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과학아인슈타인 : 어떻게 상대성이론을 알아냈을까

과학자는 어떻게 시리즈

아인슈타인 : 어떻게 상대성이론을 알아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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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번스타인 지음 | 이상헌 옮김

국내도서 > 과학 > 교양과학/청소년과학/과학전기

216쪽 | 16,800원 | 145*210mm | 2025년 8월 20일 발행| ISBN 979-11-6689-328-5 03400


위대한 거인들의 생각 속으로!

과학은 결과가 아닌 생각의 여정이다


위대한 과학자들은 어떻게 평범한 현상에서 비범한 통찰을 얻었을까? 과학에서 중요한 건 답보다 질문하고 생각하는 법이다. 바다출판사에서 펴낸 ‘과학자는 어떻게?’ 시리즈는 결과물이 아닌 과정에, 지식이 아닌 앎의 방식에, 발견이 아닌 발견에 이르는 사고의 지도에 초점을 맞춘다.

‘과학자는 어떻게?’ 시리즈는 청소년을 위한 과학전기로, 각 과학 분야의 전문작가들이 참여하여, 과학사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위대한 과학자들의 삶과 성격뿐 아니라 그들이 위대한 발견을 하기까지의 사고 과정을 자세히 탐구한다. 과학자들의 1차 기록과 관련 사진 자료를 풍부하게 곁들인 이 전기들은 알기 쉬운 과학기술 정보와 흥미로운 과학자의 개인적 이야기를 결합하여, 현대 과학을 만든 위대한 과학자들에 대한 생생한 초상을 그려낸다.


아인슈타인의 즐거운 상상은

어떻게 현대 물리학에 혁명을 가져왔을까?

 

스위스 베른의 특허국 사무소에서 아인슈타인은 생각에 잠겼다.

“지붕에 페인트를 칠하는 사람이 있고, 그의 발밑에는 저울이 달려 있다.

그가 지붕에서 떨어지면, 저울의 바늘은 어디를 가리킬까?

자유낙하하는 사람은 아마도 자신의 무게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1919년 아서 에딩턴이 이끄는 영국 탐사대가 일식 동안 태양 주위의 별들을 관측한다. 그리고 별들이 실제 위치보다 살짝 다른 위치에서 보인다는 것을 확인한다. 별빛이 태양의 중력에 의해서 휘어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사실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중력과 관성력은 동일하며(등가의 원리), 중력은 시공간의 곡률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현상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중력이론, 일반상대성이론이 뉴턴의 고전물리학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표준이 된 것이다. 공상하기 좋아하던 아이는 어떻게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과학 사상가가 되었을까?

이 책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비린 상대성이론에서 미완의 통일장이론까지 아인슈타인의 즐거운 상상에서 나온 혁명적 이론들을 깊이 있게 설명하고, 중력이론에서 양자역학까지 아인슈타인에게 영향을 준 여러 과학자들의 이론을 폭넓게 소개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한 8번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당시 ‘상대성이론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은 전 세계에 7명밖에 없다’라는 말이 떠돌았다)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아인슈타인의 친구 필리프 프랑크에게 사사했으며, 아인슈타인이 머물렀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일했던 제레미 번스타인은 저명한 이론물리학자이자 뛰어난 전기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쓴 이 책은 평범한 청소년 과학전기가 아니다. 어린 시절 세계에 대한 강렬한 ‘경이’를 느끼고 그 원리를 알아내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만든 두 가지 사건(나침반을 통한 자기의 성질과 기하학 입문)부터, 빛과 시간과 속도에 관한 다양한 사고실험(특수상대성이론), 브라운운동과 광전효과 이론,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이용해 중력장을 설명한 새로운 중력이론(일반상대성이론), 프리드만에 의해 수정된 우주론까지 아인슈타인의 여러 이론적 성취를 깊이 있게 설명할 뿐 아니라, 그 배경지식과 아인슈타인의 독창적 사고 과정의 단서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한 이 책은 아인슈타인의 개인적 기록과 편지, 사진 자료들을 풍성히 곁들여 개인과 공인으로서의 두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학창 시절의 방황과 불행했던 결혼 생활, 유대인 박해를 피해 떠난 미국에서의 쓸쓸한 망명 생활, 전쟁에 반대하고 핵무기의 위험을 경고하면서도, 히틀러에 대항하기 위해 무력 사용의 필요성을 마지못해 인정해야 했던 딜레마까지, 이제까지 알려진 천재 물리학자의 단편적 이미지 너머의 한 사람과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종합적인 초상을 그려낸다.

 

 

▶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 제레미 번스타인(Jeremy Bernstein)

하버드대학교에서 이론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프린스턴대학교 고등연구소에서 연구했다. 1967년부터 스티븐스 공과대학교 물리학 교수가 되어,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뉴요커》지의 전속 필자로 오랫동안 활동한 그는 우주론에서부터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현대 물리학의 주요 주제를 일반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할 뿐 아니라 개인적 친분이 있는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한스 베테, 존 스튜어트 벨 같은 물리학자들에 대한 전기작가로 유명하다.

주요 저서로 《오펜하이머: 수수께끼 같은 인물의 초상》 《플루토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원소의 역사》 《히틀러의 우라늄 클럽: 팜홀에서의 비밀 기록》 《핵무기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 《입자들의 팔레트》 《퀀텀 프로파일: 물리학자들과의 대화》 《양자 도약: 양자역학은 어떻게 과학을 장악했나》 등이 있다.

 

옮긴이 | 이상헌

서강대학교에서 칸트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같은 학교 전인교육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환경 철학과 포스트휴머니즘 등을 연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융합 시대의 기술 윤리》 《철학자의 눈으로 본 첨단과학과 불교》 《철학, 과학 기술에 다시 말을 걸다》, 옮긴 책으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임마누엘 칸트》 《우리는 20세기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우리뿐인가》 등이 있다.

 

 

▶ 본문 속으로

아인슈타인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그에게 어떤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선생님들은 아인슈타인의 장래가 그다지 유망하지 않으며, 공상하기 좋아하는 아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의 아인슈타인은 두 사건[나침반을 통해 알게 된 자기의 성질과 기하학과의 만남]을 통해 과학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 두 가지는 이후에 그가 연구한 분야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 기억들을 그는 ‘경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아인슈타인도 어린 시절부터 자연 현상에서 느끼는 경이로움의 원인을 알아내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아인슈타인에게 ‘경이’란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이 느낌은 두려움이나 공포를 자아내기도 했는데, 오로지 그것의 원인을 이해했을 때만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았다. - 18~19쪽

 

뉴턴과 아인슈타인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둘 다 비슷한 나이에 중요한 발견을 하였다. 물리학에서 첫 번째 기적을 만들었을 때의 뉴턴은 스물네 살이었다.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두 번째 기적을 만들었을 때, 그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또 그 두 사람은 몇 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한 가지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뉴턴은 달의 운동에 관해 만족할 만한 계산을 해낼 때까지 몇 년 동안이나 매달렸다. 아인슈타인도 뉴턴의 이론을 대신할 새로운 이론을 만드는 데 1905년부터 1915년까지 10년을 바쳤다. 두 사람은 모두 이름 없는 젊은 과학자 시절에 시작한 연구에 열정을 바쳐 한 시대의 과학을 지배하였다. - 45쪽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속도의 관계를 파헤치던 중에 ‘E=mc2’이라는 유명한 방정식을 만들어 냈다. 여기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방정식이 물체의 입자에 거대한 양의 에너지가 함유되어 있다고 예측한다는 것이다. 이 에너지가 얼마나 막대한가를 상상하기 위해서, 1그램의 물질에서 그 전체 질량을 에너지로 방출시킬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1그램은 그렇게 많은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빛의 속도는 매우 큰 값이고 아인슈타인의 공식에서처럼 빛의 속도를 두 번 곱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 값은 아주 커진다. 이렇게 계산한 물질 1그램의 에너지로 1억 개의 전구를 한 시간 동안 밝혀 놓을 수 있다고 한다. - 80쪽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이 너무 조화롭고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주목할 만한 태도인데, 아인슈타인은 평생 동안 그런 자신감을 유지했다. 1919년 아인슈타인의 조수 일스 로젠탈 슈나이더가 자신의 실험 결과가 아인슈타인의 이론적인 예측이 맞다는 걸 증명했다고 기뻐했다. 그러자 그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나는 그 이론이 옳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네”라고 말했다. 슈나이더는 아인슈타인에게 만약 예측했던 것과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면 어떻게 하셨을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신을 원망했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내 이론은 옳네”라고 대답했다. 물리학 연구를 활발히 하던 기간 내내 진리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직관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에겐 어떤 것이 믿을 수 있는 실험이고, 어떤 것이 그렇지 못한가를 감지하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었다. - 84~85쪽

 

1919년에 영국 탐사대가 관측한 결과는 그해 11월 6일에 런던에서 열린 왕립학회와 왕립천문학회의 즉석 합동 회의에 보고되었다. 그 새로운 보고는 왕립학회의 중요 회원이었던 뉴턴의 이론을 무너뜨렸기 때문에 회의장의 분위기는 흥분되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긴장된 회의장 분위기는 마치 그리스 비극과 같았다. 우리는 운명의 신의 뜻을 노래하는 코러스 배우들이었다. 무대 자체도 전통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극적이었다. 무대 배경에는 뉴턴의 초상이 있었다. 그 초상은 지금까지 가장 위대했던 과학 이론이 수정될 운명에 처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아인슈타인 개인에 대한 관심도 아주 컸다. 아인슈타인 사상의 위대한 모험은 드디어 안전하게 해안에 이른 것이었다.” - 123~124쪽

 

아인슈타인은 이미 1920년에 독일에서 자라나고 있는 반유대주의의 표적이 되었다. 그는 표적이 될 만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독일이 전쟁을 치를 때 반전 운동을 지지했고, 독일 시민권을 스스로 포기한 적도 있었다. 게다가 그는 상식을 거부하는 이론을 만들어 이전 세대 물리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듬해가 되자 독일에서 반유대주의 분위기는 더욱 확실하게 드러났다. 어느새 반아인슈타인 동맹이 결성되었고, 그 동맹은 8월 말에 베를린에서 가장 큰 콘서트 홀을 빌려 궐기 대회를 열었다. … 1933년 봄에 카푸트의 아인슈타인 별장은 무장 폭도들에게 습격을 받았다. 그때 아인슈타인과 엘사는 벨기에로 향하는 공해상에 있었고, 다행히도 그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 앞에서 자신의 상대성이론이 실린 책이 공개적으로 불태워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벨기에도 독일 국경과 가까웠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납치되거나 암살될 위험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벨기에를 떠나 영국을 거쳐 미국에 도착했다. -166, 172~173쪽

 

아인슈타인은 이제 제1차 세계대전 때 가졌던 평화주의를 포기했다. 그리고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무력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 아인슈타인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던 이유는 인류가 원자 에너지를 올바르게 다루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은 원자 에너지가 끔찍하고 파괴적인 무기를 생산하는 데 사용됐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꼈다. 그는 즉시 핵무기의 확산을 통제하고 또 다른 핵무기의 생산을 막기 위해 결성된 여러 단체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게 도와주었다. - 182, 187쪽

 

 

▶ 목차

1.어린 시절, 과학에 대한 기억들

2.기적의 해, 1905년

3.양자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

4.뉴턴을 무너뜨린 새로운 중력 이론

5.아인슈타인의 우주론

6.양자이론의 혁명

7.낯선 안식처, 미국에서의 말년

8.아인슈타인의 유산

저자의 말: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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