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댄 쿠퍼
매사추세츠 공대에서 핵물리학을 전공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핵공학≫지 편집장, ≪국제 과학과 테크놀로지≫지 발행인을 거쳐, 현재 과학전문 출판사인 쿠퍼 커뮤니케이션스의 대표이다. 쿠퍼 박사는 한때 입자 가속기의 미래에 대한 엔리코 페르미의 강의를 듣고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옮긴이 : 승영조
199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번역한 책으로, 『전쟁의 역사』(몽고메리), 『뷰티풀 마인드』(수학자 존 내시 전기), 『발견하는 즐거움』(파인만의 대중강의), 『조지 가모브 물리열차를 타다』(가모브의 소설 물리학), 『무한의 신비』(수학자 칸토어를 중심으로 한 무한대 이야기) 등 30여 종이 있다.
저자소개
지은이 : 댄 쿠퍼
옮긴이 : 승영조
책정보 및 내용요약
이번에 출간된 <현대물리학과 페르미>는 바다출판사 <옥스퍼드 위대한 과학자> 시리즈의 아홉 번째 책이다. 이미 2002년 1월에 『E=mc2과 아인슈타인』『라듐의 발견과 마리 퀴리』『만유인력과 뉴턴』『진화론과 다윈』『위대한 발명과 에디슨』이 발간되었고, 이후 『DNA 구조의 발견과 왓슨크릭』『정신분석과 프로이트』『물리학의 탄생과 갈릴레오』가 발간되었다.
이 시리즈는 과학자들의 혁명적 발견과 고난의 연구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고등학생들에게 과학적인 사고방식은 물론 과학자 한 개인의 삶을 넘어선 거인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페르미나 왓슨·크릭 등 지금까지 출간된 과학자 시리즈에서는 보기 힘든 현대과학자들도 포함되어 있어 청소년들에게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과학과의 연결성을 찾는 데도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많은 책들이 중앙독서교육(『라듐의 발견과 마리 퀴리』『E=mc2과 아인슈타인』) 이나 교보문고(『진화론과 다윈』), 한국출판인회의(『정신분석과 프로이트』) 등에서 추천도서(중·고등부)로 선정되었으며, 꾸준히 독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편집자 추천글
사실, 요즘 떠들썩한 ‘북한 핵’은 핵물리학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핵물리학의 발달에 가장 기여한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이탈리아 태생의 이론 및 실험 물리학자인 엔리코 페르미이다.
그렇다면 현대물리학에서 페르미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은 일본 도쿄대 고시바 마사토시(76) 명예교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레이몬드 데이비스 2세(87)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중성미자(뉴트리노)의 존재를 규명하고,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특히 고시바 교수는 한 폐광 지하에 중성미자 망원경을 설치하고, 수십 년 간 우주의 중성미자를 관측하는 등 무모할 정도의 끈질긴 집념을 보여 주었다. 바로 이 중성미자의 존재를 가정하고 뉴트리노라는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이 바로 페르미이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뉴트리노에 대한 페르미의 연구와 페르미 통계, 중성자물리학과 베타 붕괴 이론 등에 대한 페르미의 업적을 잘 기억하고 있다.
페르미가 사망한 뒤 그를 기념하기 위해 새로 발견된 원자번호 100인 원소를 페르늄이라고 명명하고, 원자핵의 크기를 나타내기는 길이의 단위로 10-15m를 페르미라는 단위로 부른다. 물리학자로서 그의 독보적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일리노이 주의 국립 가속기 연구소를 페르미 연구소라고 개명했으며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미국 국가 특별상으로 페르미 상이 제정되었다.
현대물리학에서 페르미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페르미가 태어난 때는 물리학의 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무수한 것들을 그저 몇 가지 간단한 법칙과 방정식만으로 척척 설명할 수 있었으며, 전기 이론과 자기 이론을 합쳐 전자기 이론을 탄생시킨 맥스웰과 빛의 파동설을 주장한 토마스 영, 거기에다가 이론물리학자들까지 합세하여 19세기가 저물 무렵의 물리학자들은 자기만족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러나 겉보기에는 더없이 완벽했던 법칙들이 슬슬 금이 가기 시작했다. 거세게 밀려든 혁명의 물결은 결국 뉴턴의 운동법칙을 뒤엎고 말았다. 원자핵이 양성자와 중성자들의 모임임이 알려지고 원자가 더 이상 신이 창조한 가장 기본단위가 되는 입자가 아님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원소를 탄생시키는 데 과학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그 와중에 페르미는 중성자를 원자핵에 충돌시켜 새로운 다량의 인공방사능 원소를 만들어 냈다. 또한 유도된 방사능의 양이 증가하는 이유를 중성자에서 찾은 것이다. 이제 중성자에 대해 페르미만큼 아는 사람이 없었다. 19세기 초에 미국의 드넓은 땅을 개척한 루이스와 클라크처럼 핵의 세계를 탐험했으며, 페르미가 만들어 낸 원소는 정상 조건의 지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물질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페르미는 우라늄 원자핵이 두 개의 작은 원자핵으로 분열되어 버렸던 것을 알아채지 못했지만,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에너지가 이 핵분열 과정에서 탄생했다.
핵의 잠재된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며, 핵분열을 통한 연쇄반응을 이용해 가공할 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때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면서 페르미도 맨해튼 계획(제2차 세계대전 중 원자폭탄 개발 계획)에 참여했다. 1942년 12월, 시카고 대학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로인 OP-1이 만들어지고, 이어 통제된 핵분열의 연쇄반응 실험이 성공했다. 로스앨러모스 연구소가 건설되면서 목표는 핵무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마침내 1945년 7월, 통제된 핵분열을 이용한 플루토늄 내파형의 폭탄 실험이 성공했다. 그리고 8월 9일 미국이 나가사키에 두 번째 폭탄을 떨어뜨렸다.
물리학의 신동, 페르미
철도청 직원인 알베르토 페르미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엔리코 페르미는 어린 시절 늘 1등이었다. 그는 로마의 공립학교에 다니며 과학에 흥미를 갖고 스스로 책을 읽으며 배우는 총명한 소년이었다. 페르미는 열세 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이미 라틴어로 된 수리물리학 책을 읽으며 물리학 문제들을 철저히 이해할 때까지 900쪽이나 되는 책의 여백에 자세히 메모해 가며 밤을 새우고 공부하는 소년이었다.
페르미는 열일곱 살 때 피사 대학과 고등사법학교 입학시험에서 고등학교 수준의 답안을 쓰는 대신에 대학에서도 최고급 수학기법을 적용했다. 채점관들은 그가 천재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피사 대학을 졸업한 페르미는 독일의 괴팅겐 대학에서 막스 본 등 유명한 학자들과 함께 연구하였으며 이탈리아로 돌아와 피렌체 대학 강사로 있으면서 오늘날 페르미 통계라고 부르는 기본 입자에 적용되는 아주 중요한 이론을 개발함으로써 전세계의 그 누구보다도 탁월한 이론물리학자임을 확고히 하였다. 그리하여 페르미는 로마 대학의 첫번째 이론물리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물리학자에는 두 부류가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물리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아 내기 위해 연구실에서 온갖 실험을 하는 실험물리학자이고, 두 번째 부류는 연필과 종이를 사용하여 수학 모델을 개발하고, 물질과 에너지의 작용을 설명하는 방정식과 법칙을 찾아 내는 이론물리학자이다. 사람들은 페르미를 ‘완벽한 물리학자’라고 일컬어 왔다. 그가 이론뿐 아니라 실험에서도 최고였기 때문이다. 한 물리학자가 두 가지를 다 잘하는 것은 너무나 드문 일이다.
현대물리학과 핵물리학의 시대를 개척하다!
페르미가 재직하는 로마대학 물리학과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게 되어 나중에 핵물리학의 대가로 성장한 한스 베테와 에드워드 텔러를 포함한 많은 외국 학생들이 이탈리아로 물리 공부를 하러 오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새로운 물리학 실험과 연구 계획을 추진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현대 원자물리학에 관한 교재를 만들기도 했다. 이렇듯 페르미는 유럽 도처에서 진행중인 물리학 혁명을 이탈리아의 교실과 연구 실험실로 끌어들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앞서간 것은 양자역학이었다. 양자역학은 영국의 뉴턴이나 이탈리아의 갈릴레오가 발전시킨 고전역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이론이었다. 양자역학은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 입자(원자와 핵)의 행동을 다룬다. 이 분야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고, 원자 규모의 세계에서는 힘과 움직임에 대한 뉴턴의 이론을 포기해야 한다.
로마 대학에서 페르미는 수많은 핵물리학의 새로운 이론을 수립하였다. 방사능 붕괴의 하나인 베타선을 설명하기 위하여 새로운 입자인 중성미자(뉴트리노)의 존재를 가정하고 새로운 기본 상호작용을 제안하였으며 느린 중성자를 이용한 핵분열에 대한 연구로 193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중성자물리학이라는 엄청난 새 분야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세계 도처의 물리학자들은 느린 중성자에 의한 우라늄 핵분열 연구에 뛰어들었다. 핵분열 반응은 훨씬 격렬한 반응이었다. 그건 하나의 중성자가 우라늄의 핵 속으로 들어가서 핵을 둘로 쪼갠다는 것이고, 이때 중요한 사실은, 또 다른 중성자가 방출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중성자가 침투해서 하나 이상의 중성자가 방출되는 이 형상이야말로 연쇄반응을 가능케 하는 열쇠이다. 새로 방출된 중성자는 더욱 많은 핵분열을 일으킨다.
연쇄반응이 일어날 때 발생하는 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위험한 방사성 핵분열 산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핵분열을 일으키는 플루토늄을 어떻게 추출해서, 어떻게 핵폭탄 물질을 만들 것인가?
4만, 2,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핸포드 원자로를 이용해 1944년 최초의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이 만들어져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