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예술이 현상해낸 사상의 모습들
박영욱 지음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예술/대중문화의 이해 > 미학/예술이론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410쪽 | 19,800원 | 판형 152*225mm | 2024년 2월 20일 발행 | ISBN 979-11-6689-215-8 03420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사상은 예술을 통해 현실이 된다!”
사상이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며, 그 물질성은 예술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27명의 사상가와 예술가를 언급하며 숨어 있는 그들의 공통점을 찾고, 그 공통점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을 통해서 난해한 사상이나 형이상학적 개념에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이고 논리적으로만 이해했던 사상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된다. 즉 사상은 예술을 통해 구체성을 얻으며 예술은 사상을 통해 사유모델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한다.
1장에서는 눈으로 감상하는 평면적인 회화와 사진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사상들을 정리했다. 2장은 삽입된 QR 코드의 음악을 통해 사상을 들을 수 있다. 3장에서는 입체적인 예술작품이 표현한 현대사상의 진수를 만지듯 느낄 수 있다. 이 세 감각을 통해 현대사상을 체험한다면 나중에 그 예술작품을 보거나 들을 때 현대사상의 개념들을 육감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현대사상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에도 관심을 갖게 하는 흥미로운 여행서가 될 것이다.
“사상은 예술을 통해 현실이 된다!”
읽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느끼고 감상하는 사상의 즐거움
사상은 머릿속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은 철학의 제1원리로 불리며 오랫동안 사상의 세계를 대표해왔다. 이 말은 사상이란 철학자와 선구자 들이 생각 끝에 내놓은 관념적인 무언가임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듯하다. 우리는 이처럼 사상을 머릿속의 작용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보이거나 들리는 것 혹은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사상을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으로 취급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사상이란 신기루일 뿐일까?
이 책의 저자는 사상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며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진리는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눈에 보이는 것이다. 사상도 그렇다. 그리고 사상의 물질성은 예술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이 책은 27명의 사상가와 예술가를 언급하며 숨어 있는 그들의 공통점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공통점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을 통해서 난해한 사상이나 형이상학적 개념에 접근한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는 예술은 머릿속에서 어렴풋하게 떠돌던 현대사상을 현실에 현상해낸다.
마르크스와 쇤베르크, 하버마스와 브뤼헐, 소쉬르와 피카소의 연관성은?
예술을 통해 드러나는 사상의 물질성
책에서 연결하고 있는 사상가와 예술가 사이에는 언뜻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쇤베르크는 정치에 무관심했으며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 혁명가도 아니었다. 브뤼헐 또한 자신의 그림이 하버마스 사상과 연관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저자는 그 사이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는 기존의 법칙을 자연법칙인 양 따르려는 당시 음악계의 분위기에 맞서 무조음악이라는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낸 쇤베르크의 음악에서, 자본주의 법칙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며 착취를 은폐하거나 당연시하는 부르주아지 사상가들에 맞서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낸 마르크스를 듣는다. 그리고 정해진 소실점 없이 흐트러진 현실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결혼식’이라는 공통의 장소를 공유함으로써 결사(結社)를 이루는 브뤼헐의 그림에서, 자유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합리적 공동체를 추구했던 하버마스의 모습을 본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이고 논리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상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된다. 즉 사상은 예술을 통해 구체성을 얻는다. 반면 예술은 사상을 통해 사유모델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한다.
사상과 예술을 넘나들며 현대의 생각을 탐구하다
저자 박영욱은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문화와 예술에 천착했다. 그는 예술작품의 미덕이 추상적 개념을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구현하는 데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책에서 우리의 오감(五感) 중 예술작품이 일상에서 구현해낸 시각, 청각, 촉각에 집중하여 사상을 풀어낸다.
‘1장 현대사상을 보다’에서는 눈으로 감상하는 평면적인 회화와 사진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사상들을 정리했다. 비트겐슈타인과 에스허르, 들뢰즈와 렘브란트, 사르트르와 마네 등 낯선 조합이 사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2장 현대사상을 듣다’는 쇤베르크, 바그너, 루솔로, 영의 음악을 통해 마르크스와 니체, 프로이트와 베르그송의 사상을 들을 수 있다.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QR코드를 삽입했다. ‘3장 현대사상을 만지다’에서는 입체적인 예술작품이 표현한 현대사상의 진수를 만지듯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허스트의 설치예술, 추미의 건축물을 통해 라캉과 바타유의 사상 또한 피부로 느끼듯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세 감각을 통해 현대사상을 체험한다면 나중에 그 예술작품을 보거나 들을 때 현대사상의 개념들을 육감(六感)적으로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또한 3장에서는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간 두 명의 사상가와 예술가를 추가해, 오늘날 우리 시대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더 깊고 다양한 관점을 주고자 했다. 바로 니클라스 루만과 앤디 워홀, 브뤼노 라투르와 미카 로텐버그다.
우리가 사상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상이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실체 없는 것이라고 믿고 무작정 외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상과 이어지는 예술작품과의 공통점을 보고 듣고 만진다면 사상을 보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책은 현대사상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에도 관심을 갖게 하는 흥미로운 여행서가 될 것이다.
보고 듣고 만지며 이해하고 감상하는 현대사상
저자는 책에서 예술작품을 보여주고 들려주며 그 안에서 찾아낸 사상과의 연결고리를 설명한다. 다음은 회화작품, 음악작품, 조각작품을 통해 설명한 사상가의 핵심 개념을 요약한 것이다.
현대사상을 보다
_사르트르와 마네: 다른 사람의 시선은 나에게 지옥이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누드화다. 그때까지의 누드화의 여인들이 살짝 눈을 내리까는 등의 방법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피한 것과 달리, 작품 속 여인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응시한다. 이를 통해 보는 이는 자신이 그녀의 벗은 몸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올랭피아>를 음탕하게 바라보는 순간, 그 불순한 의도를 그녀에게 들키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늘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를 생각한다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란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며 늘 다른 상황과 비교하고 현재에 머무르는 것을 불안해하는 존재다. 이렇게 무언가 부족한 상태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데 자유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자유를 갈망할수록 오히려 자유에 갇히고 만다. <올랭피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시선에 걸리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사상을 듣다
_베르그송과 영: 삶은 계량화할 수 없다
우리는 음악이라고 하면 일정한 박자를 가진 아름다운 선율을 떠올린다. 그런데 라 몬테 영의 <컴포지션 1960 7번>은 그렇지 않다. 한 음을 세게 내리치는 것이 전부인 음악이다. 영은 어린 시절 자신이 들었던 숲이나 강의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연의 소리는 악보에 옮겨놓을 수 없다. 자연을 악보에 담는다는 말은 그것을 분절하여 일정 공간에 담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지속하는 것이지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영은 한 음을 세게 내리치는 것으로 자연의 소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베르그송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 있다. 자연뿐 아니라 삶 또한 나누거나 공간에 담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을 24개로 나누어 세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임으로써 생명의 본질과 멀어진다. 베르그송이 생각하는 진정한 삶이란 <컴포지션 1960 7번>이 들려주는 것처럼 공간화되지 않으며 나눠지지 않고 순수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현대사상을 만지다
_루만과 워홀: 체계는 폐쇄적이면서 개방적으로 작동한다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기성품을 예술작품으로 생산함으로써 물리적 사물과 예술작품의 구별을 없애버렸다. 미학자 아서 단토를 <브릴로 박스>의 등장이 이른바 ‘예술의 종언’을 상징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루만의 체계이론에 따르면 <브릴로 상자> 출현은 예술의 종언이 아니라 예술이 진정한 독립적 체계로 분화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예술작품은 단지 물리적 속성에 의해 예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예술의 기준 자체를 만들어내는 2차질서 관찰에 바탕을 두고 있는 체계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지은이 박영욱
숙명여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사회철학에 관심을 갖고 서양사상을 공부하기 위해 고려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동 대학원에서 칸트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관심은 예술과 문화로 이어졌는데, 특히 현대음악과 현대미술, 미디어아트, 건축디자인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하였다. 홍익대 대학원 미술학과와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등에서 매체미술 비평, 공간디자인, 건축비평이론 등을 강의하였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작곡과에서 현대음악과 관련한 강의를 하였으며, 지금은 한예종 음악원에 출강 중이다. 저서로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데리다와 들뢰즈: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매체, 매체예술 그리고 철학》 《미디어아트는 X예술이다》 《필로아키텍처: 현대건축과 공간 그리고 철학적 담론》 등 다수가 있다.
책 속으로
스물일곱 명의 사상가들을 다루면서 그들의 사상을 예술가와 관련짓는 이유는 예술을 단지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단순한 가교로 삼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책에서 언급하는 예술가와 사상가 사이에는 간접적인 듯 보이지만 긴밀한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예술작품을 통해서 추상적이고도 난해한 철학 사상이나 형이상학적 개념에 접근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철학과 달리 예술작품은 매우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다. 물론 예술작품도 추상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지식이나 통찰력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예술작품에 하나의 해석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예술작품의 미덕이란 추상적인 개념을 우리의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구현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 서문 9쪽
근대인들은 이러한 불안과 공포를 외면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봉합해버린다. 이들은 자신들을 합리적인 주체로 전제하면서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은 불합리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혼자 서게 될 경우, 부조리함과 공포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대중’이나 ‘여론’ 속에 자신을 묻어버린다. 언론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과 마주하는 것을 막고 실존적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근대의 허구적 장치에 불과하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근대인들은 여론 속으로 도피하여 항상 대중의 가면을 쓰고 ‘복화술’을 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복화술과 봉합은 진정한 해결이 아닌 근원적인 불안으로부터의 도피에 불과하다. 인간은 대중의 가면을 벗고 한 명의 개인으로서, 혹은 단독자로서 절대적 역설 앞에 서야 한다.
/ 삶의 본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_키르케고르와 뭉크 28쪽
그러나 현상학이 의식 외부의 실제 세계를 반드시 전제함에도 불구하고 현상은 반드시 우리의 의식 내부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에 표현된 그 감동스러운 느낌을 주는 파란색 물질은 분명 우리의 의식에 현상하기 이전에 고흐의 손에 의해 칠해진 물감이다. 하지만 그 파란색이 감동스럽다고 느끼는 현상은 언제나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 안에서 발생한다. 현상학은 바로 우리가 감각하거나 인지하는 모든 것의 열쇠가 바로 우리의 의식 안에 있다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후설의 현상학은 우리가 보는 세계, 자연, 물질, 소리, 색 등의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후설이 보기에 이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일부의 학자들은 후설의 현상학을 관념론으로 비판하지만, 현상학이 20세기 초반부터 오늘날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는 것은 바로 관념론과 실재론 어느 한 곳에도 치우치지 않을뿐더러 그 두 항을 종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식을 현상하다 후설과 피카소 42쪽
베냐민에게 대도시는 일종의 폐허ruine이다. 하지만 그러한 폐허는 단순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침몰한 해적선의 폐허가 종말과 비극이 아닌 흥미와 상상력을 자극하듯이 과거의 유산을 파편화한 대도시는 그 흔적을 통하여 흥미와 상상력을 자극한다. 상상력이란 단편적인 것들을 나름대로 결합하여 그림을 그리는 데서 나오는 것이지 이미 총체적으로 갖추어진 대상을 인식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지거나 탄생하고 다시 사멸하여 흔적을 남기는 이러한 덧없는 과정과 그 폐허의 흔적이야말로 진리인 것이다.
/ 파편화된 대도시의 모습에서 진리를 찾다_베냐민과 아제 115쪽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 가 주장한 마르크주의의 출발 또한 쇤베르크와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모든 이론적 전거를 마련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을 마치 자연법칙으로 간주하는 일련의 부르주아지 사상을 겨냥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배격하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나 사회의 법칙을 넘어서 초역사적이고 자연적인 법칙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의 법칙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이 필연적으로 착취를 은폐하거나 정당화하는 법칙이라고 믿었으며, 부르주아지 사상가들은 이러한 착취를 교묘하게 은폐하거나 정당화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 주어진 법칙을 넘어 새로운 법칙을 세우다_마르크스와 쇤베르크 232-233쪽
오늘날 심리학의 모태가 되었으며 중요한 학문적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한 정신분석학은 바로 흥미롭게도 우리가 소음이라고 간주하는 것들에 주목함으로써 탄생하였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식적인 진술 내용보다는 오히려 터무니없는 그들의 행동이나 무의미한 잡담 혹은 말실수 등에 주목하였다. 예전에 이러한 터무니없는 말과 행위는 마치 아무런 뜻도 없는 소음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오히려 이렇게 무의미한 소음으로 간주되는 말에 주목했고 그것이 보다 심층적인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징표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치 음과 소음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소리를 기록하는 축음기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모든 소리에 주목한다. 그리고 우리가 무의미하고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소음 속에서 의식보다 더 깊은 마음의 영역을 발견한다. 그 영역이 바로 무의식이며, 정신분석학은 바로 이러한 무의식의 발견과 함께 발전하였다.
/ 중요한 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 있다_프로이트와 루솔로 258~259쪽
라캉에 따르면 상징계란 실재의 세계가 아니며 실재를 은폐한다. 하지만 아무리 실재를 은폐하고자 해도 그 균열이 완전하게 덮일 수는 없다. 라캉은 실재(혹은 실재계)란 상징계를 교란하며 상징계가 위협받는 순간 출현한다고 하였다. 예컨대 실재란 내가 알고 있는 나 자신이 더 이상 내가 아닌 것을 불현듯 깨달을 때 고개를 들고 나타난다. 혹은 내가 궁극적인 가치라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타나기도 한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1862의 자베르 형사가 이 세상의 궁극적 가치라고 믿었던 법이 사실상 무가치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 실재는 드러난다. 실재란 상징이 아닌 상징의 교란이자 죽음이며 덧없음이다. 실재란 파괴의 모습을 띠는 것이다.
/ 인간 내면의 역설적인 본능은 무엇이 제어하는가_라캉과 허스트 322쪽
<브릴로 상자>의 출현은 루만이 보기에는 예술의 종언이 아니라 예술이 진정한 독립적 체계로 분화했음을 시사한다. 예술작품이 물리적 속성에 의해서 예술이라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 아님은 결국 예술작품이 소통의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예술이 이미 주어진 예술의 기준에 따라서 예술과 비예술을 구별하는 1차질서 관찰이 아닌 스스로 예술의 기준 자체를 만들어내는 2차질서 관찰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루만에게 독립된 체계로서의 예술은, 근대 사회 이후 2차질서 관찰을 중요시하면서도 그러한 2차질서가 체계의 변화를 위한 원동력으로 작동하지 않는 다른 체계들과 달리 예술가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체계의 모델로서 기능한다.
/ 체계는 폐쇄적이면서 개방적으로 작동한다_루만과 워홀 376쪽
목차
서문
예술작품을 보고 듣고 만지며 현대사상을 느끼다 005
현대사상을 보다
삶의 본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키르케고르와 뭉크 022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식을 현상하다
후설과 피카소 036
통념을 넘어서기 위한 혁명적 시도
레닌과 말레비치 051
참된 현실은 약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 드러난다
루카치와 졸라 064
인위적 논리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비트겐슈타인과 에스허르 078
고흐의 구두는 세계를 담고 있다
하이데거와 고흐 091
파편화된 대도시의 모습에서 진리를 찾다
베냐민과 아제 103
예술은 계몽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구이다
아도르노와 퇴폐 미술전 118
다른 사람의 시선은 나에게 지옥이다
사르트르와 마네 132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점
매클루언과 와이어스 146
갈등이 아름다움을 만든다
리오타르와 인상주의 160
반복이 만들어낸 주름의 아름다움
들뢰즈와 렘브란트 175
일상의 합리성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하버마스와 브뤼헐 188
보드리야르와 거스키 201
세상에 진실한 목소리는 없다
데리다와 스티글리츠 214
현대사상을 듣다
주어진 법칙을 넘어 새로운 법칙을 세우다
마르크스와 쇤베르크 230
가치 전복이 진정한 나를 만든다
니체와 바그너 243
중요한 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 있다
프로이트와 루솔로 256
삶은 계량화할 수 없다
베르그송과 영 269
현대사상을 만지다
관계에 따라 의미도 달라진다
소쉬르와 피카소 284
낭비와 에로티시즘이 인간을 구원하리라
바타유와 추미 297
인간 내면의 역설적인 본능은 무엇이 제어하는가
라캉과 허스트 311
몸을 위한 예술, 몸을 위한 활동
메를로퐁티와 로댕 324
휴머니즘은 허구다
알튀세르와 브라만테 336
아는 것은 곧 권력이다
푸코와 르코르뷔지에 349
체계는 폐쇄적이면서 개방적으로 작동한다
루만과 워홀 364
인간을 넘어서 사물과 연대하는 하이브리드의 세계
브뤼노 라투르와 미카 로텐버그 377
찾아보기 390
참고문헌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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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예술이 현상해낸 사상의 모습들
박영욱 지음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예술/대중문화의 이해 > 미학/예술이론
국내도서 > 인문학 > 철학 일반 > 교양 철학
410쪽 | 19,800원 | 판형 152*225mm | 2024년 2월 20일 발행 | ISBN 979-11-6689-215-8 0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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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은 예술을 통해 현실이 된다!”
사상이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며, 그 물질성은 예술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27명의 사상가와 예술가를 언급하며 숨어 있는 그들의 공통점을 찾고, 그 공통점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을 통해서 난해한 사상이나 형이상학적 개념에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이고 논리적으로만 이해했던 사상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된다. 즉 사상은 예술을 통해 구체성을 얻으며 예술은 사상을 통해 사유모델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한다.
1장에서는 눈으로 감상하는 평면적인 회화와 사진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사상들을 정리했다. 2장은 삽입된 QR 코드의 음악을 통해 사상을 들을 수 있다. 3장에서는 입체적인 예술작품이 표현한 현대사상의 진수를 만지듯 느낄 수 있다. 이 세 감각을 통해 현대사상을 체험한다면 나중에 그 예술작품을 보거나 들을 때 현대사상의 개념들을 육감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현대사상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에도 관심을 갖게 하는 흥미로운 여행서가 될 것이다.
“사상은 예술을 통해 현실이 된다!”
읽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느끼고 감상하는 사상의 즐거움
사상은 머릿속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존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은 철학의 제1원리로 불리며 오랫동안 사상의 세계를 대표해왔다. 이 말은 사상이란 철학자와 선구자 들이 생각 끝에 내놓은 관념적인 무언가임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듯하다. 우리는 이처럼 사상을 머릿속의 작용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보이거나 들리는 것 혹은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사상을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으로 취급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사상이란 신기루일 뿐일까?
이 책의 저자는 사상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며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진리는 머리로 생각하기 이전에 눈에 보이는 것이다. 사상도 그렇다. 그리고 사상의 물질성은 예술을 통해 비로소 드러난다. 이 책은 27명의 사상가와 예술가를 언급하며 숨어 있는 그들의 공통점을 찾는다. 그리고 그 공통점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을 통해서 난해한 사상이나 형이상학적 개념에 접근한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는 예술은 머릿속에서 어렴풋하게 떠돌던 현대사상을 현실에 현상해낸다.
마르크스와 쇤베르크, 하버마스와 브뤼헐, 소쉬르와 피카소의 연관성은?
예술을 통해 드러나는 사상의 물질성
책에서 연결하고 있는 사상가와 예술가 사이에는 언뜻 아무런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쇤베르크는 정치에 무관심했으며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한 혁명가도 아니었다. 브뤼헐 또한 자신의 그림이 하버마스 사상과 연관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저자는 그 사이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그는 기존의 법칙을 자연법칙인 양 따르려는 당시 음악계의 분위기에 맞서 무조음악이라는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낸 쇤베르크의 음악에서, 자본주의 법칙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며 착취를 은폐하거나 당연시하는 부르주아지 사상가들에 맞서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낸 마르크스를 듣는다. 그리고 정해진 소실점 없이 흐트러진 현실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결혼식’이라는 공통의 장소를 공유함으로써 결사(結社)를 이루는 브뤼헐의 그림에서, 자유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합리적 공동체를 추구했던 하버마스의 모습을 본다.
이 과정에서 추상적이고 논리적으로만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상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된다. 즉 사상은 예술을 통해 구체성을 얻는다. 반면 예술은 사상을 통해 사유모델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한다.
사상과 예술을 넘나들며 현대의 생각을 탐구하다
저자 박영욱은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문화와 예술에 천착했다. 그는 예술작품의 미덕이 추상적 개념을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구현하는 데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책에서 우리의 오감(五感) 중 예술작품이 일상에서 구현해낸 시각, 청각, 촉각에 집중하여 사상을 풀어낸다.
‘1장 현대사상을 보다’에서는 눈으로 감상하는 평면적인 회화와 사진을 통해 감각할 수 있는 사상들을 정리했다. 비트겐슈타인과 에스허르, 들뢰즈와 렘브란트, 사르트르와 마네 등 낯선 조합이 사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2장 현대사상을 듣다’는 쇤베르크, 바그너, 루솔로, 영의 음악을 통해 마르크스와 니체, 프로이트와 베르그송의 사상을 들을 수 있다. 음악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QR코드를 삽입했다. ‘3장 현대사상을 만지다’에서는 입체적인 예술작품이 표현한 현대사상의 진수를 만지듯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허스트의 설치예술, 추미의 건축물을 통해 라캉과 바타유의 사상 또한 피부로 느끼듯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세 감각을 통해 현대사상을 체험한다면 나중에 그 예술작품을 보거나 들을 때 현대사상의 개념들을 육감(六感)적으로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또한 3장에서는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간 두 명의 사상가와 예술가를 추가해, 오늘날 우리 시대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더 깊고 다양한 관점을 주고자 했다. 바로 니클라스 루만과 앤디 워홀, 브뤼노 라투르와 미카 로텐버그다.
우리가 사상을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사상이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는 실체 없는 것이라고 믿고 무작정 외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상과 이어지는 예술작품과의 공통점을 보고 듣고 만진다면 사상을 보다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책은 현대사상뿐만 아니라 예술작품에도 관심을 갖게 하는 흥미로운 여행서가 될 것이다.
보고 듣고 만지며 이해하고 감상하는 현대사상
저자는 책에서 예술작품을 보여주고 들려주며 그 안에서 찾아낸 사상과의 연결고리를 설명한다. 다음은 회화작품, 음악작품, 조각작품을 통해 설명한 사상가의 핵심 개념을 요약한 것이다.
현대사상을 보다
_사르트르와 마네: 다른 사람의 시선은 나에게 지옥이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누드화다. 그때까지의 누드화의 여인들이 살짝 눈을 내리까는 등의 방법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피한 것과 달리, 작품 속 여인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응시한다. 이를 통해 보는 이는 자신이 그녀의 벗은 몸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올랭피아>를 음탕하게 바라보는 순간, 그 불순한 의도를 그녀에게 들키고 마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늘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지를 생각한다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란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지 못하며 늘 다른 상황과 비교하고 현재에 머무르는 것을 불안해하는 존재다. 이렇게 무언가 부족한 상태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데 자유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자유를 갈망할수록 오히려 자유에 갇히고 만다. <올랭피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타인의 시선에 걸리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사상을 듣다
_베르그송과 영: 삶은 계량화할 수 없다
우리는 음악이라고 하면 일정한 박자를 가진 아름다운 선율을 떠올린다. 그런데 라 몬테 영의 <컴포지션 1960 7번>은 그렇지 않다. 한 음을 세게 내리치는 것이 전부인 음악이다. 영은 어린 시절 자신이 들었던 숲이나 강의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연의 소리는 악보에 옮겨놓을 수 없다. 자연을 악보에 담는다는 말은 그것을 분절하여 일정 공간에 담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지속하는 것이지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영은 한 음을 세게 내리치는 것으로 자연의 소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베르그송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 있다. 자연뿐 아니라 삶 또한 나누거나 공간에 담을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시간을 24개로 나누어 세고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임으로써 생명의 본질과 멀어진다. 베르그송이 생각하는 진정한 삶이란 <컴포지션 1960 7번>이 들려주는 것처럼 공간화되지 않으며 나눠지지 않고 순수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현대사상을 만지다
_루만과 워홀: 체계는 폐쇄적이면서 개방적으로 작동한다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기성품을 예술작품으로 생산함으로써 물리적 사물과 예술작품의 구별을 없애버렸다. 미학자 아서 단토를 <브릴로 박스>의 등장이 이른바 ‘예술의 종언’을 상징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루만의 체계이론에 따르면 <브릴로 상자> 출현은 예술의 종언이 아니라 예술이 진정한 독립적 체계로 분화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예술작품은 단지 물리적 속성에 의해 예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예술의 기준 자체를 만들어내는 2차질서 관찰에 바탕을 두고 있는 체계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지은이 박영욱
숙명여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사회철학에 관심을 갖고 서양사상을 공부하기 위해 고려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동 대학원에서 칸트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관심은 예술과 문화로 이어졌는데, 특히 현대음악과 현대미술, 미디어아트, 건축디자인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하였다. 홍익대 대학원 미술학과와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등에서 매체미술 비평, 공간디자인, 건축비평이론 등을 강의하였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작곡과에서 현대음악과 관련한 강의를 하였으며, 지금은 한예종 음악원에 출강 중이다. 저서로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데리다와 들뢰즈: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매체, 매체예술 그리고 철학》 《미디어아트는 X예술이다》 《필로아키텍처: 현대건축과 공간 그리고 철학적 담론》 등 다수가 있다.
책 속으로
스물일곱 명의 사상가들을 다루면서 그들의 사상을 예술가와 관련짓는 이유는 예술을 단지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단순한 가교로 삼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책에서 언급하는 예술가와 사상가 사이에는 간접적인 듯 보이지만 긴밀한 공통점이 있다. 그 공통점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예술작품을 통해서 추상적이고도 난해한 철학 사상이나 형이상학적 개념에 접근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철학과 달리 예술작품은 매우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다. 물론 예술작품도 추상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지식이나 통찰력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예술작품에 하나의 해석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예술작품의 미덕이란 추상적인 개념을 우리의 일상적 경험의 차원에서 구현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 서문 9쪽
근대인들은 이러한 불안과 공포를 외면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봉합해버린다. 이들은 자신들을 합리적인 주체로 전제하면서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은 불합리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혼자 서게 될 경우, 부조리함과 공포 그리고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대중’이나 ‘여론’ 속에 자신을 묻어버린다. 언론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과 마주하는 것을 막고 실존적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근대의 허구적 장치에 불과하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근대인들은 여론 속으로 도피하여 항상 대중의 가면을 쓰고 ‘복화술’을 행한다. 그러나 이러한 복화술과 봉합은 진정한 해결이 아닌 근원적인 불안으로부터의 도피에 불과하다. 인간은 대중의 가면을 벗고 한 명의 개인으로서, 혹은 단독자로서 절대적 역설 앞에 서야 한다.
/ 삶의 본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_키르케고르와 뭉크 28쪽
그러나 현상학이 의식 외부의 실제 세계를 반드시 전제함에도 불구하고 현상은 반드시 우리의 의식 내부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 1889에 표현된 그 감동스러운 느낌을 주는 파란색 물질은 분명 우리의 의식에 현상하기 이전에 고흐의 손에 의해 칠해진 물감이다. 하지만 그 파란색이 감동스럽다고 느끼는 현상은 언제나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 안에서 발생한다. 현상학은 바로 우리가 감각하거나 인지하는 모든 것의 열쇠가 바로 우리의 의식 안에 있다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후설의 현상학은 우리가 보는 세계, 자연, 물질, 소리, 색 등의 모든 것이 바로 우리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후설이 보기에 이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일부의 학자들은 후설의 현상학을 관념론으로 비판하지만, 현상학이 20세기 초반부터 오늘날까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는 것은 바로 관념론과 실재론 어느 한 곳에도 치우치지 않을뿐더러 그 두 항을 종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식을 현상하다 후설과 피카소 42쪽
베냐민에게 대도시는 일종의 폐허ruine이다. 하지만 그러한 폐허는 단순한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침몰한 해적선의 폐허가 종말과 비극이 아닌 흥미와 상상력을 자극하듯이 과거의 유산을 파편화한 대도시는 그 흔적을 통하여 흥미와 상상력을 자극한다. 상상력이란 단편적인 것들을 나름대로 결합하여 그림을 그리는 데서 나오는 것이지 이미 총체적으로 갖추어진 대상을 인식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지거나 탄생하고 다시 사멸하여 흔적을 남기는 이러한 덧없는 과정과 그 폐허의 흔적이야말로 진리인 것이다.
/ 파편화된 대도시의 모습에서 진리를 찾다_베냐민과 아제 115쪽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 가 주장한 마르크주의의 출발 또한 쇤베르크와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모든 이론적 전거를 마련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역시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을 마치 자연법칙으로 간주하는 일련의 부르주아지 사상을 겨냥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배격하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나 사회의 법칙을 넘어서 초역사적이고 자연적인 법칙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의 법칙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이 필연적으로 착취를 은폐하거나 정당화하는 법칙이라고 믿었으며, 부르주아지 사상가들은 이러한 착취를 교묘하게 은폐하거나 정당화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 주어진 법칙을 넘어 새로운 법칙을 세우다_마르크스와 쇤베르크 232-233쪽
오늘날 심리학의 모태가 되었으며 중요한 학문적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한 정신분석학은 바로 흥미롭게도 우리가 소음이라고 간주하는 것들에 주목함으로써 탄생하였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정신질환을 겪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식적인 진술 내용보다는 오히려 터무니없는 그들의 행동이나 무의미한 잡담 혹은 말실수 등에 주목하였다. 예전에 이러한 터무니없는 말과 행위는 마치 아무런 뜻도 없는 소음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오히려 이렇게 무의미한 소음으로 간주되는 말에 주목했고 그것이 보다 심층적인 인간의 마음을 드러내는 징표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치 음과 소음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소리를 기록하는 축음기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모든 소리에 주목한다. 그리고 우리가 무의미하고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소음 속에서 의식보다 더 깊은 마음의 영역을 발견한다. 그 영역이 바로 무의식이며, 정신분석학은 바로 이러한 무의식의 발견과 함께 발전하였다.
/ 중요한 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 있다_프로이트와 루솔로 258~259쪽
라캉에 따르면 상징계란 실재의 세계가 아니며 실재를 은폐한다. 하지만 아무리 실재를 은폐하고자 해도 그 균열이 완전하게 덮일 수는 없다. 라캉은 실재(혹은 실재계)란 상징계를 교란하며 상징계가 위협받는 순간 출현한다고 하였다. 예컨대 실재란 내가 알고 있는 나 자신이 더 이상 내가 아닌 것을 불현듯 깨달을 때 고개를 들고 나타난다. 혹은 내가 궁극적인 가치라고 믿고 있는 것이 사실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타나기도 한다.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1862의 자베르 형사가 이 세상의 궁극적 가치라고 믿었던 법이 사실상 무가치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 실재는 드러난다. 실재란 상징이 아닌 상징의 교란이자 죽음이며 덧없음이다. 실재란 파괴의 모습을 띠는 것이다.
/ 인간 내면의 역설적인 본능은 무엇이 제어하는가_라캉과 허스트 322쪽
<브릴로 상자>의 출현은 루만이 보기에는 예술의 종언이 아니라 예술이 진정한 독립적 체계로 분화했음을 시사한다. 예술작품이 물리적 속성에 의해서 예술이라는 자격을 갖추는 것이 아님은 결국 예술작품이 소통의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예술이 이미 주어진 예술의 기준에 따라서 예술과 비예술을 구별하는 1차질서 관찰이 아닌 스스로 예술의 기준 자체를 만들어내는 2차질서 관찰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루만에게 독립된 체계로서의 예술은, 근대 사회 이후 2차질서 관찰을 중요시하면서도 그러한 2차질서가 체계의 변화를 위한 원동력으로 작동하지 않는 다른 체계들과 달리 예술가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체계의 모델로서 기능한다.
/ 체계는 폐쇄적이면서 개방적으로 작동한다_루만과 워홀 376쪽
목차
서문
예술작품을 보고 듣고 만지며 현대사상을 느끼다 005
현대사상을 보다
삶의 본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키르케고르와 뭉크 022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식을 현상하다
후설과 피카소 036
통념을 넘어서기 위한 혁명적 시도
레닌과 말레비치 051
참된 현실은 약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 드러난다
루카치와 졸라 064
인위적 논리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하여
비트겐슈타인과 에스허르 078
고흐의 구두는 세계를 담고 있다
하이데거와 고흐 091
파편화된 대도시의 모습에서 진리를 찾다
베냐민과 아제 103
예술은 계몽주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구이다
아도르노와 퇴폐 미술전 118
다른 사람의 시선은 나에게 지옥이다
사르트르와 마네 132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점
매클루언과 와이어스 146
갈등이 아름다움을 만든다
리오타르와 인상주의 160
반복이 만들어낸 주름의 아름다움
들뢰즈와 렘브란트 175
일상의 합리성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하버마스와 브뤼헐 188
보드리야르와 거스키 201
세상에 진실한 목소리는 없다
데리다와 스티글리츠 214
현대사상을 듣다
주어진 법칙을 넘어 새로운 법칙을 세우다
마르크스와 쇤베르크 230
가치 전복이 진정한 나를 만든다
니체와 바그너 243
중요한 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 있다
프로이트와 루솔로 256
삶은 계량화할 수 없다
베르그송과 영 269
현대사상을 만지다
관계에 따라 의미도 달라진다
소쉬르와 피카소 284
낭비와 에로티시즘이 인간을 구원하리라
바타유와 추미 297
인간 내면의 역설적인 본능은 무엇이 제어하는가
라캉과 허스트 311
몸을 위한 예술, 몸을 위한 활동
메를로퐁티와 로댕 324
휴머니즘은 허구다
알튀세르와 브라만테 336
아는 것은 곧 권력이다
푸코와 르코르뷔지에 349
체계는 폐쇄적이면서 개방적으로 작동한다
루만과 워홀 364
인간을 넘어서 사물과 연대하는 하이브리드의 세계
브뤼노 라투르와 미카 로텐버그 377
찾아보기 390
참고문헌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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