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핼 헬먼Hal Hellman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의사들의 대결을 보여줌으로 의학사의 비밀을 밝힌 핼 헬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중과학 저술가이다. 6권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미래의 세계(The World of the Future)』와 『과학사 속의 대논쟁 10(Great Feuds in Science)』을 포함해 26권의 대중과학서를 썼다. 그는 또한 <뉴욕타임즈> <옴니(Omni)> <리더스 다이제스트> <사이콜로지 투데이> <지오(Geo)> 등과 같은 정기간행물에 과학 기사를 기고하고 있다.
옮긴이 : 이충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몸을 사랑하자』 『오랜 시간을 견딘 침묵』 『성공으로 이끄는 세일즈 법칙』 등 여러 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소개
지은이 : 핼 헬먼Hal Hellman
옮긴이 : 이충
책정보 및 내용요약
올 봄 아시아는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즉, 사스(SARS)의 공포에 휩싸였었다. 현재 질병의 확산이 주춤하고는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언제 다시 퍼질지 모르는 이 질병에 두려워하고 있다. 사스가 이렇게 무서운 속도로 확산된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세계 여러 나라는 중국 정부의 늑장 대응을 가장 큰 원인으로 뽑았다. 사스의 첫 발병은 2002년 11월 광저우에서였다. 중국 정부는 병의 출현을 알고 있었지만 침묵을 지켰고 이 질병의 전염성에 대해 전혀 경고하지 않았다. 공포를 직감하고 있었음에도 사실을 은페하고 축소한 것은 왜일까? 이는 격리 조치로 인한 패닉과 경제적인 손실 등 사람들의 목숨보다는 다른 이익을 먼저 생각한 이기심 때문이었다.
가만히 과거 역사를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질병이 질병 자체로서보다 기타 다른 요인들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때로는 질병(특히 전염병)이 민족주의나 행정당국의 정책 등에 이용되기도 했고, 한 시대를 좌우하는 종교나 사상의 편견에 사장되기도 했으며, 질병을 밝히고 싸우는 의사 자신들의 욕심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공포인 질병만이 아니라 인간 생명과 관련된 새로운 발견들도 권력의 핵심 혹은 희생양으로 논쟁 거리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의사들의 전쟁』은 근대 과학의 형성기부터 20세기말까지 인간 생명을 두고 벌어진 권력가와 비권력가들의 격렬한 대결을 다루고 있다. 이들의 전쟁 양상은 너무도 다양하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동료를 배신하거나 서로의 약점을 노리는 무기 없는 전쟁, 불명예가 두려워 환자의 죽음을 관망한 행동 등은 개인의 욕심을 우선으로 한 경우일 것이다. 종교나 사회적 편견과 싸워야 했고, 국가간의 대립에 휘말려 논쟁의 핵심이 되기도 했다. 하비, 제멜바이스, 베르나르, 프로이트 등 훗날 인류 의학사에 족적을 남긴 이들은 격렬한 폭풍 한가운데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다.
편집자 추천글
“이제까지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켜 온 사람들이 항상 자신의 발견 때문에 운명적으로 겪어야 했던 질투와 혐오, 증오, 파괴, 비방과 같은 고통처럼, 내가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대중에게 알릴 때 나 역시 그런 고통들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독일의 내과의사였던 레오폴드 아우엔브루거(Leopold Auenbrugger)
윗 글을 쓴 아우엔브루거는 지금의 내과의사들이 검진시 가장 기본으로 사용하고 있는 청진법을 제시했던 18세기의 의사이다. 그는 청진법이 의학 발전에 중대한 공헌을 할 것을 확신했지만 영웅이 되려는 어떤 환상도 꿈꾸지 못했다. 바로 과학 발전에 공헌한 사람들이 운명적으로 감당해야만 했던 기존 세력들의 질투와 혐오, 증오와 비방 때문이었다.
임산부들을 죽음으로 몬 산욕열의 원인이 다름 아닌 ‘의사들의 불청결한 손’이라고 주장한 제멜바이스의 경우 빈 의학계의 기득권층과 싸워야만 했다. ‘불청결한 손은 의사들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던 빈 의학계에 제멜바이스의 주장은 도전이며 반항이었다. 기득권층인 빈 의학계는 제멜바이스를 철저히 고립시키고 심지어 직업까지도 빼앗는다. 결국 제멜바이스는 외진 정신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이유없이 죽어가야 했던 산모들을 구하려던 한 젊은 의사의 바른 말은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들에 의해 철저히 무시당하고 말았다.
선구자가 되려는 의사들의 무한한 욕심
과학사를 보면 우선권과 관련해서 많은 논쟁이 존재하고 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계산기 발명, 애덤스와 르베리에의 해왕성 발견, 다윈과 윌리스의 진화론,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의 양자역학 등이다. 이러한 우선권 논쟁은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논쟁이 가져온 고통으로 과학자로 하여금 연구 의욕의 상실을 가져오기도 한다.
의학사에서도 선구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먼저 써넣으려는 욕심이 불러온 논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의학 분야에서 우선권 논쟁은 과학 분야와 달리 문제의 여지가 많고 논쟁의 양상도 다르다. 인간 생명과 관련된 일이기에…….
소아마비 백신 발견을 놓고 벌어진 세이빈과 소크의 경우는, 방법의 우수성과 안전성을 놓고 벌인 논쟁이었다. 소아마비는 무서운 속도로 전세계 어린이들을 공포로 몰았던 질병이다. 발병의 원인도, 막을 방법도 알지 못한 채 속수무책 당해야만 했던 질병의 백신을 개발하며 소크는 ‘제2의 파스퇴르’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나 소크는 개발 방법의 차이로 다른 연구가들과 기나긴 전쟁을 평생 치른다. 특히 세이빈은 자신의 방법이 더 안전함을 내세우며 소크백신의 위험을 주장한다. 만약 이것이 그냥 단순한 과학적 발견과 관련된 일이었다면, 두 사람의 긴 전쟁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 중 한 명이 결국 소아마비의 진정한 구원자로 밝혀질지언정, 두 연구가가 새 백신을 만들 때마다 벌였던 안전성 시험에 희생된 소아들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도덕적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에이즈 바이러스 발견을 놓고 벌인 갈로와 몽테니에의 분쟁에는, 논쟁을 벌이기에는 에이즈가 너무도 위험한 질병이었고 개인의 욕심보다 더 복잡 미묘하게 얽힌 국가간의 자존심이 개입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소아마비 이후 더 이상 인류에게 전염병은 없을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1983년 현재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인 에이즈가 미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학자에 의해 동시에 밝혀진다. 둘다 에이즈의 공포를 알고 있었지만, 최초 발견자가 되고 싶은 욕망과 최초 발견자를 배출한 국가이고 싶은 국가간 자존심 대결로 10년 세월이 지나서야 질병의 실체가 밝혀진다. 10년 세월에 질병이 무서운 속도로 퍼질 것을 알면서도 논쟁을 벌인 그들을 진정 생명을 중시한 사람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종교와 사회적 편견이 만들어낸 분쟁
개인적인 욕심과 기득권층의 비타협만이 논쟁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뿌리박힌 당시의 종교 교리가, 사회적 인식이 논쟁을 만들기도 한다.
혈액 순환론을 주장했던 17세기의 윌리엄 하비는 종교와 관련한 좋은 예이다. 하비가 혈액 순환을 주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간에서 만들어진 혈액이 심장을 통해 신체의 말단까지 흘러가면서 세포 조직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소멸한다는 갈레노스의 학설을 믿었다. 갈레노스는 신체 각 기관의 기능과 역할을 ‘영혼’이라는 개념으로 종교와 관련시켜 모든 것을 해석했던 고대 로마시대의 의사이다. 혈액이 사라진다는 갈레노스의 생각은 분명 말도 안 되는 억측이지만 당시 종교론자들에게는 하비의 생각이 자연에 반하고 종교에 반하는 것이었다. 하비가 활동하던 시대는 갈릴레이가 천동설에 반대해 고통을 받고 마녀 재판이 종종 벌어지던 종교 교리가 모든 진실을 가리던 때였다. 진실을 알고 있던 하비는 평생을 종교론자들의 비난에 고통받고 무시당하며 위험한 의사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1953년의 혁명이라 불리며 인간 유전자의 모든 것을 밝힌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에는 남성 중심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숨어 있었다. ‘이중나선’ 발견으로 노벨 의학상을 받은 사람은 왓슨, 크릭 그리고 윌킨스이다. 그러나 수상자에는 엄연한 이중나선 구조의 첫 발견자인 프랭클린의 이름이 빠져 있다. 왜 그녀의 이름은 역사속으로 사라져야 했을까? 남성으로서 우위에 서고 싶어하며 프랭클린을 밀어낸 너무도 달랐던 동반자 윌킨스 때문이었다. 사사건건 남녀 우위 문제로 부딪힌 둘은 결국 결별하고 윌킨스는 왓슨, 크릭과 다시 한 팀을 이루어 DNA 정체를 밝힌 공헌자로 인정받는다. 만약 윌킨스가 그녀의 우수성을 인정했다면 영예의 주인공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 외에도 개구리의 근육 수축을 동시에 목격하고도 다른 해석을 내려 분쟁을 겪은 갈바니와 볼타의 논쟁, 자신들의 발견이 민족주의의 도화선이 되고 국가간 반목에 희생되어야 했던 파스퇴르와 코흐의 논쟁(박테리아의 정체를 둘러싼), 골지와 라몬이카할의 논쟁(신경세포의 비밀을 밝힌) 등과 만날 수 있다. 또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름인 프로이트와 그의 수제자 융이 ‘어린아이의 성욕’ 존재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며 인격적 모독도 마다하지 않았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수세기에 걸친 투쟁의 결과는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의사들이 선인은 아니다. 아프리카 저 오지에서 혹은 위험천만한 곳에서 의료 봉사를 하며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만을 다하며 진정한 히포크라테스 후예로서의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의료 기술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술(仁術)이라고 불리는 의술은 이 책에서처럼 권력의 핵심으로 부각되기도 하고, 권력 투쟁의 수단이 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의 투쟁이 진정한 의학 발전의 원동력이 된 경우도 없진 않았다. 논쟁이 주는 자극으로 성과가 더 빨리 이루어지고 발전하며, 더 완벽한 치료 방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욕심을 채우려는 자들과의 투쟁이 없었다면 인간 생명의 진실은 더 빨리 밝혀졌을 수도 있었고, 무모한 그들의 욕심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없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