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정보 및 내용요약
2004년 현재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지난 5월 18일자 국내 일간지에서는 유럽의 바티칸에서부터 날아온 소식을 일제히 전하고 있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여든네 번째 생일을 맞았고, 그와 더불어 자신의 회고록을 이탈리아에서 출간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에는 한껏 노쇠해진데다 건강치 못한 살집이 붙어있는 교황의 얼굴이 보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책의 편집을 거의 끝나갈 즈음에, 신문에서 만난 교황의 소식은 늘 보는 친구의 얼굴이 신문에 실렸을 때마냥 신기하고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의 이야기 책을 준비하면서 어느새 저 멀리 권좌에 앉은 성직자가 아닌, 이웃 성당의 인자한 아저씨 같은 인상을 편집자 스스로도 모르게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20대 아래의 세대에게는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기억이 거의 전무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 세대에게는 그가 성직자 역할뿐만 아니라 세계 정치사에 은근한 영향력을 던져왔던 인물이었음을 기억한다. 1978년 전세계 언론들은 사상 최초로 공산국가 출신의 교황이 탄생했음을 특종처럼 보도했고, 그는 ‘기대 반 의혹 반’이라는 세계인의 시선 속에 바티칸에 입성했다. 그후 뉴스에 보도되는 교황 소식은 깊이깊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자유노조 지도자 바웬사를 정부 몰래 만나면서 고국 폴란드의 민주화에 공헌했던 일, 아시아 끄트머리에 자그맣게 붙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두 차례나 방문하면서 김포공항 땅바닥에 입술을 갖다대며 축복하던 모습, 쿠바의 강경파 지도자 카스트로를 만나 종교의 자율성을 인정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던 일 등등, 그의 열정은 웬만한 정치 수반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고, 현재의 그 또한 조시 부시나 빈 라덴이나 고이즈미 수상만큼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지난 80, 90년대에는 세계의 분쟁국가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종교를 초월한 인간 사랑의 전령사 역할을 무던히도 해내던 그였지만, 자연의 섭리에 그 역시 어쩔 수가 없고, 지금의 바티칸 대성당 안에서 측근들의 부축과 도움으로 근근히 미사만 드릴 수 있을 따름이라 한다.
편집자 추천글
알려지지 않았던 감동과 유머의
생애 속 뒷이야기들
이 책은 한국인 최초로 집필한 교황 이야기라는 점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교황의 조국인 폴란드 문학박사인 저자 최성은 씨는 얼마 전 교황이 직접 지은 시집 또한 번역해서 국내에 출간한 바 있다. 교황이라는 인물 탐구에 욕심이 나면서도, 국내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인간 교황’을 드러내는 촌철살인의 에피소드 모음집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시키기 위해서, 저자는 제대로 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책을 쓰고자 마음먹게 된다. 온통 에피소드만으로 채워진 교황 관련 책자는 왠지 메시지가 부족할 것 같아, 그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최근의 상황까지 그의 일대기를 자서전 못지않게 정리했다.
연대기별로 짜여진 이 책의 구성은 각 장마다 연혁(history) 부분과 일화(episode) 부분으로 나뉘어, 해당 시기에 교황의 인생과 활동 이야기를 적고, 그 시기에 교황에게 있었던 재밌고도 감동스런 숨겨진 비화들을 들려주는 방식이다. 히스토리와 에피소드를 교차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책의 주된 이야기는 코끝 저려오는 뭉클함으로, 혹은 천연덕스런 익살로 주변 사람들을 울리고 웃긴 요한 바오로 2세, 아니 폴란드 출신의 한 남자 카롤 보이티와의 생애 속 뒷이야기들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역의 주교신부를 맡아달라는 부탁에 첫마디가 “그렇다고 내가 카누를 못 타게 되는 건 아니죠?”라고 걱정스레 물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고, 교황 취임식이라는 세계적인 행사를 앞두고도 축구경기를 봐야하니 오전 안으로 행사를 마쳐달라 부탁하는 모습 또한 가히 놀랄 만하다. 어릴 적 성당에서 기도하기보다는 시를 쓰고, 얼굴에 화장을 짙게 한 채 연극배우 흉내를 냈던 소년 교황, 남미 순방 때 “공산국가 만세!”라며 미사를 방해하는 청중들을 향해 “입 다무시오!”라고 분노에 차 꾸짖던 의외의 모습, 교황에게 원고를 청탁했던 한 출판사 관계자들을 만나 “왜 교황에게는 원고료를 주지 않죠?”라고 물으며 통장도 만들 수 없는 교황의 신세를 한탄했다는 뒷이야기도 인간 교황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해준다.
교황과 관련되어 별다른 일도 일어나지 않은 2004년. 지구 한켠에서 마지막 남은 힘으로 교황의 자리에 힘겹게 앉아 있는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일화집을 뜬금없이 내면서, 어쩌면 그 출간 의미도 교황의 현재 심정과 비슷하지는 않을까 싶다. 화려한 백색의 제단이 아닌, 그 옛날 고국 폴란드의 시골 성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평범한 신부로 살았던 그 때를, 지금의 교황은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하늘 아래 최고 성직자라 불리는 ‘교황’이라는 인생을 살았던 인간 카롤 보이티와. 이 책의 주인공이 교황이었든 연예인이었든 거지였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느 위치에서 살았든지 간에 사람은 사람다울 수밖에 없다는, 이 싱겁기 짝없는 끄트머리 생각 하나만으로 이 책의 책장을 덮을 수만 있다면.
지금 왜 요한 바오로 2세를 이야기하는가?
어쩌면 조금 뜬금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삶을 거론한다는 것이 말이다. 운명을 달리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 것도 아니고, 세계인이 놀랄 만한 제2의 정치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다. 물론 그는 골골한 노인가 되어 특별한 활동도 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 책의 출간 역시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고, 무언가를 이슈화시키기 위한 숨은 목적도 없는 것 같다. 그냥 이 시점에서, 그가 고인이 되어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 추모의 물결처럼 그의 추억담을 펼치기보다는, 아직 우리와 같이 이승에 생존해 있는 이 풍전등화의 세월 안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이 가기 전에 교황의 이야기를 편안한 옛이야기처럼 들려주고 싶었을 따름이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발간된 교황의 책자는 그 종류에 있어 다양하지 못했다. 교황 자신이 직접 쓴 저서라면 거의 설교집, 강론집, 세계인에게 보내는 호소문 등이었고, 타인이 쓴 교황의 자서전 역시 그의 바이오그라피를 연대별로 묶어 그의 행적을 자세히 보고하는 데에 그쳤을 뿐이다. 그 때문에 그의 연혁과 활동 내용 등은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으며 궁금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와 설교집 등은 요한 바오로 2세를 성직자 혹은 공인(公人)으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굳혔고, 그는 바티칸의 으리으리한 권좌에 앉은 흰옷 입은 권위자로서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높이 올려다 봐야하는 인물, 혹은 천주교 신자들만의 지도자, ‘위엄’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딴세상’ 사람 말이다.
그러고보니 앞서 이야기한 이 책의 목적, 즉 ‘별 목적 없음의 목적’만은 아닌 듯하다. 여기에 중요한 또 하나의 기획 의도를 넣었으면 한다. 이 책을, 흰옷 입은 머나먼 나라 교황님 이야기로 읽지 말고, 권좌 이면에 인간적인 나약함과 순진무구함을 철철 흘리고 다녔던 요한 바오로 2세, 아니 카롤 보이티와(그의 본명)라는 한 남자의 스토리로 읽혀지는 것이다. 기존의 ‘교황 자서전’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교황’이라는 관점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교황이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지만, 사소한 픽션물을 읽듯 편하게 읽어내려가도 좋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평소 교황에 관심이 많거나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소한 감동과 가벼운 웃음기로 책 한 권 읽고 싶은 일반 독자를 겨냥한 책이라는 소개가 오히려 맞을 것이다.
“이제 보니 교황님, 농담도 잘하시네??”
- 요한 바오로 2세의 말, 말, 말!
크라쿠프 사제 시절 보이티와 신부는 산행을 즐겼다. 한번은 여느 등산객들과 다름없는 간편한 옷차림으로 홀로 산에 갔다가 갑자기 시간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마침 시계를 두고 와서 알 길이 없었다. 보이티와 신부는 한쪽에서 유유히 일광욕을 즐기며 누워있는 한 젊은 여인에게 다가가 몇 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분명 시계를 두고 오신 거지요, 네?” 보이티와 신부는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여인은 대답했다. “오늘만 해도 벌써 시계를 두고 왔다는 사내들이 열 명은 넘게 지나갔으니까요. 처음에는 시계로 시작해서 다음에는 포도주를 권하고, 그리고는 저녁에 춤추러 가자고 유혹하지요. 뻔한 수작 아닌가요?”
“그렇지만 저는 신부입니다!”
“여보세요! 지금까지 많은 남자들이 다양한 수법으로 나를 꼬드겼지만 ‘신부’라며 접근하는 경우는 처음이군요.”
보이티와 신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그 여인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는 정중하게 예의를 표하고 바로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신부의 등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맙소사, 진짜 신부님인가 봐!”
◇ ◇
한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건강 문제가 매일같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던 적이 있었다. 기자들은 심심찮게 교황의 건강 상태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추측 기사를 썼다.
하루는 교황청의 누군가가 오늘은 건강이 좀 어떠시냐고 문안인사를 하자 교황님 대답.
“나도 잘 모르겠소. 아직 오늘 아침신문을 읽지 못했거든.”
◇
◇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다른 이들에게 무엇을 시키거나 명령하기보다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결하는 소탈하고 거침없는 성품으로도 유명하다.
어느 날 교황은 스위스의 한 요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곳에서 요양 중인 자신의 오랜 친구 안제이 데스쿠르 주교의 병세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안내 데스크의 전화 교환원이 누구냐고 물었다. “교황입니다.”
이 말을 듣고 수화기 저편의 상대방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중얼거리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당신이 교황이면, 나는 중국 황실의 공주다!”
◇ ◇
파리에서 수녀들의 모임에 초빙되었을 때의 일이다. 연단으로 올라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지체했다. 그러자 앞에 있던 비서들과 경호원들이 빨리 올라가라는 손짓을 하며 큰일이나 난 듯이 수선을 피웠다. 교황은 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천천히 연단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수녀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방금 여러분은 내 생활이 어떤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 것입니다. 언제나 이런 식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늘 나를 어디론가 내몰면서 끊임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또 제 시간에 못 맞추겠군요! 또 늦겠군요!’…… 여러분, 어떡하면 좋을지 누가 좀 알려주겠어요? 이렇게 끊임없이 서두르고, 끊임없이 매여있는 가운데 어떻게 숨을 쉴 수 있는지 말입니다.”
◇ ◇
요한 바오로 2세가 가톨릭 교회 ‘삼천 년기’를 이끌어갈 교황으로 선출되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가지 황당한 소문들이 떠돌았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라든가, 교회의 새로운 수난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둥 악의에 찬 괴소문이 퍼졌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던 소문은 결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어느 날 기자 한 사람이 짓궂은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머지 앉아 전쟁이 일어나면 교황님께서 추기경들의 시체를 밟으며 도망칠 것이라는 소문이 있는데요, 어떠십니까? 도망갈 준비는 되셨습니까?”
그러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나야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있죠. 다만 추기경님들이 엎드릴 준비가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저자소개
지은이 : 최성은
책정보 및 내용요약
지난 5월 18일자 국내 일간지에서는 유럽의 바티칸에서부터 날아온 소식을 일제히 전하고 있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여든네 번째 생일을 맞았고, 그와 더불어 자신의 회고록을 이탈리아에서 출간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에는 한껏 노쇠해진데다 건강치 못한 살집이 붙어있는 교황의 얼굴이 보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책의 편집을 거의 끝나갈 즈음에, 신문에서 만난 교황의 소식은 늘 보는 친구의 얼굴이 신문에 실렸을 때마냥 신기하고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의 이야기 책을 준비하면서 어느새 저 멀리 권좌에 앉은 성직자가 아닌, 이웃 성당의 인자한 아저씨 같은 인상을 편집자 스스로도 모르게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20대 아래의 세대에게는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기억이 거의 전무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 세대에게는 그가 성직자 역할뿐만 아니라 세계 정치사에 은근한 영향력을 던져왔던 인물이었음을 기억한다. 1978년 전세계 언론들은 사상 최초로 공산국가 출신의 교황이 탄생했음을 특종처럼 보도했고, 그는 ‘기대 반 의혹 반’이라는 세계인의 시선 속에 바티칸에 입성했다. 그후 뉴스에 보도되는 교황 소식은 깊이깊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자유노조 지도자 바웬사를 정부 몰래 만나면서 고국 폴란드의 민주화에 공헌했던 일, 아시아 끄트머리에 자그맣게 붙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두 차례나 방문하면서 김포공항 땅바닥에 입술을 갖다대며 축복하던 모습, 쿠바의 강경파 지도자 카스트로를 만나 종교의 자율성을 인정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하던 일 등등, 그의 열정은 웬만한 정치 수반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고, 현재의 그 또한 조시 부시나 빈 라덴이나 고이즈미 수상만큼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지난 80, 90년대에는 세계의 분쟁국가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종교를 초월한 인간 사랑의 전령사 역할을 무던히도 해내던 그였지만, 자연의 섭리에 그 역시 어쩔 수가 없고, 지금의 바티칸 대성당 안에서 측근들의 부축과 도움으로 근근히 미사만 드릴 수 있을 따름이라 한다.
편집자 추천글
생애 속 뒷이야기들
이 책은 한국인 최초로 집필한 교황 이야기라는 점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교황의 조국인 폴란드 문학박사인 저자 최성은 씨는 얼마 전 교황이 직접 지은 시집 또한 번역해서 국내에 출간한 바 있다. 교황이라는 인물 탐구에 욕심이 나면서도, 국내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인간 교황’을 드러내는 촌철살인의 에피소드 모음집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시키기 위해서, 저자는 제대로 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책을 쓰고자 마음먹게 된다. 온통 에피소드만으로 채워진 교황 관련 책자는 왠지 메시지가 부족할 것 같아, 그의 어릴 적 이야기부터 최근의 상황까지 그의 일대기를 자서전 못지않게 정리했다.
연대기별로 짜여진 이 책의 구성은 각 장마다 연혁(history) 부분과 일화(episode) 부분으로 나뉘어, 해당 시기에 교황의 인생과 활동 이야기를 적고, 그 시기에 교황에게 있었던 재밌고도 감동스런 숨겨진 비화들을 들려주는 방식이다. 히스토리와 에피소드를 교차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책의 주된 이야기는 코끝 저려오는 뭉클함으로, 혹은 천연덕스런 익살로 주변 사람들을 울리고 웃긴 요한 바오로 2세, 아니 폴란드 출신의 한 남자 카롤 보이티와의 생애 속 뒷이야기들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역의 주교신부를 맡아달라는 부탁에 첫마디가 “그렇다고 내가 카누를 못 타게 되는 건 아니죠?”라고 걱정스레 물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고, 교황 취임식이라는 세계적인 행사를 앞두고도 축구경기를 봐야하니 오전 안으로 행사를 마쳐달라 부탁하는 모습 또한 가히 놀랄 만하다. 어릴 적 성당에서 기도하기보다는 시를 쓰고, 얼굴에 화장을 짙게 한 채 연극배우 흉내를 냈던 소년 교황, 남미 순방 때 “공산국가 만세!”라며 미사를 방해하는 청중들을 향해 “입 다무시오!”라고 분노에 차 꾸짖던 의외의 모습, 교황에게 원고를 청탁했던 한 출판사 관계자들을 만나 “왜 교황에게는 원고료를 주지 않죠?”라고 물으며 통장도 만들 수 없는 교황의 신세를 한탄했다는 뒷이야기도 인간 교황의 또 다른 모습을 알게 해준다.
교황과 관련되어 별다른 일도 일어나지 않은 2004년. 지구 한켠에서 마지막 남은 힘으로 교황의 자리에 힘겹게 앉아 있는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일화집을 뜬금없이 내면서, 어쩌면 그 출간 의미도 교황의 현재 심정과 비슷하지는 않을까 싶다. 화려한 백색의 제단이 아닌, 그 옛날 고국 폴란드의 시골 성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평범한 신부로 살았던 그 때를, 지금의 교황은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하늘 아래 최고 성직자라 불리는 ‘교황’이라는 인생을 살았던 인간 카롤 보이티와. 이 책의 주인공이 교황이었든 연예인이었든 거지였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어느 위치에서 살았든지 간에 사람은 사람다울 수밖에 없다는, 이 싱겁기 짝없는 끄트머리 생각 하나만으로 이 책의 책장을 덮을 수만 있다면.
지금 왜 요한 바오로 2세를 이야기하는가?
어쩌면 조금 뜬금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삶을 거론한다는 것이 말이다. 운명을 달리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 것도 아니고, 세계인이 놀랄 만한 제2의 정치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다. 물론 그는 골골한 노인가 되어 특별한 활동도 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이 책의 출간 역시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고, 무언가를 이슈화시키기 위한 숨은 목적도 없는 것 같다. 그냥 이 시점에서, 그가 고인이 되어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 추모의 물결처럼 그의 추억담을 펼치기보다는, 아직 우리와 같이 이승에 생존해 있는 이 풍전등화의 세월 안에서, 조금이라도 시간이 가기 전에 교황의 이야기를 편안한 옛이야기처럼 들려주고 싶었을 따름이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발간된 교황의 책자는 그 종류에 있어 다양하지 못했다. 교황 자신이 직접 쓴 저서라면 거의 설교집, 강론집, 세계인에게 보내는 호소문 등이었고, 타인이 쓴 교황의 자서전 역시 그의 바이오그라피를 연대별로 묶어 그의 행적을 자세히 보고하는 데에 그쳤을 뿐이다. 그 때문에 그의 연혁과 활동 내용 등은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으며 궁금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자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정보와 설교집 등은 요한 바오로 2세를 성직자 혹은 공인(公人)으로서의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굳혔고, 그는 바티칸의 으리으리한 권좌에 앉은 흰옷 입은 권위자로서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높이 올려다 봐야하는 인물, 혹은 천주교 신자들만의 지도자, ‘위엄’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딴세상’ 사람 말이다.
그러고보니 앞서 이야기한 이 책의 목적, 즉 ‘별 목적 없음의 목적’만은 아닌 듯하다. 여기에 중요한 또 하나의 기획 의도를 넣었으면 한다. 이 책을, 흰옷 입은 머나먼 나라 교황님 이야기로 읽지 말고, 권좌 이면에 인간적인 나약함과 순진무구함을 철철 흘리고 다녔던 요한 바오로 2세, 아니 카롤 보이티와(그의 본명)라는 한 남자의 스토리로 읽혀지는 것이다. 기존의 ‘교황 자서전’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교황’이라는 관점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 이 책을 읽어주길 바란다.
교황이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지만, 사소한 픽션물을 읽듯 편하게 읽어내려가도 좋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평소 교황에 관심이 많거나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소한 감동과 가벼운 웃음기로 책 한 권 읽고 싶은 일반 독자를 겨냥한 책이라는 소개가 오히려 맞을 것이다.
“이제 보니 교황님, 농담도 잘하시네??”
- 요한 바오로 2세의 말, 말, 말!
크라쿠프 사제 시절 보이티와 신부는 산행을 즐겼다. 한번은 여느 등산객들과 다름없는 간편한 옷차림으로 홀로 산에 갔다가 갑자기 시간이 궁금해졌다. 그러나 마침 시계를 두고 와서 알 길이 없었다. 보이티와 신부는 한쪽에서 유유히 일광욕을 즐기며 누워있는 한 젊은 여인에게 다가가 몇 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분명 시계를 두고 오신 거지요, 네?” 보이티와 신부는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여인은 대답했다. “오늘만 해도 벌써 시계를 두고 왔다는 사내들이 열 명은 넘게 지나갔으니까요. 처음에는 시계로 시작해서 다음에는 포도주를 권하고, 그리고는 저녁에 춤추러 가자고 유혹하지요. 뻔한 수작 아닌가요?”
“그렇지만 저는 신부입니다!”
“여보세요! 지금까지 많은 남자들이 다양한 수법으로 나를 꼬드겼지만 ‘신부’라며 접근하는 경우는 처음이군요.”
보이티와 신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그 여인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는 정중하게 예의를 표하고 바로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신부의 등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맙소사, 진짜 신부님인가 봐!”
◇ ◇
한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건강 문제가 매일같이 매스컴에 오르내리던 적이 있었다. 기자들은 심심찮게 교황의 건강 상태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추측 기사를 썼다.
하루는 교황청의 누군가가 오늘은 건강이 좀 어떠시냐고 문안인사를 하자 교황님 대답.
“나도 잘 모르겠소. 아직 오늘 아침신문을 읽지 못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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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다른 이들에게 무엇을 시키거나 명령하기보다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결하는 소탈하고 거침없는 성품으로도 유명하다.
어느 날 교황은 스위스의 한 요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곳에서 요양 중인 자신의 오랜 친구 안제이 데스쿠르 주교의 병세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안내 데스크의 전화 교환원이 누구냐고 물었다. “교황입니다.”
이 말을 듣고 수화기 저편의 상대방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중얼거리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당신이 교황이면, 나는 중국 황실의 공주다!”
◇ ◇
파리에서 수녀들의 모임에 초빙되었을 때의 일이다. 연단으로 올라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지체했다. 그러자 앞에 있던 비서들과 경호원들이 빨리 올라가라는 손짓을 하며 큰일이나 난 듯이 수선을 피웠다. 교황은 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천천히 연단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수녀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방금 여러분은 내 생활이 어떤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 것입니다. 언제나 이런 식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늘 나를 어디론가 내몰면서 끊임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또 제 시간에 못 맞추겠군요! 또 늦겠군요!’…… 여러분, 어떡하면 좋을지 누가 좀 알려주겠어요? 이렇게 끊임없이 서두르고, 끊임없이 매여있는 가운데 어떻게 숨을 쉴 수 있는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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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바오로 2세가 가톨릭 교회 ‘삼천 년기’를 이끌어갈 교황으로 선출되고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가지 황당한 소문들이 떠돌았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라든가, 교회의 새로운 수난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둥 악의에 찬 괴소문이 퍼졌다.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던 소문은 결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어느 날 기자 한 사람이 짓궂은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머지 앉아 전쟁이 일어나면 교황님께서 추기경들의 시체를 밟으며 도망칠 것이라는 소문이 있는데요, 어떠십니까? 도망갈 준비는 되셨습니까?”
그러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나야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있죠. 다만 추기경님들이 엎드릴 준비가 되셨는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