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결정적 순간들
그날 이후 세계는 어제와 같지 않았다

박민아·이두갑·이상욱 지음
과학 > 기초과학/교양과학
과학 > 과학의 이해 > 과학사/기술사
256쪽 | 17,800원 | 판형 140*210mm | 2025년 03월 17일 발행 | ISBN 979-11-6689-325-4 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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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이후였다, 세계가 달라진 것은
세계를 바꾼 과학자들의 진짜 이야기
과학의 역사는 잘 꾸며진 신화다. 한 고독한 천재 과학자가 진리 탐구라는 고귀한 목표 아래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다 돌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유레카! 마침내 위대한 발견을 해낸다. 안타깝지만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과학자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보통 사람이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발견의 동기는 다른 사람의 인정일 때가 많다. 필요한 지원을 끌어내려고 모사를 부린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사는 시대와 지역에 매여 있다.
과학의 진실된 상을 찾는 과학사학자와 과학철학자가 함께 쓴 이 책은 무언가 다르다. 갈릴레오, 퀴리, 플랑크, 하이젠베르크 등 유명한 과학자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 모습을 들춘다. 또한 헨리에타 리비트, 비토 볼테라, 애니 캐넌,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 등 여성이거나 물리학 분야가 아니어서 소외되었지만 오늘날 세계의 모습에 큰 영향을 끼친 과학자를 조명한다. 이 책은 이런 보통 과학자들의 평범한 날들을 조금은 역설적인 의미의 ‘결정적 순간들’로 명명함으로써 진짜 과학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우리 세계가 왜 이런 모습이 됐는지를 설명한다.
과학에 영웅이나 천재는 없다!
과학사학자와 과학철학자가 함께 쓴, 신화 없는 진짜 과학 이야기
학술 활동뿐만 아니라 대중 과학 교양서, 과학 잡지, 방송, 유튜브 등을 통해 과학에 대한 진실된 상을 전달하는 작업을 해 온 과학사학자 박민아, 이두갑, 과학철학자 이상욱이 오늘날 세계의 모습을 만든 과학의 역사, 그 ‘결정적 순간들’을 발굴한다. 결정적 순간들이라는 명명은 천재 과학자의 위대한 발견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이 책은 그 반대다. 과학의 역사를 세밀히 조사해 보면 그런 순간들은 극히 일부였다. 역사에 족적을 남긴 과학자들은 약점 많고 인정을 갈구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또한 그들은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 및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 동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런 외부적 요인에 흔들려 타협하거나 굴복하거나 저항하거나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세계를 어제와 다르게 했다. 요컨대 과학의 결정적 순간들이란 이런 평범한 날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이다.
이 책은 갈릴레이 갈릴레오, 윌리엄 톰슨, 마이클 패러데이, 제임스 맥스웰, 루트비히 볼츠만, 막스 플랑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마리 퀴리, 앨런 튜링,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등 과학사에서 굵직굵직한 인물들의 신화를 벗겨 내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결정적 순간들을 들춘다.
갈릴레오는 정말 교회와 사이가 나빴을까? 사회적 분위기야 어떻든 자신의 이론을 고수하는 외골수였을까? 그렇지 않다.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 천문 체계를 옹호하는 《두 주요 세계 체계에 대한 대화Dialogue Concerning Two Chief World Systems》를 출판하면서 교회와 지속적으로 소통했고 과학적 주장과 사회적 수용성을 동시에 조화시키려 한 영민한 야심가였다.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주의를 옹호했다는 이유만으로 종교재판을 받지 않았으며 종교의 희생양도 아니었다. 놀랍게도 코페르니쿠스주의는 가톨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은 적이 없다. 왜 종교재판이 열렸는지 이해하려면 갈릴레오가 과학자로서 가졌던 진짜 욕망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한다. 과학철학자 이상욱은 여러 사료와 기록을 통해 갈릴레오의 진짜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다.
이 책에는 우리 상식을 깨는 이런 흥미로운 역사 탐구가 가득하다. 막스 플랑크는 흑체복사를 연구하면서 에너지가 띄엄띄엄한 값으로 양자화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해 이른바 양자물리학의 시대를 열었는가? 안타깝게도 양자물리학의 시초에 대한 이런 ‘표준적’ 설명은 잘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플랑크는 에너지의 양자화를 그저 수학적 기법이라고만 생각했지 세계의 실재라고 보지 않았다. 이런 불일치 역시 플랑크가 살았던 독일 사회 및 독일 물리학계가 플랑크에게 끼쳤던 영향을 파악해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를 냉전으로 몰아갔으나 핵물리학 연구는 꽃 피웠던 2차 세계대전 시기 하이젠베르크, 오토 한, 카를 폰 바이츠제커 등 독일 물리학자들의 원자폭탄 개발 에피소드는 사회와 유리된 고고한 과학자 신화에 흠집을 내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치를 위한 전쟁 연구에 반대하기 위해 일부러 태업을 하며 원자폭탄을 개발하지 않았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은 변명일까, 사실일까? 하이젠베르크는 정말 원자폭탄을 개발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의 저자들은 독일 과학자들의 녹취록 분석을 통해 그 진실을 파헤친다.
오늘의 세계를 만든 건 무명의 과학자다
더 많이 알려져야 할 과학자 발굴하기
과학사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 과학자들만이 세계를 이런 모습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과학사에는 여성이어서, 물리학이 아니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와 그들의 중요한 연구가 있다. 헨리에타 리비트, 애니 점프 캐넌,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 로절린드 프랭클린, 비토 볼테라, 베리 커머너 등 그동안 국내 과학 교양 서적에서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과학자들이다. 이 중에는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도 있다. 누군지 모르겠다고? 바로 원자핵을 연구한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다. 아마 마리아 메이어가 여성이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마리아 메이어는 과학자와 현모양처라는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고 남편은 교수였으나 자신은 ‘자원봉사 조교수’라는 무보수직에 만족해야 했다. 마리아 메이어를 노벨상 과학자로 만든 결정적 순간은 그녀에게 일자리와 첫 봉급이 주어졌을 때다. 그때에야 비로소 원자 껍질 모형을 제시하며 어떻게 원자가 그렇게 안정적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의 답을 찾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이 문학을 하기 위해선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처럼 마리아 메이어도 마찬가지였다. “1946년부터 제대로 봉급을 받으면서, 다시 말하면 독립 연구자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연구는 제대로 된 성과를 냈다. 독립 연구자로서의 학문적, 사회적 지위의 확보는 생산성 있는 연구를 위해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175쪽)
하버드 천문대에서 별의 밝기를 기록해 천체물리학의 발전에 기여한 헨리에타 리비트와 애니 캐넌의 연구도 사실 남성 과학자들이 별빛 스펙트럼 분류를 가치가 낮은 일로 여겼기에 가능했다. 이 여성 과학자들은 ‘컴퓨터’로 불렸는데 이는 대량 생산되는 항성 스펙트럼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저임금으로 고용된 사람들을 칭하는 단어였다. 당시 남성 조수는 평균 2500달러의 연봉을 받는 반면 하버드 여성 컴퓨터는 시간당 25~35센트, 연봉으로는 600~900달러를 받았다. 그런데도 세상을 바꾼 것은 여성 컴퓨터들의 연구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제임스 왓슨의 DNA 발견 수기인《이중나선》 때문에 이중나선의 증거가 된 DNA X선 회절 사진을 찍어놓고도 발견의 공을 도난당했다고 알려진 로절린드 프랭클린도 사실 비운의 여성 과학자는 아니었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연구의 공을 뺏겼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구조를 해석하는 선구자로서 엄청난 업적을 냈으며 죽기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외에도 생물의 생존 경쟁을 수학화함으로써 진화와 생태계의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 수리생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비토 볼테라, 1960년대 방사성 물질 낙진 위험 연구를 통해 환경 위기를 경고하고 환경 운동에까지 나아간 과학자 베리 커머너 등 저자들이 꼽은 세계를 바꾼 과학자들의 에피소드는 우리가 지금 고민하는 문제의 연원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 준다.
과학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 활동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방식
우리가 너무나 인간적이고 약점 많은 과학자의 삶을 통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은 도대체 과학이란 무엇이며, 과학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를테면 과학의 역사와 과학자의 삶에 기반해 과학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하는 과학철학적 숙고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자는 시대와 사회, 자신이 발 딛은 근접 환경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은 과학자들이 기존 패러다임 내에서만 작업하고 패러다임을 전복하는 일은 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패러다임 내에서 작업하기에 패러다임을 깰 수 있었다. 물론 그 자신은 그런 일을 해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지만 말이다. ‘힘의 선’이라는 개념을 창안함으로써 뉴턴식의 직선적 인력이나 척력으로 된 원거리 작용 패러다임을 깼던 패러데이는 뉴턴주의적 세계관 안에서 연구했다. 그런 패러데이를 세계관의 혁명가로 만든 결정적 요인은 외부 환경에 있었다. 가난한 대장장이 집안에서 태어나 인쇄소의 제본공 도제였던 패러데이는 책을 만들며 독학으로 과학 이론을 배웠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과학 엘리트들이 저술했던, 수학이 난무한 어려운 과학책은 이해하지 못했다. 수학적 테크닉이 없었기에 힘의 선이 보여 주는 회전 운동을 직선의 원거리 작용으로 환원하지 못했고 그 대신 힘의 선을 시각적으로 입증하는 실험에 열을 올렸다. 다양한 전기 현상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려는 패러데이의 전략은 힘의 선과 전기장, 자기장 개념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바로 그 수학이 패러데이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자기력선이 공간에 물리적으로 실재하고 그 선을 따라 힘이 전달된다면 그 힘이 전달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원거리 작용에서는 힘이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데 비해, 자기력선을 통해 힘이 전달된다면 힘이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인가? 자기력선이 물리적 실재라면 자기력선이 펼쳐져 있는 그 공간에는 에너지가 실려 있을까? 그 에너지의 크기는 얼마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현상을 보여 주는 실험만으로는 부족했다.”(44쪽) 이는 수학으로 무장한 신세대 물리학자의 몫으로 남는다. 패러데이의 후예 맥스웰이 위대한 과학자가 된 건 이런 상황적 맥락이 있었다.
스탠퍼드대학에 DNA학과를 만든 생화학자 아서 콘버그는 과학 활동이 고립된 천재의 의로운 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적확하게 입증한다. 콘버그는 발견에 대한 우선권을 놓고 과학자 간 경쟁이 격화되는 비밀주의와 고립주의가 과학 발전에 좋지 않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그가 자신의 학과에 정착시킨 문화가 ‘열린 냉장고’ 설치이다. 이 냉장고에 콘버그 자신의 실험실에서 생산한, DNA 뉴클레오타이드 및 DNA의 합성과 분해에 관여하는 효소들을 넣고 이를 DNA를 연구하는 국립보건원의 연구자들이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공유했다. “콘버그는 이러한 공유 문화를 통해 자신의 실험실이 더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공유의 연구 공동체가 기존의 연구 질문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이를 독창적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창의적인 실험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을 때, 기초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이 점차 부상했다.”(230~231쪽) 이는 연구에 필요한 자원을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콘버그는 생화학 연구를 다학제적 방식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분자생물학 여러 분과의 신진 학자들을 임용했다. “이런 배경에서 신임 교수는 과학적으로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점차 중요한 연구 주제를 개척하거나 창의적인 업적을 발표했다. 자원의 공유를 통해 성장한 이들은 또한 공동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와 책임감이라는 상호 호혜의 원칙하에 자신이 많은 연구비를 받을 때에도 이를 기꺼이 학과 구성원과 공유하면서 생화학학과라는 실험 공동체의 성장에 기여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적 구조이다.”(232~233쪽)
지은이
박민아
과학사학자. 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현 과학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뉴턴&데카르트: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거인》, 《퀴리&마이트너: 마녀들의 연금술 이야기》,《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공저) 등이, 편역서로 《프리즘: 역사로 과학읽기》(편),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공역) 등이 있다.
이두갑
과학사학자.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 잡지 《에피》 편집위원이며 지은 책으로 《The Recombinant University》 등이 있고 역서로 《자연 기계》(공역) 등이 있다.
이상욱
과학철학자. 한양대학교 철학과 및 인공지능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런던대학교(LSE)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철학자들》(공저), 《포스트휴먼으로 살아가기》(공저), 《과학으
로 생각한다》(공저) 등이 있다.
책 속으로
더욱 중요한 점은 이들이 연마한 ‘능력’이 흔히 IQ로 측정되는 ‘머리 좋음’만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결정적 사실입니다. 과학 연구 과정에서 ‘머리 좋음’보다 더 결정적인 능력은, 서로 다른 영역의 여러 지식을 함께 묶어 내어 그 사이의 숨은 연관성을 포착해 내고 이를 보다 일반적인 규칙으로 설명해 내는 통찰력이었습니다. 그리고 협동 작업이 강조되는 현대 과학으로 올수록 동료 과학자와의 협업 능력이나 소통 능력, 필요한 도움을 다양한 곳에서 효율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자원 동원 능력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바로 그것들이 과학의 결정적 순간들을 만든 핵심적 요인이었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요소들이 우리가 보는 세계를 바꾸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경이로운 순간이기도 합니다.
/ 들어가는 말 7쪽
오히려 갈릴레오는 자신이 수학자에서 자연철학자로 인식론적 지위가 상승했던 것처럼, 자연철학자에서 신학자로 또 다른 인식론적 지위 상승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오직 신학자만이 성경의 ‘참된 해석’에 대해 논의할 인식론적 지위를 갖기 때문이다. 결국 갈릴레오는 자신이 망원경으로 관찰한 결과에 기초해 우주의 참다운 구조를 논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연철학적 연구를 통해 성경의 참된 의미를 해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갈릴레오는 자신의 종교적 믿음과 자연철학적 연구 사이에 별다른 긴장 관계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갈릴레오는 종교에 저항한 과학자였다기보다는 종교와 과학이 양립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의 수많은, 종교를 가진 과학자의 선배였던 셈이다.
/ 1장 갈릴레오의 절반만 성공한 대화 22쪽
1821년 전자기 회전을 입증했음에도 뉴턴식의 원거리 힘의 개념을 벗어나는 과정은 패러데이에게도 그의 동시대 사람에게도 느리게, 몇 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다. 1831년, 패러데이는 고리 모양의 철심에 두 개의 절연 코일을 각각 감은 후 한쪽 절연 코일에는 검류계를 연결하여 닫힌 회로를 만들고, 다른 쪽 코일에는 전지를 연결하여 회로를 만들었다. 전지를 연결한 코일에 전류가 흐르는 순간, 이와는 단절된 옆 회로의 검류계 바늘이 움직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전류를 끊는 순간에도 검류계의 바늘이 움직였다. 회로에 흐르는 전류가 옆 회로에서도 전류를 만들어 낸 것이었는데 패러데이는 회로에 흐르는 전류가 주위에 자기장을 발생시키고 이 자기장이 옆 회로에 전류를 흐르게 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 3장 패러데이가 힘의 선이 실재한다고 선언했을 때 38~39쪽
하지만 당시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실제로 플랑크는 1900년 논문을 발표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에너지의 양자화를 수학적 기법이 아니라 ‘물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데 주저했다. 그래서 1908년 동료 화학자 발터 네른스트Walter Nernst가 이제는 양자 개념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을 때에도 아직까지 물리학자 사이에서 양자 개념의 적절성에 대해 완전한 합의가 없기에 시기상조라고 답변했을 정도였다. 사실 이런 플랑크의 판단은 당시 물리학자의 분위기를 상당 부분 정확하게 읽은 것이다. 플랑크는 1908년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추천되었지만 당시 물리학계는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 이론을 빌헴름 빈의 이론을 개선한 정도로 보아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의견과 플랑크 이론의 독창성은 인정하면서도 노벨상을 수여할 만한 연구인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당연히 플랑크의 1908년 노벨상 수상은 좌절되었다.
/ 5장 플랑크의 ‘양자 혁명’ 60쪽
리비트와 하버드 여성 천문학자의 사례는 과학 연구에서 종종 나타나는 성별 분업 및 분업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위계의 전복을 보여 준다. 리비트와 여성 천문학자들이 하버드 천문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담당한 별빛 스펙트럼 분류 작업이 과학적으로 가치가 낮은 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하버드의 남성 천문학자는 페루의 아레키파에 있는 보이든관측기지로 가서 남반구의 별을 찍는 일을 더 선호했는데 거기에 진정한 발견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하버드 천문대의 별빛 스펙트럼 연구에서 항성 스펙트럼 촬영과 스펙트럼 분류 사이의 분업이 일어났고 이 분업은 남녀 간의 성별 분업일 뿐만 아니라 지적인 위계에 따라 나뉜 것이었다. 이는 과학 연구에서 성별 분업이 지적 위계를 동반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 8장 헨리에타 리비트가 변광성의 비밀을 밝혔을 때 88~89쪽
팜홀에서의 언급만 놓고 보면 하이젠베르크는 임계질량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이 한 말을 보면 이미 전부터 하이젠베르크는 제대로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하이젠베르크의 진실은 무엇일까? 하이젠베르크만이 알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팜홀 녹취록에 나타난 임계질량을 둘러싼 혼란은 후에 세련되게 정리되어 독일 과학자가 자신들의 전쟁 연구를 변호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전후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핵무기 과학자는 그 혼란이 의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전부터 임계질량을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부풀려 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쟁 중 핵무기 개발을 어렵게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나치에 저항했고 평화 시를 대비하여 원자력 발전 연구는 계속해 나갔다. 우리는 할 능력이 있었지만 인류를 위해 무기 개발을 하지 않은 도덕적인 과학자들이다, 라고. 정말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속인 것일까? 이어지는 논의를 살펴보면 그 주장이 맞을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자 이제 임계질량에 이어지는 동위원소 분리 방법에 대한 독일 과학자들의 논의를 살펴보자.
/ 15장 독일 과학자들이 원폭 투하 소식을 들었을 때 161쪽
튜링은 괴델이 다룬 문제를 더 직관적으로 정의한 후 내용적으로 괴델의 정리와 동등한 내용을 일반적으로 증명했다. 튜링의 접근 방식은 수학기초론에서 힐베르트 프로그램에 집중한 후 ‘괴델 숫자화’라는 특정한 형식화 방식을 사용한 괴델과 달리 특정 수학적 명제가 증명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일반적 접근을 취했다. 튜링은 어려운 문제를 풀 때마다 항상 지나칠 정도로 독창적이어서 원래 문제를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반화해 해결하는 재주가 있었다. 튜링은 ‘분명하게 규정된’이라는 힐베르트의 요구 사항을 숫자를 쓰고, 지우고, 다음 항목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은 극단적으로 단순한 기계적 행위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자고 제안했다
/ 17장 ‘낯선’ 지능을 소개한 튜링 184쪽
프랭클린의 연구는 연구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중앙부가 비어 있을 것이라는 카스파의 예측과 더불어, 원통형을 이루며 나선형으로 쌓인 단백질 캡시드 사이에 RNA가 깊숙이 박혀 나선을 그릴 것이라는 프랭클린의 발견이 더해지면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모형은 서서히 체계를 잡아 나갔다. 1956년 프랭클린과 클루그, 홈즈가 함께 발표한 논문에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모형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원통형 바이러스의 반지름은 75옹스트롬, 역시 원통형 모양을 한 중앙부의 빈공간의 반지름은 20옹스트롬, RNA는 중앙으로부터 40옹스트롬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고, 나선의 1회전 높이는 23옹스트롬에 해당한다는 수치가 제시되었다. 프랭클린의 선명한 X선 회절 사진과 패터슨 함수를 적용한 계산이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정확한 ‘치수’를 제공한 것이다.
/ 21장 프랭클린과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226쪽
1950년대 방사성 물질의 위험을 경고한 커머너는 미국과 소련의 지상원폭시험금지협약이 생태학으로 환경을 지키는 캠페인의 첫 승리라고 평가했다. 1966년 자연계생물학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등 커머너는 자신의 생태학적 연구를 대기 오염, 수질 오염 및 농약, 인산염 같은 화학 물질 오염, 그 외 다양한 환경 위험으로 확장했다. 1960년대 내내 그의 연구는 환경 오염 위기의 생태학적 특징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대중에게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중점적 역할을 했다.
커머너는 특히 자동차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대기 오염이 인간이 초래한 환경 문제가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는 매우 심각한 사례임을 보여 주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1960년대 대기청정법을 비롯한 다양한 환경 보호 법안이 제정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 23장 베리 커머너, 환경 위기를 경고하다 239쪽
차례
들어가는 말 5
1장 갈릴레오의 절반만 성공한 대화
—1632년 피렌체 13
2장 톰슨이 줄의 발표에 이의를 제기했을 때
—1847년 25
3장 패러데이가 힘의 선이 실재한다고 선언했을 때
—1852년 34
4장 맥스웰주의자들이 승리를 선언한 날
—1888년 9월 45
5장 플랑크의 ‘양자 혁명’
—1900년 베를린 58
6장 볼츠만의 자살
—1906년 9월 69
7장 소르본 스캔들
—1911년 파리 76
8장 헨리에타 리비트가 변광성의 비밀을 밝혔을 때
—1912년 82
9장 캐넌의 하버드 항성 스펙트럼 분류법이 채택되었을 때
—1913년 91
10장 밀리컨이 광전 효과로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1923년 106
11장 비토 볼테라, 생존 경쟁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다
—1926년 120
12장 이렌 퀴리의 인공 방사성 원소 발견
—1934년 1월 127
13장 마이트너의 망명
—1938년 7월 12일 137
14장 하이젠베르크와 보어의 만남
—1941년 코펜하겐 146
15장 독일 과학자들이 원폭 투하 소식을 들었을 때
—1945년 155
16장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가 첫 봉급을 받았을 때
—1946년 168
17장 ‘낯선’ 지능을 소개한 튜링
—1950년 맨체스터 177
18장 제임스 왓슨, 분자생물학의 탄생을 알리다
—1953년 194
19장 조너스 소크가 폴리오 백신을 개발하다
—1953년 203
20장 프랜시스 크릭이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를 제시하다
—1957년 211
21장 프랭클린과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1958년 4월 17일 218
22장 아서 콘버그가 DNA 학과를 설립했을 때
—1959년 228
23장 베리 커머너, 환경 위기를 경고하다
—1970년 2월 2일 236
주 244
참고문헌 249
그림 출처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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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결정적 순간들
그날 이후 세계는 어제와 같지 않았다
박민아·이두갑·이상욱 지음
과학 > 기초과학/교양과학
과학 > 과학의 이해 > 과학사/기술사
256쪽 | 17,800원 | 판형 140*210mm | 2025년 03월 17일 발행 | ISBN 979-11-6689-325-4 03400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
그 순간 이후였다, 세계가 달라진 것은
세계를 바꾼 과학자들의 진짜 이야기
과학의 역사는 잘 꾸며진 신화다. 한 고독한 천재 과학자가 진리 탐구라는 고귀한 목표 아래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다 돌연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유레카! 마침내 위대한 발견을 해낸다. 안타깝지만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과학자 역시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보통 사람이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발견의 동기는 다른 사람의 인정일 때가 많다. 필요한 지원을 끌어내려고 모사를 부린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사는 시대와 지역에 매여 있다.
과학의 진실된 상을 찾는 과학사학자와 과학철학자가 함께 쓴 이 책은 무언가 다르다. 갈릴레오, 퀴리, 플랑크, 하이젠베르크 등 유명한 과학자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 모습을 들춘다. 또한 헨리에타 리비트, 비토 볼테라, 애니 캐넌,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 등 여성이거나 물리학 분야가 아니어서 소외되었지만 오늘날 세계의 모습에 큰 영향을 끼친 과학자를 조명한다. 이 책은 이런 보통 과학자들의 평범한 날들을 조금은 역설적인 의미의 ‘결정적 순간들’로 명명함으로써 진짜 과학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우리 세계가 왜 이런 모습이 됐는지를 설명한다.
과학에 영웅이나 천재는 없다!
과학사학자와 과학철학자가 함께 쓴, 신화 없는 진짜 과학 이야기
학술 활동뿐만 아니라 대중 과학 교양서, 과학 잡지, 방송, 유튜브 등을 통해 과학에 대한 진실된 상을 전달하는 작업을 해 온 과학사학자 박민아, 이두갑, 과학철학자 이상욱이 오늘날 세계의 모습을 만든 과학의 역사, 그 ‘결정적 순간들’을 발굴한다. 결정적 순간들이라는 명명은 천재 과학자의 위대한 발견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이 책은 그 반대다. 과학의 역사를 세밀히 조사해 보면 그런 순간들은 극히 일부였다. 역사에 족적을 남긴 과학자들은 약점 많고 인정을 갈구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또한 그들은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 및 자신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 동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런 외부적 요인에 흔들려 타협하거나 굴복하거나 저항하거나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세계를 어제와 다르게 했다. 요컨대 과학의 결정적 순간들이란 이런 평범한 날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이다.
이 책은 갈릴레이 갈릴레오, 윌리엄 톰슨, 마이클 패러데이, 제임스 맥스웰, 루트비히 볼츠만, 막스 플랑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마리 퀴리, 앨런 튜링,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등 과학사에서 굵직굵직한 인물들의 신화를 벗겨 내고 잘 알려지지 않은 결정적 순간들을 들춘다.
갈릴레오는 정말 교회와 사이가 나빴을까? 사회적 분위기야 어떻든 자신의 이론을 고수하는 외골수였을까? 그렇지 않다.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 천문 체계를 옹호하는 《두 주요 세계 체계에 대한 대화Dialogue Concerning Two Chief World Systems》를 출판하면서 교회와 지속적으로 소통했고 과학적 주장과 사회적 수용성을 동시에 조화시키려 한 영민한 야심가였다.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주의를 옹호했다는 이유만으로 종교재판을 받지 않았으며 종교의 희생양도 아니었다. 놀랍게도 코페르니쿠스주의는 가톨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은 적이 없다. 왜 종교재판이 열렸는지 이해하려면 갈릴레오가 과학자로서 가졌던 진짜 욕망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야 한다. 과학철학자 이상욱은 여러 사료와 기록을 통해 갈릴레오의 진짜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다.
이 책에는 우리 상식을 깨는 이런 흥미로운 역사 탐구가 가득하다. 막스 플랑크는 흑체복사를 연구하면서 에너지가 띄엄띄엄한 값으로 양자화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해 이른바 양자물리학의 시대를 열었는가? 안타깝게도 양자물리학의 시초에 대한 이런 ‘표준적’ 설명은 잘 만들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플랑크는 에너지의 양자화를 그저 수학적 기법이라고만 생각했지 세계의 실재라고 보지 않았다. 이런 불일치 역시 플랑크가 살았던 독일 사회 및 독일 물리학계가 플랑크에게 끼쳤던 영향을 파악해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세계를 냉전으로 몰아갔으나 핵물리학 연구는 꽃 피웠던 2차 세계대전 시기 하이젠베르크, 오토 한, 카를 폰 바이츠제커 등 독일 물리학자들의 원자폭탄 개발 에피소드는 사회와 유리된 고고한 과학자 신화에 흠집을 내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치를 위한 전쟁 연구에 반대하기 위해 일부러 태업을 하며 원자폭탄을 개발하지 않았다는 하이젠베르크의 주장은 변명일까, 사실일까? 하이젠베르크는 정말 원자폭탄을 개발할 수 있었을까? 이 책의 저자들은 독일 과학자들의 녹취록 분석을 통해 그 진실을 파헤친다.
오늘의 세계를 만든 건 무명의 과학자다
더 많이 알려져야 할 과학자 발굴하기
과학사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 과학자들만이 세계를 이런 모습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과학사에는 여성이어서, 물리학이 아니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와 그들의 중요한 연구가 있다. 헨리에타 리비트, 애니 점프 캐넌,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 로절린드 프랭클린, 비토 볼테라, 베리 커머너 등 그동안 국내 과학 교양 서적에서 거의 소개되지 않았던 과학자들이다. 이 중에는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도 있다. 누군지 모르겠다고? 바로 원자핵을 연구한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다. 아마 마리아 메이어가 여성이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마리아 메이어는 과학자와 현모양처라는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고 남편은 교수였으나 자신은 ‘자원봉사 조교수’라는 무보수직에 만족해야 했다. 마리아 메이어를 노벨상 과학자로 만든 결정적 순간은 그녀에게 일자리와 첫 봉급이 주어졌을 때다. 그때에야 비로소 원자 껍질 모형을 제시하며 어떻게 원자가 그렇게 안정적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의 답을 찾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이 문학을 하기 위해선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처럼 마리아 메이어도 마찬가지였다. “1946년부터 제대로 봉급을 받으면서, 다시 말하면 독립 연구자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연구는 제대로 된 성과를 냈다. 독립 연구자로서의 학문적, 사회적 지위의 확보는 생산성 있는 연구를 위해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175쪽)
하버드 천문대에서 별의 밝기를 기록해 천체물리학의 발전에 기여한 헨리에타 리비트와 애니 캐넌의 연구도 사실 남성 과학자들이 별빛 스펙트럼 분류를 가치가 낮은 일로 여겼기에 가능했다. 이 여성 과학자들은 ‘컴퓨터’로 불렸는데 이는 대량 생산되는 항성 스펙트럼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저임금으로 고용된 사람들을 칭하는 단어였다. 당시 남성 조수는 평균 2500달러의 연봉을 받는 반면 하버드 여성 컴퓨터는 시간당 25~35센트, 연봉으로는 600~900달러를 받았다. 그런데도 세상을 바꾼 것은 여성 컴퓨터들의 연구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제임스 왓슨의 DNA 발견 수기인《이중나선》 때문에 이중나선의 증거가 된 DNA X선 회절 사진을 찍어놓고도 발견의 공을 도난당했다고 알려진 로절린드 프랭클린도 사실 비운의 여성 과학자는 아니었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연구의 공을 뺏겼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구조를 해석하는 선구자로서 엄청난 업적을 냈으며 죽기 전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외에도 생물의 생존 경쟁을 수학화함으로써 진화와 생태계의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 수리생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비토 볼테라, 1960년대 방사성 물질 낙진 위험 연구를 통해 환경 위기를 경고하고 환경 운동에까지 나아간 과학자 베리 커머너 등 저자들이 꼽은 세계를 바꾼 과학자들의 에피소드는 우리가 지금 고민하는 문제의 연원이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 준다.
과학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 활동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방식
우리가 너무나 인간적이고 약점 많은 과학자의 삶을 통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은 도대체 과학이란 무엇이며, 과학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를테면 과학의 역사와 과학자의 삶에 기반해 과학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하는 과학철학적 숙고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자는 시대와 사회, 자신이 발 딛은 근접 환경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은 과학자들이 기존 패러다임 내에서만 작업하고 패러다임을 전복하는 일은 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패러다임 내에서 작업하기에 패러다임을 깰 수 있었다. 물론 그 자신은 그런 일을 해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수 있지만 말이다. ‘힘의 선’이라는 개념을 창안함으로써 뉴턴식의 직선적 인력이나 척력으로 된 원거리 작용 패러다임을 깼던 패러데이는 뉴턴주의적 세계관 안에서 연구했다. 그런 패러데이를 세계관의 혁명가로 만든 결정적 요인은 외부 환경에 있었다. 가난한 대장장이 집안에서 태어나 인쇄소의 제본공 도제였던 패러데이는 책을 만들며 독학으로 과학 이론을 배웠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과학 엘리트들이 저술했던, 수학이 난무한 어려운 과학책은 이해하지 못했다. 수학적 테크닉이 없었기에 힘의 선이 보여 주는 회전 운동을 직선의 원거리 작용으로 환원하지 못했고 그 대신 힘의 선을 시각적으로 입증하는 실험에 열을 올렸다. 다양한 전기 현상을 시각적으로 보여 주려는 패러데이의 전략은 힘의 선과 전기장, 자기장 개념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바로 그 수학이 패러데이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자기력선이 공간에 물리적으로 실재하고 그 선을 따라 힘이 전달된다면 그 힘이 전달되는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원거리 작용에서는 힘이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데 비해, 자기력선을 통해 힘이 전달된다면 힘이 전달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인가? 자기력선이 물리적 실재라면 자기력선이 펼쳐져 있는 그 공간에는 에너지가 실려 있을까? 그 에너지의 크기는 얼마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현상을 보여 주는 실험만으로는 부족했다.”(44쪽) 이는 수학으로 무장한 신세대 물리학자의 몫으로 남는다. 패러데이의 후예 맥스웰이 위대한 과학자가 된 건 이런 상황적 맥락이 있었다.
스탠퍼드대학에 DNA학과를 만든 생화학자 아서 콘버그는 과학 활동이 고립된 천재의 의로운 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적확하게 입증한다. 콘버그는 발견에 대한 우선권을 놓고 과학자 간 경쟁이 격화되는 비밀주의와 고립주의가 과학 발전에 좋지 않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그가 자신의 학과에 정착시킨 문화가 ‘열린 냉장고’ 설치이다. 이 냉장고에 콘버그 자신의 실험실에서 생산한, DNA 뉴클레오타이드 및 DNA의 합성과 분해에 관여하는 효소들을 넣고 이를 DNA를 연구하는 국립보건원의 연구자들이 모두 이용할 수 있도록 공유했다. “콘버그는 이러한 공유 문화를 통해 자신의 실험실이 더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공유의 연구 공동체가 기존의 연구 질문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이를 독창적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창의적인 실험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을 때, 기초 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이 점차 부상했다.”(230~231쪽) 이는 연구에 필요한 자원을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방식으로 활용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와 동시에 콘버그는 생화학 연구를 다학제적 방식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분자생물학 여러 분과의 신진 학자들을 임용했다. “이런 배경에서 신임 교수는 과학적으로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점차 중요한 연구 주제를 개척하거나 창의적인 업적을 발표했다. 자원의 공유를 통해 성장한 이들은 또한 공동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와 책임감이라는 상호 호혜의 원칙하에 자신이 많은 연구비를 받을 때에도 이를 기꺼이 학과 구성원과 공유하면서 생화학학과라는 실험 공동체의 성장에 기여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적 구조이다.”(232~233쪽)
지은이
박민아
과학사학자. 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현 과학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뉴턴&데카르트: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거인》, 《퀴리&마이트너: 마녀들의 연금술 이야기》,《과학, 인문으로 탐구하다》(공저) 등이, 편역서로 《프리즘: 역사로 과학읽기》(편),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공역) 등이 있다.
이두갑
과학사학자. 서울대학교 과학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 잡지 《에피》 편집위원이며 지은 책으로 《The Recombinant University》 등이 있고 역서로 《자연 기계》(공역) 등이 있다.
이상욱
과학철학자. 한양대학교 철학과 및 인공지능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런던대학교(LSE)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 《인공지능 시대의 철학자들》(공저), 《포스트휴먼으로 살아가기》(공저), 《과학으
로 생각한다》(공저) 등이 있다.
책 속으로
더욱 중요한 점은 이들이 연마한 ‘능력’이 흔히 IQ로 측정되는 ‘머리 좋음’만을 의미하지 않았다는 결정적 사실입니다. 과학 연구 과정에서 ‘머리 좋음’보다 더 결정적인 능력은, 서로 다른 영역의 여러 지식을 함께 묶어 내어 그 사이의 숨은 연관성을 포착해 내고 이를 보다 일반적인 규칙으로 설명해 내는 통찰력이었습니다. 그리고 협동 작업이 강조되는 현대 과학으로 올수록 동료 과학자와의 협업 능력이나 소통 능력, 필요한 도움을 다양한 곳에서 효율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자원 동원 능력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바로 그것들이 과학의 결정적 순간들을 만든 핵심적 요인이었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요소들이 우리가 보는 세계를 바꾸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경이로운 순간이기도 합니다.
/ 들어가는 말 7쪽
오히려 갈릴레오는 자신이 수학자에서 자연철학자로 인식론적 지위가 상승했던 것처럼, 자연철학자에서 신학자로 또 다른 인식론적 지위 상승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오직 신학자만이 성경의 ‘참된 해석’에 대해 논의할 인식론적 지위를 갖기 때문이다. 결국 갈릴레오는 자신이 망원경으로 관찰한 결과에 기초해 우주의 참다운 구조를 논한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연철학적 연구를 통해 성경의 참된 의미를 해명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갈릴레오는 자신의 종교적 믿음과 자연철학적 연구 사이에 별다른 긴장 관계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갈릴레오는 종교에 저항한 과학자였다기보다는 종교와 과학이 양립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현대의 수많은, 종교를 가진 과학자의 선배였던 셈이다.
/ 1장 갈릴레오의 절반만 성공한 대화 22쪽
1821년 전자기 회전을 입증했음에도 뉴턴식의 원거리 힘의 개념을 벗어나는 과정은 패러데이에게도 그의 동시대 사람에게도 느리게, 몇 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다. 1831년, 패러데이는 고리 모양의 철심에 두 개의 절연 코일을 각각 감은 후 한쪽 절연 코일에는 검류계를 연결하여 닫힌 회로를 만들고, 다른 쪽 코일에는 전지를 연결하여 회로를 만들었다. 전지를 연결한 코일에 전류가 흐르는 순간, 이와는 단절된 옆 회로의 검류계 바늘이 움직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전류를 끊는 순간에도 검류계의 바늘이 움직였다. 회로에 흐르는 전류가 옆 회로에서도 전류를 만들어 낸 것이었는데 패러데이는 회로에 흐르는 전류가 주위에 자기장을 발생시키고 이 자기장이 옆 회로에 전류를 흐르게 하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 3장 패러데이가 힘의 선이 실재한다고 선언했을 때 38~39쪽
하지만 당시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실제로 플랑크는 1900년 논문을 발표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에너지의 양자화를 수학적 기법이 아니라 ‘물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데 주저했다. 그래서 1908년 동료 화학자 발터 네른스트Walter Nernst가 이제는 양자 개념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을 때에도 아직까지 물리학자 사이에서 양자 개념의 적절성에 대해 완전한 합의가 없기에 시기상조라고 답변했을 정도였다. 사실 이런 플랑크의 판단은 당시 물리학자의 분위기를 상당 부분 정확하게 읽은 것이다. 플랑크는 1908년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추천되었지만 당시 물리학계는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 이론을 빌헴름 빈의 이론을 개선한 정도로 보아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의견과 플랑크 이론의 독창성은 인정하면서도 노벨상을 수여할 만한 연구인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당연히 플랑크의 1908년 노벨상 수상은 좌절되었다.
/ 5장 플랑크의 ‘양자 혁명’ 60쪽
리비트와 하버드 여성 천문학자의 사례는 과학 연구에서 종종 나타나는 성별 분업 및 분업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위계의 전복을 보여 준다. 리비트와 여성 천문학자들이 하버드 천문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담당한 별빛 스펙트럼 분류 작업이 과학적으로 가치가 낮은 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하버드의 남성 천문학자는 페루의 아레키파에 있는 보이든관측기지로 가서 남반구의 별을 찍는 일을 더 선호했는데 거기에 진정한 발견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하버드 천문대의 별빛 스펙트럼 연구에서 항성 스펙트럼 촬영과 스펙트럼 분류 사이의 분업이 일어났고 이 분업은 남녀 간의 성별 분업일 뿐만 아니라 지적인 위계에 따라 나뉜 것이었다. 이는 과학 연구에서 성별 분업이 지적 위계를 동반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 8장 헨리에타 리비트가 변광성의 비밀을 밝혔을 때 88~89쪽
팜홀에서의 언급만 놓고 보면 하이젠베르크는 임계질량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이 한 말을 보면 이미 전부터 하이젠베르크는 제대로 알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하이젠베르크의 진실은 무엇일까? 하이젠베르크만이 알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팜홀 녹취록에 나타난 임계질량을 둘러싼 혼란은 후에 세련되게 정리되어 독일 과학자가 자신들의 전쟁 연구를 변호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전후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핵무기 과학자는 그 혼란이 의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이전부터 임계질량을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부풀려 말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쟁 중 핵무기 개발을 어렵게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나치에 저항했고 평화 시를 대비하여 원자력 발전 연구는 계속해 나갔다. 우리는 할 능력이 있었지만 인류를 위해 무기 개발을 하지 않은 도덕적인 과학자들이다, 라고. 정말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속인 것일까? 이어지는 논의를 살펴보면 그 주장이 맞을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자 이제 임계질량에 이어지는 동위원소 분리 방법에 대한 독일 과학자들의 논의를 살펴보자.
/ 15장 독일 과학자들이 원폭 투하 소식을 들었을 때 161쪽
튜링은 괴델이 다룬 문제를 더 직관적으로 정의한 후 내용적으로 괴델의 정리와 동등한 내용을 일반적으로 증명했다. 튜링의 접근 방식은 수학기초론에서 힐베르트 프로그램에 집중한 후 ‘괴델 숫자화’라는 특정한 형식화 방식을 사용한 괴델과 달리 특정 수학적 명제가 증명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한 일반적 접근을 취했다. 튜링은 어려운 문제를 풀 때마다 항상 지나칠 정도로 독창적이어서 원래 문제를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반화해 해결하는 재주가 있었다. 튜링은 ‘분명하게 규정된’이라는 힐베르트의 요구 사항을 숫자를 쓰고, 지우고, 다음 항목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은 극단적으로 단순한 기계적 행위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자고 제안했다
/ 17장 ‘낯선’ 지능을 소개한 튜링 184쪽
프랭클린의 연구는 연구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중앙부가 비어 있을 것이라는 카스파의 예측과 더불어, 원통형을 이루며 나선형으로 쌓인 단백질 캡시드 사이에 RNA가 깊숙이 박혀 나선을 그릴 것이라는 프랭클린의 발견이 더해지면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모형은 서서히 체계를 잡아 나갔다. 1956년 프랭클린과 클루그, 홈즈가 함께 발표한 논문에서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모형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났다. 원통형 바이러스의 반지름은 75옹스트롬, 역시 원통형 모양을 한 중앙부의 빈공간의 반지름은 20옹스트롬, RNA는 중앙으로부터 40옹스트롬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고, 나선의 1회전 높이는 23옹스트롬에 해당한다는 수치가 제시되었다. 프랭클린의 선명한 X선 회절 사진과 패터슨 함수를 적용한 계산이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의 정확한 ‘치수’를 제공한 것이다.
/ 21장 프랭클린과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226쪽
1950년대 방사성 물질의 위험을 경고한 커머너는 미국과 소련의 지상원폭시험금지협약이 생태학으로 환경을 지키는 캠페인의 첫 승리라고 평가했다. 1966년 자연계생물학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등 커머너는 자신의 생태학적 연구를 대기 오염, 수질 오염 및 농약, 인산염 같은 화학 물질 오염, 그 외 다양한 환경 위험으로 확장했다. 1960년대 내내 그의 연구는 환경 오염 위기의 생태학적 특징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대중에게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중점적 역할을 했다.
커머너는 특히 자동차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대기 오염이 인간이 초래한 환경 문제가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는 매우 심각한 사례임을 보여 주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1960년대 대기청정법을 비롯한 다양한 환경 보호 법안이 제정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 23장 베리 커머너, 환경 위기를 경고하다 239쪽
차례
들어가는 말 5
1장 갈릴레오의 절반만 성공한 대화
—1632년 피렌체 13
2장 톰슨이 줄의 발표에 이의를 제기했을 때
—1847년 25
3장 패러데이가 힘의 선이 실재한다고 선언했을 때
—1852년 34
4장 맥스웰주의자들이 승리를 선언한 날
—1888년 9월 45
5장 플랑크의 ‘양자 혁명’
—1900년 베를린 58
6장 볼츠만의 자살
—1906년 9월 69
7장 소르본 스캔들
—1911년 파리 76
8장 헨리에타 리비트가 변광성의 비밀을 밝혔을 때
—1912년 82
9장 캐넌의 하버드 항성 스펙트럼 분류법이 채택되었을 때
—1913년 91
10장 밀리컨이 광전 효과로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1923년 106
11장 비토 볼테라, 생존 경쟁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다
—1926년 120
12장 이렌 퀴리의 인공 방사성 원소 발견
—1934년 1월 127
13장 마이트너의 망명
—1938년 7월 12일 137
14장 하이젠베르크와 보어의 만남
—1941년 코펜하겐 146
15장 독일 과학자들이 원폭 투하 소식을 들었을 때
—1945년 155
16장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가 첫 봉급을 받았을 때
—1946년 168
17장 ‘낯선’ 지능을 소개한 튜링
—1950년 맨체스터 177
18장 제임스 왓슨, 분자생물학의 탄생을 알리다
—1953년 194
19장 조너스 소크가 폴리오 백신을 개발하다
—1953년 203
20장 프랜시스 크릭이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를 제시하다
—1957년 211
21장 프랭클린과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
—1958년 4월 17일 218
22장 아서 콘버그가 DNA 학과를 설립했을 때
—1959년 228
23장 베리 커머너, 환경 위기를 경고하다
—1970년 2월 2일 236
주 244
참고문헌 249
그림 출처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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