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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지음│352쪽│17,800원│138*214mm│2024년 5월 24일

ISBN 979-11-6689-248-6 03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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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송경원이 아껴왔던 영화를 향한 고백


“이런 사람이 뭘 사랑한다고 할 땐 정말 사랑하는 것이다.

15년 동안 쓰인 그의 연서가 완성됐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씨네21》 편집장 송경원의 첫 비평집이다. 대체로 영화평론가의 시작은 영화기자이다. 송경원은 드물게 영화평론가로 데뷔한 후 영화기자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영화의 효용과 의미를 거대 담론으로 끌어올리는 일보다, 영화의 한 장면이 된 우리의 삶과 기억을 조명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비평가이다. 그래서 그는 흐릿해져 가는 기억을 붙잡는 영화, 나의 지난 실수를 대변하는 영화, 다른 이의 삶을 나의 삶과 견주어 볼 수 있는 영화에 마음을 내주고, 온 힘을 다해 쓴다.

이 책에 실린 스물여덟 편은, 송경원이 15년 동안 써온 비평 중 그의 관점과 세계가 응축된 글들로 선별하여 엮은 것이다. 송경원의 첫 비평집 출간 소식을 들은 많은 시네필은 ‘드디어!’를 외쳤다. 영화평론가 송경원의 15년 궤적을 한 권의 책으로 따라 읽다 보면, 나에게 짙게 번져오는 영화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송경원이 15년 동안 영화와 주고받은 대화

“그 모든 시간이 나의 영화였다”

송경원은 평론이 영화의 의미를 바꾸거나,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영화가 있다는 것은 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역사를 재현하면서도 영화가 결코 현실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어떤 영화들은 그 사건이, 그들이 거기에 있었음을 증명하며 세계의 일부가 된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토착민과 이주민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1961년 대만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 아무리 사실과 역사를 기반한 이야기라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영화가 진실까지 밝힐 수 없음을 인정하며, 한정된 스크린의 빛과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나의 역사적 뿌리’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을 시인한다.

2017년 국내에서 처음 개봉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본 저자는 과거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에 변화가 생겼음을 깨닫는다. 영화는 나를 바꾸지 않는다. 변한 나의 모습이 영화를 통해 드러날 뿐이다. 마찬가지로 영화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변한 세상의 모습을 영화로 확인할 뿐이다. 그래서 송경원에게 영화는 일종의 좌표이다. 이 책의 표지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한 장면인 것도, 시간이 흐른 후에 저자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그의 의지의 표현이다. 그는 계속해서 지나간 영화와 대화를 시도하며 현재를 만들어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에필로그 2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과 〈이터널 선샤인〉을 새로 쓰며, ‘지나간 영화가 자신에게 건네는 말’을 듣는다. 그가 끈질기게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는 일상에서 지나친 풍경들을 낯설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서 낯선 세계란, 과거에 놓인 자신이고, 당시에 추스르지 못한 관계의 결별과 감정의 부재이다. 영화 속 한 장면이 내 것 같다고 느낄 때, 영화는 지나간 것들과 우리를 연결해 주고, 우리는 뒤늦게 깨달은 갈등의 의미와 화해를 ‘운명’이라 부를 수 있게 된다. 송경원 역시 이 책을 마지막 장을 완성하며 영화를 ‘쓰는’ 일이 ‘운명’이었음을 고백한다.

 

“영화가 우리에게 진실의 말을 걸어온다면 그것은 영화 안에 있지 않다. 진실은 오직 영화와 나 사이 어딘가에서, 때마다 다른 형태로 피어난다.”(12쪽)

 

 

극장 밖으로 인물들이 걸어 나올 때

송경원의 관점을 잘 정리한 또 한 편의 비평이 〈보이후드〉이다. 〈보이후드〉는 12년 동안 매해 15분씩 찍은 컷을 연결한 영화이다. 영화 속 인물들의 12년과 나의 12년이 똑같이 흐른 것이다. 그들이 겪은 어린 시절, 성장통, 주변 환경의 변화를 우리도 똑같이 겪었다.

누구나 겪은 평범한 이야기지만 송경원은 이 영화가 평범하기 때문에 고전의 반열에 오를 거라 확신한다. 영화의 시간과 실제 시간의 간극을 줄이는 편집과 연결을 고심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적 리얼리티를 구현해 낸 감독 링클레이터를 추종하는 이유는 당연해 보인다. 〈보이후드〉가 끝까지 영화의 시간을 인지함으로써 “서사에 갇히지 않고 영화 바깥에서 관객과 조응”하기 위해 “각자 자신의 현실을 환기할 수 있는 거대한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연과 무의식, 불확정성으로 가득한 삶에 대한 공감이기도 하고, 그러한 세계에서 함께 성장했다는 동질감이기도 하다.

극장을 빠져나와서도 이어질 우리의 일상처럼 인물들의 시간도 스크린 뒤에서 여전히 흐를 것처럼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크린을 사이에 둔 채 영화는 현실을 닮으려, 우리는 영화를 닮으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왔다. 이 불가능하고도 아름다운 대화의 시도가 이야기를 극장 밖으로 오래오래 이어지게 한 것이리라.

 

“극장의 불이 모두 켜지는 순간 당신도 그 요소 중 하나가 된다.”(38쪽)

 

 

영화는 취향이 모이는 곳이다

송경원은 영화 외에 게임과 드라마, 애니메이션 비평에도 언제나 진심이다. 문학과 영화를 기반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나를 흔든 문장은 대부분 만화책에서 마주했다”는 저자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이미 ‘덕후’로 소문나 있다. 보고 싶지 않은 영화여도,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모를 독자들과 연결하기 위해 끝까지 보고 써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영화기자이지만, 보고 싶고 쓰고 싶은 영화는 따로 있기 마련이다.

이 책이 첫 번째로 소개하는 영화〈프렌치 디스패치〉에 저자가 쓴 첫 문장은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이 아닌 저자가 현재 자리한 곳을 묘사한 것 같다. “매체가, 시대가, 삶이 바뀌고 있다. 끝자락에 선 기분이다. 저항하다가 사라질 수도 있고, 순응하며 살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 유일 영화잡지라는 타이틀을 가진 《씨네21》이지만 유튜브와 OTT의 일상화로 극장의 위기론이 감도는 오늘날, 그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그는 영화애호가들이 기댈 수 있는 자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글〈환상의 마로나〉에 대해 “딱히 비평이나 분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영화라고 말한다. 그는 영화 비평, 글쓰기를 업으로 삼았지만, 우리의 감정과 취향을 건드는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며 책을 닫는다.

그는 마음이 향하는 곳이라는 어떤 형태로든 닿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 《씨네21》에서 ‘송경원의 덕통사고’라는 코너를 연재하고,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심사위원 등을 맡으며 개개인의 취향을 지지하고 기꺼이 그 세계로 들어갔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많은 독자에게 환영을 받았으며, 취향이라는 연결고리로 만남이 이루어졌다. 드라마 〈파친코〉,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2〉, 애니메이션 〈이별의 아침에 약속의 꽃을 장식하자〉, 만화책 《3월의 라이온》 등이 책에 포함된 걸 보면 저자의 활동 영역이 얼마나 광범위한지, 취향을 가진 인간 그리고 사적 이야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신형철 평론가는 추천사에서 평론가 송경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온화한 편이지만 그건 그의 화법이 겸손해서이지 주장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것은 송경원이 영화를 사랑하는 태도이며, 취향을 응원하는 마음이고, 더 나아가 개개인의 삶을 지지하는 방식이다. 어쩐지 〈프렌치 디스패치〉에 등장하는 편집장 아서(빌 머레이 역)와 《씨네21》의 편집장 송경원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지은이 송경원

영화평론가. 《씨네21》 편집장. 2001년 그저 글을 써서 먹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평론가로 데뷔했다. 2012년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영화이론 박사과정을 수료 후 《씨네21》 기자로 입사했다. 2011년부터 부일영화상, 부천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심사위원 등 여러 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만화 웹툰 작가 평론선-이충호》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공저) 등을 썼으며, 영화 외에 게임, 애니메이션 비평도 함께하고 있다. 2011년 3월부터 10년 동안 《부산일보》에서 ‘송경원의 시네아트’를 연재했다. 유튜브 ‘무비썸’에서 진행을 맡았으며, 팟캐스트 ‘조용한 생활’ 중 ‘극장전’에 출연 중이다. 영화를 뛰어넘는 평론을 쓰겠다는 욕심은 없다. 그저 한없이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영화를 한 번 더 본다는 생각으로 영화 글쓰기를 이어간다.

 

 

추천사

평론가 송경원의 이미지는 온화한 편이지만 그건 그의 화법이 겸손해서이지 주장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래서 그가 주장할 땐 내가 겸손해져서 듣는다. ‘시네마’란 무엇인가. 그의 기준은 ‘시간의 현상학’과 ‘카메라의 화용론’인 것 같다. 그는 “시간을 어떻게 만질 것인지의 문제”가 영화의 존재론과 직결돼 있다면서 〈보이후드〉와 〈아이리시맨〉이 담아낸 시간의 질감을 옹호한다. 또 “카메라의 의지는 영화적”이지만 그 “모든 결과는 비영화적”일 수도 있음을 지적하면서 〈라라랜드〉의 악기 카메라와 〈1917〉의 게임 카메라의 욕망을 비판한다. 옹호할 때나 비판할 때나 내성內省적 깊이를 잃지 않는 게 그의 매력이다. 이런 사람이 뭘 사랑한다고 할 땐 정말 사랑하는 것이다. 15년 동안 쓰인 그의 연서戀書가 완성됐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평론가라는 호칭을 부담스러워하는 영화기자가 있는가 하면, 평론가의 정체성과 규율을 지키며 과로하는 영화기자도 있다. 키오스크 주문에 쫓기는 햄버거 가게 점원과 비슷한 처지인 주간지 기자로서 후자가 되기란 지극히 힘든데, 송경원은 긴 시간 그렇게 일해왔다. 동시에 잡지쟁이의 DNA도 만만치 않아서, 거대이론에 의존하기보다 직접 수행한 인터뷰와 자료, 동시대 동료들의 견해를 징검돌 삼아 글을 쓴다. 저자는 자기를 비관적인 사람이라 소개하지만 나는 그 말을 절반만 믿는다. 비관주의자는 극장의 미래나 시네마의 운명을 송경원처럼 진지하게 근심하지 않을 테니까. 극장의 불이 꺼질 때마다 자신이 비관주의자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진 않을 테니까.

─김혜리 영화기자

 

 

책 속으로

 

어쩌면 영화에 대한 글쓰기는 영원히 도달하기 힘든 신기루를 좇는 작업인 셈이다. 그 모든 예정된 좌절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고 싶다는 욕망이 도저히 가라앉지 않는다면, 써야 한다. 자기 마음속 얼룩을 어떤 형태로든 확인해야 한다. 8쪽

 

영화가 영화여야 하는 이유 역시 이성과 합리의 영역에 있지 않다. 무용無用한 것들로 가득 찬 영화의 생명은 오직 취향의 고백으로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고 버텨낸다. 산초에게 잔혹한 사실을 들은 돈키호테는 말한다. 진실이 사실들에게 살해당하고 있다고. 그럴지언정, 아니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진실, 나의 취향, 내가 믿고 싶고 사랑하는 것을 지키려는 이들의 (남 일 같지 않은) 고백은 무모하고 위태롭고 고집스러울수록 어여쁘다. 23쪽

 

한 사람이 겪는 하잘것없어 보이는 일도, 아니 그거야말로 영화가 사랑해 온 대안의 역사다. 그 사건이, 그들이 거기 있었음을 증명하는 카메라들의 힘으로 영화는 세상의 일부가 된다. 47쪽

 

〈시카리오〉는 스크린을 투명하게 만들어 현실을 대리하는 척하지 않는다. 대신 드니 빌뇌브는 매끄러운 편집 사이 특색 있는 숏들을 요철처럼 배치해 관객을 스크린으로부터 밀어내고 지정한 위치에 앉힌다.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일어나는 일을 목격할 따름이다. 107쪽

 

사회구조적 모순을 충돌시키고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들과 달리 〈미나리〉는 어디까지나 선의로 감싸인 영화이며 장면과 장면 사이 낭만적 상상이 들어차 있다. 다만 이는 구조를 은폐하는 환상과는 다르다. 굳이 설명하자면 각자의 경험에 근거하여 빈칸을 메우는 작업에 가깝다. 255쪽

 

거대한 산처럼 우뚝 솟은 명언들이 기어 올라가야 만끽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면 만화 속의 멋진 순간들은 내 곁으로 직접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주는 살가운 친구였다. 현학적인 진리들이 구름 위의 별을 가리킬 때 만화는 문턱을 낮추고 옆에 걸터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307쪽

 

애니메이션에 대한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추상적인 감각에 동작과 움직임, 그러니까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믿는다. 영화가 현실-이미지를 판화처럼 찍어낸다면, 애니메이션은 감각과 감정을 직접 그려낸다. 321쪽

 

 

목차

 

프롤로그

영화를 ‘쓴다’는 것 5

 

1장 어쩐지 잊히지 않는

“나는 이곳에서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다” 17

언제나 지금 여기 우리 함께 27

사유의 시작이 되는 영화가 있다 39

우연이 이야기가 될 때까지 48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 61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뿐 73

영화를 향한 향수병 83

어떤 균열은 반갑다 96

 

2장 선명하다가도 흐릿한

영화가 사라진 자리에서 111

“신세계가 구세계를 구할 것이다” 124

액자가 그림의 일부일 순 있어도 138

서사를 잃고 헛돌다 151

설득당하고 싶은 마음 164

겪어보지 못한 기억을 추억하기 177

시네마는 마법의 이름이 아니다 189

거짓과 자기기만의 굿판 199

아직 준비가 안 됐다 212

 

3장 뒤돌아보면 그곳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 번째 은퇴 선언 225

그 감정이 거기에 있었다 235

경외하길 멈추고 기억하기 248

네버랜드와 원더랜드 사이 어딘가에서 260

‘최고의 영화’에 대한 고찰 273

끝끝내 버텨내 오늘에 다다른 마음들 288

순간을 영원으로 바꾸는 기록자 297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 나의 자리 306

점, 선, 면으로 그린 환상의 세계 314

 

에필로그

지나간 영화가 나에게 말을 걸 때 326

영화와 사랑, 그 운명에 대하여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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