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지은이 : 모리 겐
일본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전문기자. 20여년 동안 인간 삶의 문제와 교육, 경제, 과학 분야 등의 이슈에 천착해 뛰어난 기자정신을 발휘해 왔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기자로 활동하며 다져진 문제의식으로 다양한 주제를 취재하고 있다. 2011년에는 세계를 들끓게 한 3월 11일 일본대지진의 재해 현장을 6개월간 발로 뛰며, 쓰나미에서 살아남은 아이들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기록했다. 이 기록은 《쓰나미의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으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응원에 힘입어 2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2012년에는 이 책으로 논픽션 분야의 아쿠타가와상이라 불리는 ‘제43회 오오야 소이치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인체 개조의 세기》, 《천재란 무엇인가?》, 《인터넷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구글‧아마존화하는 사회》, 《뇌에 좋은 책만 읽어라》, 《우리들의 구직활동 전기》, 《일하지 않는 삶의 방식》 등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탱해 주고,
그러다 보면 또 살아진다
재해를 입은 지 이제 곧 석 달이 됩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무엇이든 배웠습니다. 모두 말하자면 얼마만큼 될까요?
대피소 생활을 떠올리면 이건 고생도 아닙니다.
고생은커녕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과 밥을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스즈키 아이(게센누마 중학교 1학년)
*이 책은 일본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모리 겐이 2011년에 쓰나미 피해를 겪은 아이들에게 직접 글을 받아 싣고, 그 가족을 취재한 이야기로 2012년에 ‘제43회 오오야 소이치 논픽션상’을 받았다.
힘든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힘
2011년 3월 11일, 세계는 일본대지진을 보며 자연의 힘 앞에서 순식간에 파괴되는 인간과 인간이 구축한 문명의 나약함을 목격해야만 했다. 탐사보도 전문기자 모리 겐이‘이 참상을 어떻게, 얼마나 전달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후세에 각인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내린 결론은 피해 지역 아이들에게 작문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저자는 머리말에 <일본이라는 나라가 송두리째 변했다. 이러한 생각이 재해 이후 언제부터인가 일반적으로 널리 퍼졌다. 변화는 정치, 경제에서부터 국민의 일상생활에까지 미쳤다. 이 사상 초유의 재난을 겪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구나 했을 법한 생각을 나도 했다._8페이지>라고 당시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50군데 이상의 대피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비교적 마음을 추스른 아이들에게 쓰나미가 일어난 날의 이야기를 작문으로 써줄 것을 의뢰하여 총 115명에게 글을 받았고, 그중 70여 가족을 찾아가 취재했다. 작문 의뢰부터 피해 가족 취재까지 기간은 반년 정도이며, 봄에 시작한 취재는 가을이 되어서야 끝났다.
특히 감동적이거나 사연이 깊은 아이들과 가족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출간하자 각지로부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응원이 쏟아졌다. 메일과 격려 편지가 쇄도했고, 주요 신문사와 방송국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미디어에 보도되었다. 책은 몇 개월 만에 2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논픽션 분야의 아쿠타가와상이라 불리는‘제43회 오오야 소이치 논픽션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목차
머리말
쓰나미는 시커멓고 냄새 났어요
- 소중한 것들이 떠내려가고
아빠 같은 야구선수가 될 테야
- 받아들여야만 하는 죽음
이토록 무섭고 괴롭고 분한 날을 평생 잊지 않겠다
- 불량아들 부투기
엄청났던 날. 무서웠던 그날
-가족이 있어 다행이다
평생 잊지 말자
- 이곳이 우리가 있을 자리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 아버지와 딸의 계획
나와 함께 살아가요
- 내가 꿈꾸는 집
엄마를 꼭 찾겠습니다
- 살아남은 자의 슬픔
바이, 바이
- 그래도 여기서 살고 싶다
쓰나미
- 다시 나머지 삶을 살다
후기
편집자 추천글
힘든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힘
2011년 3월 11일, 세계는 일본대지진을 보며 자연의 힘 앞에서 순식간에 파괴되는 인간과 인간이 구축한 문명의 나약함을 목격해야만 했다. 탐사보도 전문기자 모리 겐이‘이 참상을 어떻게, 얼마나 전달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후세에 각인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내린 결론은 피해 지역 아이들에게 작문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저자는 머리말에 <일본이라는 나라가 송두리째 변했다. 이러한 생각이 재해 이후 언제부터인가 일반적으로 널리 퍼졌다. 변화는 정치, 경제에서부터 국민의 일상생활에까지 미쳤다. 이 사상 초유의 재난을 겪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구나 했을 법한 생각을 나도 했다._8페이지>라고 당시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50군데 이상의 대피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비교적 마음을 추스른 아이들에게 쓰나미가 일어난 날의 이야기를 작문으로 써줄 것을 의뢰하여 총 115명에게 글을 받았고, 그중 70여 가족을 찾아가 취재했다. 작문 의뢰부터 피해 가족 취재까지 기간은 반년 정도이며, 봄에 시작한 취재는 가을이 되어서야 끝났다.
특히 감동적이거나 사연이 깊은 아이들과 가족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출간하자 각지로부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응원이 쏟아졌다. 메일과 격려 편지가 쇄도했고, 주요 신문사와 방송국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미디어에 보도되었다. 책은 몇 개월 만에 2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논픽션 분야의 아쿠타가와상이라 불리는‘제43회 오오야 소이치 논픽션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아이들, 그리고 가족……
취재를 하면서 마음이 끌린 것은 한 인간으로서의 아이들과 보호자, 그리고 그 가족이 지나온 이야기였다고 한다. 지역과 장소에 따라 피해 상황이 다르듯이, 각각의 피해자에게는 각각의 삶이 있고 가족이 있다. 같은 지역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각기 다른 가족이 품은 역사와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개성은 전혀 달랐다.
그래서 저자는 작문집을 낸 뒤에 몇몇 가족을 만나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감탄스러운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깊이 생각해 볼 이야기도 있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낀 이야기, 괴롭지만 다시 일어설 희망이 보이는 이야기도 있었으며 그 모든 이야기가 그저 단순하지 않고 마음을 울리는 것이었다.
그는 취재 시 만난 아이들의 슬픔을 글 속에 고스란히 녹여 내고 있다. 어린 동생과 엄마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초등학교 2학년 마이는 <“엄마랑 교스케는 하늘나라에 가서 별이 되었단다. 늘 너를 지켜볼 거야.”마이가 대답했다.“죽었어? 돌아온다더니. 엄마랑 교스케는 꼭 돌아온다더니…….”그러고는 울었다. _27페이지>라고 슬픔을 표현했다고 한다.
아빠처럼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초등학교 2학년 도모유키는 아빠를 화장하는 날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화장터에 다다라서 지금까지 괜찮아 보였던 도모유키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참았던 게야.”라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도모유키는 내내 참았던 게야. 돌아올 거라 믿었으니까. 그때 긴장이 풀린 거지. 그 이후론 안 울어. 아빠 얘기도 안 하고. 그걸 모르겠어. 그래도 운 다음부턴 기운을 차리더라고. 제 스스로 아빠에 대한 마음을 한풀 접은 건지도 몰라.”_57페이지>
하지만 아이들과 가족들은 슬픔에만 잠겨 있지 않고, 재난을 이겨 내고 극복하려는 의지와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집이 모두 쓸려나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집터에서 초등학교 3학년 루이는 사진을 발견하고 ‘추억은 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삶을 다진다.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우노스마이에 간다고 말했습니다. 가니까 사진이 많이 나왔습니다. 나는 ‘쓰나미에 전부 쓸려 가버렸지만, 사진이 추억으로 남아서 다행이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런 일을 이겨 내고, 죽은 사람 몫까지 힘내서 씩씩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함께 힘차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_182페이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중학교 2학년 나오카는 노트 한 권과 필통만 가지고 겨우 쓰나미를 피해 나왔지만 <가족이 한데 뭉쳐 힘을 내는 날이 올 때까지 여러분 응원해 주세요.“바이, 바이. 할머니.”“고마워요, 여러분.”“잘 부탁해.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마을아.”“무사히 돌아와 준 친구들도 고마워.”“모두 사랑해요.”_239페이지>라고 희망 메시지를 날린다.
재난이 휩쓸고 갈 수 없는 것들
저자는 <많은 아이들은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는 동안 부모 형제를 생각하고 두려움과 싸웠다. 한편으로 부모나 조부모는 아이들의 무사를 빌며 다시 만나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그중에는 그러한 바람을 끝내 이룰 수 없는 사람도 많았다. 그럼에도 재해 지역 사람들이 살아가는 첫째 이유도 가족이고 아이들이었다. 아내를 잃은 남편들, 나카무라 다케노리, 야하타 미쓰노리는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딸을 지키고 딸을 통해 구원받으며 재해 후의 날들을 힘겹게 이겨 냈다. 그 모습은 진정 가족의 힘이었다._282페이지>라고 썼으며, 쓰나미 이후 변화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작문에는 재난을 대하는 아이들 나름의 방식이나 표현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의 작문은 각 가족의 상징이자 빙산의 일각이어서 그 가족 전체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더 깊은 감동이 느껴졌다.
반항기 있고 불량스러운 아들이었던 히로후미는 재난을 통해 한층 성장하게 되었다. 소년은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다닌 과정에 대해 <나는 인생에서 이렇게 전속력으로 달린 적이 없을 만큼 정신없이 계속 달렸습니다. 학교 체육관에 다다라서야 눈물이 터졌고, 놀란 여동생을 발견하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생각한 순간, 체육관에도 쓰나미가 들이닥쳤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죽은 줄만 알았던 형이 살아서 돌아오자 늘 싸우던 모습과는 달리 눈에 띄게 사이가 돈독해졌고 가족을 끔찍이 생각하는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재난은 아이에게도 무서운 경험을 안겨 줄 수밖에 없어서 추위에 떠는 노인들과 대피소 사람들을 돕기 위해 흙탕물 속을 헤매 다니며 식료품을 주워와 나누어 주어야 했고, 이때 도로에 떠다니는 수많은 시신들을 목격했다.
<엄마는 아직 못 찾았지만, 꼭 찾아내서 3명이 사이좋게 살고 싶습니다. 모두 힘내세요.>라고 썼던 초등학교 5학년생 지요는 결국 엄마의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자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라는 아빠의 물음에 “아빠가 있으니까.”라고 대답한 딸은 애정 표현을 부쩍 자주해 아빠를 위로해 주는 의젓함을 보였다.
지금은 80세가 된 마키노 아이 할머니는 생애 두 번이나 쓰나미를 맞게 되는데, 고등소학교 6학년 때 부모와 동생들을 모두 쓰나미로 잃고 홀로 살아남았다. <내가 늘 하던 대로 “삼촌, 엄마랑은 안 보여요?” 하고 물을 때마다 삼촌은 눈에 눈물을 담고 “엄마랑은 아마도 바다로 갔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나는 시체가 바다 위로 떠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나는 혼자 포기하려고 해도, 아무래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세끼 식사 때마다 아빠,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납니다._262페이지>라고 작문에 썼다. 할머니는 평생토록 그날을 잊지 못하며 주위사람들과 가족들에게 “쓰나미는 오고 또 온다.”는 말로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곳이 우리가 있을 자리입니다
작문집 취재로 만난 70여 가족 중 해안가에 자리 잡은 고향을 떠나 내륙지방으로 간 것은 단 두 가족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자기 마을에 남았다. 만나는 가족마다 반복해서‘쓰나미를 생각 못 했는지?’,‘왜 여기서 살아왔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것은‘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는 등산가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숙명이었다.
아이들의 작문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어느 한 사람도 그들 고향을 벗어나고자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쓰나미의 그 두렵고 떨리는 경험을 하고서도 그곳에서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빠른 복구를 바랐고, 앞으로 그 일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로 원고지를 가득 메웠다. 그것은 몇 년 뒤, 혹은 십 몇 년 뒤, 그들이 지역 재건의 주역이 되리라는 다짐의 표현이기도 했다.
저자는 그들의 재건 의지와 삶의 태도에 대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쓰나미를 피해 도망치고, 아이들과 함께 다시금 생활 기반을 닦고, 아이들에 의해 구원받는다. 지역민들도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한다. 아이들 스스로도 생각한다. 생채기가 난 어린 마음에도 부모를 생각하고, 형제를 생각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지역을 생각하고, 재해 지원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으며 재난을 받아들였다._288페이지>라고 쓰고 있다.
<이곳이 우리가 있을 자리입니다. 화산과 바다의 위협으로 아무리 위험하다 한들 우리가 태어난 곳은 이곳입니다.>
작가 펄 벅의 《쓰나미》라는 책에서 가족을 모두 잃은 소년 지야가 한 이 말은 피해 지역의 아이들에게서 수없이 들은 말과 똑같았다.
저자소개
지은이 : 모리 겐
책정보 및 내용요약
그러다 보면 또 살아진다
재해를 입은 지 이제 곧 석 달이 됩니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무엇이든 배웠습니다. 모두 말하자면 얼마만큼 될까요?
대피소 생활을 떠올리면 이건 고생도 아닙니다.
고생은커녕 이렇게 사랑하는 가족과 밥을 먹을 수 있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합니다.
스즈키 아이(게센누마 중학교 1학년)
*이 책은 일본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모리 겐이 2011년에 쓰나미 피해를 겪은 아이들에게 직접 글을 받아 싣고, 그 가족을 취재한 이야기로 2012년에 ‘제43회 오오야 소이치 논픽션상’을 받았다.
힘든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힘
2011년 3월 11일, 세계는 일본대지진을 보며 자연의 힘 앞에서 순식간에 파괴되는 인간과 인간이 구축한 문명의 나약함을 목격해야만 했다. 탐사보도 전문기자 모리 겐이‘이 참상을 어떻게, 얼마나 전달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후세에 각인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내린 결론은 피해 지역 아이들에게 작문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저자는 머리말에 <일본이라는 나라가 송두리째 변했다. 이러한 생각이 재해 이후 언제부터인가 일반적으로 널리 퍼졌다. 변화는 정치, 경제에서부터 국민의 일상생활에까지 미쳤다. 이 사상 초유의 재난을 겪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구나 했을 법한 생각을 나도 했다._8페이지>라고 당시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50군데 이상의 대피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비교적 마음을 추스른 아이들에게 쓰나미가 일어난 날의 이야기를 작문으로 써줄 것을 의뢰하여 총 115명에게 글을 받았고, 그중 70여 가족을 찾아가 취재했다. 작문 의뢰부터 피해 가족 취재까지 기간은 반년 정도이며, 봄에 시작한 취재는 가을이 되어서야 끝났다.
특히 감동적이거나 사연이 깊은 아이들과 가족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출간하자 각지로부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응원이 쏟아졌다. 메일과 격려 편지가 쇄도했고, 주요 신문사와 방송국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미디어에 보도되었다. 책은 몇 개월 만에 2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논픽션 분야의 아쿠타가와상이라 불리는‘제43회 오오야 소이치 논픽션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목차
쓰나미는 시커멓고 냄새 났어요
- 소중한 것들이 떠내려가고
아빠 같은 야구선수가 될 테야
- 받아들여야만 하는 죽음
이토록 무섭고 괴롭고 분한 날을 평생 잊지 않겠다
- 불량아들 부투기
엄청났던 날. 무서웠던 그날
-가족이 있어 다행이다
평생 잊지 말자
- 이곳이 우리가 있을 자리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 아버지와 딸의 계획
나와 함께 살아가요
- 내가 꿈꾸는 집
엄마를 꼭 찾겠습니다
- 살아남은 자의 슬픔
바이, 바이
- 그래도 여기서 살고 싶다
쓰나미
- 다시 나머지 삶을 살다
후기
편집자 추천글
2011년 3월 11일, 세계는 일본대지진을 보며 자연의 힘 앞에서 순식간에 파괴되는 인간과 인간이 구축한 문명의 나약함을 목격해야만 했다. 탐사보도 전문기자 모리 겐이‘이 참상을 어떻게, 얼마나 전달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후세에 각인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내린 결론은 피해 지역 아이들에게 작문을 시키자는 것이었다.
저자는 머리말에 <일본이라는 나라가 송두리째 변했다. 이러한 생각이 재해 이후 언제부터인가 일반적으로 널리 퍼졌다. 변화는 정치, 경제에서부터 국민의 일상생활에까지 미쳤다. 이 사상 초유의 재난을 겪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구나 했을 법한 생각을 나도 했다._8페이지>라고 당시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50군데 이상의 대피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비교적 마음을 추스른 아이들에게 쓰나미가 일어난 날의 이야기를 작문으로 써줄 것을 의뢰하여 총 115명에게 글을 받았고, 그중 70여 가족을 찾아가 취재했다. 작문 의뢰부터 피해 가족 취재까지 기간은 반년 정도이며, 봄에 시작한 취재는 가을이 되어서야 끝났다.
특히 감동적이거나 사연이 깊은 아이들과 가족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출간하자 각지로부터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응원이 쏟아졌다. 메일과 격려 편지가 쇄도했고, 주요 신문사와 방송국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미디어에 보도되었다. 책은 몇 개월 만에 2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논픽션 분야의 아쿠타가와상이라 불리는‘제43회 오오야 소이치 논픽션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아이들, 그리고 가족……
취재를 하면서 마음이 끌린 것은 한 인간으로서의 아이들과 보호자, 그리고 그 가족이 지나온 이야기였다고 한다. 지역과 장소에 따라 피해 상황이 다르듯이, 각각의 피해자에게는 각각의 삶이 있고 가족이 있다. 같은 지역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각기 다른 가족이 품은 역사와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개성은 전혀 달랐다.
그래서 저자는 작문집을 낸 뒤에 몇몇 가족을 만나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 감탄스러운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깊이 생각해 볼 이야기도 있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낀 이야기, 괴롭지만 다시 일어설 희망이 보이는 이야기도 있었으며 그 모든 이야기가 그저 단순하지 않고 마음을 울리는 것이었다.
그는 취재 시 만난 아이들의 슬픔을 글 속에 고스란히 녹여 내고 있다. 어린 동생과 엄마를 한꺼번에 잃어버린 초등학교 2학년 마이는 <“엄마랑 교스케는 하늘나라에 가서 별이 되었단다. 늘 너를 지켜볼 거야.”마이가 대답했다.“죽었어? 돌아온다더니. 엄마랑 교스케는 꼭 돌아온다더니…….”그러고는 울었다. _27페이지>라고 슬픔을 표현했다고 한다.
아빠처럼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겠다는 초등학교 2학년 도모유키는 아빠를 화장하는 날 슬픔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화장터에 다다라서 지금까지 괜찮아 보였던 도모유키가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참았던 게야.”라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도모유키는 내내 참았던 게야. 돌아올 거라 믿었으니까. 그때 긴장이 풀린 거지. 그 이후론 안 울어. 아빠 얘기도 안 하고. 그걸 모르겠어. 그래도 운 다음부턴 기운을 차리더라고. 제 스스로 아빠에 대한 마음을 한풀 접은 건지도 몰라.”_57페이지>
하지만 아이들과 가족들은 슬픔에만 잠겨 있지 않고, 재난을 이겨 내고 극복하려는 의지와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집이 모두 쓸려나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집터에서 초등학교 3학년 루이는 사진을 발견하고 ‘추억은 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삶을 다진다. <자고 일어났더니 엄마가 우노스마이에 간다고 말했습니다. 가니까 사진이 많이 나왔습니다. 나는 ‘쓰나미에 전부 쓸려 가버렸지만, 사진이 추억으로 남아서 다행이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이런 일을 이겨 내고, 죽은 사람 몫까지 힘내서 씩씩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나와 함께 힘차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_182페이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중학교 2학년 나오카는 노트 한 권과 필통만 가지고 겨우 쓰나미를 피해 나왔지만 <가족이 한데 뭉쳐 힘을 내는 날이 올 때까지 여러분 응원해 주세요.“바이, 바이. 할머니.”“고마워요, 여러분.”“잘 부탁해.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마을아.”“무사히 돌아와 준 친구들도 고마워.”“모두 사랑해요.”_239페이지>라고 희망 메시지를 날린다.
재난이 휩쓸고 갈 수 없는 것들
저자는 <많은 아이들은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는 동안 부모 형제를 생각하고 두려움과 싸웠다. 한편으로 부모나 조부모는 아이들의 무사를 빌며 다시 만나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그중에는 그러한 바람을 끝내 이룰 수 없는 사람도 많았다. 그럼에도 재해 지역 사람들이 살아가는 첫째 이유도 가족이고 아이들이었다. 아내를 잃은 남편들, 나카무라 다케노리, 야하타 미쓰노리는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딸을 지키고 딸을 통해 구원받으며 재해 후의 날들을 힘겹게 이겨 냈다. 그 모습은 진정 가족의 힘이었다._282페이지>라고 썼으며, 쓰나미 이후 변화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작문에는 재난을 대하는 아이들 나름의 방식이나 표현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의 작문은 각 가족의 상징이자 빙산의 일각이어서 그 가족 전체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더 깊은 감동이 느껴졌다.
반항기 있고 불량스러운 아들이었던 히로후미는 재난을 통해 한층 성장하게 되었다. 소년은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다닌 과정에 대해 <나는 인생에서 이렇게 전속력으로 달린 적이 없을 만큼 정신없이 계속 달렸습니다. 학교 체육관에 다다라서야 눈물이 터졌고, 놀란 여동생을 발견하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동생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생각한 순간, 체육관에도 쓰나미가 들이닥쳤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죽은 줄만 알았던 형이 살아서 돌아오자 늘 싸우던 모습과는 달리 눈에 띄게 사이가 돈독해졌고 가족을 끔찍이 생각하는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재난은 아이에게도 무서운 경험을 안겨 줄 수밖에 없어서 추위에 떠는 노인들과 대피소 사람들을 돕기 위해 흙탕물 속을 헤매 다니며 식료품을 주워와 나누어 주어야 했고, 이때 도로에 떠다니는 수많은 시신들을 목격했다.
<엄마는 아직 못 찾았지만, 꼭 찾아내서 3명이 사이좋게 살고 싶습니다. 모두 힘내세요.>라고 썼던 초등학교 5학년생 지요는 결국 엄마의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자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라는 아빠의 물음에 “아빠가 있으니까.”라고 대답한 딸은 애정 표현을 부쩍 자주해 아빠를 위로해 주는 의젓함을 보였다.
지금은 80세가 된 마키노 아이 할머니는 생애 두 번이나 쓰나미를 맞게 되는데, 고등소학교 6학년 때 부모와 동생들을 모두 쓰나미로 잃고 홀로 살아남았다. <내가 늘 하던 대로 “삼촌, 엄마랑은 안 보여요?” 하고 물을 때마다 삼촌은 눈에 눈물을 담고 “엄마랑은 아마도 바다로 갔을 거야.”라고 했습니다. 나는 시체가 바다 위로 떠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나는 혼자 포기하려고 해도, 아무래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세끼 식사 때마다 아빠,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납니다._262페이지>라고 작문에 썼다. 할머니는 평생토록 그날을 잊지 못하며 주위사람들과 가족들에게 “쓰나미는 오고 또 온다.”는 말로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곳이 우리가 있을 자리입니다
작문집 취재로 만난 70여 가족 중 해안가에 자리 잡은 고향을 떠나 내륙지방으로 간 것은 단 두 가족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자기 마을에 남았다. 만나는 가족마다 반복해서‘쓰나미를 생각 못 했는지?’,‘왜 여기서 살아왔는지?’를 물어보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것은‘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는 등산가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숙명이었다.
아이들의 작문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어느 한 사람도 그들 고향을 벗어나고자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쓰나미의 그 두렵고 떨리는 경험을 하고서도 그곳에서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빠른 복구를 바랐고, 앞으로 그 일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로 원고지를 가득 메웠다. 그것은 몇 년 뒤, 혹은 십 몇 년 뒤, 그들이 지역 재건의 주역이 되리라는 다짐의 표현이기도 했다.
저자는 그들의 재건 의지와 삶의 태도에 대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쓰나미를 피해 도망치고, 아이들과 함께 다시금 생활 기반을 닦고, 아이들에 의해 구원받는다. 지역민들도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한다. 아이들 스스로도 생각한다. 생채기가 난 어린 마음에도 부모를 생각하고, 형제를 생각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지역을 생각하고, 재해 지원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으며 재난을 받아들였다._288페이지>라고 쓰고 있다.
<이곳이 우리가 있을 자리입니다. 화산과 바다의 위협으로 아무리 위험하다 한들 우리가 태어난 곳은 이곳입니다.>
작가 펄 벅의 《쓰나미》라는 책에서 가족을 모두 잃은 소년 지야가 한 이 말은 피해 지역의 아이들에게서 수없이 들은 말과 똑같았다.