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
바흐에서 전자음악까지
박영욱 지음 | 330쪽 | 20,000원
2023년 8월 11일 | 133x208mm | ISBN 979-11-6689-175-5(93670)
*이 책은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의 개정증보판입니다.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바흐의 ‘무중력’ 음악에 담긴 종교·철학적 명제
화음을 넘어 응집력의 세계를 추구한 쇤베르크의 사상
전혀 다른 음악적 재료에 기반한 전자음악의 철학
난해하고 때로는 소음에 가깝게 들리는 현대음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는 조성체계에 부합하는 듣기 좋은 소리만을 추구하던 전통음악에 맞서 음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현대음악의 의미와 성과를 평가하고 그 배후에 있는 현대음악가들의 생각을 철학자의 눈으로 읽어낸다. 전통적 조성에서 벗어나 일탈을 시도했던 바흐 음악에 대한 현대적 해석에서부터 쇤베르크 화음론의 혁명성, 새로운 음악적 사유를 창조한 베베른과 불레즈, 미국의 미니멀리즘 등을 흥미롭게 분석한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소음의 미학에 대한 아방가르드 서사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를 극복한 크세나키스의 추계학적 전자음악의 의미를 다루는 새로운 장과 서문이 추가되었다.
왜 현대음악가들은 ‘새로운 음’을 탐구했는가
현대음악가들은 20세기 이전 음악에서는 전혀 일어나지 않은, ‘음’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시작했다. 그들은 단지 좋은 소리나 화음에 천착한 것이 아니라 음의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 일에 집중했다. 현실의 참모습으로서 진리는 무질서하고 파편적인 산문의 형태를 띤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화음과 선율이라는 인위적이고도 아름다운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만이 음악의 임무는 아니다. 가상의 소리가 아닌 파편이라는 소리 자체를 하나의 산문으로 완성하는 것 역시 음악이 해야 할 일이다. 음과 소음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소음이든 음이든 그것은 소리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통합된다. 베토벤 음악에서의 음이나 강력한 전자음, 혹은 일상의 소리 모두 음악적인 현상으로서 소리이다. 현대음악가들은 이처럼 음의 의미를 넓히고, 그 가치를 찾는 일에 매진했다.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는 현대음악가들이 탐구한 새로운 ‘음’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담고 있다. “음악에서 음이란 무엇이며, 이들을 어떻게 하나의 곡으로 만들어내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현대음악가들의 음악적 탐색을 철학적 탐색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특히 저자는 바흐의 음악을 “조성음악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난”을 벗어난 “무중력의 음악”이자 “일탈의 운동”으로 정의하며, 그를 현대음악의 시조로 격상시킨다. 현대음악의 진정한 시작으로 평가받는 쇤베르크는 “비조성적 화음”과 “음의 응집력”을 강조함으로써 “음악을 자율적인 소통 체계를 지닌 하나의 고유한 장”으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전자음악의 경우 새로운 음악적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음악적 자장을 넓혔으며 이는 철학의 가치와도 궤를 같이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저자 박영욱은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을 통해 현대음악의 시작부터 현대적 흐름까지 철학적 안목과 해석으로 노정하고 있다.
현대음악의 시조, 바흐
바흐에게 음악은 종교적 믿음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바흐의 음악은 종교적 믿음이나 성경의 이야기 혹은 예수의 말씀을 수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흐가 음악의 본질을 종교적 실재와 관련짓는다는 것이다. 바흐는 음악을 종교적 찬양의 수단으로 보고 그것에 헌신했다기보다 음악 자체를 신과 동일시했다. 바흐는 곡의 구성이 더 완전할수록 그 속에 더 많은 신이 내재한다고 믿었다. 이는 종교적 믿음이나 말씀을 수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음악이 지닌 종교적 의무의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완전한 음악을 만드는 것 자체가 음악가의 종교적 의무라는 의미이다. 음악이 곧 신앙이라는 바흐의 신념은 바로 완전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바흐는 음악의 ‘무중력’을 표현한 첫 번째 음악가다. 무중력 상태란 절대적 균형의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방향으로도 향할 수 있는 무한한 방향을 지닌 상태를 뜻한다. 이렇게 무한한 방향을 지닌 절대적인 균형의 상태야말로 완전한 신의 세계임에 틀림없다고 바흐는 믿었다. 물론 바흐의 음악이 실제로 이러한 완벽한 세계에 도달하는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바흐의 음악은 무한한 방향을 지닌 무중력의 상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현대음악의 시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현대음악이 무한한 음의 가능성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바흐를 현대음악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바흐는 음악적 주제의 내재적 가능성과 그 복합성을 탐구하는 창조적 탐구가다. 바흐는 주어진 화음의 원리에 따라 주제를 선형적으로 전개하지 않으며, 주제에 내재한 다양한 전개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바흐의 음악은 형식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그가 주제를 다양하게 전개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차적인 결과물이다. 사람들이 바흐의 음악을 지나치게 형식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사실에서 비롯한다.
바흐의 음악은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끊임없이 반복을 통해서 아무것도 전개되지 않는 마치 정지된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러한 정지는 물리적인 시간의 정지가 아니다. 서사라는 인위적인 힘(중력)이 음악에서 강력하게 작용하게 되면 순간을 이루는 각각의 소리들은 독립성을 상실하게 된다. 정지란 바로 하나의 순간, 즉 소리가 지닌 무한한 방향의 가능성을 펼치는 가능성의 세계로 향하는 문이다.
쇤베르크, 새로운 음악을 시작하다
현대음악의 직접적인 시작은 쇤베르크다. 쇤베르크는 현대음악이 아름답지 않고 귀에 거슬리는 난해한 음악이라는 통념을 만든 시조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음악을 자율적인 소통 체계를 지닌 하나의 고유한 ‘장’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쇤베르크 음악의 진보성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쇤베르크는 전통적인 조성음악의 체계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 그런데 실제로 그가 거부한 것은 전통적인 음악적 소통의 체계 자체가 아닌 그 소통의 체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쇤베르크의 음악은 전통적인 음악의 소통 체계 자체를 거부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쇤베르크야말로 음악을 자율적인 체계의 소통영역으로 이해하고 하나의 독립된 ‘장’으로 간주한 최초의 음악가였다.
쇤베르크는 ‘현대음악’이라는 새로운 음악을 시작했음에도, 스스로는 자신의 음악이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쇤베르크가 계승한 전통이란, 바흐처럼 음을 수평적으로(대위법) 배열하면서도 수직적으로(화음) 구성하는 것, 그리고 베토벤이나 브람스 등으로부터 주제를 풍부하게 변형시키는 법, 또한 바그너처럼 곡 전체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매우 표현력 있게 발전시키는 보편적인 기법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쇤베르크가 이러한 전통적 기법들을 충실하게 따를 때 오히려 일반적으로 알려진 전통적 기법들로부터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쇤베르크의 진보성은 곧 한계에 달한다. 그는 전통적인 조성음악에서의 체계를 절대적인 체계가 아닌 인위적인 체계로 보았지만, 아쉽게도 조성음악을 넘어서 절대적인 음악의 내적 체계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는 쇤베르크의 음악이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이론과 완전하게 갈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루만에 따르면 소통의 구조로서 체계는 어떠한 경우에도 완전할 수 없다. 소통은 불투명성을 전제한다. 그는 소통을 블랙박스 과정으로 이해하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소통이 불완전할뿐더러 완전한 의사전달이라는 소통의 목적이 불가능함을 암시한다.
전혀 새로운 음악적 재료를 추구한 전자음악
전자음악은 전통적인 악기와 달리 전기적인 신호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전자악기를 이용한 음악이다. 전자음악이 현대음악의 한 방향성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전통적인 악기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음악적 재료”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악기는 물리적인 공기의 진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음이라는 재료가 바탕이다. 반면 전자악기는 인위적으로 합성된 전기신호에 의해 만들어진 음이라는 재료에 바탕을 둔다. 이러한 재료의 차이는 단순한 내용물의 차이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음악적 구성의 차이를 낳는다. 재료란 단순한 질료 혹은 내용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질료 혹은 내용물은 형식과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음악은 음이라는 질료를 특정한 리듬, 선율, 화음의 형식의 틀로 가공하여 만들어내는 작업으로 생각한다. 전자음악은 기존의 악기들과 달리 무수히 다양한 음들을 창조하고 기록함으로써 전통적인 음악적 재료와는 다른 음악적 재료를 제공한다. 음을 거의 무제약적으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이러한 자유는 곧 원초적 소리를 다룰 수 있는 자유로 여겨졌다.
전자음악을 대표하는 실험적인 음악가들이 관심을 가진 구체적인 음들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구체음악이었다. 구체적인 음이란 전통적인 악기에서 사용하는 인위적인 음들, 즉 장단음계의 음에 속하는 음높이를 지닌 음만을 사용하는 음들과 전혀 다른 음을 말한다. 가령 기계적인 소음, 일상적인 소리, 사람의 비명소리 등이 구체적인 음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음은 전통적인 음악에서는 소음으로 간주되어 배척되었다. 규칙성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적인 규칙을 지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음악을 이러한 구체적인 음들을 제한적으로나마 구현할 수 있었고, 그 실험적 시도들이 셰퍼, 바레즈, 슈톡하우젠, 그세나키스 등에 의해서 구체화되었다.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
현대 음악가들이 단지 듣기 좋은 소리나 화음에 천착하기보다는 음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했다. 음악의 구성에서 미리 주어진 표상, 즉 어떤 규범적 주제나 형상 혹은 화성전개의 법칙을 거부하는 것이다. 음악에서 규범적인 질서, 즉 합목적인 체계성을 배제함으로써 소음처럼 여겨지는 것은 현대음악의 단점이 아니라 미덕이다. 소음은 한 사회의 지배적인 질서에 통합되지 못한 주변의 소리이다. 사회학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제도권에 흡수되지 못한 무의미한 소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제도가 지닌 한계를 대변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소음을 비롯해 현대음악가들이 천착한 음의 무한한 가능성은 철학적 인식의 큰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소음의 미학과 크세나키스의 컴퓨터 음악
우리의 귀에 거슬리는 소음으로만 들리는 현대 전자음악에 대한 일반적 옹호는 대체로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전자음악의 소음을 전통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들의 귀에도 듣기 좋은 소리로 만듦으로써 소음의 음악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음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 미학적 기준 자체를 바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글리치 음악으로 대표되는 전자는 기존 조율체계에서 벗어난 낯선 소음들을 미시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듣기 좋은 소리(유포니)를 창조해낸다. 후자는 마치 미술에서 토사물이나 배설물 같은 혐오스러운 소재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애브젝트 예술(abject art)에서처럼, 귀를 찢을 듯한 소음을 극단적으로 과잉시킴으로써 전통적 미학을 부정하고 그 경계를 확장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제까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 아방가르드 서사만으로 현대 전자음악의 가능성을 모두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그 반례로 크세나키스의 전자음악의 성취를 살펴본다. 컴퓨터와 통계학 이론을 이용해 무수한 소리의 알갱이들을 분해하고 합성해서 만들어내는 그의 추계학적(stochastic) 음악에서, 하나의 사건으로서의 음은 그저 무작위적 소음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많은 소리의 연쇄로서 한 순간을 이루는 소리들이 멜로디나 화음의 거대 서사를 통해서 지워지지 않고 내적 강도를 지닌 하나의 사건으로 경험된다.” 저자는 이렇듯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을 통합하는 사건의 음악으로서 크세나키스가 만들어내는 소음을 “전통적인 음악적 형식이나 관행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담은 소리이자,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매체로서의 전자악기의 가능성을 담은 소리”라고 높이 평가한다.
책 속으로
다수의 현대음악가들은 20세기 이전의 작곡가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없었던 원초적인 질문을 음악에 담아야 했다. “과연 음악에서 음이란 무엇이며 이들을 어떻게 하나의 곡으로 만들어내야 하는가?” 말하자면 18세기 고전주의자들처럼 준수해야 할 음악적 질서나 19세기말 표현주의자들처럼 반발해야 할 음악적 질서가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질서가 존재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이들의 음악적 사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8∼9쪽_서문_음악에 도래한 추상화의 시대
바흐의 음악에서 수학적 대칭구조는 그 자체가 음악의 목적이 아닌 종교적 무한성을 실현하는 가운데 나타난 특징이었다. 마찬가지로 리게티의 음악의 치밀한 수학적 구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조성과 화음의 중력을 거부한 무중력의 무한한 방향성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70쪽_1장_왜 바흐로부터 출발하는가?
쇤베르크는 수직적, 수평적 결합이라는 전통적인 조성의 규칙을 보편화하여 더 포괄적인 의미의 질서를 찾고자 한다. 이 새로운 화음의 질서는 수평과 수직의 통합, 그리고 상동한 패턴의 반복을 통해서 자체적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에서 대상의 질서를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닌 의식의 지향적 체계에 의해서 생산된 것으로 보는 현상학적 태도를 반영한다. 이러한 점에서 쇤베르크의 음악적 시도는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상학적 태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104쪽_2장_‘새로운 음악’을 시작하다
물론 전자음이 단순히 전통 악기가 아닌 새로운 전자악기에 의해서 다르게 만들어졌다는 이유에서만 다른 재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자음은 전통적인 조성, 화음, 박절 등의 기술이 아닌 그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술에 의해서 다루어져야 할 음악적 재료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재료와는 다르다. 이것이 바로 전자음악이 전자음이라는 새로운 재료를 합성하는 매체에 바탕으로 두고 있는 근본적인 의미인 것이다. 136쪽_3장_전자음악의 탄생
체계에 속박되지 않은 음의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음을 하나의 개별적인 사건, 즉 ‘강도’로 다룰 수밖에 없다. 이 미시적인 강도의 세계는 ‘암호’와도 같은 것이다. 총음렬주의적 시도를 포함하여 불레즈에게 나타나는 수학적 경향은 음의 무한한 차원을 유한한 수식으로 제한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지 않다. 수학적 탐구는 하나의 신비한 암호로서 음이 지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방법론적 시도에 불과하다. 그것은 음을 처음부터 하나의 의미론적 맥락으로 제한함으로써 음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제약하는 전통적인 음악적 관행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새로운 음악적 사유의 특성인 것이다. 189쪽_4장_‘더’ 새로운 음악을 찾아서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음악이 공통적으로 반복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러한 반복형식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들의 반복형식이 지닌 음악사적 의미는 음악에서 반복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데 있다. 전통적인 음악에서 반복형식은 미리 주어진 주제나 동기가 변형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확인하는 기제로 작동하였다. 이에 반해서 미니멀리즘 음악은 반복을 동일성에 매몰되지 않고 매순간 새로운 고유한 음악적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기제로 바꾸어 놓았다. 232쪽_5장_음악적 반복의 새로운 시도
◎ 지은이 _ 박영욱
숙명여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사회철학에 관심을 갖고 서양사상을 공부하기 위해 고려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동 대학원에서 칸트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관심은 예술과 문화로 이어졌는데, 특히 현대음악과 현대미술, 미디어아트, 건축디자인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하였다. 홍익대 대학원 미술학과와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등에서 매체미술 비평, 공간디자인, 건축비평이론 등을 강의하였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작곡과에서 현대음악과 관련한 강의를 하였으며, 지금은 한예종 음악원에 출강 중이다. 저서로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데리다와 들뢰즈: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매체, 매체예술 그리고 철학》 《미디어아트는 X예술이다》 《필로아키텍처: 현대건축과 공간 그리고 철학적 담론》 등 다수가 있다.
◎ 차례
서문_음악에 도래한 추상화의 시대
1장. 왜 바흐로부터 출발하는가? _ 바흐의 무중력 그리고 리게티의 구름
- 바흐, 음악의 ‘무중력’을 표현하다
- 리게티, (뜬)구름을 잡는 음악
2장. ‘새로운 음악’을 시작하다 _ 쇤베르크의 음악과 현상학적 환원
- 화음의 세계를 넘어 ‘응집력’의 세계로
- 쇤베르크의 현상학적 환원_조성음악을 넘어선 보편적 질서의 탐구
- 새로운 음악의 응집력_화음이 아닌 ‘유사성’과 ‘상동성’
- 쇤베르크는 자신의 원칙에 철저했는가?
3장. 전자음악의 탄생 _ 쇤베르크의 한계를 넘어서
- 전자음악의 혁명성_새로운 재료는 새로운 형식을 만든다
- 쇤베르크는 새로운 재료에 맞는 기술을 사용했는까?
- 전자음악의 탄생_쇤베르크를 넘어서
4장. ‘더’ 새로운 음악을 찾아서 _ 베베른과 불레즈
- 여전히 새롭지 않은 오래된 관습을 타파하다
- 아도르노의 편협함_쇤베르크 이후 새로운 음악에 대해 비판적인 이유
- 안톤 베베른_수직축과 수평축을 넘어선 ‘대각선적인 것’의 혁명
- 새로운 음악의 혁명_거시적 구조로부터 미시적인 ‘강도’의 차원으로
- 사건으로서 음의 미시적 세계_다시 바흐, 리게티와 만나다
5장. 음악적 반복의 새로운 시도 _ 미국 미니멀리즘 음악
- 반복형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왜 필요한가?
- 동일성을 생산하는 전통음악의 반복구조 vs. 차이를 생산하는 현대음악의 반복구조
- 전통음악의 재현주의를 거부한 미니멀리즘
라 몬트 영의 반복구조 | 테리 라일리의 반복 구조
스티브 라이히의 반복 구조 | 필립 글래스의 반복 구조
- 반복과 사건, 그리고 강도의 세계
6장. 컴퓨터 음악이 만드는 소음의 미학 _ 아방가르드 서사를 넘어선 크세나키스의 추계학적 음악
- “소음처럼 들리는 전자음악을 과연 음악이라 할 수 있을까?”
- 소음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방식으로서 아방가르드 서사_음과 소음의 이분법 넘어서기
- 첫 번째 아방가르드 서사_소음은 시간이 지나면 음악이 된다
- 두 번째 아방가르드 서사_금기의 타파 그리고 무질서와 혼란의 찬양
- 아방가르드 서사를 넘어서_크세나키스의 컴퓨터 음악과 사건의 미학
- 전자음악은 과학자 흉내 내기의 자폐적 소음?
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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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
바흐에서 전자음악까지
박영욱 지음 | 330쪽 | 20,000원
2023년 8월 11일 | 133x208mm | ISBN 979-11-6689-175-5(93670)
*이 책은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의 개정증보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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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무중력’ 음악에 담긴 종교·철학적 명제
화음을 넘어 응집력의 세계를 추구한 쇤베르크의 사상
전혀 다른 음악적 재료에 기반한 전자음악의 철학
난해하고 때로는 소음에 가깝게 들리는 현대음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는 조성체계에 부합하는 듣기 좋은 소리만을 추구하던 전통음악에 맞서 음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현대음악의 의미와 성과를 평가하고 그 배후에 있는 현대음악가들의 생각을 철학자의 눈으로 읽어낸다. 전통적 조성에서 벗어나 일탈을 시도했던 바흐 음악에 대한 현대적 해석에서부터 쇤베르크 화음론의 혁명성, 새로운 음악적 사유를 창조한 베베른과 불레즈, 미국의 미니멀리즘 등을 흥미롭게 분석한다. 이번 개정증보판에는 소음의 미학에 대한 아방가르드 서사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를 극복한 크세나키스의 추계학적 전자음악의 의미를 다루는 새로운 장과 서문이 추가되었다.
왜 현대음악가들은 ‘새로운 음’을 탐구했는가
현대음악가들은 20세기 이전 음악에서는 전혀 일어나지 않은, ‘음’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시작했다. 그들은 단지 좋은 소리나 화음에 천착한 것이 아니라 음의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 일에 집중했다. 현실의 참모습으로서 진리는 무질서하고 파편적인 산문의 형태를 띤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화음과 선율이라는 인위적이고도 아름다운 가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만이 음악의 임무는 아니다. 가상의 소리가 아닌 파편이라는 소리 자체를 하나의 산문으로 완성하는 것 역시 음악이 해야 할 일이다. 음과 소음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소음이든 음이든 그것은 소리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통합된다. 베토벤 음악에서의 음이나 강력한 전자음, 혹은 일상의 소리 모두 음악적인 현상으로서 소리이다. 현대음악가들은 이처럼 음의 의미를 넓히고, 그 가치를 찾는 일에 매진했다.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는 현대음악가들이 탐구한 새로운 ‘음’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담고 있다. “음악에서 음이란 무엇이며, 이들을 어떻게 하나의 곡으로 만들어내야 하는가”를 고민했던 현대음악가들의 음악적 탐색을 철학적 탐색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특히 저자는 바흐의 음악을 “조성음악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난”을 벗어난 “무중력의 음악”이자 “일탈의 운동”으로 정의하며, 그를 현대음악의 시조로 격상시킨다. 현대음악의 진정한 시작으로 평가받는 쇤베르크는 “비조성적 화음”과 “음의 응집력”을 강조함으로써 “음악을 자율적인 소통 체계를 지닌 하나의 고유한 장”으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전자음악의 경우 새로운 음악적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음악적 자장을 넓혔으며 이는 철학의 가치와도 궤를 같이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저자 박영욱은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을 통해 현대음악의 시작부터 현대적 흐름까지 철학적 안목과 해석으로 노정하고 있다.
현대음악의 시조, 바흐
바흐에게 음악은 종교적 믿음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바흐의 음악은 종교적 믿음이나 성경의 이야기 혹은 예수의 말씀을 수사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바흐가 음악의 본질을 종교적 실재와 관련짓는다는 것이다. 바흐는 음악을 종교적 찬양의 수단으로 보고 그것에 헌신했다기보다 음악 자체를 신과 동일시했다. 바흐는 곡의 구성이 더 완전할수록 그 속에 더 많은 신이 내재한다고 믿었다. 이는 종교적 믿음이나 말씀을 수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음악이 지닌 종교적 의무의 전부가 아니며, 오히려 완전한 음악을 만드는 것 자체가 음악가의 종교적 의무라는 의미이다. 음악이 곧 신앙이라는 바흐의 신념은 바로 완전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바흐는 음악의 ‘무중력’을 표현한 첫 번째 음악가다. 무중력 상태란 절대적 균형의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방향으로도 향할 수 있는 무한한 방향을 지닌 상태를 뜻한다. 이렇게 무한한 방향을 지닌 절대적인 균형의 상태야말로 완전한 신의 세계임에 틀림없다고 바흐는 믿었다. 물론 바흐의 음악이 실제로 이러한 완벽한 세계에 도달하는데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바흐의 음악은 무한한 방향을 지닌 무중력의 상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현대음악의 시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현대음악이 무한한 음의 가능성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바흐를 현대음악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바흐는 음악적 주제의 내재적 가능성과 그 복합성을 탐구하는 창조적 탐구가다. 바흐는 주어진 화음의 원리에 따라 주제를 선형적으로 전개하지 않으며, 주제에 내재한 다양한 전개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바흐의 음악은 형식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그가 주제를 다양하게 전개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차적인 결과물이다. 사람들이 바흐의 음악을 지나치게 형식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사실에서 비롯한다.
바흐의 음악은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끊임없이 반복을 통해서 아무것도 전개되지 않는 마치 정지된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러한 정지는 물리적인 시간의 정지가 아니다. 서사라는 인위적인 힘(중력)이 음악에서 강력하게 작용하게 되면 순간을 이루는 각각의 소리들은 독립성을 상실하게 된다. 정지란 바로 하나의 순간, 즉 소리가 지닌 무한한 방향의 가능성을 펼치는 가능성의 세계로 향하는 문이다.
쇤베르크, 새로운 음악을 시작하다
현대음악의 직접적인 시작은 쇤베르크다. 쇤베르크는 현대음악이 아름답지 않고 귀에 거슬리는 난해한 음악이라는 통념을 만든 시조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음악을 자율적인 소통 체계를 지닌 하나의 고유한 ‘장’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쇤베르크 음악의 진보성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쇤베르크는 전통적인 조성음악의 체계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 그런데 실제로 그가 거부한 것은 전통적인 음악적 소통의 체계 자체가 아닌 그 소통의 체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쇤베르크의 음악은 전통적인 음악의 소통 체계 자체를 거부한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쇤베르크야말로 음악을 자율적인 체계의 소통영역으로 이해하고 하나의 독립된 ‘장’으로 간주한 최초의 음악가였다.
쇤베르크는 ‘현대음악’이라는 새로운 음악을 시작했음에도, 스스로는 자신의 음악이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쇤베르크가 계승한 전통이란, 바흐처럼 음을 수평적으로(대위법) 배열하면서도 수직적으로(화음) 구성하는 것, 그리고 베토벤이나 브람스 등으로부터 주제를 풍부하게 변형시키는 법, 또한 바그너처럼 곡 전체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매우 표현력 있게 발전시키는 보편적인 기법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쇤베르크가 이러한 전통적 기법들을 충실하게 따를 때 오히려 일반적으로 알려진 전통적 기법들로부터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역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쇤베르크의 진보성은 곧 한계에 달한다. 그는 전통적인 조성음악에서의 체계를 절대적인 체계가 아닌 인위적인 체계로 보았지만, 아쉽게도 조성음악을 넘어서 절대적인 음악의 내적 체계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는 쇤베르크의 음악이 니클라스 루만의 체계이론과 완전하게 갈라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루만에 따르면 소통의 구조로서 체계는 어떠한 경우에도 완전할 수 없다. 소통은 불투명성을 전제한다. 그는 소통을 블랙박스 과정으로 이해하는데 이는 근본적으로 소통이 불완전할뿐더러 완전한 의사전달이라는 소통의 목적이 불가능함을 암시한다.
전혀 새로운 음악적 재료를 추구한 전자음악
전자음악은 전통적인 악기와 달리 전기적인 신호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전자악기를 이용한 음악이다. 전자음악이 현대음악의 한 방향성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전통적인 악기와는 다른 “전혀 새로운 음악적 재료”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악기는 물리적인 공기의 진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음이라는 재료가 바탕이다. 반면 전자악기는 인위적으로 합성된 전기신호에 의해 만들어진 음이라는 재료에 바탕을 둔다. 이러한 재료의 차이는 단순한 내용물의 차이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음악적 구성의 차이를 낳는다. 재료란 단순한 질료 혹은 내용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질료 혹은 내용물은 형식과 대립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음악은 음이라는 질료를 특정한 리듬, 선율, 화음의 형식의 틀로 가공하여 만들어내는 작업으로 생각한다. 전자음악은 기존의 악기들과 달리 무수히 다양한 음들을 창조하고 기록함으로써 전통적인 음악적 재료와는 다른 음악적 재료를 제공한다. 음을 거의 무제약적으로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 이러한 자유는 곧 원초적 소리를 다룰 수 있는 자유로 여겨졌다.
전자음악을 대표하는 실험적인 음악가들이 관심을 가진 구체적인 음들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구체음악이었다. 구체적인 음이란 전통적인 악기에서 사용하는 인위적인 음들, 즉 장단음계의 음에 속하는 음높이를 지닌 음만을 사용하는 음들과 전혀 다른 음을 말한다. 가령 기계적인 소음, 일상적인 소리, 사람의 비명소리 등이 구체적인 음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음은 전통적인 음악에서는 소음으로 간주되어 배척되었다. 규칙성을 지니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적인 규칙을 지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자음악을 이러한 구체적인 음들을 제한적으로나마 구현할 수 있었고, 그 실험적 시도들이 셰퍼, 바레즈, 슈톡하우젠, 그세나키스 등에 의해서 구체화되었다.
철학으로 현대음악 읽기
현대 음악가들이 단지 듣기 좋은 소리나 화음에 천착하기보다는 음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했다. 음악의 구성에서 미리 주어진 표상, 즉 어떤 규범적 주제나 형상 혹은 화성전개의 법칙을 거부하는 것이다. 음악에서 규범적인 질서, 즉 합목적인 체계성을 배제함으로써 소음처럼 여겨지는 것은 현대음악의 단점이 아니라 미덕이다. 소음은 한 사회의 지배적인 질서에 통합되지 못한 주변의 소리이다. 사회학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제도권에 흡수되지 못한 무의미한 소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제도가 지닌 한계를 대변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소음을 비롯해 현대음악가들이 천착한 음의 무한한 가능성은 철학적 인식의 큰 토대가 되기도 하였다.
소음의 미학과 크세나키스의 컴퓨터 음악
우리의 귀에 거슬리는 소음으로만 들리는 현대 전자음악에 대한 일반적 옹호는 대체로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전자음악의 소음을 전통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들의 귀에도 듣기 좋은 소리로 만듦으로써 소음의 음악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소음을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 미학적 기준 자체를 바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글리치 음악으로 대표되는 전자는 기존 조율체계에서 벗어난 낯선 소음들을 미시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듣기 좋은 소리(유포니)를 창조해낸다. 후자는 마치 미술에서 토사물이나 배설물 같은 혐오스러운 소재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애브젝트 예술(abject art)에서처럼, 귀를 찢을 듯한 소음을 극단적으로 과잉시킴으로써 전통적 미학을 부정하고 그 경계를 확장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제까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 아방가르드 서사만으로 현대 전자음악의 가능성을 모두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그 반례로 크세나키스의 전자음악의 성취를 살펴본다. 컴퓨터와 통계학 이론을 이용해 무수한 소리의 알갱이들을 분해하고 합성해서 만들어내는 그의 추계학적(stochastic) 음악에서, 하나의 사건으로서의 음은 그저 무작위적 소음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많은 소리의 연쇄로서 한 순간을 이루는 소리들이 멜로디나 화음의 거대 서사를 통해서 지워지지 않고 내적 강도를 지닌 하나의 사건으로 경험된다.” 저자는 이렇듯 거시적 차원과 미시적 차원을 통합하는 사건의 음악으로서 크세나키스가 만들어내는 소음을 “전통적인 음악적 형식이나 관행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담은 소리이자,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매체로서의 전자악기의 가능성을 담은 소리”라고 높이 평가한다.
책 속으로
다수의 현대음악가들은 20세기 이전의 작곡가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필요가 없었던 원초적인 질문을 음악에 담아야 했다. “과연 음악에서 음이란 무엇이며 이들을 어떻게 하나의 곡으로 만들어내야 하는가?” 말하자면 18세기 고전주의자들처럼 준수해야 할 음악적 질서나 19세기말 표현주의자들처럼 반발해야 할 음악적 질서가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질서가 존재한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이들의 음악적 사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8∼9쪽_서문_음악에 도래한 추상화의 시대
바흐의 음악에서 수학적 대칭구조는 그 자체가 음악의 목적이 아닌 종교적 무한성을 실현하는 가운데 나타난 특징이었다. 마찬가지로 리게티의 음악의 치밀한 수학적 구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조성과 화음의 중력을 거부한 무중력의 무한한 방향성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70쪽_1장_왜 바흐로부터 출발하는가?
쇤베르크는 수직적, 수평적 결합이라는 전통적인 조성의 규칙을 보편화하여 더 포괄적인 의미의 질서를 찾고자 한다. 이 새로운 화음의 질서는 수평과 수직의 통합, 그리고 상동한 패턴의 반복을 통해서 자체적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에서 대상의 질서를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닌 의식의 지향적 체계에 의해서 생산된 것으로 보는 현상학적 태도를 반영한다. 이러한 점에서 쇤베르크의 음악적 시도는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상학적 태도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104쪽_2장_‘새로운 음악’을 시작하다
물론 전자음이 단순히 전통 악기가 아닌 새로운 전자악기에 의해서 다르게 만들어졌다는 이유에서만 다른 재료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자음은 전통적인 조성, 화음, 박절 등의 기술이 아닌 그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술에 의해서 다루어져야 할 음악적 재료라는 점에서 전통적인 재료와는 다르다. 이것이 바로 전자음악이 전자음이라는 새로운 재료를 합성하는 매체에 바탕으로 두고 있는 근본적인 의미인 것이다. 136쪽_3장_전자음악의 탄생
체계에 속박되지 않은 음의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음을 하나의 개별적인 사건, 즉 ‘강도’로 다룰 수밖에 없다. 이 미시적인 강도의 세계는 ‘암호’와도 같은 것이다. 총음렬주의적 시도를 포함하여 불레즈에게 나타나는 수학적 경향은 음의 무한한 차원을 유한한 수식으로 제한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지 않다. 수학적 탐구는 하나의 신비한 암호로서 음이 지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방법론적 시도에 불과하다. 그것은 음을 처음부터 하나의 의미론적 맥락으로 제한함으로써 음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제약하는 전통적인 음악적 관행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새로운 음악적 사유의 특성인 것이다. 189쪽_4장_‘더’ 새로운 음악을 찾아서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음악이 공통적으로 반복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러한 반복형식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들의 반복형식이 지닌 음악사적 의미는 음악에서 반복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데 있다. 전통적인 음악에서 반복형식은 미리 주어진 주제나 동기가 변형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확인하는 기제로 작동하였다. 이에 반해서 미니멀리즘 음악은 반복을 동일성에 매몰되지 않고 매순간 새로운 고유한 음악적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기제로 바꾸어 놓았다. 232쪽_5장_음악적 반복의 새로운 시도
◎ 지은이 _ 박영욱
숙명여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사회철학에 관심을 갖고 서양사상을 공부하기 위해 고려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동 대학원에서 칸트 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관심은 예술과 문화로 이어졌는데, 특히 현대음악과 현대미술, 미디어아트, 건축디자인에 대해 연구하고 강의하였다. 홍익대 대학원 미술학과와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등에서 매체미술 비평, 공간디자인, 건축비평이론 등을 강의하였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작곡과에서 현대음악과 관련한 강의를 하였으며, 지금은 한예종 음악원에 출강 중이다. 저서로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데리다와 들뢰즈: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철학으로 대중문화 읽기》 《매체, 매체예술 그리고 철학》 《미디어아트는 X예술이다》 《필로아키텍처: 현대건축과 공간 그리고 철학적 담론》 등 다수가 있다.
◎ 차례
서문_음악에 도래한 추상화의 시대
1장. 왜 바흐로부터 출발하는가? _ 바흐의 무중력 그리고 리게티의 구름
- 바흐, 음악의 ‘무중력’을 표현하다
- 리게티, (뜬)구름을 잡는 음악
2장. ‘새로운 음악’을 시작하다 _ 쇤베르크의 음악과 현상학적 환원
- 화음의 세계를 넘어 ‘응집력’의 세계로
- 쇤베르크의 현상학적 환원_조성음악을 넘어선 보편적 질서의 탐구
- 새로운 음악의 응집력_화음이 아닌 ‘유사성’과 ‘상동성’
- 쇤베르크는 자신의 원칙에 철저했는가?
3장. 전자음악의 탄생 _ 쇤베르크의 한계를 넘어서
- 전자음악의 혁명성_새로운 재료는 새로운 형식을 만든다
- 쇤베르크는 새로운 재료에 맞는 기술을 사용했는까?
- 전자음악의 탄생_쇤베르크를 넘어서
4장. ‘더’ 새로운 음악을 찾아서 _ 베베른과 불레즈
- 여전히 새롭지 않은 오래된 관습을 타파하다
- 아도르노의 편협함_쇤베르크 이후 새로운 음악에 대해 비판적인 이유
- 안톤 베베른_수직축과 수평축을 넘어선 ‘대각선적인 것’의 혁명
- 새로운 음악의 혁명_거시적 구조로부터 미시적인 ‘강도’의 차원으로
- 사건으로서 음의 미시적 세계_다시 바흐, 리게티와 만나다
5장. 음악적 반복의 새로운 시도 _ 미국 미니멀리즘 음악
- 반복형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왜 필요한가?
- 동일성을 생산하는 전통음악의 반복구조 vs. 차이를 생산하는 현대음악의 반복구조
- 전통음악의 재현주의를 거부한 미니멀리즘
라 몬트 영의 반복구조 | 테리 라일리의 반복 구조
스티브 라이히의 반복 구조 | 필립 글래스의 반복 구조
- 반복과 사건, 그리고 강도의 세계
6장. 컴퓨터 음악이 만드는 소음의 미학 _ 아방가르드 서사를 넘어선 크세나키스의 추계학적 음악
- “소음처럼 들리는 전자음악을 과연 음악이라 할 수 있을까?”
- 소음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방식으로서 아방가르드 서사_음과 소음의 이분법 넘어서기
- 첫 번째 아방가르드 서사_소음은 시간이 지나면 음악이 된다
- 두 번째 아방가르드 서사_금기의 타파 그리고 무질서와 혼란의 찬양
- 아방가르드 서사를 넘어서_크세나키스의 컴퓨터 음악과 사건의 미학
- 전자음악은 과학자 흉내 내기의 자폐적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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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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