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허공에 안착하기

허공에 안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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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사진 에세이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이야기/사진가

 

이예은 지음│192쪽│16,800원│150*220mm│2026년 2월 6일

ISBN 979-11-6689-384-1 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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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언제나 삶 그 자체였고,

나의 노동은 예술이 되었다’

 

연약하고 흐릿한 존재를 오래 바라보는

노동-예술가 이예은의 시선

 

예술은 노동과 얼마나 다른가? 예술과 삶은 얼마나 다른가? 사진가 이예은은 예술과 노동, 삶은 구분되지 않는다고 자신의 몸과 사진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그는 노동 현장을 떠나지 않은 채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에게 냉동창고와 공장은 생계를 위한 일터인 동시에 예술이 피어나는 현장이다. 그의 카메라는 위대한 서사를 찾지 않는다. 가족과 동료의 땀과 침묵, 일상의 반복 속에 녹아든 존엄의 순간을 찾아내고, 이들의 삶이 그 모습 그대로 인정받기를 바라며 그들의 이야기를 잠시 멈춰 세워 세상과 공유될 시간을 마련한다.

이 책에서 그가 고백하는 것은 예술가나 노동자라는 한 가지 정체성에 갇히지 않는 새로운 존재 방식이다. 이예은은 개인이면서 여럿의 목소리를 품고, 삶 자체와 예술 실천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여정을 이 책에 온전히 담아냈다.


“사진을 찍는 일은 결국

내가 견디는 방식에 대한 고백이다”

 

사진에 담은 가족의 역사,

연대, 버티고 매달린 순간들

 

사진가 이예은은 경기도 이천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이천은 3세대 일곱 식구가 뿌리를 내린 곳이며, 대규모 공장 단지와 크고 작은 물류창고는 생계의 근거지였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비롯한 학교 친구들과 가족 구성원들에게 ‘단순 업무 초보 가능’ 노동은 일상적 활동이었으며, 현장에서 세대를 넘어 관계를 맺은 이들과는 삶의 태도와 방식, 기억을 공유했다. 무엇보다 평생 육체노동자로 살아온 부모님에게 가난을 물려받았을지언정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자신의 유산으로 삼았고, 공장의 이모, 언니, 삼촌에게 몸을 쓰는 법, 몸을 보호하는 법, 서로의 작업 방식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즉 이천에서 이루어진 크고 작은 관계와 사건 들은 저자가 수많은 풍경 가운데 무엇을 바라볼 것인지, 어디에 서서 바라볼 것인지를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주로 컨테이너 지붕, 공장 뒤편, 마을의 교량 위에 서고, 이는 사진 작품 속 배경이 된다. 이곳에서 뛰어내리고, 건물 외벽을 껴안고, 교량에 매달려 손을 놓치고 추락하는 위험을 감수하거나, 머리에 불을 붙이고 흙 속에 몸을 묻는 등 ‘실제적인 행위’를 통해 사진을 완성한다. 이 배경들 속에는 오직 이예은 본인만 등장하는데, 이는 다른 사람들을 대상화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몸을 빌려 윗세대의 흐릿한 기억, 사소한 감정, 살아 있다는 감각을 이어가려는 시도이다.

저자가 이토록 삶을 견디는 태도에 집중하는 이유는 사라지려는 목소리를 붙잡아 살아 있음으로 존재하는 방식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냉동창고에서 한 번도 맛보지 못한 크림치즈의 맛을 묻는 엉뚱한 질문으로 시스템을 멈춰 세우거나, 실내 온도를 높이겠다며 차가운 건물 외벽을 온몸으로 끌어안는 불가능한 행위를 통해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곧 “자신이 견디는 방식에 대한 고백”이다. 저자는 비극을 전시하는 대신 스스로 추락의 직전에 매달려 있기를 택하며, 고단한 하루를 살아내는 이름 없는 이들에게 끈질긴 연대의 안부를 건넨다.

 

공중에 뜬 달걀, 반쯤 녹은 얼음,

교량에 매달린 몸…

“자꾸만 사진 이후를 상상하게 된다”

 

민들레로 피아노 연주하기, 티백으로 바다 우리기, 건물을 껴안아 실내 온도 높이기, 새의 도움을 받아 비행하기…. 이예은의 사진 속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또렷하게 상으로 남아 있다. 사진가 이예은은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지만, 그가 바라본 삶은 꽤나 진실하다. 저자가 포착한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선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서울과 비수도권, 혹은 노동과 예술, 생계와 생활. 어디에든 선을 그을 수 있으며, 누구나 선을 그을 수 있는 사회이다. 그러면서도 사회는 이 선을 넘는 자들을 경계한다. 저자는 그 많은 선과 불가능을 부정하지 않는다. 불가능의 주체자로서 그 선 앞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살아 있음 그 자체로 삶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이예은의 생각에 뿌리를 깊게 내렸고, 이는 그의 사진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예은의 사진 세계에서 ‘안착’은 중력을 이기고 허공에 머무는 기적 같은 순간을 의미한다. 프레임 속 달걀은 깨지지 않은 채 공중에 떠 있으며, 이는 추락이 아닌 고요한 기다림과 가능성을 상징한다. 저자에게 사진은 다음 순간이면 사라질 존재들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붙잡아 세우는 일이다. 빛의 한가운데가 아닌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는 이름 없는 존재들을 응시하는 저자의 시선은 한없이 다정하다.

그래서 저자에게 카메라는 ‘노동의 연장’이자 ‘생존의 도구’이다. 저자의 사진은 사회가 그어놓은 선을 지우지 않는다. 대신, 그 선을 딛고 서서 그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을 고정시킨다. 추락할 것만 같았던 달걀이 공중에 안착하듯, 그의 작업은 불가능 속에 잠든 가능성의 순간을 포착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 개인이 어떻게 고된 현실을 예술적 행위로 전환하며, 어떻게 억압의 공간을 저항과 아름다움의 장으로 재창조하는지 생생하게 목도하게 된다. 결국 이예은이 보여주는 것은 예술의 형식이 아닌, 예술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주체자의 용기다. 그의 사진 한 장 한 장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현장은 어디이며, 그곳에서 무엇을 상상할 것인가.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호명되지 않은 이름들에 대한

다음 세대의 부채감, 그리고 의지


냉동창고에서 수천 개의 크림치즈를 검수하고 라벨을 붙이면서도 정작 그 맛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묘한 소외를 겪으며, 이예은은 시스템이 가리는 노동의 진실에 질문을 던진다. 햄 선물 세트를 만드는 공장에서 기계처럼 반복되는 움직임과 “앉아서 작업하면 일이 느려진다”는 강요와 침묵 속에서도, 호명되지 않는 이름들의 실체를 포착한다. 백반집에서 2년 남짓 일하며 손목에 보호대를 감고 묵묵히 하루를 버티던 이모들의 모습은 그녀에게 노동의 감각이 신체에 어떻게 기억으로 각인되는지를 보여 주었다.

사진 작품 〈모-시다: 지용의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저자의 아버지 ‘지용’은 가난으로 인해 어린 나이부터 삶의 최전선에 내몰렸다. 그는 용산역에서 신문지를 덮고 잠을 자며 구두를 닦았고, 가리봉동의 간판 가게에서는 밤낮 없이 일하며 공업용 재봉틀 작업대 밑에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머리 위로 천막을 꿰매는 재봉틀의 날카로운 소음이 들렸지만, 그는 서울 한복판에 몸 누일 자리가 있다는 안도감에 그 소리가 자장가 같았다고 회상한다.

〈모-시다: 희의 이야기〉의 주인공 희는 완도에서 태어나 태풍으로 가세가 기울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양말 공장으로 향해야 했다. 그녀는 12시간씩 이어지는 고된 노동 이외 시간에는 영어 학원으로 향했고, 팝송을 흥얼거리며 더 넓은 세상을 꿈꾸었다. 특히 그녀는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는 ‘공순이’라는 납작한 호칭으로 불리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는 단단한 저항이었다. 저자는 희의 웃음 뒤에 숨겨진 끈질긴 생명력을 포착하며, 타인의 연민 섞인 시선이 아닌 그녀가 스스로 일궈낸 빛나는 삶의 태도를 자신이 그대로 잇고자 한다.

이예은에게 ‘모-시다’는 ‘박 모 씨’처럼 익명성 뒤로 사라진 존재들을 다시 호명하고, 그들의 고통과 기쁨을 정성껏 떠받드는 행위이다. 지용과 희의 사례처럼, 척박한 땅에서도 기어이 뿌리를 내리고 서로를 지탱하는 삶들을 기록한다. 이러한 작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나 일터에서 만난 이모, 언니 들처럼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가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딸인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이 이야기는 사라진다”는 부채감과 미약하나마 사명감을 안고, 이름 없이 살아간 이들의 이야기를 ‘모시다’라는 태도로 정성껏 기록한다. 그에게 사진은 단순히 장면을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우주의 시간 속에서 다음 순간이면 잊힐 존재들을 선명하게 불러내는 일”이다.

 

 

지은이 이예은

사진가. 경기도 이천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노동, 가난, 재난의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겪은 것을 사진으로 찍고, 제도 밖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을 자리를 모색한다.

상명대학교와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대구사진비엔날레, 동강국제사진제, 코리아나미술관, 토탈미술관, 민주화운동기념관 등 전시에 참여했고, 개인전 〈227명의 사람들〉(2022), 〈산을 옮기는 겨자씨〉(2023)를 열었다.

 

 

 

 

 

저자 인터뷰

 

Q. 책 제목이자 작품명인 〈허공에 안착하기〉에서 공중에 떠 있는 달걀을 포착하셨죠. 이 ‘안착’의 순간은 작가님께 무엇을 의미하나요?

엄청나게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을 어떤 지점을 생각하면서 삶을 진행해 왔는데, 막상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허공처럼 굉장히 허무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렇지 못한 어떤 환경을 발견하고, 내가 어떤 곳에 도달하려고 했지만 도달하지 못했을 때의 감정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또 〈허공에 안착하기〉라는 게 어떻게 보면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지만 ‘안착’이라는 단어 하나가 이것을 가능한 게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또 다른 어떤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였습니다.

 

Q. 사진에서 작가님이 컨테이너 지붕에서 뛰어내리고, 건물 외벽을 껴안고, 교량에 매달립니다. 실제로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작업인데, 왜 이런 '실제적인 행위'를 선택하셨나요?

보통은 제가 속한 환경에서 뭔가 돌파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을 때, 혹은 좌절했던 경험들에서부터 발화되거나 시작이 되는데요. 사진의 제목과 이미지는 위험해 보이더라도, 저는 사진 이후의 모습들을 상상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민들레로 피아노를 쳤을 때 민들레가 완전히 부서지는 것이 일반적인 결과지만 또 다른 상상으로는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피아노 음이 소리나지 않을까?’ 또 ‘그게 어쩌면 우리의 새로운 노래랑 닮아있지 않을까?’ 뭐 이런 상상들이 있기 때문에 위험한 작업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Q. 사진에는 오직 작가님만 등장합니다. 부모님이나 동료들의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왜 직접 본인의 몸을 사용하시나요?

공부할 때 배웠던 사진에 직접적인 대상이 등장하는 게 개인적으로 어딘가 불편했던 것 같아요. 정말 개인적인 성향인 건데, 내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타인을 카메라 앞에 세운다는 게 어딘가 삐걱거리는 느낌이 저는 들더라고요. 제 작품에 저의 이야기도 담겨 있지만 언니들, 이모들 이야기를 담을 때마다 저 자신을 세우는 이유는 그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제 몸이 매체가 되고, 같이 일을 했던 공간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언니, 이모, 삼촌 들을 대상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들이 이런 방식으로 등장하는 게 과연 괜찮은 일일까? 라는 고민이 계속 들어요. 아직도 스스로 질문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직접 등장한다든지 아니면 사물을 통해 은유로 표현하는 것 같아요.

 

Q. 경기도 이천에 3세대 일곱 식구가 터를 잡고 뿌리를 내렸어요. 이곳이 작가님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이천은 오래전부터 쌀농사를 많이 지은 고장이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쌀 소비량이 많이 줄었고, 이천이 평지라서 물류 창고가 많이 들어섰어요. 그냥 그런 시대가 됐잖아요. 저에게도 가장 쉽게, 언제든지 일이 가능한 곳이 물류창고였을 뿐이에요. 종종 친구들이나 미술관에서 이런 인터뷰할 때도 질문을 받아요. ‘왜 공장에 갔나요?’ 제가 만약 도시에 살았다면 당연히 동료들처럼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알바를 했을 거예요. 되게 자연스러웠던 거죠.

제가 사는 곳이 이천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작업에 영향을 주고요. 왜냐하면 살면서 당연히 일도 해야 하고 삼삼오오 모이게 된 친지들도 같이 어우러져 살아야 하고, 아픈 할아버지를 모셔야 한다든지 하는 복합적인 것들이 자연스럽게 작업에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이천이라서 특별한 영향을 준다기보다는 그냥 제가 살고 있는 곳이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이천을 떠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이곳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거든요.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사람들하고의 관계도 있고, 제가 다니는 조그마한 교회도 있고요. 이천은 제게 집이에요. 집은 안정감을 주죠.

 

Q. 주변 지인의 생애 전반을 다루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보다 잘 알고 있고, 그 사람의 삶을 꽤 주의 깊게 바라봤다는 느낌도 듭니다. ‘지용’이나 ‘희’ 이야기처럼요. ‘내가 기억하지 않으면 이 이야기는 사라진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부모님께서 수십 번은 더 하셨을 이야기들로부터 시작된 작업이 있어요. 어느 날이 계기가 됐는데, 제가 한창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여러 번 들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부녀 사이가 아닌 노동자 대 노동자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듣고 있는 이야기를 아버지라서 흘려듣는 게 익숙했던 걸까? 하고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아니라 어떤 개인이라면 내가 지금과는 다른 태도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사라지고 있는 개인의 이야기를 붙잡아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모-시다〉 연작은 아버지 이야기부터 작업이 시작됐어요.

책에서는 ‘지용’의 이야기와 ‘희’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미 여러 어른을 만났어요. 특별한 어른, 어렵게 사신 분들을 일부러 찾아간 건 아니에요. 제 주변에 항상 있는 삼촌, 이모 들이 저한테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거든요. 양말 공장에서 일을 하신 ‘희’나, 연탄을 굉장히 오랫동안 나르신 분, 롯데월드 돔 천장 유리를 닦는 일을 하셨다는 분도 계시고. 윗세대의 이야기들을 그동안 많이 듣고 자랐어요.

그분들을 찾아가서 ‘옛날이야기들을 잊히지 않게 기록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이야, 이런 건 내가 전문이지’ 하시면서 자신의 무대를 펼치듯이 얘기해 주셨어요. 제게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들한테 작업한 사진을 보여드리면 되게 재미있어하시고요. ‘그림이 됐다’고 말씀하세요. 우리는 설득의 관계라기보다는 이야기를 더 청해 듣고 싶은 옆집 삼촌, 이웃 관계예요.

 

Q. 일반적으로 노동과 예술은 분리되어 있다고들 생각하는데, 작가님에게 이 둘은 왜 구분되지 않나요?

개인적인 성향인데, 저는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로 작업하고 싶어요. 제가 모르는 것은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거는 내가 잘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것들, 그리고 제가 서 있는 곳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제가 없는 곳의, 아예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공장에서 일하면서 생긴 의문 혹은 의심, 그리고 어떤 감정들을 작업에 녹였던 것 같아요. 억지로 분리하는 것도 아니었고, 꼭 내 작업과 삶이 일치해야 해, 이런 것도 아니었어요. 자연스럽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 잘 아는 이야기들, 내가 있는 곳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이것은 경험과도 관련이 있는데, 경험이라는 게 억지스러운 일이 아니잖아요. 사진을 공부할 때 사람들이 어떤 현장에 흥미를 가지고 거기에 막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이 많았어요. 근데 그게 ‘나는 저 사람들이랑 달라’라는 태도로 카메라를 가까이 가져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꼭 듣겠어’ 하고 쫓아다니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공장에 가서 인터뷰하지 않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경험이라는 것은 지나간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미래를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Q. 앞으로 만나게 될 독자와 관객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 사진과 작업 세계는 저의 개인적인 얘기와 제 주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각자에게 다르게 닿는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가족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사랑 이야기나, 각자 환경에서의 불가능한 어떤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요. 책을 쓰기 전에도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제 작업을 봐주시는 어떤 관객분들과 사진 사이를 나의 이야기로 너무 채워 넣는 것 아닐까? 근데 꼭 그렇게 봐주기를 바랬던 건 아니에요. 다양하게 각자 자신의 이야기로, 다양한 방식으로 공감되기를 바랍니다. 저의 사소한 이야기들이 작은 안부로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책 속으로

 

나는 다른 물류창고보다 냉동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쪽을 더 좋아한다. 추위를 잘 견디는 체질은 아니었다. 손끝은 금세 굳고 옷을 몇 겹씩 껴입어도 허리 끝부터 스며드는 냉기가 등을 타고 올라오곤 했다. 그래도 그곳이 좋았다. 좋아한다기보다 견딜 만했다. 내복, 두꺼운 옷, 그 위에 다시 작업복. 몸을 겹겹이 감싸는 일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손에는 장갑을 세 겹씩 겹쳐 낀다. 그렇게나 무겁고 무감각한 차림인데도 이상하게 그 둔함이 안도감을 준다. 몸이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덜 조급해진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빠른 손놀림을 기대하지 않는다. 19-20쪽, 〈크림치즈의 맛〉

 

프레임 속의 달걀은 아직 깨지지 않았고 공중에 떠 있다. 이후에 달걀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 아래는 단단한 바닥이 있었을까 아니면 부드러운 이불 같은 흙이 있었을까. 혹은 애초에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무중력의 공간일까. 혹은 삶은 달걀이어서 깨져서도 데구루루 굴렀을까. 달걀이 아직 깨지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나는 무수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된다. 멈춘 그 순간이 파괴가 아니라 수용이라서 그렇게 상상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51쪽, 〈허공에 안착하기〉

 

찍는 일은 결국 내가 견디는 방식에 대한 고백이자 나와 닮은 누군가에게 내미는 조심스러운 안부 같기도 하다. 나는 사진의 고요함이 좋았다. 발설하는 말 대신 조용히 응시하는 것이 좋았다. 오래 바라보다 보면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지고 무뎌졌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 있다. 120쪽, 〈직전의 숨〉

 

눈이 고요히 내려앉아 세상이 온통 하얗게 잠든 어느 날 나는 커다란 건물의 차가운 외벽을 꼭 껴안았다. 마치 실내 온도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내 체온을 그 무심한 벽에게 기꺼이 나눠 주겠다는 어쩌면 어리석고도 절박한 마음으로 말이다. 132쪽, 〈실내 온도 높이기〉

 

예술계에서 육체노동자는 종종 안쓰러운 존재로 간주하곤 한다. 시간이 흐르고 작업을 이어가자 사람들은 점점 이런 식으로 나를 소개했다. “요즘 이렇게 작업하는 젊은이는 정말 드물어요.” 처음에는 그 말들이 한없이 다정하게 들렸고 고마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다정함이 어딘가 기이하게 느껴진다. 그들이 생각하는 예술가상에 내가 적합한 모습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 뒤섞인 감정들이 어딘가에서 삐걱거린다. 나는 이야기를 팔아 나 자신을 세워 온 건 아닐까. 그들의 도덕성이 정교해질수록 나의 도덕성은 흔들리고 또 흔들렸다. 148, 〈더 가까이〉

 

 

목차

 

주름의 문장 9

크림치즈의 맛 19

마늘 옮기기 28

허공에 안착하기 40

모-시다 56

저 여자 76

그 눈물을 감춰 85

물에서 원 그리기 94

직전의 숨 112

생계형 예술가 121

실내 온도 높이기 130

더 가까이 139

비행 153

희 161

풀의 자리 172

 

감사의 글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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