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시라카와 시즈카白川精
평생토록 연구와 저술 활동에 전념한 독보적인 한문학자이자 언어학자이다. 특히 고대 문자와 사회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쌓아 올린 그의 연구는 갑골문과 금문 연구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10년에 태어나 1933년에 리쓰메이칸 대학교 전문부 문학과 국한학과에 입학하여 《자설字說》, 《설문고주보說文古籀補》를 통해 고대 문자학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 뒤 나이토 고난內藤湖南과 가노 나오키狩野直喜의 교토 중국학을 계승하고, 타이완의 취완리屈萬里, 동주어빈董作賓, 이안이핑嚴一萍, 주파가오周法高, 중국의 양수다楊樹達, 후허우쏸胡厚宣, 롱겡容庚, 양관楊寛 등과 교류하면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였다.
1976년에 리쓰메이칸 대학교를 퇴직한 이후 한자 사전 3부작 집필에 전념하여, 갑골문과 금문의 연구 성과를 집성하여 한자의 처음 형태와 뜻, 그리고 변화한 모양과 뜻을 해설한 《자통字統》, 《자훈字訓》, 《자통字通》을 완성하였다. 그 외에도 《중국의 신화》, 《중국의 고대 문학》, 《갑골문의 세계》, 《금문의 세계》, 《만엽집萬葉集》 등을 저술했으며, 《갑골금문학논총》 2권, 《설문신의說文新義》 8권, 《금문통석金文通釋》 10권, 《갑골금문자료집》 9권 등도 증보되어 출간되고 있다.
옮긴이 : 심경호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에 일본 교토 대학교에서 《조선시대 한문학과 시경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 강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를 거쳐 현재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년 교토 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과 인연을 맺었으며, 2004년에는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으로부터 직접 문자학과 동양학 방법론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2006년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사회과학분야 우수학자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제1회 리쓰메이칸 시라카와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1~4), 《한문산문의 미학》, 《한국한시의 이해》, 《김시습평전》, 《한학입문》, 《한시기행》, 《한시의 세계》,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 《산문기행》 등이 있으며, 시라카와 시즈카의 《한자 백 가지 이야기》를 비롯하여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저자소개
지은이 : 시라카와 시즈카白川精
1976년에 리쓰메이칸 대학교를 퇴직한 이후 한자 사전 3부작 집필에 전념하여, 갑골문과 금문의 연구 성과를 집성하여 한자의 처음 형태와 뜻, 그리고 변화한 모양과 뜻을 해설한 《자통字統》, 《자훈字訓》, 《자통字通》을 완성하였다. 그 외에도 《중국의 신화》, 《중국의 고대 문학》, 《갑골문의 세계》, 《금문의 세계》, 《만엽집萬葉集》 등을 저술했으며, 《갑골금문학논총》 2권, 《설문신의說文新義》 8권, 《금문통석金文通釋》 10권, 《갑골금문자료집》 9권 등도 증보되어 출간되고 있다.
옮긴이 : 심경호
2003년 교토 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재직하는 동안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과 인연을 맺었으며, 2004년에는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으로부터 직접 문자학과 동양학 방법론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2006년 한국학술진흥재단 인문사회과학분야 우수학자로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제1회 리쓰메이칸 시라카와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강화학파의 문학과 사상》(1~4), 《한문산문의 미학》, 《한국한시의 이해》, 《김시습평전》, 《한학입문》, 《한시기행》, 《한시의 세계》,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 《산문기행》 등이 있으며, 시라카와 시즈카의 《한자 백 가지 이야기》를 비롯하여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1910년에 태어나 2006년 10월 31일 97세로 작고한 시라카와 시즈카는 살아 있을 당시 한 ․ 중 ․ 일을 통틀어 갑골문과 금석문을 포함한 한자학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 받았다. 그는 1933년 비교적 늦은 나이인 24세에 리쓰메이칸 대학교 전문부 문학과 국한학과國漢學科에 입학하여, 교토 대학교 출신의 중국학 학자 하시모토 쥰橋本循에게 한문을 배우는 한편, 오대징吳大澂의 《자설字說》, 《설문고주보說文古籀補》를 통해 고대 문자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뒤 타이완과 중국의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하였다.
리쓰메이칸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강의와 연구에만 전념하여 대중적 명성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1976년 대학 교수직에서 은퇴한 뒤 자신의 연구 성과와 학설을 정리하여 20년에 걸쳐 완성한 한자 사전 3부작 《자통字統》, 《자훈字訓》, 《자통字通》을 간행하면서 대중적인 명성과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특히 작고 1주기를 맞은 2007년에는 “시라카와 붐”이 일어, 그의 학문 세계와 삶을 조명하는 논저나 방송이 쏟아져 나왔다. 고학으로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한 점, 중국학의 한 분야라고 할 문자학 방면에서 일본인으로서 최고의 연구 수준을 보여 준 점 등이 매력으로 다가갔다.
목차
제1화 문자 이전
문자가 발명되기 이전,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해 왔으며, 어떤 방식으로 후대에 기록을 남겨 왔을까? 많은 민족들이 그림을 사용했고, 더러는 매듭(결승)을 통해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된 수단은 역시 구승이었다. 그러다 사물의 모양을 본뜬 최초의 그림 문자 히에로글리프가 등장한 것은 기원전 3200년 무렵. 인류 역사 50만 년에서 꼭 1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인류는 문자를 사용해 온 것이다. 제1화 “문자 이전”에서는 문자가 탄생하기 이전의 인류의 의사소통 방식을 비롯해 황제黃帝의 사관이었던 창힐이 새의 발자국에서 힌트를 얻어 문자를 만든 뒤의 이야기, 한자의 탄생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2화 인체에 관한 문자
고대에는 어느 문자든 상형문자로 시작하였으나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표음문자, 즉 알파벳으로 변화하였다. 오직 한자만이 상형문자로 남아 “진화를 잊은 문자”로 간주되었는데, 이는 사실 한자의 표상력이 유난히 뛰어났고, 중국어가 단음절어이기 때문에 음절 표기에 따른 문자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제2화 “인체에 관한 문자”에서는 인체를 표현하는 기본적인 문자 약 30개를 소개하면서 한자가 어떤 방법으로 인체와 인간 행동의 본질을 표현하고 문자로서의 양식적 완성을 지향해 왔는지를 살펴본다.
제3화 신분과 직장職掌
한 민족의 어휘에서 신체에 관한 것이나 친족 칭위에 관한 것, 씨족 생활을 표시하는 것 따위가 가장 중요한 기본 어휘이다. 특히 기본적인 가족 체계가 확립되고, 부족 단위의 복잡한 사회 체계가 성립되면서 사람의 신분과 그 직무를 구별하는 일은 더욱 큰 중요성을 차지하게 되었다. 제3화 “신분과 직장”에서는 고대 사회의 신분과 직장에 따른 호칭과 문자의 기원을 설명한다. 왕족의 표시, 공족의 표시를 나누는 기준과 직장職掌의 이름이 씨족의 호로 성립하는 과정을 통해 고대 왕조 사회의 내부 구조를 살피고, 중국 고대의 관제 변천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제4화 수數에 관하여
수를 헤아리는 말은 신체를 가리키는 말, 신분과 직장을 나타내는 말과 함께 언어의 기본을 이룬다. 한자의 一, 二, 三은 사실상 나뭇가지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 뜻은 각각 壹, 貳, 參으로 나타난다. 수는 기본적으로 날짜를 세는 용도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는 갑골문 연구를 통해 이미 널리 일려진 바이다. 제4화 “수에 관하여”에서는 달의 이름을 표기하는 방법이이나 《역》의 기본이 되는 괘 표기법, 십간과 십이지 등 숫자를 나타내는 한자의 기원과 숫자에 대한 한중일 삼국의 언어 연관성에 대해 탐색한다.
제5화 자연과 신화
사회 조직이 아무리 발달하고 신분 체계가 아무리 세분되었다고 해도, 고대인들의 삶은 기본적으로 자연 조건에 의해 규정되었다. 따라서 자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이 되었고, 자연 자체와 자연에 대한 도전의 이야기가 고대인들의 신화를 이루고 있다. 제5화 “자연과 신화”에서는 갑골문과 금석문에 기록되어 있는 고대 기록을 통해 광대한 중국 대륙에서 탄생한 천지개벽 신화, 인간 탄생 신화, 씨족 신화, 홍수 신화 등을 살펴본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고대인의 시각과 태도, 즉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는 일원적 자연관을 살필 수 있다.
편집자 추천글
1910년에 태어나 2006년 10월 31일 97세로 작고한 시라카와 시즈카는 살아 있을 당시 한 ․ 중 ․ 일을 통틀어 갑골문과 금석문을 포함한 한자학의 최고 권위자로 평가 받았다. 그는 1933년 비교적 늦은 나이인 24세에 리쓰메이칸 대학교 전문부 문학과 국한학과國漢學科에 입학하여, 교토 대학교 출신의 중국학 학자 하시모토 쥰橋本循에게 한문을 배우는 한편, 오대징吳大澂의 《자설字說》, 《설문고주보說文古籀補》를 통해 고대 문자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 뒤 타이완과 중국의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하였다.
리쓰메이칸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강의와 연구에만 전념하여 대중적 명성과는 거리가 있었으나 1976년 대학 교수직에서 은퇴한 뒤 자신의 연구 성과와 학설을 정리하여 20년에 걸쳐 완성한 한자 사전 3부작 《자통字統》, 《자훈字訓》, 《자통字通》을 간행하면서 대중적인 명성과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특히 작고 1주기를 맞은 2007년에는 “시라카와 붐”이 일어, 그의 학문 세계와 삶을 조명하는 논저나 방송이 쏟아져 나왔다. 고학으로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한 점, 중국학의 한 분야라고 할 문자학 방면에서 일본인으로서 최고의 연구 수준을 보여 준 점 등이 매력으로 다가갔다.
저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과 역자 심경호 선생의 인연
번역자 심경호 선생은 2003년 교토 대학교에 초빙교수로 있는 동안 요시무라 히로미치芳村弘道 씨를 통해 국립 교토국제회관에서 열린 “문자강화” 18, 19, 20회 강연을 들으면서 시라카와 선생과 직접적인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후 2004년에는 직접 시라카와 선생의 자택에서 문자학과 동양학 방법론을 지도받았고, 한국에 시라카와 선생의 학문 세계를 정식으로 소개하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시라카와 선생은 심경호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당신의 1978년 저작 《漢字白話》를 추천해 주었고, 심경호 선생은 이를 《한자 백 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심경호 선생은 2006년 6월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이 제정하고 유일하게 심사에 관여한 “리쓰메이칸 시라카와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후에도 심경호 선생은 NHK에서 제작한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 1주기 특집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고, 일본 헤이본샤에서 출간하는 “시라카와 전기”의 일부분을 저술하기도 하는 등 지금도 그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시라카와 시즈카의 마지막 강의 “문자강화”
이 책은 시라카와 시즈카가 일본 문자문화연구소 소장이 된 뒤 일반인들에게 자신의 학문 세계를 강의하려는 의도로 기획된 “문자강화” 제1회 강연부터 제5회 강연까지를 엮은 책이다. 이 “문자강화”는 1999년 3월에 교토 상공회의소 강당에서 처음 시작하여 2003년까지 5년간 1년에 4회씩 20회를 진행했고, 그 후 대중들의 요청에 따라 2004년 한 해 4차례의 추가 강연을 열어 총 24회로 마친 학술 강연이다. 특히 처음에는 300석 규모의 교토 상공회의소 강당에서 했으나 제4회부터는 규모가 더 큰 국립 교토국제회관에서 개최했고, 때로는 참석자가 600명이 넘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정기 학술 강연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긴 기간과 많은 참석자로 기록될 만한 강연이었다. 첫 강연을 열었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90세였다. 1년에 4회씩 5년간 총 20회의 강연을 하겠다는 계획을 전해들은 어느 친구가 “자네, 앞으로 5년이나 더 살 생각인가”라고 했다는 농담은 이 강연과 관련한 유명한 일화이다.
시라카와 교수는 강연을 하는 도중 발표문을 그대로 읽어 설명하는 것보다는 글자를 쓰는 과정을 보여 주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을 선호하였다. 그래서 강연을 하는 두 시간 동안 잠시도 자리에 앉지 않고 모조지 전지 10여 매 이상을 사용하면서 직접 갑골문과 금문을 써 보이면서 강연하였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동서양 고전과 고문자를 넘나드는 박학함, 인간의 삶과 문자를 연결시키는 예리한 통찰 등 노학자가 쌓아 온 학문과 성찰의 깊이뿐 아니라 강연에서 느낄 수 있는 열정과 현장감을 한 번에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갑골문과 금문의 해석을 통한 고대 문화사 연구
문자, 특히 동아시아 민족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문자인 한자에는 특유의 형태와 음, 그리고 의미상의 계열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계열을 정리하다 보면, 각 문자가 성립한 시기의 생활상이나 사고방식 등을 포함하여 그 문화 전체를 복원할 수 있다. 시라카와 교수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화사 복원은 이러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시라카와 시즈카 교수의 연구는 그저 한자의 옛 자형과 그 변천 과정을 탐구하는 데 있지 않다. 그에게 한자는 그 자체로 문화이고, 한자의 탄생과 변천 과정은 살아 있는 문화사의 유적 그 자체이다. 그는 사람들이 한자를 상형문자로 오해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한자는 상고시대 제의의 상징이다. 즉 갑골문과 금석문에 나타난 한자의 옛 모습에는 사물의 모양을 단순화시킨 것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행태, 계급 체계, 생산 활동 등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상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자의 기원을 따라가는 과정은 곧바로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당시 사회상에 대한 상징성을 파헤치는 작업이기도 하다. 시라카와 시즈카의 작업은 바로 이렇게 한자 자체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고대 사회의 구조와 당시의 생활상을 파악하려는 문화사적인 연구인 것이다.
한 가지 사례로 兄 자를 들 수 있다. 兄 자의 갑골문은 다음과 같다. 《설문해자》를 보면 “兄은 長이다”라고 해서, 兄을 곧 長兄이라는 의미로 보았다. 또한 거기서부터 兄 자의 위에 있는 口를 명령의 뜻으로 풀이하는 경향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장형長兄은 명령을 내리는 자가 아니라 신에게 봉사하는 자로서, 집안의 신사神事를 담당했다. 따라서 兄은 갑골문의 모양처럼 축문을 담은 그릇을 머리에 이고 신을 모시고 있는 형태인 것이다. 시라카와의 이러한 주장은 그저 한자의 옛 자형만이 아니라 갑골문의 구조와 상징을 해석함으로써 고대 중국의 장자가 집안에서 맡은 역할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眉(눈썹 미) 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술력을 강화하기 위해, 혹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의중을 알아차리기 어렵게 하거나 자신의 눈을 크게 보이게 하기 위해 눈썹에 장식을 하는 풍속이 있었고, 따라서 이 眉 자의 갑골문은 눈 위에 장식을 붙인 모습이다.( ) 이를 통해 우리는 당시의 주술가의 화장과 문신 습속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여기에 女가 붙은 媚(아첨할 미) 자는 여자 주술가를 말한다. 갑골문은 다음과 같이 女 자 위에 眉 자가 올라가 있는 형태이다.( ) 당시에는 눈 주위에 칠을 한 젊은 여인, 즉 媚女 3000명을 전선에 늘어세워 적을 노려보며 저주를 거는 풍속이 있었고, 그래서 전쟁에서 이기면 가장 먼저 미녀를 죽었다.
또 다른 예로 臣 자를 보자. 臣 자의 갑골문은 다음과 같다. 《설문해자》에는 “臣은 牽(견)이다”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이는 ‘굴복한 자’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갑골문의 모양에 따르면 신은 커다란 눈으로 神을 응시하면서 섬기는 자를 표시한 글자이다. 즉 臣은 神을 섬기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시라카와 시즈카 교수는 이렇게 갑골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자가 전체적으로 제의와 관련된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상, 세계관을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