에식스 호 조난 사건을 바탕으로 쓴 《바다 한가운데서》로 2000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너새니얼 필브릭Nathaniel Philbrick. 그는 1986년, 19세기 미국 포경 산업의 본거지였던 난투켓 섬으로 거처를 옮긴 후 이곳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2000년에 발표한 《바다 한가운데서》이고, 또 다른 하나가 미국 건국사를 독특한 시각으로 서술한 이 책 《메이플라워》이다.
필브릭은 난투켓 섬이 고향인 부모님의 가족사를 연구하다가 포카노케트 족의 지도자였던 필립(원래 이름은 메타코메트, 또는 메타콤이었다. 백인들에 의해 필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만나게 되었고, 동시에 필그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료를 연구하던 중 그는, 오늘날 로드아일랜드의 브리스톨이 본거지였던 필립이 왜 100킬로미터도 넘게 떨어진 난투켓으로 이동했는지 의문스러웠다. 《메이플라워》는 이 의문을 시작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는 답을 얻기 위해 필립의 아버지 마사소이트와 필그림에 대한 정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역사 수정주의자가 재구성한 필그림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이야기
기막힌 스토리텔러 필브릭은 철저한 고증과 치밀한 분석을 통해 필그림과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관계를 한 편의 역사소설과도 같은 장대함과 섬세함으로 전개해 나간다. 그가 고고학, 인류학, 민속학 등에 관한 700종이 넘는 사료를 바탕으로 당시의 문화를 연구하면서 깨달은 것은, “신이 아메리카 대륙에 내린 존재”라는 필그림에 대한 평가가 생각만큼 온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필브릭은 이 책에서 지금까지 필그림과 메이플라워 호가 미국의 모호한 민족성을 대단히 효과적으로 보완해 주는 정치적인 상징이자 편견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는 필그림을 재평가한다.
여기서 필브릭은 척박한 정치적 풍토에서 살아온 미국인이 국가를 세운 사람들의 일대기에 탐욕스러울 정도로 과도하게 집착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건국사에 대한 미국인의 욕망이 역사를 감상주의 혹은 진실이 은폐된 신화로 전락시킨 것이다. 그는 소위 불온한 역사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소홀하게 다뤄지거나 아예 삭제되어 버리는 ‘껄끄러운’ 부분에 거울을 들이댄다. 그렇다고 해서 필그림의 도덕성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초창기 아메리카에서 벌어진 사건과 이후 역사와의 연관성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황무지에 에덴동산을 만들고 번영을 누리려던 꿈이 땅에 대한 집착, 인종 차별, 비열한 편의주의로 변질되어 끝내 전쟁을 불러오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한다.
현명하고 매혹적인 역사 수정주의자가 재구성한 필그림과 아메리카 원주민 간의 만남, 우정, 그리고 대립과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놀랄 만큼 생생하고 섬세하다. 17세기 필그림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실생활, 그리고 수많은 원주민 부족에 대한 뛰어난 세부 묘사와 아주 작은 대화 하나에까지도 심혈을 기울이는 집요함이 역사의 한 장면을 새롭고 생동하는 이미지로 되살려 냈다. 필브릭은 축복받은 글쟁이이자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동시에 깊이 있는 학술적 연구로 ‘가식 없는’ 미국의 역사를 탄생시켰다.
2006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뉴스위크》 선정 ‘올해의 책’
2007 퓰리처상 역사 부문 노미네이트
《메이플라워》는 2006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유수의 언론사들이 출간된 그해 최고의 책으로 추천하기에 서슴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의 조너선 야들리는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도 선입견을 버리고 그 모든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고까지 평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평단의 고른 지지와 함께 일반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출간된 후 20주 동안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차지했으며, 현재까지도 그 열기가 이어져 《아마존닷컴》에 올라온 독자 서평은 300개가 넘는다. 출간된 해에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뉴스위크》 《퍼블리셔스 위클리》《보스턴 글로브》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시카고 트리뷴》 등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였고, 2007년 퓰리처상 역사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최종 우승 후보로서 경합을 벌였다.
★ 책 속으로
《메이플라워》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어판에는 주요 인물들을 선별하여 소개하는 장을 마련했으며, 책 속에 소개된 주요 사건들을 바탕으로 일지를 구성하여 좀 더 체계적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제1부 발견
그들은 참 이상한 정복자였다. 그들은 기쁠 때 찬양을 드릴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참아 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다른 청교도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영국 국교회가 그동안 저지른 끝없는 부정과 악습의 죄를 모두 속죄해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이주를 둘러싼 모든 논쟁은 “신이 그곳에 가기를 원한다”는 믿음 하나로 끝이 났다. _<01. 그들은 필그림이었다> 중에서
1620년 9월, 102명의 필그림들이 낡고 거대한 배 메이플라워에 몸을 실었다. 청교도적 신념을 공유한 그들은 영국 제임스 왕의 종교적 박해와 억압을 피해 아메리카로 떠났다. 악몽 같은 항해 끝에 돌투성이 불모의 땅 플리머스에 도착했으나 그중 절반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한겨울의 혹한 속에서 플리머스 언덕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1621년 2월에 처음으로 인디언이 플리머스 정착지에 나타났고, 필그림은 곧바로 강철 대포 여섯 문을 설치했다. 필그림과 인디언이 대치하던 중 서툰 영어를 구사하는 인디언 사모셋이 필그림을 방문하여 영국인을 환영한다는 의사를 전달한다. 이후 영어에 능통한 스콴토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필그림과 인디언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1621년 3월 22일, 필그림과 포카노케트 족 추장 마사소이트는 우호 조약을 체결한다. 필그림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도움으로 옥수수 재배에 성공하고 가까스로 이주 첫해에 북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추수감사절을 치른다.
제2부 적응
네덜란드 라이덴에 남아 있던 존 로빈슨 목사는 인디언 학살 소식을 듣자마자 브래드퍼드에게 편지를 썼다. “오, 그토록 잔인하게 모두 죽여 버리다니.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일단 붉은 피가 넘쳐흐르기 시작하면 오랫동안 멈추지 않는 법이오. 그들이 당해도 싸다고? 그렇다 해도 그 유혈 사태를 굳이 그리스도교인이 도발해야만 했소?” _<09. 혼란의 시간> 중에서
포카노케트 족과 동맹을 맺은 필그림 측은 포카노케트 족이 나라간셋 족과 문제를 일으키자 이 두 부족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나라간셋 족 추장 캐노니쿠스가 곧 플리머스 정착지를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를 접하고, 필그림은 정착지에 방벽을 세우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 스콴토가 필그림과 포카노케트 족 사이를 오가며 이간질하고, 뉴잉글랜드 원주민들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악한 계획을 꾸민다. 이에 격노한 포카노케트 족은 스콴토의 머리와 손을 자르려고 했지만, 플리머스의 총독 브래드퍼드는 원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역자인 스콴토를 지키려 했다. 1623년 봄, 마사소이트가 당시 네덜란드 무역상이 마을에 전염시켰을 것으로 추정되는 티푸스에 걸려 거의 죽을 지경이었으나 에드워드 윈슬로의 간호를 받고 극적으로 살아났다. 마사소이트의 완쾌 소식으로 포카노케트 족은 영국인을 더욱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플리머스 정착지에서 북쪽으로 3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웨사구세트에 정착한 이주민과 원주민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웨사구세트 정착민과 같은 영국인으로서 화를 면치 못할 것이라 판단한 플리머스 정착민들은 마일스 스탠디시를 필두로 인디언을 선제공격하기로 한다. 살육의 시작과 함께 스탠디시에 의해 웨사구세트 지역의 부족장들이 거의 사살되었다. 웨사구세트 대량 학살이 자행되는 동안 필그림 편에 섰던 포카노케트 족은 학살 이후 인디언 사이에서 독보적인 지도자가 된다.
제3부 공동체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디딘 영국인은 힘없는 아이와 같은 존재였고, 포카노케트 족은 그들을 돌보는 마음 좋은 어머니와 같았다. 당시 포카노케트 족 추장이었던 마사소이트는 필그림을 안전하게 지켜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필립은 지금이야말로 영국인이 인디언을 관용으로 품어 은혜를 갚아야 하며 인디언 정복을 획책하지 말고 포카노케트 족이 자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필그림의 후손은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 아무도 필립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두려움에 떨며 살아남으려 애쓸 필요가 없게 된 지금, 영국인의 눈에는 인디언이 하찮게 보일 뿐이었다. _<12. 고난> 중에서
브래드퍼드는 마일스 스탠디시가 가진 군사적 역량에 크게 의존했고 정착지를 잔인하게 통제해 나갔다. 이후 이것이 뉴잉글랜드의 필그림 방식으로 정착되었다. 정착민들 사이에서도 필그림의 정당성은 의심받게 되었고, 플리머스 정착지의 근엄한 배타성은 조롱을 받았다. 종교적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에 온 필그림의 열정과 열의가 비열한 광신적 행동으로 인해 퇴색되어 가는 가운데, 필그림과 새로 이주한 영국인들은 새로운 정착지를 개척하기 위해 인디언의 땅을 헐값에 사들이기 시작했다. 돈에 눈이 먼 필그림이 해당 지역의 인디언과 충돌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1637년, 매사추세츠 당국은 영국 무역선의 선장 몇 명이 인디언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을 꼬투리 삼아 코네티컷 강 부근의 피쿼트 족을 공격하여 400여 명을 학살했다. 피쿼트 전투 이후 뉴잉글랜드 전 지역에 걸쳐 형성된 인디언과 영국군 동맹 관계가 위협받기 시작했고, 급기야 뉴잉글랜드 연합이라는 정착지 연합체가 구성되었다. 필그림은 ‘신심 깊고 결속력 강한 공동체’를 꿈꾸었지만 정착지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땅은 신앙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축재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17세기 중반이 되자, 필그림의 후손들에게 최고의 관심사는 돈이었고 종교적 구원은 뒷전이었다. 땅 매매 문제로 플리머스 법원의 출두 명령을 받은 마사소이트의 첫째아들 알렉산더가 법원 출두 후 원인 모를 이유로 죽자, 그의 동생 필립은 당시 정착지의 총사령관 조사이어 윈슬로가 독살했다고 믿게 된다. 포카노케트 족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필립은 독립된 부족으로 살아남기 위해 남은 인디언의 영토를 사수하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알렉산더의 죽음에 연관된 인물이자 가장 공격적이고 비열한 수단으로 인디언의 땅을 매입해 댄 조사이어 윈슬로에 대항해 전쟁을 감행한다.
제4부 전쟁
처치는 포카노케트 족 임시 거처가 있는 언덕에 병사들을 집합시키고 필립의 사망을 알렸다. 영국군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사코넷 족은 필립의 바지와 양말을 붙잡고 질질 끌어다 시신을 임시 거처 옆에 눕혔다. 처치는 진흙투성이 시체 앞에서 판결문을 선고했다. “필립은 무수히 많은 영국군의 시신을 땅에 묻지도 않고 그대로 썩도록 방치한 죄가 있으므로 그의 시신 또한 땅에 묻히면 안 될 것이다.” 처치는 능숙한 한 사코넷 족 인디언에게 필립의 사지를 찢도록 명령했다.
_<16. 더 좋은 편에 서다> 중에서
1675년 6월, 부족 간의 힘을 합쳐 병력을 키워 가던 필립은 영국인 마을을 공격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보스턴에서 다국적 선원 300명이 뉴잉글랜드에 합류한다. 뉴잉글랜드의 남쪽 지역과 마운트 호프 주변 인디언에 대해 잘 아는 벤저민 처치가 새로운 정보통으로 활약한다. 1975년 12월,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플리머스 연방은 뉴잉글랜드 사상 가장 큰 군대를 조직했고, 이 거대한 대군의 지휘관으로 조사이어 윈슬로를 임명했다. 서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격전을 벌였으나, 1976년 중순에 접어들자 필립과 포카노케트 족 전사들은 병력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병들고 지친 데다 도망치는 신세로 전락했다. 영국군은 개종 인디언을 이용해 부족 간의 동맹을 이간했고, 인디언 측에 불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필립의 군대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었다. 결국 1676년 8월이 되자, 처치 부대의 맹렬한 추격에 사기가 꺾인 필립의 군대는 전의를 상실했다. 처치 부대의 습격으로 필립이 사망하고, 필립의 오른팔이었던 애나원까지 생포되면서 전쟁은 끝이 났다. 한때 인디언으로 번화했던 마운트 호프는 사실상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마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