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비비언 고닉 지음 │ 서제인 옮김 │ 244쪽 | 16,000원 | 판형 138*214mm | 2022년 8월 11일 발행
ISBN 979-11-6689-103-8 (03840)
주소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 287 담당자 양하경 02-322-3675
메일 badabooks@daum.net 홈페이지 www.badabook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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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공연을 해나가고 있고
타인의 공연을 함께하고 있다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시대적인 에세이


비비언 고닉은 미국의 비평가이자 작가로서, 미국 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면에서 버지니아 울프와 자주 비견된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그의 대표작 《사나운 애착》(1987년)은 <뉴욕 타임스>에서 지난 반세기, 미국 최고의 회고록 중 하나로 꼽혔으며, 2021년 윈덤 캠벨 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주로 자전적 성격의 에세이와 칼럼, 문학비평 등을 써온 그는, 특히 자기 내면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동시에, 타인을 깊이 통찰하는 ‘고닉표 회고록’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민 가정의 여성으로 자란 고닉은 특유의 거침 없는 솔직함과 시적인 문장으로 자신의 인생을 술회한다.
그의 문체는 자신과 타인 사이에 오가는 드라마틱한 눈빛과 표정, 숨 막히는 찰나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포착하는데, 단순 설명을 넘어 각 인물의 목소리와 억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화체를 주로 사용하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는 고닉이 체현하는 그 숨막히는 거리감에서 ‘나와 타인’이 비로소 ‘우리’로서 기능하게 됨을 깨닫게 된다.
책은 7개의 에세이를 담았다. 표제작이자, 가장 첫 장인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뉴욕의 구석구석이 배경이다. 고닉이 거리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곳에서는 일종의 퍼포먼스가 시작된다. 거리는 무대이고, 거리를 지나는 모든 사람은 고닉을 포함하여 주인공이 된다. 고닉은 마주친 수많은 사람을 관찰하고, 귀를 기울여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는다. 마주친 낯선 이에게서 유명인이나 친구의 얼굴을 떠올려 추억하고, 시끄러운 소란과 고성이 오가는 곳에 멈춰서서는 그의 외침을 자신의 목소리와 닮았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거리에는 우연이 아닌 보이지 않는 관계가 얽히고설켜 하나의 서사로 연결된다.


이 책은 커져가는 외로움의 잔인함에 맞서고,
우정과 친밀함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기 위한 매일의 투쟁이다. 비비언 고닉의 힘은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
_메리 호손, 〈뉴욕 타임스〉


사람의 마음에 타인들과 세계를 감각하고
받아들이는 촉수가 있다면, 고닉은 남들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그리고 민감한
촉수를 가진 사람일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미국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에세이스트, 비비언 고닉
끊임없이 세상과 연결되고자 했던
자신의 경험과 이해를 낱낱이 풀어내다

거리에는 웃음과 고통이 있고, 반가움과 충돌이 있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우연한 마주침으로 고민을 잊고, 매일의 우울과 외로움을 씻어낼 수 있다. 거리는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장소이다. 혼자서는 웃을 수 없고, 충돌할 수 없지만 거리로 나가면 우리는 다양한 감각을 통해 ‘닿음’을 경험한다.
또한 거리는 그의 외로움을 씻어주는 곳이며, 자신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고닉에게 거리의 사람들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객체인 동시에 하나의 삶을 완성해주는 조각이다. 이 글을 통해 고닉은 관객 혹은 조연 없이는 공연이 온전한 의미를 갖기 힘들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들이 고닉의 무대에서 조연이 되어준 것처럼 고닉 역시 관객 혹은 조연으로 그의 무대 위를 기꺼이 지나가 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세계의 일부가 되어주고 있다고 고닉은 말한다.
그 사실을 고닉은 ‘공연’을 보여주듯이 독자에게 전달한다. 어떤 깨달음이 있다고 과장되게 말하지 않고 꾸며내지 않으며 그저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고 생생하게 써냈다. 자신이 어떻게 타인과 부대끼고 세상과 관계 맺었는지를 그대로 내보이며 고닉은 그 속에서 어떻게 성장하고 자아를 만들어갔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공연을 해나가고 있고
타인의 공연을 함께하고 있다

 〈힘겨운 진실을 꾸준히 바라볼 때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 가까워진다〉와 〈혼자 사는 일에 대하여〉는 세상에서 말하는 보통의 관계, 특히 부부 사이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자신이 자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글이다. 페미니즘의 격류가 몰아치던 때 그의 생각은 동지들에게 하나의 제안이 되었을 것이다. 〈똑바로 앞을 보고, 입을 다물고, 온전하게 균형을 잡는 것〉에서 성장하는 ‘나’가 세상의 권력과 관계에 대해 알아가는 일에 대한 경험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나는 경험이 너무도 부족한 수영 선수였다〉와 〈영혼을 죽이는 사소한 일들〉은 타인과 관계 맺으며 친해지고 멀어지는 일에 대해 썼다. 그러면서 고닉은 타인과 이어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고 그야말로 고귀한 일’이라고 말한다.
고닉의 글은 우리가 수많은 삶에 둘러싸여 있다고 말해준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해주는’ 거리는 문을 열면 닿을 수 있고, 우리는 모두 어디에서나 ‘공연’을 할 수 있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외로움을 벗어나 평온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거부당하고 미움받더라도 고닉은 끊임없이 자신과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에게 다가서려고 하는 사람이다.
차곡차곡 쌓이는 외로움과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기 위해 사람들 사이를 걷고, 거부당할 것을 알면서도 타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때로 후회하고 때로 자책하면서도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고닉의 태도야야말로 회고록에 가장 어울리는 것이다.

 

외로움과 투쟁하며 타인의 위로로 쌓아가는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시대적인 회고록

누군가의 경험과 깨달음을 숨김없이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고닉의 에세이는 특유의 적나라한 솔직함으로 그 즐거움을 극대화한다. 가장 개인적이고 적나라한 경험을 써내려간 글에는 시대의 변화와 생각 또한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닉이 사람들과 대화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확장시켜가고 거절당하고 부딪히면서도 세상과 관계 맺고 자기 자신을 찾아가듯이, 우리는 그의 에세이를 읽으며 같은 경험을 한다. 공감하고 반응하고 지성이 작동하는 경험을 통해 우리 삶도 자유롭고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고닉의 에세이가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읽히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의 글은 단지 그 개인의 회고록이 아니라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회고록이나 다름없다.

 

 

추천의 글

고닉의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인 이 책은 가차없이 정직하고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에세이집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게 되는 것은 오직 세상과 온전하게 관계를 맺는 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_줄리아 마커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커져가는 외로움의 잔인함에 맞서고, 우정과 친밀함의 한계를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기 위한 매일의 투쟁이다. 비비언 고닉의 힘은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있다. _메리 호손, 〈뉴욕 타임스〉

 

성숙한 지성이 만들어낸 것이 분명한 작품. 이 일곱 편의 에세이는 팽팽하고 정확한 언어뿐 아니라 아마도 오직 경험에서만 나오는 그야말로 정직한 태도로 한데 연결되어 있다. _케이트 터틀, 〈보스턴 북 리뷰〉

 

우리의 문화적 순간에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에세이스트. _필립 로페이트(영화평론가, 작가)

 

고닉의 언어는 너무나도 생생하고 솔직하다. 미국의 정수를 드러내주는 아름다운 목소리. _드와이트 가너, 〈뉴욕 타임스〉

 

고닉이 자신의 지난 작품들에 대해 말한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다. _미셸 오렌지, 〈뉴요커〉

 

비비언 고닉은 여전히 가장 지적이고 자립심이 강한 독자이며, 우리가 읽는 것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사이에 지속적으로 연결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_북포럼

 

비비언 고닉은 미국 문학 가운데 가장 논쟁적이고 갈등이 심한 에세이와 회고록 장르에서 일종의 대사 역할을 하는 작가다. _에밀리 스토크스, 〈뉴욕 타임스〉

 

때로 무의미해 보이는 고백적 글쓰기의 시대에, 고닉은 여전히 의미심장한 개인적 서사의 거장이다. _이사벨라 비덴한,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틀어져 버린 우정에 관해 쓰건 제임스 볼드윈의 작품에 관해 쓰건 간에, 고닉은 보기 드문 정직함과 타당한 분노, 눈에 띄는 정확함과 넘치는 다정함을 자신의 주제로 끌어온다. _멜리사 벤, 〈뉴 스테이츠먼〉

 

지은이 비비언 고닉 Vivian Gornick

에세이스트이자 저널리스트, 비평가. 예민하고 집요한 시선으로 자기 자신과 주변을 관찰하고, 솔직하고 냉정하게 의미를 발견해내는 작가다. 특히 내면 깊숙이까지 들여다보는 솔직하고 생생한 글로 회고록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뉴욕 시티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뉴욕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9년 〈빌리지 보이스〉의 기자로 일하면서 페미니스트를 취재했고, 자신의 인생을 바꿀 페미니즘에 빠져들었다. 그 밖에도 〈뉴욕 타임스〉 〈네이션〉 〈뉴욕 리뷰 오브 북스〉 등에 글을 기고해왔다.
2019년 어머니와 애증의 관계를 날카롭게 풀어낸 《사나운 애착》이 〈뉴욕 타임스〉에서 ‘지난 50년간 최고의 회고록’으로 선정되었고, 2021년에는 윈덤 캠벨 문학상의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그 밖에도 《사랑 소설의 종말The End of the Novel of Love》 《내 인생의 남자들The Men in My Life》이 전미도서비평가협회 비평 부문 후보에, 《이상한 여자와 도시The Odd Woman and the City》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 자서전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귀감이 되는 글을 썼다.
이 책에서 고닉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멀어지면서도 기꺼이 낯선 이들 사이로 들어가 연결되고자 했던 자신의 노력과 변화를 그대로 내보인다. 마치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글을 읽다 보면, 20세기 뉴욕 거리를 걷던 비비언 고닉의 감정과 마음을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 서제인
기자, 편집자, 작가 등 글을 다루는 다양한 일을 하다가 번역을 시작했다. 거대하고 유기체적인 악기를 조율하는 일을 닮은 번역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 옮긴 책으로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노마드랜드》 《아파트먼트》가 있다.

 

 

책 속으로

나는 그 거리가 꽤 자주 나를 위한 작품을, 끝없이 이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내가 꺼내 보고 또 꺼내 보는 반짝이는 경험의 빛을 탄생시킨다는 걸 깨달았다. 거리는 내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내게 해준다. 거리에서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_11쪽


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이 도시 그 자체처럼 넓은 범위에 걸쳐 있지만, 하나로 어우러져 있지는 않다. 내 친구인 사람들이 서로 친구는 아니다. 가끔씩 내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이 들고 뉴욕 사람들이 모두 동류로 느껴질 때면, 이런 우정들은 느슨하게 연결된 목걸이의 구슬처럼 느껴진다. 각각이 서로 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모두 내 목 아래쪽에 가볍지만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내게 마법 같은 따스한 연결감을 불어넣어주는 구슬. _15쪽

 

그들이 했던 말이 다시 귓가에 울리고, 그 얼굴과 몸짓이 눈앞에 떠올라 나는 혼자 웃는다. 나는 여기에 대화를, 저기에 해석을, 또 그다음 어딘가에는 논평을 덧붙이며 그 장면들을 수정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나는 내가 시간을 뒤로 돌리며 나와 마주치기 전의 그들을 상상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나는 흠칫 놀라, 내가 하루의 이야기를 쓰고 있음을, 막 나를 지나간 시간에 형태와 질감을 부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오늘 하루 나를 스쳐 간 사람들이 이제 나와 함께 방 안에 있다. 그들은 친구가, 거대한 친구들의 집단이 되었다. 오늘 밤 나는 내가 아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다. 그들은 내게 서사적인 충동을 되돌려준다. 내가 세상을 이해하게 해준다. 내 삶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도록 나를 일깨워준다. _46쪽

 

똑바로 들여다보기엔 힘겨운, 너무도 힘겨운 진실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과 공동체를 갈망한다. 그 두 가지 모두 삶에 있기를 바라기에는 썩 괜찮은 것들이지만 갈망할 만한 것들은 아니다.
갈망은 살인자와 같다. 갈망은 우리를 감상적으로 만든다. 감상적이 되면 우리는 낭만만을 추구하게 된다. 내게 있어 페미니즘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로맨스가 아니라 힘겨운 진실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힘겨운 진실을 추구한다. _60쪽

 

나는 내 삶을 돌아보았고, 내가 혼자 사는 법을 배운 적이 전혀 없음을 깨달았다. 내가 배운 것들은 꼼꼼히 계획을 세우고, 고통이 지나갈 때까지 누워 있고, 회피하고, 그럭저럭 살아가는 일이었다. 나는 익사하고 있지 않았지만 헤엄을 치고 있지도 않았다. 나는 누운 자세로 물에 뜬 채, 구조되기를 기다리며 해변에서 멀리 떠내려가고 있었다. _77쪽

 

그 후에 내가 외로움에서 나 자신을 비틀어 떼어냈던 게 기억난다. 외로움은 나를 겁에 질리게 했다. 몸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기로 균형이야말로 모든 것이었다. 나는 내 주위 잔디밭을, 건물들을, 주차장을, 직무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 조그맣고 빈틈없는 세계를 둘러보았다. 이 세계에서 내가 훌륭하게 작동하는 방법을(다시 말해 무례한 모욕을 피하고 어디까지 굴복할지 한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익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 똑바로 앞을 보고, 입을 다물고, 온전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삶의 크기가 얼마나 되든, 그것이 무엇으로 구성되든, 삶은 순간이라는 좁고 똑바른 길을 걸어 나가는 데 달려 있다고 나는 단호하게 생각했다. 나는 몽상으로부터 몸을 돌려 걸어갔고, 주방 문을 통과했다. _102~103쪽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나 자신에게 되뇌기 시작했다. 분노야말로 로더가 떠다니던 바다였는걸, 그 바다는 로더가 절대로….
갑자기 말들이 내 안에서 죽어버렸다. 익숙한 생각이 스스로 완성되기를 거부했다. 나는 내가 실은 나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하고 있던 이야기는 언제나 나 자신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결코 로더를 진정으로 알지 못했고, 그의 전체를 바라본 적도 없었다. 나는 필요할 때마다 그를 이용해왔다. _165쪽

 

좋은 대화는 지성과 정신의 단순하지만 신비로운 어울림에 달려 있는데, 그 어울림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연히 탄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공통의 관심사나 계급적 이해관계, 혹은 공동으로 세운 이상의 문제가 아니라 기질의 문제다. 기질이란 항의하는 투로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묻는 대신 본능적으로 이해한다는 듯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겠어” 하고 대답하게 하는 무언가다. _171쪽

 

결혼은 친밀감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유대감은 부서져 내린다.
공동체는 우정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참여는 끝이 난다.
지적인 삶은 대화를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삶의 신봉자들은 괴상해진다.
사실은 정말로 혼자 있는 게 더 쉽다. 욕망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것을 해결해주려 하지 않는 존재와 함께 있는 것보다는. 그럴 때 우리는 결핍과 함께하게 되는데, 그건 어째선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 결핍은 가장 나쁜 방식으로 우리가 정말로 혼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다시 말해 우리의 상상을 억누르고, 희망을 질식시킨다. _216쪽

 

그 편지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혼돈을 꿰뚫어 보며, 쓰는 것으로부터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아내고자 한 갈망의 기록이다. 다른 종류의 내적인 추구다. 다시 말해, 지도에 없는 공간으로의 여행이다.
정보의 전달이란 표면을 건드려보기 위해 일련의 연결 신호들을 발신하는 일이다. 반면 이야기하기란 황무지 한가운데 한 줄기의 길을 내는 일이다. 삶에는 둘 다 필요하다.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경험이 부족해진다. _235~2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