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강타한 이사 열풍
2006년 봄 중국 인터넷 포털 사이트 티엔야왕(http://www.tianya.cn)에《李斯, 流血的仕道》(이사, 유혈의 벼슬길)라는 글이 처음 올라왔다. 진시황의 재상 이사의 삶을 다룬 그 게시물은 순식간에 티엔야왕과 시나닷컴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였으며,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인터넷에 올라온 그 글들은 2007년 12월 두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2007년과 2008년 중국 출판계 역사서 부문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중국 출판계가 선정한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한 인문서”로 자리매김하였다. 저자인 차오성은 평단으로부터 “루쉰의 예리함과 밀란 쿤데라의 감각을 지녔다”는 찬사를 받는 등 하루아침에 중국 역사학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절강대학교 공학부 출신의 저자는 학계의 고루한 역사 서술 방식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독특한 글을 완성했다. 진시황과 여불위, 한비자, 이사 등 당대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도스토예프스키, T.S. 엘리엇, G.K. 체스터튼 등의 현대 서양 문학가들의 작품과 속담까지 인용해 가면서 역사의 생생함을 살렸다. 심지어는 저자 자신이 2000년 전으로 날아가 이사와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처럼 철저한 고증의 바탕 위에 시공을 초월하는 마술 같은 문체로 채색한 이 책은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역사서의 형식을 보여 준다.
혼란의 시대, 새로운 역할 모델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왜 혜성처럼 등장한 차오성과 그가 되살려 낸 이사에 이토록 열광한 것일까? 사마천의《사기》에 간략하게 언급된 이사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악역’이었다. 진시황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각종 토목 사업을 벌이면서 백성들을 수탈했고, 분서 정책을 강행하여 역사의 흔적을 말살시킨 원흉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사에 대한 평가는 사마천의 시각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러는 재상과 책사의 이야기에 함께 등장하여 최고의 권력을 지닌 재상이라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사에게는 간웅이자 분서갱유의 원흉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차오성의 눈에 비친 이사는 이처럼 단편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전국시대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몸을 던져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려 했고,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출세의 욕망을 충실히 따르려 한 당대의 영웅들과 다를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스스로 “소의 머리를 가르는 서슬 퍼런 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했고, “약자들 사이에서는 강자요, 강자들 사이에서는 최강자임을 증명”해 보이고자 했을 뿐이다.
이사는 중국 역사에서 맨주먹으로 성공한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을 만한 사람이다. 아무런 배경도 없이, 심지어 순자의 문하에서 내려올 때도 그 흔한 추천서 한 장 받지 않고 진나라에 도착한 그는 야심만을 뺀다면 여지없이 거지꼴이었다. 그런 그가 오로지 자신의 실력과 배짱만으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른 진시황의 재상이 된 것이다. 이사 열풍의 배경에는 이러한 그의 이력이 있었다. 급작스러운 개방으로 구심점을 잃은 채 무한 경쟁의 사회에 노출된 중국인들에게 혼란의 전국시대 말기에 아무런 배경도 없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 이사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역할 모델이었던 것이다.
진시황에게 천하를 허락한 재상 이사는 누구인가?
영정 앞에 선 이사는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이 장면을 영정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낯선 남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자신 앞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칼날같이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면서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초나라 하급 관리 출신의 이사李斯. 우연히 곳간의 생쥐와 측간의 생쥐가 사는 꼴을 본 뒤 인간의 운명도 환경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관직을 내팽개친다. 곧바로 순자의 문하에 들어간 그는 순자의 눈에 들어 최상급 반에 올라가 ‘제왕의 기술’을 배우고, 당대의 떠오르는 천재 한비를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눈다. 7년의 수학을 마친 뒤 이사는 자신의 세 치 혀 하나만 믿고 혈혈단신 진나라로 건너가 갖은 수모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진나라 상국 여불위의 삼천 식객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여불위에게《여씨춘추》의 집필을 권하고, 천하제일의 양물陽物 노애를 소개시켜 태후 조희에게 붙여 주는 데 성공한다. 낭관이라는 낮은 관직으로 첫 벼슬을 하던 이사는 죽을 각오를 하고 진왕 영정을 찾아가 왕도를 논하여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한다. 이후 장사의 직책에 올라 열여섯 어린 영정의 숨겨진 오른팔이 되어 막강한 막후 세력으로 활약한다. 그는 전국시대 진나라를 제외한 육국에 세작細作을 파견하여 육국을 분열시켰고, 내부적으로는 여불위와 노애 등의 강력한 정적을 견제하며 소년 영정을 권력의 정점으로 천천히 밀어 올린다.
성공을 향한 강렬한 욕망, 치밀한 전략과 음모,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완벽한 시나리오까지, 이사는 누군가를 만날 때 항상 대화의 수를 넘겨보았고, 그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정식으로 등용될 수 없는 외지인이었던 이사가 가진 것이라고는 태산을 찌를 듯한 자신감과 죽기를 각오한 배포, 그리고 치밀하고 완벽한 전략뿐이었다.
이사는 과연 천하통일의 영웅인가, 희대의 간웅인가
정적인 노애와 여불위를 제거하고 영정을 명실상부한 진나라의 제왕으로 만들어 올린 이사. 그러나 관중 지역을 관통하는 정국鄭國의 운하 건설 계획이 진나라의 국력을 소진시키려는 한나라의 음모였음이 밝혀진 뒤 외지 출신 관리를 몰아낸다는 ‘축객령’에 이사의 벼슬길은 첫 위기를 맞이한다. 이에 이사는 천하의 명문 〈간축객서〉를 올려 위기를 모면한다. 이후 종실 세력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이사와 함께 진나라는 파죽지세로 중원의 제후국들을 몰아붙여 200년 넘게 이어진 전국시대에 대망의 마침표를 찍고, 예순네 살에 이른 이사는 드디어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천하를 움켜쥐게 된다.
목숨을 걸고 정국을 구한 것은 외지 출신이었던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함이었고, 희대의 유세가 요가姚賈를 불러들인 것은 육국의 합종을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사는 젊은 시절 순자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한 한비를 자신의 손으로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정이 세상을 떠나고, 이미 나이 들어 무기력해진 이사는 환관 조고의 협박과 꾐에 넘어가 영정의 유조를 위조해 호해를 제위에 올렸으나 결국 조고에 의해 요참형을 당해 생을 마감한다.
이사의 삶은 성공에 대한 열망과 진나라와 영정에 대한 충성심으로 점철된다. 그는 진나라를 중심으로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것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지만, 결국 영정의 죽음과 함께 삶의 목표와 방향을 잃은 채 환관 조고의 술수에 넘어가 진나라의 운명과 함께 비극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진나라의 충신이자 천하통일의 영웅으로서의 이사, 그리고 분서갱유와 철혈 통치의 원흉인 희대의 간웅 이사. 그의 본모습은 과연 무엇인가?
전국시대 역사 인물 열전, 살아 숨쉬는 역사를 완성한다
이 책에는 전국칠웅이라 불리는 일곱 나라의 왕들이 중원의 패권을 다툰 혼란의 전국시대 말기, 때로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중원 대륙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이들이 벌이는 수많은 전쟁과 지략, 음모와 배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진시황과 그를 열세 살의 나약한 왕에서 역사상 최초의 황제로 만들어 올린 재상 이사, 관직 생활의 은인이자 일생의 숙적이었던 여불위, 태후의 환관으로 속여 들어가 세력을 키운 노애, 이사의 둘도 없는 친구였으나 결국 이사의 손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 한비, 당대 최고의 병법가인 울요와 진나라에 들어와 육국의 합종을 분열시킨 유세객 요가, 그리고 번오기 장군의 목을 들고 진시황의 암살을 기도했던 자객 형가까지…… 문헌에만 존재했던 수많은 인물 군상들이 벌이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 책은 그야말로 하나의 커다란 인물 열전이라 할 수 있다. 사료에 갇힌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의 묘사는 이 책이 가지는 커다란 장점이다. 인물들에 대한 심층적이고 생생한 접근은 역사에 대한 이해를 한층 북돋을 것이다.
천하의 명문〈간축객서〉를 만나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었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 깊음을 이룰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이사의 이름과 함께 회자되는 이 명문은 이사가 ‘축객령’에 의해 진나라에서 추방되던 길에 영정에게 올린〈간축객서諫逐客書〉에 실려 있다. 하지만〈간축객서〉가 본래 이렇게 감상적이고 문학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노애와 여불위를 축출하고 황실 중심의 친정체제를 확립한 진나라는 이후 외국 출신의 관리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관중 지역을 관통하는 300여 리의 거대한 운하를 건설하고 있던 정국이 사실 진나라의 국력을 소진시키기 위해 한나라에서 보낸 첩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정은 외국에서 온 관리들을 모두 내쫓는다는 ‘축객령’을 선포하였고, 이에 초나라로 추방당하던 길에 오르던 이사가 써 올린 글이 바로〈간축객서〉이다. 이렇듯〈간축객서〉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황실과 외부 세력의 다툼이라는 정치적 상황이 있었다. 따라서〈간축객서〉의 내용 역시 당시 진나라의 정치 상황에 대한 깊은 식견과 이해득실에만 밝은 종실 세력을 견제하고 영정의 친위 체제를 확립하라는 정치적 조언이 담겨 있는 글이었다.
또한 이 책에는 진나라 옥에 갇힌 한비자가 영정에게 올린 한비 문장의 걸작으로 꼽히는〈초견진初見秦〉과 영정이 중원을 통일하고 순행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회계 각석비 비문, 그리고 환관 조고에 의해 ‘지록위마’의 치욕을 당하면서도 정세를 읽지 못했던 2세 황제 호해에게 이사가 올린 상소〈행독책서行督責書〉 등의 명문들이 모두 실려 있다.
천하를 가질 수 없다면, 천하를 다스려라 _ 상권의 주요 내용
순자의 제자가 되다
이사는 아내와 함께 두 아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던 초나라 상채군의 말단 관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측간에서 볼일을 보다 한쪽 구석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생쥐를 보았다. 곳간의 생쥐는 제집인 양 곳간을 드나들며 배불리 곡식을 먹으면서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측간의 쥐는 기껏해야 인분이나 먹으면서도 사람을 두려워했다. 이사는 곳간의 쥐와 측간의 쥐를 잡아 각각 사는 곳을 바꿔 보았다. 그랬더니 곳간에 있다 측간으로 간 쥐는 원래 측간에 있던 쥐들처럼 인분을 먹으면서 사람을 두려워했고, 측간의 쥐는 곳간에 가더니 제집처럼 지냈다. 이에 이사는 모든 것은 환경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관직을 그만 두고 곧바로 짐을 싸 고난의 벼슬길을 떠나게 된다.
여불위의 삼천 식객에 들다
함양에 도착한 이사는 진나라의 재상 여불위를 찾아가지만 상국부의 벽은 높았다. 한참을 헤매던 그는 정국의 도움으로 여불위를 직접 만나게 되고, 첫 만남에서 그에게 삼천 식객을 모두 죽이라는 직언을 던진다. 그리고 곧바로 여불위의 삼천 식객 중 상위 식객만 머물 수 있는 대사에 배정되었다.
여불위의 식객으로 있는 동안 이사는 노애라는 거대한 양물陽物을 지닌 청년을 알게 되었다. 태후와 여불위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서 여불위가 느끼는 곤욕을 알고 있던 이사는 여불위에게 노애를 소개하였고, 노애는 곧 태후의 환관으로 변장하여 태후궁에서 정부노릇을 하며 결국 여불위에 필적하는 세력을 구축하게 된다.
진왕 영정의 숨겨진 오른팔
여불위의 제안에 따라 낭중령 소속 낭관으로 처음 진나라 관직을 시작한 이사는 그해 겨울 우연한 기회에 멀리서 열여섯 살의 진왕 영정을 만나게 된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난지궁에 들어가 단독으로 영정 앞에 선다. 영정에게 자신의 순결함을 보이기 위해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알몸이 된 이사는 진제국의 원대한 이상을 설명하며 그의 마음을 산다. 그리고 이튿날 영정은 이사를 불러 장사長史에 임명하고, 그에게 자신만을 위한 비밀 임무를 부여한다. 이 순간부터 이사는 진왕 영정의 숨겨진 오른팔이 되어 육국을 분열시키고, 여불위, 노애 등의 내부 정적들을 견제하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정적을 제거하다
여불위와 태후의 섭정을 벗어나 영정의 친정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가관례가 열린 날, 태후 조희와 함께 몰래 아들을 낳아 키우던 노애는 가관례 날에 맞춰 반란을 계획한다. 이사는 영정과 함께 노애의 반란을 진압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진왕 영정은 드디어 새로 만든 전국옥새傳國玉璽를 세상에 공포한다. 그 전국옥새에는 이사가 직접 쓴 ‘수명어천, 기수영창受命於天, 旣壽永昌(하늘로부터 명을 받았으니 영원히 번창하라)’이라는 여덟 자가 새겨져 있었다. 노애의 반란은 시작과 거의 동시에 진압되었다. 노애를 따르던 무리들은 모두 도망치기 바빴고, 노애 역시 도망쳤으나 며칠 뒤에 붙잡혔다.
이로써 진왕 영정과 이사를 위협하던 거대한 내부 세력 하나가 사라졌다. 그다음은 여불위. 여불위까지 사라져야 영정은 제대로 된 친정을 실시할 수 있었고, 이사는 가장 강력한 정적 하나를 덜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오랜 세월 권력의 단맛을 누려온 여불위는 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노애의 반란마저 가볍게 진압되고 나서 여불위는 모반은커녕 더 이상 권력에 발을 들여놓을 욕심도 없었다. 그리고 하남 땅으로 떠나라는 진왕의 조서를 받아들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천하통일의 영웅 이사, 희대의 간웅 이사 _ 하권의 주요 내용
‘축객령’과〈간축객서〉
노애와 여불위가 떠난 진나라는 잠시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 그러나 정국이 사실 한나라에서 보낸 첩자였으며, 그가 추진하던 관중 운하가 진나라의 국력을 소진시키려던 한나라의 계책이었음이 발각되어 이사의 앞길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진다. 영정의 친정체제 확립 이후 득의만만하던 종실 세력은 정국 사건을 빌미로 외지 출신 관리들을 몰아내는 ‘축객령’을 실시하도록 강요하고, 이사 역시 고향인 초나라로 쫓겨나게 된다. 그러나 이사는〈간축객서〉를 올려 위기를 모면하고, 한 발 더 나아가 목숨을 걸고 정국에 대한 사면을 추진한다. 이는 그저 자신의 지인이자 은인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종실 세력에 대항하는 영정만의 친위 조직을 형성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결국 축객령은 폐지되고, 정국도 사면되어 진나라는 영씨 종실 세력과 이사를 중심으로 한 외지 출신 관리들의 대립하며 공생하는 체제를 확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사 역시 ‘객경’이라는 관직에서 진나라의 법제도를 관할하는 ‘정위’로 파격 승진하게 된다.
한비의 등장과 죽음
어느 날 우연히 한비의 책을 접한 영정은 단번에 그 책의 매력에 빠져 한비를 진나라로 데려오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한다. 진나라 관리들 앞에서 자신의 학식과 실력을 과시한 한비는 영정의 신임을 바데 된다. 이사는 한비가 진나라에 온 덕에 13년 만에 만나 그간의 회포를 풀지만 이미 멀어져 버린 둘의 처지는 예전만큼 가까워지기 어려웠다. 그 사이 육국들 돌며 합종 모의를 분열시키던 요가가 진나라에 돌아와 한비를 제거해야 함을 역설하고, 영정 역시 한비의 글이 제위를 노리는 자의 글이라며 더 이상 한비를 용인하지 않기 시작하였다. 결국 한비의 운명은 당시 진나라의 법령을 관할하던 이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한비가 진나라 이외의 어디에 가도 진나라에 이로울 수 없음을 깨달은 이사는 눈물을 머금고 한비에게 독약이 든 국을 건넨다.
천하통일을 완성하다
한비가 세상을 뜬 직후인 영정 15년(기원전 232년)부터 진나라는 본격적으로 통일 전쟁에 착수한다. 먼저 한나라와 조나라를 공격하여 기원전 230년 한나라를 멸망시킨 진나라는 곧이어 당시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던 조나라에 총공격을 퍼붓는다. 조나라는 영정이 어린 시절 포로로 잡혀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영정은 조나라를 멸망시킨 후(기원전 228년) 자신과 어머니인 태후 조희를 핍박했던 자들을 모조리 생매장한다.
이후 진나라는 지대가 낮은 위나라의 대량으로 황하의 물줄기를 흐르게 하여 함락시키고(기원전 225년), 왕전에게 60만 군사를 보내 초나라를 멸망시킨다(기원전 224년). 이후 동쪽 요동으로 피신한 연나라 왕을 사로잡고 연나라도 멸망시킨다.(기원전 222년) 마지막으로 남은 제나라는 본래부터 진나라에 우호적인 나라였으나 결국 장수 왕분을 보내 제나라마저 멸망시키면서 진나라를 중원을 통일한 최초의 제국이 되었으니 때는 바야흐로 영정 26년, 기원전 221년이었다.
재상 이사의 파멸
전국시대의 대망의 마침표를 찍은 통일제국 진. 영정은 먼저 자신에 대한 칭호를 ‘황제’로 바꾸고, 신하와 후왕이 선왕을 평가하는 그간의 시호제도를 폐지한다. 이사는 통일의 과업 이후 각자의 전공을 내세우며 영지를 할당받을 것을 원하는 종실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군현제의 실시를 주장하고, 이를 계기로 드디어 평생의 꿈이던 진나라의 재상으로 올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영정과 자신을 비방하는 유생들을 견제하기 위해 분서 정책을 실시하고, 도량형과 화폐, 수레바퀴의 폭 등을 통일한다.
영정이 사망한 후 환관 조고는 자신과 가까운 호해를 제위에 앉히기 위해 영정의 유조를 위조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미 늙어 쇠약해진 이사를 끌어들인다. 조고의 위협과 꾐에 넘어간 이사는 그와 함께 진제국의 제위를 왜곡하였으나 호해는 식견도 낮고 우유부단해 진제국에는 도처에서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이사는 마지막으로 호해에게 진제국을 위한 상소를 올리지만, 결국 조고의 모함에 빠져 요참형으로 허리가 잘리며 죽으니 그의 나이 69세, 기원전 208년의 일이다.
저자소개
지은이 : 차오성曹昇
15세에 절강 대학교 공학부에 입학해 19세에 졸업했다. 동양 고전부터 현대 서양 문학에까지 두루 해박하다. 2006년부터 중국 최대 인터넷 포털 티엔야왕에서 이 책을 연재하였고, 지금까지 총 2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출간 즉시 중국 역사서 부문 베스트셀러를 기록하였으며 평단으로부터 ‘노신의 예리함과 밀란 쿤데라의 감각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제 서른한 살이 된 차오성은 이 작품을 통해 하루아침에 중국 차세대 역사학계를 이끌어갈 블루칩 작가로 떠올랐다.
옮긴이 : 강경이
책정보 및 내용요약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재상이자 최고의 악역
이사李斯의 야망과 성공, 좌절과 몰락의 일대기
군현제 실제, 화폐 및 도량형 통일, 만리장성 축조, 그리고 분서갱유…… 진시황의 배후에서 진제국이 이룩한 모든 역사를 기획하고 실행한 진제국의 최고 경영자 이사. 초나라의 하급 관리에 불과했던 그는 어떻게 진시황의 재상이 되어 중국 역사를 뒤흔든 인물이 될 수 있었는가?
이 책은 죽을 각오로 진시황 앞에 알몸으로 등장한 뒤 그의 막후에서 정적을 몰아내고,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이룩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이사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한 책이다. 사마천의《사기》에 기록된 이후 ‘중국 역사상 최고의 악역’으로만 치부되어 온 이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돋보이는 이 책은 혼란의 전국시대 말기, 오로지 실력으로만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 이사의 영웅적 면모를 새로이 드러낸다.
편집자 추천글
2006년 봄 중국 인터넷 포털 사이트 티엔야왕(http://www.tianya.cn)에《李斯, 流血的仕道》(이사, 유혈의 벼슬길)라는 글이 처음 올라왔다. 진시황의 재상 이사의 삶을 다룬 그 게시물은 순식간에 티엔야왕과 시나닷컴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였으며,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인터넷에 올라온 그 글들은 2007년 12월 두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2007년과 2008년 중국 출판계 역사서 부문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중국 출판계가 선정한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한 인문서”로 자리매김하였다. 저자인 차오성은 평단으로부터 “루쉰의 예리함과 밀란 쿤데라의 감각을 지녔다”는 찬사를 받는 등 하루아침에 중국 역사학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절강대학교 공학부 출신의 저자는 학계의 고루한 역사 서술 방식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독특한 글을 완성했다. 진시황과 여불위, 한비자, 이사 등 당대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을 끌어들이는가 하면, 도스토예프스키, T.S. 엘리엇, G.K. 체스터튼 등의 현대 서양 문학가들의 작품과 속담까지 인용해 가면서 역사의 생생함을 살렸다. 심지어는 저자 자신이 2000년 전으로 날아가 이사와 인터뷰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처럼 철저한 고증의 바탕 위에 시공을 초월하는 마술 같은 문체로 채색한 이 책은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역사서의 형식을 보여 준다.
혼란의 시대, 새로운 역할 모델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왜 혜성처럼 등장한 차오성과 그가 되살려 낸 이사에 이토록 열광한 것일까? 사마천의《사기》에 간략하게 언급된 이사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악역’이었다. 진시황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각종 토목 사업을 벌이면서 백성들을 수탈했고, 분서 정책을 강행하여 역사의 흔적을 말살시킨 원흉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사에 대한 평가는 사마천의 시각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러는 재상과 책사의 이야기에 함께 등장하여 최고의 권력을 지닌 재상이라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사에게는 간웅이자 분서갱유의 원흉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차오성의 눈에 비친 이사는 이처럼 단편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전국시대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몸을 던져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려 했고,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출세의 욕망을 충실히 따르려 한 당대의 영웅들과 다를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스스로 “소의 머리를 가르는 서슬 퍼런 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했고, “약자들 사이에서는 강자요, 강자들 사이에서는 최강자임을 증명”해 보이고자 했을 뿐이다.
이사는 중국 역사에서 맨주먹으로 성공한 수많은 인물들 중에서 단연 으뜸으로 꼽을 만한 사람이다. 아무런 배경도 없이, 심지어 순자의 문하에서 내려올 때도 그 흔한 추천서 한 장 받지 않고 진나라에 도착한 그는 야심만을 뺀다면 여지없이 거지꼴이었다. 그런 그가 오로지 자신의 실력과 배짱만으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른 진시황의 재상이 된 것이다. 이사 열풍의 배경에는 이러한 그의 이력이 있었다. 급작스러운 개방으로 구심점을 잃은 채 무한 경쟁의 사회에 노출된 중국인들에게 혼란의 전국시대 말기에 아무런 배경도 없이 오로지 실력으로만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 이사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역할 모델이었던 것이다.
진시황에게 천하를 허락한 재상 이사는 누구인가?
영정 앞에 선 이사는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펼쳐진 이 장면을 영정은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낯선 남자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자신 앞에 당당하게 서 있었다.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칼날같이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면서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초나라 하급 관리 출신의 이사李斯. 우연히 곳간의 생쥐와 측간의 생쥐가 사는 꼴을 본 뒤 인간의 운명도 환경에 따라 좌우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관직을 내팽개친다. 곧바로 순자의 문하에 들어간 그는 순자의 눈에 들어 최상급 반에 올라가 ‘제왕의 기술’을 배우고, 당대의 떠오르는 천재 한비를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눈다. 7년의 수학을 마친 뒤 이사는 자신의 세 치 혀 하나만 믿고 혈혈단신 진나라로 건너가 갖은 수모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진나라 상국 여불위의 삼천 식객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는 여불위에게《여씨춘추》의 집필을 권하고, 천하제일의 양물陽物 노애를 소개시켜 태후 조희에게 붙여 주는 데 성공한다. 낭관이라는 낮은 관직으로 첫 벼슬을 하던 이사는 죽을 각오를 하고 진왕 영정을 찾아가 왕도를 논하여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한다. 이후 장사의 직책에 올라 열여섯 어린 영정의 숨겨진 오른팔이 되어 막강한 막후 세력으로 활약한다. 그는 전국시대 진나라를 제외한 육국에 세작細作을 파견하여 육국을 분열시켰고, 내부적으로는 여불위와 노애 등의 강력한 정적을 견제하며 소년 영정을 권력의 정점으로 천천히 밀어 올린다.
성공을 향한 강렬한 욕망, 치밀한 전략과 음모,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완벽한 시나리오까지, 이사는 누군가를 만날 때 항상 대화의 수를 넘겨보았고, 그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정식으로 등용될 수 없는 외지인이었던 이사가 가진 것이라고는 태산을 찌를 듯한 자신감과 죽기를 각오한 배포, 그리고 치밀하고 완벽한 전략뿐이었다.
이사는 과연 천하통일의 영웅인가, 희대의 간웅인가
정적인 노애와 여불위를 제거하고 영정을 명실상부한 진나라의 제왕으로 만들어 올린 이사. 그러나 관중 지역을 관통하는 정국鄭國의 운하 건설 계획이 진나라의 국력을 소진시키려는 한나라의 음모였음이 밝혀진 뒤 외지 출신 관리를 몰아낸다는 ‘축객령’에 이사의 벼슬길은 첫 위기를 맞이한다. 이에 이사는 천하의 명문 〈간축객서〉를 올려 위기를 모면한다. 이후 종실 세력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이사와 함께 진나라는 파죽지세로 중원의 제후국들을 몰아붙여 200년 넘게 이어진 전국시대에 대망의 마침표를 찍고, 예순네 살에 이른 이사는 드디어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천하를 움켜쥐게 된다.
목숨을 걸고 정국을 구한 것은 외지 출신이었던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함이었고, 희대의 유세가 요가姚賈를 불러들인 것은 육국의 합종을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사는 젊은 시절 순자의 문하에서 함께 공부한 한비를 자신의 손으로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정이 세상을 떠나고, 이미 나이 들어 무기력해진 이사는 환관 조고의 협박과 꾐에 넘어가 영정의 유조를 위조해 호해를 제위에 올렸으나 결국 조고에 의해 요참형을 당해 생을 마감한다.
이사의 삶은 성공에 대한 열망과 진나라와 영정에 대한 충성심으로 점철된다. 그는 진나라를 중심으로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것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지만, 결국 영정의 죽음과 함께 삶의 목표와 방향을 잃은 채 환관 조고의 술수에 넘어가 진나라의 운명과 함께 비극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진나라의 충신이자 천하통일의 영웅으로서의 이사, 그리고 분서갱유와 철혈 통치의 원흉인 희대의 간웅 이사. 그의 본모습은 과연 무엇인가?
전국시대 역사 인물 열전, 살아 숨쉬는 역사를 완성한다
이 책에는 전국칠웅이라 불리는 일곱 나라의 왕들이 중원의 패권을 다툰 혼란의 전국시대 말기, 때로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중원 대륙 최초의 통일 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이들이 벌이는 수많은 전쟁과 지략, 음모와 배신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진시황과 그를 열세 살의 나약한 왕에서 역사상 최초의 황제로 만들어 올린 재상 이사, 관직 생활의 은인이자 일생의 숙적이었던 여불위, 태후의 환관으로 속여 들어가 세력을 키운 노애, 이사의 둘도 없는 친구였으나 결국 이사의 손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 한비, 당대 최고의 병법가인 울요와 진나라에 들어와 육국의 합종을 분열시킨 유세객 요가, 그리고 번오기 장군의 목을 들고 진시황의 암살을 기도했던 자객 형가까지…… 문헌에만 존재했던 수많은 인물 군상들이 벌이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 책은 그야말로 하나의 커다란 인물 열전이라 할 수 있다. 사료에 갇힌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생동감 넘치는 인물들의 묘사는 이 책이 가지는 커다란 장점이다. 인물들에 대한 심층적이고 생생한 접근은 역사에 대한 이해를 한층 북돋을 것이다.
천하의 명문〈간축객서〉를 만나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 높음을 이룰 수 있었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그 깊음을 이룰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이사의 이름과 함께 회자되는 이 명문은 이사가 ‘축객령’에 의해 진나라에서 추방되던 길에 영정에게 올린〈간축객서諫逐客書〉에 실려 있다. 하지만〈간축객서〉가 본래 이렇게 감상적이고 문학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노애와 여불위를 축출하고 황실 중심의 친정체제를 확립한 진나라는 이후 외국 출신의 관리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관중 지역을 관통하는 300여 리의 거대한 운하를 건설하고 있던 정국이 사실 진나라의 국력을 소진시키기 위해 한나라에서 보낸 첩자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정은 외국에서 온 관리들을 모두 내쫓는다는 ‘축객령’을 선포하였고, 이에 초나라로 추방당하던 길에 오르던 이사가 써 올린 글이 바로〈간축객서〉이다. 이렇듯〈간축객서〉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황실과 외부 세력의 다툼이라는 정치적 상황이 있었다. 따라서〈간축객서〉의 내용 역시 당시 진나라의 정치 상황에 대한 깊은 식견과 이해득실에만 밝은 종실 세력을 견제하고 영정의 친위 체제를 확립하라는 정치적 조언이 담겨 있는 글이었다.
또한 이 책에는 진나라 옥에 갇힌 한비자가 영정에게 올린 한비 문장의 걸작으로 꼽히는〈초견진初見秦〉과 영정이 중원을 통일하고 순행하면서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회계 각석비 비문, 그리고 환관 조고에 의해 ‘지록위마’의 치욕을 당하면서도 정세를 읽지 못했던 2세 황제 호해에게 이사가 올린 상소〈행독책서行督責書〉 등의 명문들이 모두 실려 있다.
천하를 가질 수 없다면, 천하를 다스려라 _ 상권의 주요 내용
순자의 제자가 되다
이사는 아내와 함께 두 아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던 초나라 상채군의 말단 관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측간에서 볼일을 보다 한쪽 구석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생쥐를 보았다. 곳간의 생쥐는 제집인 양 곳간을 드나들며 배불리 곡식을 먹으면서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측간의 쥐는 기껏해야 인분이나 먹으면서도 사람을 두려워했다. 이사는 곳간의 쥐와 측간의 쥐를 잡아 각각 사는 곳을 바꿔 보았다. 그랬더니 곳간에 있다 측간으로 간 쥐는 원래 측간에 있던 쥐들처럼 인분을 먹으면서 사람을 두려워했고, 측간의 쥐는 곳간에 가더니 제집처럼 지냈다. 이에 이사는 모든 것은 환경이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관직을 그만 두고 곧바로 짐을 싸 고난의 벼슬길을 떠나게 된다.
여불위의 삼천 식객에 들다
함양에 도착한 이사는 진나라의 재상 여불위를 찾아가지만 상국부의 벽은 높았다. 한참을 헤매던 그는 정국의 도움으로 여불위를 직접 만나게 되고, 첫 만남에서 그에게 삼천 식객을 모두 죽이라는 직언을 던진다. 그리고 곧바로 여불위의 삼천 식객 중 상위 식객만 머물 수 있는 대사에 배정되었다.
여불위의 식객으로 있는 동안 이사는 노애라는 거대한 양물陽物을 지닌 청년을 알게 되었다. 태후와 여불위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에서 여불위가 느끼는 곤욕을 알고 있던 이사는 여불위에게 노애를 소개하였고, 노애는 곧 태후의 환관으로 변장하여 태후궁에서 정부노릇을 하며 결국 여불위에 필적하는 세력을 구축하게 된다.
진왕 영정의 숨겨진 오른팔
여불위의 제안에 따라 낭중령 소속 낭관으로 처음 진나라 관직을 시작한 이사는 그해 겨울 우연한 기회에 멀리서 열여섯 살의 진왕 영정을 만나게 된다. 그는 죽기를 각오하고 난지궁에 들어가 단독으로 영정 앞에 선다. 영정에게 자신의 순결함을 보이기 위해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알몸이 된 이사는 진제국의 원대한 이상을 설명하며 그의 마음을 산다. 그리고 이튿날 영정은 이사를 불러 장사長史에 임명하고, 그에게 자신만을 위한 비밀 임무를 부여한다. 이 순간부터 이사는 진왕 영정의 숨겨진 오른팔이 되어 육국을 분열시키고, 여불위, 노애 등의 내부 정적들을 견제하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정적을 제거하다
여불위와 태후의 섭정을 벗어나 영정의 친정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가관례가 열린 날, 태후 조희와 함께 몰래 아들을 낳아 키우던 노애는 가관례 날에 맞춰 반란을 계획한다. 이사는 영정과 함께 노애의 반란을 진압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진왕 영정은 드디어 새로 만든 전국옥새傳國玉璽를 세상에 공포한다. 그 전국옥새에는 이사가 직접 쓴 ‘수명어천, 기수영창受命於天, 旣壽永昌(하늘로부터 명을 받았으니 영원히 번창하라)’이라는 여덟 자가 새겨져 있었다. 노애의 반란은 시작과 거의 동시에 진압되었다. 노애를 따르던 무리들은 모두 도망치기 바빴고, 노애 역시 도망쳤으나 며칠 뒤에 붙잡혔다.
이로써 진왕 영정과 이사를 위협하던 거대한 내부 세력 하나가 사라졌다. 그다음은 여불위. 여불위까지 사라져야 영정은 제대로 된 친정을 실시할 수 있었고, 이사는 가장 강력한 정적 하나를 덜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오랜 세월 권력의 단맛을 누려온 여불위는 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노애의 반란마저 가볍게 진압되고 나서 여불위는 모반은커녕 더 이상 권력에 발을 들여놓을 욕심도 없었다. 그리고 하남 땅으로 떠나라는 진왕의 조서를 받아들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천하통일의 영웅 이사, 희대의 간웅 이사 _ 하권의 주요 내용
‘축객령’과〈간축객서〉
노애와 여불위가 떠난 진나라는 잠시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 그러나 정국이 사실 한나라에서 보낸 첩자였으며, 그가 추진하던 관중 운하가 진나라의 국력을 소진시키려던 한나라의 계책이었음이 발각되어 이사의 앞길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진다. 영정의 친정체제 확립 이후 득의만만하던 종실 세력은 정국 사건을 빌미로 외지 출신 관리들을 몰아내는 ‘축객령’을 실시하도록 강요하고, 이사 역시 고향인 초나라로 쫓겨나게 된다. 그러나 이사는〈간축객서〉를 올려 위기를 모면하고, 한 발 더 나아가 목숨을 걸고 정국에 대한 사면을 추진한다. 이는 그저 자신의 지인이자 은인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종실 세력에 대항하는 영정만의 친위 조직을 형성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결국 축객령은 폐지되고, 정국도 사면되어 진나라는 영씨 종실 세력과 이사를 중심으로 한 외지 출신 관리들의 대립하며 공생하는 체제를 확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사 역시 ‘객경’이라는 관직에서 진나라의 법제도를 관할하는 ‘정위’로 파격 승진하게 된다.
한비의 등장과 죽음
어느 날 우연히 한비의 책을 접한 영정은 단번에 그 책의 매력에 빠져 한비를 진나라로 데려오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한다. 진나라 관리들 앞에서 자신의 학식과 실력을 과시한 한비는 영정의 신임을 바데 된다. 이사는 한비가 진나라에 온 덕에 13년 만에 만나 그간의 회포를 풀지만 이미 멀어져 버린 둘의 처지는 예전만큼 가까워지기 어려웠다. 그 사이 육국들 돌며 합종 모의를 분열시키던 요가가 진나라에 돌아와 한비를 제거해야 함을 역설하고, 영정 역시 한비의 글이 제위를 노리는 자의 글이라며 더 이상 한비를 용인하지 않기 시작하였다. 결국 한비의 운명은 당시 진나라의 법령을 관할하던 이사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한비가 진나라 이외의 어디에 가도 진나라에 이로울 수 없음을 깨달은 이사는 눈물을 머금고 한비에게 독약이 든 국을 건넨다.
천하통일을 완성하다
한비가 세상을 뜬 직후인 영정 15년(기원전 232년)부터 진나라는 본격적으로 통일 전쟁에 착수한다. 먼저 한나라와 조나라를 공격하여 기원전 230년 한나라를 멸망시킨 진나라는 곧이어 당시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던 조나라에 총공격을 퍼붓는다. 조나라는 영정이 어린 시절 포로로 잡혀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영정은 조나라를 멸망시킨 후(기원전 228년) 자신과 어머니인 태후 조희를 핍박했던 자들을 모조리 생매장한다.
이후 진나라는 지대가 낮은 위나라의 대량으로 황하의 물줄기를 흐르게 하여 함락시키고(기원전 225년), 왕전에게 60만 군사를 보내 초나라를 멸망시킨다(기원전 224년). 이후 동쪽 요동으로 피신한 연나라 왕을 사로잡고 연나라도 멸망시킨다.(기원전 222년) 마지막으로 남은 제나라는 본래부터 진나라에 우호적인 나라였으나 결국 장수 왕분을 보내 제나라마저 멸망시키면서 진나라를 중원을 통일한 최초의 제국이 되었으니 때는 바야흐로 영정 26년, 기원전 221년이었다.
재상 이사의 파멸
전국시대의 대망의 마침표를 찍은 통일제국 진. 영정은 먼저 자신에 대한 칭호를 ‘황제’로 바꾸고, 신하와 후왕이 선왕을 평가하는 그간의 시호제도를 폐지한다. 이사는 통일의 과업 이후 각자의 전공을 내세우며 영지를 할당받을 것을 원하는 종실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군현제의 실시를 주장하고, 이를 계기로 드디어 평생의 꿈이던 진나라의 재상으로 올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영정과 자신을 비방하는 유생들을 견제하기 위해 분서 정책을 실시하고, 도량형과 화폐, 수레바퀴의 폭 등을 통일한다.
영정이 사망한 후 환관 조고는 자신과 가까운 호해를 제위에 앉히기 위해 영정의 유조를 위조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미 늙어 쇠약해진 이사를 끌어들인다. 조고의 위협과 꾐에 넘어간 이사는 그와 함께 진제국의 제위를 왜곡하였으나 호해는 식견도 낮고 우유부단해 진제국에는 도처에서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이사는 마지막으로 호해에게 진제국을 위한 상소를 올리지만, 결국 조고의 모함에 빠져 요참형으로 허리가 잘리며 죽으니 그의 나이 69세, 기원전 208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